그리고 송편......] 수아는 웃으면서 가로채듯 입을 열었다. [금오파의 조사이신 할머니, 제자가 후일 영웅호걸이 되어 무림을 주름잡으면 그 별호부터 고쳐야겠어요.] 사 노파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군, 그런데 도대체 너의 이름이 뭐냐?] 그녀는 숨을 몰아쉬며 계속 말했다. [이 사부에게 속일 것이 뭐가 있느냐?] 석파천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그래요. 저의 어머니는 저를 개잡종이라고 불렀어요. 장락방의 사 람들은 방주 석파천이라고 불렀지요. 그러나 기실 저는......자신의 성이 무엇이고 이름이 무엇인지 모른답니다.] 사 노파는 그의 말에 너무도 어이가 없었다. [흐흐흐.......개잡종이라구? 터무니없는 소리! 너의 어미는 아마도 반미치광이인가 보다. 이렇게 하자. 너는 나를 따라서 사씨 성을 쓰 도록 해라. 우리 금오파는 제 이대의 제자에게 어떤 항렬의 이름 자 를 쓸까......] 그녀는 잠시 생각해보더니 다시 말했다. [설산파의 제자들은 만검, 만리, 만종으로 나가니 우리들은 설산파 보다는 백배, 천배 높아야지. 그러니 우리들은 억(億)으로 돌림자를 쓰자구나. 백가 녀석을 백만검이라고 했으니 너의 이름은 사억도(史 億刀)라고 하자.] 석파천은 지금까지 진짜 이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개잡종이니, 석파천이니, 또는 송편이라고 불려도 상관이 없었다. 사 노파가 사억도라는 이름을 지어주자 그는 억이 무엇인지 뜻을 제 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도 그녀의 호의를 무시하고 싶지 않아 즉시 응낙을 하였으나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사 노파는 기분이 좋고 기운이 나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금오도법으로 말하자면 오륙 년 전에 이미 완성되었으나 이 도법을 쓰는 사람은 반드시 강한 내력으로 뒷받침을 해야 한다. 그렇 지 않으면 이 도법의 오묘한 점을 펼칠 수가 없다......] 그녀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생각을 가다듬은 후에 천천히 다시 말 했다. [이번에 양자강에서 정불사라는 늙은이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반 드시 우리들을 벽라도로 모셔서 대접하겠다고 강요하다시피하여 크게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물론, 그로 하여금 어려움을 알고 물러서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즉시 수아와 무망신공이라는 내공을 연마했었다. 연성한 후 그 공력을 바탕으로 나는 금오도법을 쓰고 저 애는 옥토검법(玉兎劍法)을 쓰게 할 참이었다. 그리하여 일월(日月) 이 상부상조하듯 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면 정불사라는 늙은이 쯤은 말할 것도 없고 무림에 해를 끼치고 있는 상선벌악(賞善罰惡)이라는 사자(使者)들도 소문만 듣고 도망치게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했다. [그러니 설산파의 오만무례한 무리들은 더 말할 것도 없는데 내가 너무 재촉하는 바람에 수아가 그만 주화입마케 되었고, 내가 수아를 구하려고 손을 쓰다가 나마저 주화입마되어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단 다......] 석파천을 제자로 삼게 되자 그녀는 전혀 꺼리낌없이 다 털어놓고 있 었다. [다행히 너의 일신 내력은 웅후하기 이를데 없으니 금오도법을 연마 하는데 알맞은 인재라 할 수 있다. 도법은 검법과 다르다. 검은 날렵 한 것을 위주로 해야 하고 도는 교묘하면서도 힘찬 기운을 위주로 해 야 한다. 그 나뭇가지는 너무 가벼우니 다시 좀더 굵은 나뭇가지를 찾아오도록 해라.] 석파천은 곧 숲속으로 들어가 적당한 나뭇가지를 골랐다. 그러다가 문득 그는 한 그루의 잘라진 나무 밑에 한 자루 녹슨 칼이 버려져 있 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칼은 무림에서 쓸 만한 칼은 못 되었다. 다만 나무할 때 쓰는 칼 인 것이다. 그는 그 칼을 들고 찬찬히 살폈다. 칼자루가 파손되었고 칼날도 곳곳에 이가 빠져 오래 전에 버려진 것 을 알 수 있었으나 손에 들고 보니 묵직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녹이 슨 칼이지만 나뭇가지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는 다 썩은 나무 칼자루를 뽑아버리고 다른 나무토막을 칼자루로 만들어 박고는 신이 나서 돌아왔다. 사 노파와 수아는 그 녹슨 칼을 보자 그만 실소했다. 수아는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할머니, 금오파에서는 오늘 창립을 알리는 대전을 거행해야 하는데 저런 칼을 사용해서 큰제자에게 무공을 전수한다는 것은 너무나 초라 한 느낌이 드는군요......] 사 노파는 엄숙하게 말했다. [초라하다니? 우리 금오파가 훗날 무림에서 위세를 떨치게 된다면 모두 저 한 자루의 보도(寶刀)로 이룩해 낸 것이 될 게다. 하하 하......] 그녀는 보도하고 말하기는 했으나 자기도 우스운 듯 그만 웃음을 터 뜨리고 말았다. 두 사람도 덩달아 웃음을 터뜨렸다. 사 노파는 웃음을 거두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됐다. 잘 기억해라. 금오도법의 제일 초는 개문입도(開門揖 盜)라고 하는 것이다.] 그녀는 나뭇가지를 하나 주워 천천히 하나의 자세를 펼쳐보이고 다 시 말했다. [나는 손과 발에 힘이 없어 초식을 빨리 펼칠 수가 없다. 그러나 너 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으니 될 수 있는 한 빨리 펼쳐보도록해라.] 석파천은 녹슨 칼을 들고 그대로 해보았다. 매우 신속하여 칼이 휘 둘러질 때마다 바람소리가 휙휙 일었다. 사 노파는 만족스러운 듯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됐다. 도법을 익숙하게 펼치게 되었을 때 좀더 빨리 휘두르도록 해 라. 이 개문읍도(開門揖盜)로 말하면 바로 설산파의 창송영객(蒼松迎 客)이라는 일 초를 제압하는 도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녀는 설산파와 무슨 원한이 있는지 다시 설명을 덧붙였다. [그들이 거짓 인의(仁義)를 내세우며 손님을 맞겠다고 할 때 우리들 은 솔직하고도 당당하게 적을 맞아들인다는 것이다......] 곧이어 그녀는 다시 제이 초를 펼쳐보였다. [제이 초는 매설봉하(梅雪逢夏)라는 것으로서 설산파의 매설쟁춘(梅 雪爭春)이라는 일 초를 제압하는 초식이기도 하다. 설산검법은 매화 다섯 잎이니 눈송이(雪花) 여섯모니 하지만 매화와 눈송이가 여름을 맞게 하는 것이다. 여름에 매화와 눈송이가 무슨 위풍이 있겠느냐?] 매설쟁춘이라는 일 초의 검법은 매우 복잡했다. 석파천은 장락방의 총단에서 백만검이 이 검법을 펼치는 것을 본적 이 있었다. 검의 광채가 점점이 이는 것이 상당한 위세를 보였던 것을 기억하나 토지묘에서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말았다. 이 매설봉하라는 도법은 순식간에 위로 세 번, 그리고 아래로 세 번 을 휘두르는가 하면 좌우 양쪽에 각기 세 번씩을 칼질을 하는 것이라 도합 십이 식(十二式)을 포함하고 있었다. 상대방의 검초가 어떠한 변화를 일으키던 간에 한 줄기 위맹하고 매 서운 경력(勁力)을 뻗쳐내어 상대방의 복잡다단한 검초를 모조리 해 소시키는 수법이었다. 그야말로 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눈송이를 녹여버리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제삼 초는 천균압타(千鈞壓駝)라는 것인데 설산파의 명타서래(明駝 西來)를 제압하는 초식이었다. 제사 초는 대해침사(大海浸沙)로 풍사망망(風沙莽莽)을 제압하는 것 이었고, 제오 초 적일염염(赤日炎炎)은 월색혼황(月色昏黃)을 제압하 는 것인데 밝음으로 어둠을 이기는 것이었다. 제칠 초인 포어지사(鮑魚之肆)는 암향소영(暗香疏影)이라는 일초를 제압하는 도법인데 구린내로 향기를 이긴다는 뜻이었다. 도법에는 괴상망측한 이름들이 붙어 있었다. 그 도법은 설산파의 검법과 완전히 상극하도록 창안된 도법들이었 다. 명칭이 이상하기는 했으나 도법만은 상당히 정교하고 기묘했다. 석파천은 글을 한 자도 몰랐으니 그 괴상망측한 이름들을 제대로 외 울 턱이 없었다. 다만 그는 애써서 칼을 쓰는 부위와 손짓 같은 것을 일일이 기억했 다. 사 노파는 한편으로 이야기하면서 한편으로 손짓을 하며 초식을 천 천히 펼쳐보였다. 그녀는 석파천이 잘못 펼쳐 보이면 즉시 바로잡아 주었다. 그는 토지묘에서 몰래 검법을 배웠던 때보다 훨씬 수월하게 배워갔 다. 사 노파는 그와 같이 하여 십팔 초의 도법을 그에게 전수한 후 피로 감을 느끼는지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그제서야 석파천은 스스로 도법을 연마했다. 반 시진이 지나게 되었을 때 사 노파는 다시 그에게 십팔 초를 전수 했다. 황혼 무렵이 되었을 때 어느덧 석파천은 칠십이 초의 도법을 전수받 게 되었고, 동시에 이미 잊어버린 구 초의 설산검법마저도 알게 되었 다. 금오도법은 전문적으로 설산검법을 제압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법이 었으므로 자연히 설산검법을 먼저 익혀야 했던 것이다. 사 노파는 도법을 전수하고 나서 말했다. [설산파의 검법은 칠십이 초가 있으나 우리 금오파의 무공은 설산파 의 검법을 매초마다 제압을 하는 도법이기 때문에 칠십삼 초로 이루 어져 있다. 칠십삼 초로 그들의 칠십이 초를 깨뜨리게 되는데 최후의 일 초를 자세히 보아라.] 그녀는 나뭇가지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곧장 내리친 후에 설명을 했 다. [이 일 초를 펼치게 되었을 때 반드시 허공으로 몸을 뽑아올리고 몸 과 함께 곧장 아래로 내려쳐야 한다.] 그녀는 어떻게 몸을 날릴 것이며, 어떻게 힘을 칼에 돋울 것이며, 또한 어떻게 상대방이 도망칠 빈틈을 막아야 할 것인가를 자세히 설 명했다. 석파천은 한동안 생각해보고 나서 그대로 해보았다. 그가 몸을 일으켜서는 허공에서 칼을 휘둘러 곧장 내려치자 휙, 하 는 소리와 함께 칼날이 땅과 몇 자의 간격을 남겨 두고 있었는데도 흙모래가 훅, 하니 일었을 뿐만 아니라 낙엽과 나뭇가지들이 소용돌 이치며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정말 놀라운 위력이었다. 석파천은 한번 후려진 후 자세를 거두고 땅에 내려서서는 사 노파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사 노파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 있는 것이 아닌 가! 석파천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수아를 바라보았다. 수아의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을 글썽이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리 고 말 것 같았다. 석파천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 (책에는 여기 말이 빠져있어요. 말이 있어야할것같은데.......) ] 사 노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잠시 후 감격한 어조로 팔을 내저으며 말하는 것이었다. [아니다. 옳게 펼쳤다.] 그녀는 한참 동안 말이 없더니 다시 말했다. [그 일 초의 위력은 너무나 크니 가볍게 사용해서는 안된다. 자칫 잘못하면 무고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으니까.] 석파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좋은 사람은 절대 해쳐서는 안되지요.] 이날 밤, 그는 꿈속에서도 그 칠십삼 초의 도법을 이리저리 펼쳐보 며 연마했다. 강적이 바로 바깥쪽에서 수색을 하며 접근하여 오고 있다는 사실마 저도 깡그리 잊어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이 자연도는 범위가 상당히 넓었고 수목이 울창해서 일시 백 만검 등 일행은 부근까지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이튿날,막 날이 밝자마자 그는 일어나서 도법을 연마했다. 제 칠십삼 초를 펼치게 되어 허공으로 몸을 띄워 올렸다가 한칼을 내려치게 되자 이번에는 더욱더 강한 위력을 보였다. 칼바람이 땅바닥에 부딪쳐서 펑, 하는 음향이 울려퍼지는 것이 아닌 가! 이때 등뒤에서 수아의 음성이 들려왔다. [사...... 사 오라버니, 일찍 일어나셨군요.] 석파천은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동굴 입구에 비스듬히 기대어 서서는 자기를 물끄러미 바라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석파천은 재빨리 인사를 했다. [일찍 일어나셨구료.] 수아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말했다. [저는 숲속으로 산책을 나갈까 해서 나왔어요. 함께 가주시겠어요?] 석파천은 쾌히 승락을 했다. [좋지요. 소저의 전신 경맥이 막 유통하게 된 지금 팔다리를 좀 활 동시켜 주어야 좋지요.]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숲속으로 걸어들어 갔다. 십여장 쯤 나아가자 숲속 깊숙한 곳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때 햇살이 아직도 비춰들지 않아 숲속은 엷은 안개가 감돌고 있었 다. 눈앞이 몽롱한 것이 나무 위와 풀 위는 말할 것도 없고 수아의 몸과 얼굴 위에도 한 겹의 망사로 된 하얀 옷을 입고 있는 것같이 보였다. 조용한 숲속은 정적에 싸여 있었다. 다만 두 사람이 풀을 밟는 소리 가 삭삭하니 들려올 뿐이었다. 별안간, 옆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와 석파천은 고개를 돌렸다. 수아가 흐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수정 같은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주루루 흘러내리고 있었다. 석파천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소저, 어째서 울고 계시오?] 수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음을 몇 번 옮기더니 나무에 몸을 의 지하고 더욱 슬피 우는 것이 아닌가? 석파천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왜 그러시오? 할머니가 당신을 꾸짖으셨소?] 수아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석파천은 더욱 의아하여 다시 물었다. [몸이 불편하신 게 아니오?] 수아는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석파천은 잇달아 일곱 여덟 번의 질문을 던졌으나 수아는 여전히 고 개를 흔들었다. 이렇게 되자 석파천은 그만 어리벙벙해져서 어떻게 할 바를 몰랐다. 과거 그가 만난 여인이라고는 그의 어머니와 시검, 그리고 정당과 화만자 등 몇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들 모두가 성격이 시원시원했다. 석 부인인 민유는 성품이 온화했으나 행동거지가 얌전하고 의젓했 다. 그는 한번도 수아처럼 부끄러움을 잘 타는 여인을 만나본 적이 없었 다. 그는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몰랐다. 그런데 수아는 갈수록 더욱더 슬 피 우는 것이 아닌가? 그만 더욱 당황해진 석파천은 더듬거리며 물었다. [도대체......어떻게 된 일인지 나에게 말해줄 수 없겠소?] 수아는 울음섞인 어조로 말했다. [모두가......모두가......오라버니가 나쁜 거예요. 오라버니...... 왜 물었어요?] 석파천은 깜짝 놀랐다. (내가 무슨 일을 잘못했단 말인가?) 그는 자기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고 떨리는 음성으로 말 했다. [소저......나에게 말해주시오. 나는 우둔한 사람이 되어서 잘못을 저지르고도 모른다오. 정말 잘못했구료.] 수아는 눈물이 글썽글썽한 눈길을 들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젯밤 나는 꿈을 꾸었어요. 놀라운 일이었어요. 오라버니는 흉악 하게 저를 대했어요.] 그녀는 다시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었다. 석파천은 의아하게 물었다. [내가 소저에게 흉악하게 대했더란 말이오?] 수아는 발악하듯 말했다. [그래요. 꿈에 보니까 오라버니는 금오도법 제칠십삼 초를 펼쳐 허 공에서 저에게 한 칼을 내려쳤는데 저는 그만 그 칼을 맞고 죽게 되 었어요.] 석파천은 어리둥절해졌다. 그는 자기의 가슴팍을 몇 번 두들기고 나서 말했다. [내가 정말 죽을 죄를 지었구료. 꿈속에서도 소저를 놀라게 했소이 다 그려.] 수아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사 오라버니, 그것은 내 스스로 꿈을 꾼 것이니 오라버니를 탓 할 바가 못 돼요.] 석파천은 그녀의 백옥 같은 얼굴에 아직도 눈물방울이 맺혀 있었으 나 웃는 얼굴만은 화사한 봄바람처럼 그럴 수 없이 아름답게 느껴진 나머지 그만 멍해지고 말았다. 수아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몸을 가볍게 떨었다. 그러자 눈가에 달 려 있던 눈물방울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제가 꾼 꿈은 종종 정확하게 맞아떨어져요.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 그와 같은 날이 있지 않을까 두려운 생각이 드는 거예요.] 석파천은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가 없소, 그럴 리가 없소. 나는 그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소저를 죽이지 않을 것이오. 나는 결코 소저를 죽이지 않을 뿐아니라 설사 소저가 나를 죽이려고 하더라도 나는 전혀 반격하지 않을 것이 오.] 수아는 의아하여 물었다. [내가 오라버니를 죽이려고 하는데도 손을 쓰지 않겠다는 거예요?] 석파천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바보처럼 씩 웃었다. [소저가 나에게 무슨 일을 시킨다 하더라도 나는 따를 작정이오. 만 약 소저가 나를 죽이려고 하는데도 내가 소저의 손에 죽지 않는다면 소저는 한평생 울적하게 지낼 것이 아니겠소? 그렇기 때문에 역시 소 저의 손에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수아는 멍하니 그의 말을 듣고 서 있었다. 그 몇 마디의 말은 정말 진지한 것이 폐부에서 우러나오는 말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만 마음속으로 크게 감동해서는 다시 눈시울을 붉히며 물 었다. [어째서......오라버니는 저에게 그토록 좋게 대해 주시나요?] 석파천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저가 즐겁기만 한다면 나는 무어라고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 게 되오. 수 소저, 나는......정말 이와 같이 매일 당신을 보고 있었 으며 좋겠소.] 그는 그와 같은 말을 속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대로 입밖으로 내뱉 게 된 것이었다. 수아의 나이는 그보다 몇 살 아래였으나 그보다 훨씬 철이 들어 있 었다. 그녀는 석파천의 그와 같은 말이 바로 자기에게 정을 표시하는 것임 을 알았다. 한평생 같이 지내기를 원하고 있는 말뜻이 틀림없는 것이라 그녀는 그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한참 동안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수아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저도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더군다나 공교롭 게도 그 배 속에서 저희들 두 사람은 한 베개를 베지 않았어요? 저 는......차라리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다른 남자를 따르지 않을 거예 요.] 그녀의 말은 하늘이 이미 자기네들 두 사람을 하나로 뭉치게끔 안배 했기 때문에 석파천이 꽁꽁 묶여서 자기의 선실 침대 위로 떨어지게 되었고 한 이부자리에서 하룻밤을 지냈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었다. 다만 그녀는 그러한 말을 하기가 부끄러워 한 베개를 베게 되었다고 말했지만 그 말을 할 때의 그녀 음성은 모기소리처럼 작아서 거의 들 리지 않을 정도였다. 석파천은 그녀의 그와 같은 말이 한평생을 같이 하자는 맹세임을 몰 랐다. 그는 그녀가 그저 자기에게 좋은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기뻐 했다. [만약에 이 섬에 소저 할머니와 우리 세 사람만이 살게 된다면 그 얼마나 좋겠소? 영원히 이곳에서 함께 살텐데 말이요. 한데 백 대협 과 정불삼 할아버지가 쫓아오고 있으니 정말 가슴이 조마조마해서 살 기가 어렵구료.] 수아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정불삼과 백 대협은 두렵지 않아요......] 그녀는 잠시 여유를 두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훗날 당신이 저를 죽일까봐 두려워요.] 석파천은 급히 말했다. [나는 차라리 자결을 했으면 했지 당신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오.] 수아는 손바닥을 편 채 눈앞에 들어올리고 물끄러미 들여다 보았다. 나뭇잎 사이로 비춰든 햇살에 그녀의 섬섬옥수사 백옥처럼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석파천은 그만 참지 못하고 그녀의 손에 입을 가져가 입술을 갖다댔 다. [아!] 수아는 깜짝 놀라 급히 손을 움츠리더니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그녀는 갑자기 숨이 차는지 나무에 기대어 서서 가쁜 숨을 몰아 쉬었 다. 석파천은 당황하여 말했다. [수아 낭자, 저를 너무 탓하지 마십시오. 저는 당신에게 감히 잘못 을 저지르려고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 을 것입니다.] 수아의 이마에서 비지땀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왼손을 뻗쳐 그의 거 친 손을 꼬옥 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당신은 잘못하지 않았어요. 다음에 또 그래도 괜찮아요.] 석파천은 크게 기뻐서 그녀의 보드라운 손을 어루만졌다. 그러나 감 히 입술을 갖다대진 못했다. 수아는 호흡을 조절하더니 말했다. [당신이 저와 할머니의 막힌 혈맥을 타통시켜 주고 있지만 언제나 정상으로 회복이 될는지 걱정이 돼요.] 석파천은 주화입마와 운기행공에 관해서 잘 몰라 터무니 없는 위로 의 말을 할 수도 없고 해서 안심을 시키려고 천천히 말했다. [정불삼 등이 우리들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소저와 소저의 할머니가 일시 공력을 회복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상관이 없는 일이오.] 수아는 방긋 웃으며 물었다. [어째서 할머니를 사부님이라고 부르지 않지요? 그분은 금오파의 대 사조(大師祖)이신데 오라버니는 사부님이라고도 부르지 않을 작정이 세요?] 석파천은 이제야 생각이 난 듯 말했다. [아! 그렇구려. 버릇이 되어 좀처럼 고칠 수가 없소. 그런데 수소 저......] 수아는 재빨리 그 말을 가로챘다. [또 왜 소저라고 부르세요? 저에게 그토록 딱딱하게 대할 필요가 어 디에 있어요?] 석파천은 말했다. [그렇지, 그렇지. 그런데 어떻게 불러야 할지 나에게 좀 가르쳐주구 료.] 수아는 얼굴을 붉히며 속으로 생각했다. (수 누이, 또는 수매(琇妹)라 불러야 옳겠지. 나는 그를 오라버니라 부르고......) 그녀는 부끄럼을 많이 타는 처녀였다. 차마 그 말을 입밖으로 내뱉 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오라버니는 나를 수아라고 부르면 돼요. 한데 내가 오라버니를 어 떻게 불러야 하죠?] 석파천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대가 부르고 싶은대로 부르구료.] 수아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커다란 송편이라고 불러도 화를 내지 않을 거예요?] 석파천은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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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을대로 하시오! 내가 어째서 화를 내겠소?] 수아는 간드러진 음성으로 불렀다. [커다란 송편!] 석파천은 대답했다. [왜 그러오? 수아!] 수아는 크게 기뻐서 대답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