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땅바닥에서 한 자루의 장검을 주워들고 부르짖었다. [넷째, 잘난 척 개방귀 같은 수작을 부리지 말고 채찍을 뽑아들어 라!] 그는 검의 끝을 흔들하더니 석파천을 찔러왔다. 석파천은 임기응변의 능력이 없었다. 검이 찔러오는 것을 보고 그는 그만 당황하고 말했다. 어떤 초식을 펼쳐야 할지를 몰랐다. 백만검은 옆에서 명타서래(明駝 西來)라는 일 초를 펼쳐 도왔다. 그 일 검에 석파천은 깨닫는 바가 있어서 즉시 천균압타(千鈞壓駝) 라는 일 초를 펼쳐 칼등을 허공에서부터 내리쳐 누르는 듯한 공격을 상대방에게 가했다. 녹슨 칼이 무디기는 했으나 그의 내력이 막강한지라 정불삼은 그만 자기의 검초가 정체하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정불사가 이때 허리에 두른 금룡구절연편(金龍九節軟鞭)을 뽑아들고 구원의 손길을 뻗쳤기 때문에 정불삼은 그 기회에 번쩍 몸 을 날려서 피할 수가 있었다. 백만검은 풍사망망(風沙莽莽)이라는 일 초를 펼쳤고, 석파천도 잇달 아 대해침사(大海浸沙)라는 일 초를 펼쳤다. 한 칼과 한 검이 한치의 빈틈도 없는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렇게 되자 머리 위로 광풍과 노란 먼지가 내려누르는 것 같았고, 아래로는 거치른 바다의 세찬 파도가 밀려드는 것 같았다. 정불사 형 제는 일제히 비명 소리를 내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석파천의 내력의 강맹함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고, 그가 배 운 무공 역시 절묘하기 이를 데 없었다. 다만 연습이 부족하고 임기응변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적의 초식을 보고 어떤 초식을 펼쳐 상대해야 될지 모르는 것이 커다란 결점이었 다. 그가 배운 금오도법은 최후의 일 초를 제외하고는 설산검법을 제압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무공이었다. 더군다나 사 노파가 그에게 무공을 전수할 때 설산검법을 설명하면 서 지도를 해주었던 터였으나 당황한 그는 미처 생각해 볼 겨를도 없 이 백만검이 어떤 초식을 펼치면 그도 덩달아 그에 상응하는 초식을 펼쳐내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백만검이 노지횡사(老枝橫斜)와 석파천의 장자절지 (長者節枝)가 함께 펼쳐지게 되었고, 백만검이 명타서래를 펼치게 되 었을 때 그는 천균압타라는 초식을 휘두르게 된 것이었다. 금오도법이 설산검법의 극성이긴 하지만 서로 상극이기 때문에 함께 펼쳐지게 되었을 때 쌍방의 초식 가운데 드러나는 빈틈을 모조리 메 꿀 수 있는, 무궁한 위력을 나타내게 되는 무공으로 화한것이었다. 백만검은 이 때 놀람과 의아함이 극도에 달하게 되었다. 몇 초가 지나지 않아 그는 석파천의 도법은 바로 자기의 검초와 배 합을 이루게 되었을 때 그야말로 그 어떤 초식이든지 와해시킬 수 있 는 위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더군다나 석파천은 내력은 형태가 없으나 길이 있는 듯한, 무한한 가능성이 엿보였으며, 위력의 바위가 끊임없이 뻗쳐나 점점 확대되는 것이 그로서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정불삼과 정불사도 물론 이를 알아보았으나 자기네들의 패배를 시인 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들은 석파천의 그 괴이한 도법의 초식이 한정이 있어 곧 끝 나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다. 그들 두 형제들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억지로 버티어 나가고 있었 다. 백만검 역시 석파천의 밑천이 짧아 시간이 길어지게 되면 정씨 형제 들에게 선기를 제압당하게 될까봐 속전속결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 다. 그와 같은 생각과 더불어 그는 즉시 암향소영(暗香疏影)이라는 일 초를 펼쳤다. 장검을 부르르 떨듯 움직이며 검의 광채를 보일 듯 말 듯이 뻗쳐내 었다. 이것은 설산검법 가운데 가장 절묘한 일 초였다. 종종 사람들에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를 입히는 그런 절초였 다. 석파천은 녹슨 칼을 옆으로 쓸어 베면서 역시 잇달아 손을 움직였 다. 이 일 초는 포어지사(鮑魚之肆)라는 도법으로, 내력이 사면팔방으로 용솟음치도록 만들었다. 그 순간 놀람에 찬 소리가 터져나왔다. [으악!] 정불사는 어깻죽지에 한 칼을 맞게 되었고, 정불삼은 팔을 검에 찔 리게 되었다. 두 사람은 벼락같이 몸을 돌리더니 테두리 밖으로 물러섰다. 정불삼은 급히 정당을 움켜잡더니 쏜살같이 달려가더니 동쪽의 숲속 으로 몸을 숨기고 말았다. 정불사도 번개처럼 몸을 날려 서쪽의 산 뒤로 모습을 감추었다. 산 뒤로 돌아간 정불사의 부르짖는 소리가 곧 들려왔다. [백만검, 너의 어머니의 얼굴을 보아서 오늘은 네놈을 살려주겠다. 다음에 만나게 되었을 때 나는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 그 소리는 점차 멀어져 갔다. 땅바닥에는 곳곳에 피가 뿌려져 있었으며 풀밭 위에 다섯 구의 시체 가 나뒹굴어져 있었다. 설산파의 제자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 분노와 놀람, 그리고 의혹에 사로잡혀서는 넋을 잃고 서 있었다. 백만검은 옆으로 얼굴을 돌려 석파천을 바라보았다. 일시 비통함과 슬픔, 그리고 부끄러움 등 착잡한 심정에 얽혀들게 되었다. 고맙다는 생각도 적지 않게 우러났다. 석파천이 만약 손을 쓰지 않았더라면 설산파 십여 명의 목숨은 모조 리 그곳에서 끊어지게 되었으리라는 것을 세삼 상기하지 않을 수 없 었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자네의 그 도법은 누구에게 전수받은 것인가?] 석파천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사 노파가 가르쳐 주신 것이오. 모두 칠십삼 초인데 당신네들의 설 산검법보다 한 수가 더 많으며 일 초, 일 초가 설산검법의 극성이외 다.] 백만검은 코웃음을 쳤다. [흥! 매초식이 설산검법의 극성이라고? 너무나 건방진 말이군. 도대 체 사 노파가 누구인가?] 석파천은 침착한 음성으로 말했다. [사 노파 바로 우리 금오파의 개산조사(開山祖師)이시며 또한 나의 사부님이고, 나는 금오파의 제 이대 수제자올시다.] 백만검은 그만 대노해서 냉랭히 외쳤다. [자네가 사문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만 둘 일이지 또 금오파에 투 신을 해......] 그는 갑자기 생각이 난 듯 중얼거렸다. [금오파? 금오파라니, 들어본 적이 없는데? 무림에는 그와 같은 문 파가 없네!] 석파천은 이미 그가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계속 설명을 했 다. [우리 사부님께서는 태양이 나오게 되면 눈이 녹고 만다고 했소이 다. 그렇기 때문에 설산파의 제자들은 금오파를 만나게 된다면 그 저......그저......] 원래 그는 큰절을 해서 용서를 빌 처지에 놓일 뿐이라는 한마디를 하려고 했다. 그는 철이 들지 않았지만 바보는 아닌지라 설산파의 제자 앞에서 그 와 같은 말을 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모욕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 하고 즉시 입을 다문 것이었다. 백만검은 안색이 새파래져서 말했다. [우리 설산파의 제자가 너희 금오파를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된다 구? 다만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석파천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 한 마디 말을 듣게 된다면 기분이 나쁠 것이니까 이야기하지 않 겠소이다. 역시 사부님의 그 말씀은 좀 지나치다고 생각하오이다.] 백만검은 분노로 인해 음성이 떨려나왔다. [크게 패하여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친다는 말이겠지?] 석파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사부님의 뜻도 대략 그렇소이다. 백 대협께서는 화를 내지 마 십시오. 우리 사부님은 아마도 농담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겠지요.] 백만검은 오른쪽 다리와 오른쪽 어깨를 정불사의 손에 얻어맞았던 터라 지금 고통을 감당하기가 어려운 처지였다. 그러나 석파천의 한 마디 한마디가 자기 문파를 모욕하는지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장검을 쳐들고 부르짖었다. [좋다! 내가 자네들 금오파의 고강한 도법을 가르침 받아보겠네! 어 떻게 해서 설산파 검법의 극성인지 두고 보세.] 그가 그와 같이 장검을 쳐들자 어깻죽지에 격렬한 고통이 찾아들었 다. 그만 안색이 변해진 그는 하마터면 장검을 놓칠 뻔했다. 한 명의 설산파 제자인 포만엽(包萬葉)이 앞으로 두 걸음 나서며 검 을 석파천에게로 뻗쳤다. [이 석가 녀석아, 이 사숙을 너는 물론 몰라볼 것이다. 내가 너의 절초를 상대해 주마.] 백만검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포 사제, 자네는......자네는......] 그는 본래 자네는 안 돼, 하고 말하려고 했으나 무공을 익히는 사람 은 체면을 가장 중히 여기는지라 재빨리 다음 말로 바꾸었다. [내가 그를 상대해 주지.] 그는 검을 왼손으로 옮기고 말했다. [석가 녀석, 빨리 덤벼 보아라!] 석파천은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의 어깨와 다리에 상처가 났소. 그러니 더 겨룰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오. 더군다나 나는 당신에게 이길 수 없는 것이 분명하지 않 소?] 백만검은 그 말에 어이가 없었다. [자네는 감히 설산파를 모욕할 용기가 있으면서 나와 검을 겨룰 용 기가 없다는 말인가?] 그는 장검을 뻗쳐 매설쟁춘(梅雪爭春)이라는 일 초를 펼쳐 석파천의 머리 위로 검화를 뿌리면서 찔러왔다. 왼손으로 쓰는 검이라 오른손만큼 날렵할 수가 없었으나 날카로움은 조금도 약화되지 않았다. 석파천은 검의 광채가 머리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하는 수 없이 녹 슨 칼을 쳐들어 매설봉하(梅雪逢夏)라는 일 초를 펼쳐서 상대방의 빈 틈으로 공격해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매설봉하는 매설쟁춘 의 극성이었다. 백만검은 속으로 흠칫했다. 매설쟁춘이라는 초식을 끝까지 펼치기 전에 그는 급히 호마월령(胡 馬越嶺)이라는 일 초를 펼쳤다. 석파천 역시 한장당관(漢將當關)이라 는 일 초를 펼쳐 상대했다. 백만검은 상대방의 초식이 엄밀한 수비의 초식이지만 자기의 초식을 모조리 봉쇄할 뿐 아니라 공격면에서도 매서운 살수를 은근히 내포하 고 있는 것을 보고 즉시 명월강적(明月羌笛)이라는 초식을 펼쳤다. 석파천 역시 적일금고(赤日金鼓)라는 초식을 펼쳐 상대했다. 백만검 은 다시 한번 놀랐다. 녹슨 칼이 곧장 뻗쳐오는데 바로 자기가 펼친 초식의 가장 연약한 점을 찌르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는 다시 한번 재빨리 초식을 변화시켜야 했다. 다행히 석파천은 그간의 오묘한 점을 몰라 상대방이 초식의 변화를 일으키면 따라서 변화시키곤 했다. 조금전 그는 이미 기선을 제압한 셈이라 백만검이 초식을 바꾸든 바 꾸지 않든 간에 그 기세를 그대로 밀어붙이면 즉시 백만검으로 하여 금 세 걸음 물러서게 할 수 있었다. 다리에 상처를 입고 있는 백만검인지라 재빨리 물러날 수 없기 때문 에 부득이 검을 던져버리고 패배를 시인하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기 도 했다. 그와 같은 사정을 모르는 석파천은 백만검이 어떤 검초를 펼치면 그 에 상응하는 금오도법 가운데 일 초를 펼치곤 했다. 일전에 정불사와 배 안에서 싸우게 되었을 때 하던 짓과 실로 큰 차 이가 없었다. 백만검은 그와 같은 사정을 환히 내다보고 속으로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부끄럽구나!)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설산파의 제자 가운데 태반은 그와 같은 상황 을 살피고 속으로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다. (요행이다. 요행이야!) 수 초를 겨루게 되었을 때 백만검은 다시 위험한 고비를 맞게 되었 다. 그가 아무리 교묘하고도 복잡한 절초를 펼쳐낸다 하더라도 석파천은 느릿하면서도 날렵하기 이를 데 없는 도법을 펼쳐내어 항상 우세를 차지하고 있었다. 백만검은 싸우면 싸울수록 놀라운 가슴을 진정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녀석은 정말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인 것이 아니구나. 금오도 법은 정말 우리 설산검법의 극성이다. 혹시 사 노파라는 사람은 우리 아버님의 원수가 아닐까? 그녀는 그래서 오랜 세월을 두고 이와 같은 도법을 연구해 우리 설산파를 일패도지(一敗塗地)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삼십여 초를 겨루게 되었을 때 석파천의 녹슨 칼이 백만검의 왼쪽 어깨를 향해 떨어졌다. 백만검은 본래 다리를 날려 그의 팔목을 걷어차서 그 초식을 해소시 킬 수 있었다. 그가 오른발을 쳐들게 되었을 때 다리의 상처 부위에 격렬한 고통이 찾아 들었다. 따라서 자기도 모르게 오른쪽 무릎을 힘없이 구부리게 되었다. 다급한 김에 그는 오른손으로 땅을 짚게 되었고, 그 결과 석파천의 떨어지는 칼을 막을래야 막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그의 왼팔이 어깻죽지로부터 떨어져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설산파의 제자들은 그와 같은 광경에 놀람에 찬 부르짖음을 토해냈 다. 그 순간에 뜻밖에도 석파천은 녹슨 칼을 거둬들이며 말했다. [이번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합시다.] 백만검은 왼팔에 힘을 주어 몸을 벌떡 일으켰다. 머리속에 번개와 같은 무수한 상념이 떠올랐다. (저 녀석은 나를 이길 수 있었는데 왜 그 초식을 끝까지 펼치지 않 았을까? 정말 설산검법을 제대로 배운 것 같지는 않구나. 그가 분명 히 나를 이겼는데도 나에게 양보를 해주다니.......) 그리고 그는 다시 한번 석중옥의 성격을 더듬어보지 않을 수 없었 다. (석중옥이란 녀석은 음흉하고 교활하며 인정이 없는 녀석이다. 그는 한 칼로 나를 죽일 수 있으며, 그렇게 된다면 나머지 사제들은 그의 적수가 될 수 없을 터인데 갑자기 선심을 쓰는 것은 어떤 연고일가? 그는 정말......석중옥이 아니란 말인가?) 이와 같은 생각이 들자 그는 왼손의 장검을 가볍게 앞으로 내뻗쳐 조천세(朝天勢)라는 일 초를 찔러냈다. 설산파 제자들은 모두가 어! 하고 놀랐다. 이 조천세는 설산파의 검 법이 아니었다. 제자들이 처음 문하로 들어서게 되었을 때 근골을 단련시키고 기력 을 솟아나게 하는 십이 식의 기본 재간 가운데 하나였다. 정말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간단한 초식이라 기억하기도 수월한 것 이었다. 무공을 익히는데 이점이 있지만 이 초식으로써 적과 상대할 수는 없 었다. 뭇사람들은 그가 그와 같은 초식을 펼치자 깜짝 놀라고 말았 다. 백만검이 중상을 입고 이미 검을 펼칠 힘이 없어진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석파천은 멍청해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그는 조천세라는 일 초를 한번도 본 적이 없었고 사 노파도 그것을 파해할 도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던 터라 어떻게 해소시킬지 그는 알지 못했다. 기한서북의 장검 앞에서 그 누가 일순간이나마 멍청하게 서 있을 수 가 있겠는가? 석파천이 주저하게 되는 순간, 백만검의 장검은 번개와 같이 곧장 그의 가슴팍 앞으로 디밀어졌으며 어느덧 검의 끝은 그의 가슴팍을 겨누고 있었다. [어떠냐?] 석파천은 어리둥절하여 말했다. [이 일 초는 무슨 검법이지요? 나는 어째서 배운 적이 없을까요?] 백만검은 생사가 간일발에 도달한 이때 무슨 검법이냐고 묻는 것을 보고 그의 담력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네는 정말 배운 적이 없는가?] 석파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만검은 처량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지금 자네의 목숨을 빼앗는다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더 쉬운 노릇이다. 그러나 조금전 정씨 형제의 포위 공격을 받았을 때 자네가 도움을 준 은덕을 생각해서 죽이지 않겠다. 우리는 서로 한 목숨을 구해주었으니 누구도 빚을 지지 않게 되었으니 이후부터 금오 도법이 설산검법의 극성이라는 말을 하지 않기 바란다.] 석파천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원래 내가 백 대협을 이길 수 없다고 하지 않았소이까? 말하지 말 라면 다시는 이야기하지 않지요.]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하더니 다시 말했다. [백 대협, 이제 나는 알 것 같소. 방금 그 일 초의 검법도 깨뜨릴 수 있을 것 같구료.] 갑자기 그는 가슴팍을 움추렸다. 그러자 가슴팍이 안으로 몇 치 정 도 움추러들었다. 그는 손에 든 녹슨 칼을 비스듬히 쳐 올렸다. 팍, 하는 소리가 나면 서 칼과 검이 교차되는 순간, 백만검의 손에 들린 장검이 단번에 두 토막이 나고 말았다. 백만검은 안색이 크게 변하고 말았다. 왼발로 훌쩍 땅바닥의 한자루 의 장검을 튀어오르게 하여서 다시 손에 쥐고 휙휙휙, 하니 삼 검을 찔러냈는데 모두다 설산파의 입문초식으로 신속함이 번개와 같았다. 석파천은 금세 눈이 어질어질해질 정도였고, 곧 손과 발이 어지럽게 되었다. 그 순간 손목을 검에 찔렸다. 그는 녹슨 칼을 더이상 잡고 있을 수가 없어서 땅바닥에 떨어뜨렸 다. 다음 순간, 상대방의 장검은 다시 그의 가슴팍을 겨누고 있었다. 곧 이어 백만검은 가볍게 손목을 떨쳤다. 석파천은 놀라 부르짖었다. [어이쿠!] 그가 고개를 내려뜨리고 바라보니 가슴팍에 가지런하니 여섯 개의 구멍이 나 있었으며 선혈이 옷자락 안으로부터 그 구멍으로 스며나오 기 시작했다. 깊이 찔리지는 않았으며 그렇게 아픈 줄도 느낄 수 없는 일 검이었 다. 설산파의 제자들은 일제히 외쳤다. [훌륭한 설화육출(雪花六出)이군!] 백만검은 석파천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수고스럽지만 자네가 대신 영사(令師)에게 설산파에서 실례가 많았 다고 이야기 해주게.] 그는 석파천이 설산파의 가장 간단한 입문의 재간도 모르는 것을 보 고 결코 시치미를 떼는 것은 아님을 깨달았다. 더군다나 어리숙한 행 동거지와 이상한 성격을 보고 석중옥과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는 나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다. 조금 전 한칼로 나의 어깨를 내려치지 않은 것은 분명히 손에 사정을 둔 것이다. 석중옥든 석중옥 이 아니든 간에 오늘은 그를 죽일 수도 사로 잡을 수도 없다. 금오파 가 어쩌구 저쩌구 큰소리 친 데 대해서 설화육초로써 징계를 한 것으 로 끝내야겠다.) 그는 장검을 던지고 사제의 시체를 안아들었다. 그는 사제의 죽음을 슬퍼하는 한편 또한 자신의 무능함에 가책을 느 꼈다. 다섯 명의 사제가 정씨 형제의 손에 죽음을 당한 데 대해 그로서는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그만 눈물을 주루루 흘렸다. 나머지 설산파 제자들도 네 명의 시체를 안아들었다. 백만검은 한스런 어조로 말했다. [정불삼, 정불사, 너희 두 늙은 도적들은 일찍 죽지나 말아라.] 그는 뭇사제들에게 말했다. [우리들은 가세.] 그들은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 누구도 석파천을 한번도 뒤돌아 보지 않았다. 석파천은 핏자국이 완연한 몇 자루의 단검이 땅바닥에 흩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까마귀떼가 까욱거리면서 머리 위로 날아갔다. 그는 녹슨 칼을 들고 불렀다. [수아, 수아!] 그는 커다란 나무 뒤로 가 보았다. 수아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석파천은 그녀가 먼저 돌아갔나 하고 동굴로 돌아갔다. [수아, 수아!] 그곳에도 수아는 없었고 사 노파도 없었다. 석파천은 놀람과 당황함에 휩싸이고 말았다. 땅바닥에 어지럽게 수 십 개의 그림과 같은 것이 씌어 있었다. 그는 그것이 글자인지도 잘 모르는지라 무슨 뜻인지 알 턱이 없었 다. 사 노파와 수아가 모두 떠났다고 생각하자 그는 외로움에 사로잡혔 으나 그러나 어릴 적부터 외롭게 자라난 그는 반 시진이 지나자 아무 렇지도 않게 되었다. 가슴팍의 상처에서는 피가 더이상 흘러나오지 않았다. (모두 갔군. 나도 떠나야지. 나는 어머니와 아황을 찾아가야지.) 이제 그에게 무단히 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어져서 그는 오히려 유쾌 하고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사 노파와 수아를 생각하자 며칠 동안 머물렀던 정든 동굴을 떠나는 것이 약간 아쉽고 섭섭했다. 그는 녹슨 칼을 허리춤에 차고 강변으로 달려갔다. 거센 파도가 섬 의 둑을 후려치며 흘러가고 있었다. 언덕에는 배 한 척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강뚝을 따라 한참 걸었다. 자연도는 그렇게 넓은 곳이 못되었 다. 재빠르게 걸음을 옮겨 놓자 한 시진 남진해서 섬 전체를 한 바퀴 빙 돌 수 있었다. 그러나 배라고는 그림자도 볼 수 없었다. 그는 감을 따서 요기를 하고 날이 어둡기를 기다려 동굴에서 잠을 잤다. 야밤중에 갑자기 강쪽에서 쫘악, 하니 비단폭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 왔다. 커다란 돛배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 같기도 했다. 그는 몸을 일으켜 소리나는 곳으로 달려갔다. 희미한 별빛 아래 커다란 배가 언덕에 닿아 있었는데 끊임없이 요동 치고 있었다. 그는 혹시 정불삼이나 정불사가 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경솔하 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살폈다. 다시 쫙악, 하는 소리가 나면서 배에 세워던 돛배가 세찬 바람에 찢 어지면서 소리를 냈다. 그와 같은 소리가 났는데도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갑판 위 로 나타나는 사람은 없었다. 배는 흔들흔들하며 다시 언덕에서 떨어 져 나가려고 했다. 그는 재빨리 달려가며 부르짖었다. [배 안에 누구 없소?] 대답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는 훌쩍 뱃머리로 뛰어올랐다. 선실을 바라보니 어둠침침한 것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발에 뭔가 채이는 것이 있었다. 알고보니 한 사람이 뱃바닥 위 에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석파천은 재빨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석파천은 그를 부축해 일으키려고 했다. 그런데 손에 닿는 촉감이 얼음과 같이 차갑지 않은가? 깜짝 놀란 그는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미 숨을 거둔 지 오래된 시체 였다. [아!] 하고 소리를 내지르면서 손을 뒤로 움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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