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객행(김용) - 47편 (47/82)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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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객행(김용) - 47편 (4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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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상청관의 뭇 도사들은 그와 같은 태도를 자기들을 멸시하는 태도라고 여겼다.
수양이 깊은 도사들까지도 화가 나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어떤 도사는 부르짖기까지 했다.
[충허 사형! 그 녀석이 더럽게 건방지니 버릇을 단단히 고쳐놓도록 하시오!] 충허는 다시 부르짖었다.
[정말 빈도와 손을 쓰지 못하겠느냐?] 그리고 그는 휙휙 다시 두 검을 찔렀다.
너무나 빠른 검초에 검술에 조예가 없는 석파천은 피한다고 했으니 여전히 왼팔과 오른쪽 가슴을 가볍게 찔렀다.
다행히도 충허는 사정 을 두고 있었다.
그저 석파천이 손을 쓰도록 하자는 것이었지 목숨을 빼앗겠다는 의도가 없었기 때문에 석파천의 살갗을 찢는 순간 즉시 손을 움츠렸기에 석파천의 상처는 아주 가벼웠다.
민유는 사랑하는 아들이 세 곳에 상처를 입자 가슴이 아팠다.
그런데 충허는 다시 검을 찔러오지 않는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검을 뻗쳐 충허의 장검을 막았다.
창! 그런가 하면 잇달아 검과 검이 부딪치는 쇳소리가 콩볶기듯이 울려 퍼졌다.
무려 열세 번! 민유가 열세 번의 검초를 막은 것이다.
본래 두 사람 다 상청검법에 조예가 깊었다.
그렇기 때문에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사람은 불꽃이 튀기는 듯 신속 무비한 십삼 초를 겨루게 된 것이다.
모두들 그들의 검법에 탄성을 발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석파천을 제외하고는 모두 상청관 일파의 검술에 대한 조예가 깊은 고수들이었다.
그들은 충허의 십삼 검의 공격이 날카롭고 사나우며 예리하기 이를 데 없는 반면에 민유가 잇달아 막은 십삼 검은 면밀하고 착실해서 전 혀 빈틈이 없을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이 눈 깜짝할 사이에 서로 공격 과 수비를 하면서 똑같이 본문 검술의 절기를 펼치게 된 것을 보고 모두다 하나같이 가슴이 탁 트이면서 마음이 흐뭇해지는 것을 느꼈 다.
이때 더 싸워보았자 두 사람이 좀처럼 승부를 낼 수 없다고 생각한 천허는 신중한 어조로 물었다.
[사매, 끝까지 이 젊은이를 편들텐가?] 민유는 아무말 하지 않고 석청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언제나 중대한 결정을 남편으로 하여금 내리게 했다.
석청은 먼저 충허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 애가 윗어른을 알아뵙지 못했으니 버릇을 가르쳐야 마땅하지요.
세 번 검에 찔리기는 했으나 사형이 손에 사정을 두었다는 점 알고 있으며 또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그리고 그는 변명하듯 다시 말했다.
[사실 이 애는 무공이 보잘것없소이다.
그러니 어찌 충허 사형과 손 을 쓸 자격이 있겠소이까?] 이어 그는 석파천을 향해 당부했다.
[너는 빨리 충허 사백에게 사과를 드려라.] 충허는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저 애는 분명히 사람을 업수이 여기고 손을 쓰지 않으려는 것이네.
그렇지 않으면 손 한번 써서 우리들 모두 죽인다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이때 석파천은 자기의 손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여전히 붉은 구름과 파란 줄무늬가 아스라이 남아 있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의 이 손은 항상 화를 불러일으킨단 말이에요.
걸핏하면 사람을 죽이게 되니 야단이지요.] 상청관의 도사들은 다시 안색이 변했다.
석청은 그가 오만방자하고 버릇없어서 입으로만 득을 보려는 줄 알 고 화가 나서 부르짖었다.
[네 녀석은 정말 하늘이 얼마나 높은 줄을 모르는구나.
조금전 충허 사백이 사정을 봐서 네 녀석을 죽이지 않은 것도 모르느냐?] 석파천은 더듬거리며 말했다.
[나 역시 그를 죽이고 싶지 않아 사정을 둔 것이지요.] 그만 대노하게 된 석청은 즉시 달려가 손찌검을 하려고 했다.
한데 민유가 이를 눈치채고 재빨리 그를 붙잡았다.
그렇게 세게 잡아끌은 것은 아니었지만 석청은 더 움직이지 못했다.
충허는 조금전 검으로 석파천을 찌르게 되었을 때 전혀 자기네 문파 의 무공을 모르는 것 같은데 내력만은 엄청났던 것을 상기했던 것이 다.
무공으로 미루어 석청의 제자 같지 않았고 또 방금 그가 손바닥을 들여다 보았을 때 자기에게까지 비릿한 냄새가 풍기던 것을 상기하고 퍼뜩 의심이 솟았다.
그리하여 그는 호통쳐 물었다.
[네 녀석은 누구의 제자인데 그렇게 엉뚱한 말을 잘 하느냐?] 석파천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난……난……금오파의 제 일대 수제자이외다.] 충허는 어리둥절해졌다.
(금오파라니? 또 저 녀석은 엉터리같은 수작을 부리는가 보구나.) 이와 같은 생각에 그는 냉소했다.
[나는 귀하가 석 사제의 제자인 줄로만 알았더니 한 집안 사람이 아 니었군.
그렇다면 꺼릴 것이 전혀 없구만.] 그리고 그는 옆에 서 있는 두 사제에게 눈짓을 했다.
두 명의 도사들은 즉시 그 뜻을 알아차리고 장검을 거꾸로 돌려 서 로 각기 조배금정(朝拜金頂)이라는 일 초를 펼쳐서는 한 명의 도사가 석청을 겨냥하게 되었고 또 다른 한명의 도사는 민유를 겨냥하게 되 었다.
이 조배금정이라는 초식은 상청검법에서 상대방에게 경의를 표하고 예의를 지키는 초식으로서 평소 웃어른 혹은 무림명숙과 손을 쓰게 되었을 때에 사용했다.
이 일 초는 검의 끝이 땅쪽으로 향하도록 하고 왼손으로는 검결(劍 訣)을 쥐고서 검의 자루에 걸쳐야 하는 등 순전히 수세(守勢)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보기에 절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몸 앞 다섯 자 되는 곳을 십분 엄밀하게 지키는 수법이었이며 적이 움직이지 않을 때는 자기도 움직이지 않고 적이 만약에 서둘러서 공격을 해 온다면 즉시 반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석청 부부가 어떻게 두 도사의 의도를 모르고 있겠는가? 그야말로 그 두 도사가 자기네들을 감시하기 위해서 장검으로 조배금정이라는 초식을 펼치고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그런데도 자기네들이 다시 검을 펼쳐서 아들을 편들고 보호하려고 했다가는 그 두 도사의 손에 들린 장검이 즉시 퉁겨지듯이 자기들을 향해 공격이 가해지리라는 것 을 짐작했다.
그러나 자기네들이 초식을 펼쳐내지 않는 한 두 도사는 영원히 절대 로 거동을 취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동문지간의 우애와 의리를 깨뜨릴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민유는 자기 앞을 지키고 있는 사형 영허(靈虛) 도사를 한 번 바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과거 상청관에서 무예를 배우게 되었을 때에 영허 사형은 매우 손 발의 놀림이 둔했으며 검술은 나보다 훨씬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러 나 지금 조배금정이라는 일 초를 펼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을 보면 보기에 졸렬한 것 같아도 실제에 있어서는 온건착실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결코 옛날의 무능한 사형으로 볼 수가 없겠구나.
정말 손을 쓰게 되었을 적에는 아마도 삼사십 초 안으로는 영허 사형을 대 패시킬 수가 없을 것 같구나.) 그녀가 이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적에 충허는 연신 장검을 휘둘 러 석파천을 완전히 검초 속에 가두고 호통을 내질렀다.
[그래도 반격하지 않으면 나는 금오파의 제자라는 네 녀석을 당장 죽이고 말테다.] 그는 석청 부부가 나중에 항의하더라도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는 생각에 그와 같이 금오파란 문파 이름을 강조한 것이다.
석청은 아들이 여전히 반격하지 않는다면 충허에게 중상을 입게 될 것이나 반격을 한다면 충허가 자기들의 얼굴을 보아서라도 독수를 쓰 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서로 한판의 상대방에게 검이 닿는 것으로 끝을 내는 대결을 해서 아들의 오만한 근성을 고쳐놓는 것도 좋으리라는 생각에 즉시 입을 열었다.
[얘야! 너의 사백부께서는 너의 무공을 시험해보고 깨우쳐 주려는 것이지 결코 너를 해치려는 것은 아니니 두려워하지 말고 무기로 대 항해 보아라!] 석파천은 상대방에서 싸늘한 검기가 뻗쳐오는 바람에 두 뺨마저 서 늘해지는 것을 느끼고 그만 무서워졌다.
조금전에 세 번이나 찔린 것을 볼 때 상대방의 검술조예가 대단하다 는 것을 짐작하던 터라 석청의 그와 같은 말에 크게 기뻐했다.
(그렇지, 무기를 들고 싸우면 장력을 뻗쳐내지 않을 것이니 상대방 을 죽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에 그는 크게 부르짖었다.
[좋아요.
반격하겠소……그러나 저 칼을 집어들 때까지는 검으로 찌 르지 마시오.
그 기회에 나의 등을 찌르려 하면 안된단 말이오.] 충허는 다급히 하는 석파천의 말에 어처구니 없어 침을 탁 뱉고는 뒤로 두 걸음을 물러섰다.
그리고 그는 아예 장검을 땅바닥에 푹 꽂고 부르짖었다.
[빈도가 어떤 사람인데 네 녀석에게 암습을 가한단 말이냐? 빨리 그 칼이나 줍도록 해라.] 그는 그 말을 하고서 옆짐을 지고 석파천이 칼을 집도록 기다렸다.
(이 녀석은 알고보니 칼을 사용하는구나.
그렇다면 결코 석 사제 부 부의 제자일 수 없다.
그런데 어째서 석 사제는 그에게 나를 백부라 고 부르도록 했을까?) 석파천은 칼을 집어들었다.
그러자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싸우다가 급하게 되면 왼손을 쓰게 될 것이고 그러면 또다시 사람 을 죽이게 될 것이니 역시 왼손을 몸에다 묶어놓아야 만사가 태평하 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잠시 기다리라는 한마디를 던지고 허리띠를 풀어서는 왼손을 몸에다 묶었다.
여러 사람들은 눈을 똑바로 뜨고 그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석파천은 왼손을 묶느라고 땅에 내려놓았던 칼을 다시 집어 들고 말했다.
[이제 됐소.
겨루어 봅시다.
이렇게 하면 당신을 죽일 염려는 없 소.] 충허는 머리가 돌아버릴 정도로 울화가 치밀었다.
이거야말로 일찍 이 들어보지 못한 멸시의 태도라고 생각한 것이다.
상청관의 도사들은 말할 것 없고 석청과 민유도 크게 꾸짖었다.
[무례하구나.
빨리 허리띠를 풀어라.] 석파천은 잠시 망설였다.
그 순간 충허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일 검을 찔러왔다.
석파천은 미처 민유의 분부를 따를 여유도 없이 칼을 들어 막았다.
충허는 그의 내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부딪 치게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는 즉시 초식을 변화시겼다.
휙휙 하니 잇달아 예닐곱 번의 검초를 펼쳐냈다.
석파천은 그만 손발이 어지럽게 되어 막기는커녕 상대방의 검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분간조차 할 수가 없었다.
(내 목숨이 다 했는가 보다!) 이와 같은 탄식을 속으로 불어내며 그는 마구잡이식으로 칼을 마구 휘둘렀다.
사 노파에게 배운 칠십삼 초의 금오도법은 깡그리 까먹어버린 것이 다.
한데 충허는 그의 내력이 심후한 줄을 알기 때문에 그의 칼부림에 빈틈이 많았지만 석파천의 칼이 부딪쳐 오면 급히 피하느라고 기회를 놓치곤 했다.
검과 칼이 부딪쳐 자기의 검이 날아가기라도 한다면 체면이 완전히 땅에 떨어지기 때문에 꺼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석파천은 칼을 마구 휘두르다가 보니 충허가 오히려 물러서는 지라 재빨리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러자 칠십삼 초의 금오도법이 차츰 뇌리에 떠올랐다.
한데 충허가 물러서기는 했지만 검초가 너무나도 재빨리 펼쳐지기 때문에 석파천이 사 노파가 전수해준 도법으로는 도저히 상대방의 공 세를 해소시킬 수가 없었다.
금오도법은 설산파의 검법을 제압하기 위해 창안된 것인데 수법이 전혀 다른 상청검법을 상대코자 하니 먹혀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당황하고 다급해진 나머지 그는 기분내키는 대로 마구휘둘 렀다.
잠시 동안 휘두르다가 그는 문득 자연도에서 백만검의 검초를 몰라 백만검에게 자기가 패배를 당했던 사실을 상기했다.
지금도 같은 상황인데 아예 눈을 감듯 상대방의 검초를 보지 않고 자기마음대로 도법을 휘두르면 낫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칠십삼 초의 금오도법을 법칙도 없이 전도시켜 가며 마구 펼쳐냈다.
한데 그의 웅후한 내력이 칼에 실려 뻗쳐나고 그 기운이 소용돌이치 는 바람에 자연히 하나의 방어막을 형성하게 되었다.
따라서 충허는 좀처럼 그 방어망 안으로 공격해 들어갈 수가 없게 되었다.
주위의 사람들은 그와 같은 광경에 하나같이 의아하게 생각했고 충 허는 놀람과 분노에 휩싸이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두려움마저 약간 느끼게 되었다.
그는 천하의 도법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석파천의 도법은 유치하고 뒤죽박죽이며 무림의 근본 도리를 완전히 어기고 있었다.
따라서 응당 자기가 일 검에 상대방을 요절내야 할 형편인데 오히려 몰리고 있으니 그로서는 실로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다시 십여 초가 교환되었다.
충허는 갑자기 초조함을 느끼고 휙 하니 정면으로 검을 찌르며 들어 왔다.
한데 마침 석파천은 칼을 회전시키는 판국이었다.
쌍방의 동작이 똑같이 빨랐다.
창! 그만 두 자루의 장검이 서로 부딪치고 말았다.
충허는 이미 방비하고 있었던 터라 십 성의 공력을 주입하여 장검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러나 석파천의 내력은 너무나 엄청난 것이었다.
뭇 사람들이 놀라 부르짖는 가운데 충허의 장검은 마치 구부러진 낫 모양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충허의 손아귀가 터져 검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충허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수십 년 쌓아온 영명이 하루 아침에 무너져 버렸으니 무슨 검술을 연마할 것이며 앞으로 어떻게 상청관의 장문인이 되겠는가 하는 생각 이 들었다.
그는 그만 구부러진 장검을 석파천에게 팽개쳤다.
그리고 번개같이 두 손을 갈고리처럼 구부려 석파천에게 덮쳐들었다.
석파천은 재빨리 구부러진 검을 쳐서 날려보냈다.
그러나 그 후에 어떻게 해야 할 바를 몰라 머뭇거렸다.
순간 그의 가슴이 그대로 노출되었고 충허는 어느틈에 그의 가슴쪽 에 있는 두 곳의 혈도를 움켜잡고 말았다.
아니 그의 두 손이 석파천의 두 곳의 혈도에 닿는 순간 충허는 엄청 난 반탄력이 뻗쳐오는 것을 느꼈다.
찰라적인 순간에 그의 몸은 뒤로 휙 날아오르는게 아닌가.
이번에 그는 공력을 십성이나 기울였기 때문에 이에 반해 반탄력도 대단했다.
제대로 자세를 가다듬을 수도 없이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 형편인 데 그렇게 되면 막심한 창피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때 천허 도인이 나는 듯 앞으로 달려나와 손을 뻗쳐 그의 왼쪽 어 깨를 슬쩍 밀었다.
충허가 받은 반탄력을 해소시켜 준 것이다.
그제서야 충허는 간신히 자세를 가다듬고 제대로 설 수 있었다.
이미 그의 얼굴은 핏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창백해지 고 말았다.
천허는 그가 자세를 가다듬자 즉시 보검을 뽑아들었다.
[역시 영웅은 젊은 층에서 나오는가 보군.
탄복했네……] 그리고 그는 정중한 어조로 다시 말을 이었다.
[빈도가 가르침을 한 번 받아볼까 하는데 역시 늙고 힘이 모자라서 귀하의 적수가 될 수 없을 것이네.] 이어 그는 검을 앞으로 천천히 뻗쳤다.
석파천은 칼을 들어 막으려고 했다.
한데 갑자기 칼날에 상대방의 검날이 와 닿았건만 허공을 친 것처럼 반응을 느낄 수가 없었다.
칼에 실린 힘이 종적도 없이 해소되고 만 것이다.
석파천은 자기도 모르게 부르짖었다.
[어, 이상하다!] 월래 천허는 석파천의 내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 사(祀)자결을 썼던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오른팔이 받은 충격으로 인해 시큰거렸고 가슴속이 얼얼해왔다.
이미 내상은 입은 것이 아닐까 하고 속으로 놀라며 다시 제이 검을 찔러냈다.
석파천은 다시 칼을 들어 막으려고 했다.
이번에 천허는 석파천의 내경(內勁)을 해소시킬 엄두가 나지 않아서 칼날에 부딪치지 안도록 재빨리 검에 변화를 일으켰다.
즉시 비스듬히 석파천을 찌르려고 한 것이다.
그는 이미 육순이 넘은 노인이었지만 민첩하고 힘찬 것은 젊은 사람 못지 않았다.
펼쳐내는 초식은 매섭고 날카로웠다.
석파천은 여전히 그의 공세에 대응하여 초식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듯 마구 칼을 휘둘렀다.
상대방이 어떻게 변화를 일으키든 어디를 공격해오든 아랑곳없이 매 설봉하(梅雪逢夏), 포어지사(鮑魚之肆), 한장당관(漢將堂關), 천균압 타(千鈞壓駝) 등의 도법을 펼쳤다.
그야말로 마이동풍 격으로 문장이 제목에 맞지 않는 대결이었다.
어느덧 두 사람은 이십 초를 싸웠다.
검기는 끊임없이 바깥쪽으로 뻗어나갔다.
주위에 둘러서 있던 사람들은 차츰 뒤로 밀리게 되고 그들이 이루고 있던 원이 차츰 커져 석청과 민유를 감시하던 도사 영허 등도 싸움에 열중되어 자기네들의 임무를 잊고 있었다.
한참 싸움에 열을 올리고 있는 석파천은 차츰 두려운 마음이 가셔지 게 되었다.
그리고 금오도법도 차츰 익숙하게 펼쳐내게 되었다.
초식 도 퍽이나 절묘한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내력도 덩달아 더욱더 불어 나게 되었다.
천허는 처음에 그런대로 견디어 낼 수 있었으나 일 초를 교환하고 나면 상대방의 힘이 한 푼 정도 더 불어나는 것을 느꼈다.
마치 내력 이 무궁무진하여 영원히 고갈되지 않을 것 같았다.
천허는 차츰 두 다리가 시큰거려오는 것을 느꼈다.
팔도 아팠다.
초 식을 교환하면 교환할수록 힘이 더 들고 어려워져만 갔다.
이때 석청 부부는 더 싸웠다가는 천허가 반드시 패한다는 것을 알았 다.
그러나 소리쳐 아들을 물러서게 할 수도 없었다.
그와 같은 행동은 크게 천허의 체면을 깎는 결과가 되는 것이었다.
두 부부는 어쩔 줄을 몰라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이때 석파천은 신이 나는 듯 점차 공세를 펼쳐 천허를 핍박했다.
별안간 천허의 오른쪽 무릎이 휘청했다.
억지로 버티어 내기는 했으 나 하마터면 무릎을 꿇을 뻔했고 그만 안색이 홱 변하고 말았다.
바로 이때 석파천은 자연도에서 수아가 한 말이 전광처럼 머리를 스 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남과 싸우게 되었을 때 사정을 두어야 하며 사람을 용서할 수 있어 야 한다는 한 마디였다.
부끄러워하며 신신당부하던 아름다운 수아의 모습과 말을 상기하자 그는 즉시 검을 비켜들고 밀었다.
천허는 그가 검을 밀어오자 세찬 기운에 숨마저 탁 막히는 것을 느 꼈다.
그는 급히 두 걸음을 물러났다.
한데 발걸음이 떨리고 있었다.
천허는 이제 두 걸음만 물러나게 된다면 엉덩방아를 찧게 된다는 것 을 알고 속으로 혀를 찼다.
이제 두 걸음 물러날 기운도 없었던 것이다.
한데 석파천은 왼쪽에 대고 헛칼질을 하더니 칼을 끌어당겼다가 오 른쪽의 허공을 한 번 찔렀다.
곧이어 칼을 끌어당겨서는 바로 자기의 발 앞을 탕 내려쳤다.
먼지가 풀썩 일었다.
천허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눈이 휘둥그래져 그가 하는 양을 지켜보 았다.
한데 석파천은 칼을 거두어 들이더니 두 걸음을 물러섰다.
그리고는 칼을 세로로 세우고 입을 열었다.
[귀하의 검법이 절묘하여 불초는 감탄했습니다.
오늘 승부가 나지 않았으니 이만 하고 친구가 되는 것이 어떻소이까?] 천허는 자기의 귀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만 멍해져 우두커니 서 있을 뿐 입을 열지 못했다.
석청은 석파천의 양보하는 것을 보고 빙그레 미소지었다.
그리고 그 는 길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민유 역시 길게 싱글벙글 속으로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했다.(문장이 이상하지만 책에는 이렇게 되어 있으니 알아서 읽으세요.) 그들 부부는 아들의 무공이 고강한 점보다도 다 이겨놓은 후 되려 양보하는 미덕에 가장 기뻐했다.
그러나 민유는 곧 웃으며 호통을 쳤다.
[얘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 귀하니 불초니 불경하구나.
사백 부님이라고 부르고 소질(小姪)이라고 칭해야 하느니라.] 그렇게 야단을 치는 말이었지만 그녀의 음성에는 애정이 듬뿍 깃들 어 있었다.
천허 도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아, 장강의 뒷물결이 앞 물결을 헤치고 나간다 하더니 우리들은 역 시 늙어서 쓸모가 없어진 모양이군.] 민유는 흐뭇해졌다.
[얘야.
너는 사백부님에게 죄를 지었다.
빨리 사과를 드려야지.] 석파천은 민유의 말에 무조건 따랐다.
그는 칼을 내던지고 왼손을 묶었던 허리띠를 풀고 손을 뽑고 천허 도인에게 공손히 꾸벅 절을 했다.
민유는 매우 득의에 찬 표정으로 설명을 했다.
[장문 사형.
이 애가 바로 저희들의 아들이에요.
어릴적부터 가정교 육이 좋지 못해 이와 같은 무례한 행동을 했는가 봐요.
용서해주세 요.] 천허 도인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알고보니 사제의 자제분이었군.
그런데 자제분은 누구에게 잡혀갔 다고 하던데 그것은 거짓말이었는가?] 석청은 급히 나서며 말했다.
[소제가 어찌 사형에게 거짓말을 하겠소이까? 원래 남에게 잡혀갔었 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빠져 나왔군요.
총망중에 미처 물어 보지 못 했습니다.] 천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군.
그의 재간으로 미루어 빠져 나오는 것도 어렵지 않겠네.
그런데 자제분의 무공이 사제와 사매가 친히 전수한 것이 아닌 것 같 고 도법에 설산파의 초식이 섞여 있을 뿐 아니라 공력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막강하니 어떻게 된 노릇인지 모르겠군.] 이어 그는 감탄했다는 투로 다시 말했다.
[더군다나 최후의 일 초는 보기 드문 것이었네.] 석파천은 불쑥 말했다.
[아! 그것은 수아가 저에게 가르쳐준 것입니다.
상대방이 자기보다 약할 때에는 사정을 두라고 말했었지요.
그 일 초는 방교측격이라는 일 초로 상대방에게 양보를 하면서 자기 자신이 상처를 입지 않는 초 식이기도 하지요.] 그는 아무런 심기가 없어 그만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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