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때에 그는 다시 큰 소리로 혼자서 중얼거렸다. [구절연편은 강할 수도 있고 부드러워질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날 렵해서 언제나 병중지룡(兵中之龍)으로 일컬어지고 있으며 가장 배우 기가 어렵고 펼치기도 가장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사용하기도 어렵고 정통하기에도 오랜 시일의 정성이 있어야 하지. 무슨 장창이고 극 (戟)이고 쌍칼이며 장검이네 하는 것들은 모두다 맞닥뜨리게 된다면 추풍낙엽이 되지. 정말 울화통이 터져 죽겠군! 울화통이 터져 죽겠 군! 울화통이 터져 죽겠군!] 풍랑은 그와 같은 말을 듣고 속으로 다시 기뻐했다. (저 늙은이는 구절연편의 도리를 말하는구나. 보기에 본문의 무공에 대해서는 역시 지음(知音)이라 할 수 있겠군.] 그런데 정불사가 잇달아 또다시 울화통이 터져 죽겠다는 말을 하자 그는 넌지시 물었다. [그런데 나으리께서는 어째서 화를 내고 계신지요?] 정불사는 그를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고개를 쳐들고서 집안의 대들 보쪽을 쳐다보며 여전히 혼자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자네 할아버지께서는 다른 사람들이 칼을 휘두르고 곤봉을 가지고 재주를 피운다 하더라도 화가 나지 않지만은 그 누가 구절연편을 들 고 까부는 것을 보면 그만 노기가 복받쳐 억제할 수 없게된다. 제미 랄! 장사(長沙)의 팽(彭)씨의 형제들이 구절연편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년 이 할아버지께서는 그들 두 형제를 쌍쌍히 처치하고 말 았다. 그리고 사천에 장(章)씨 성을 가진 무관(武官)이 구절연편을 사용했는데 이 할아버지께서는 그의 머리통을 후려쳐 묵사발이 되도 록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안휘(安徽) 성 봉양(鳳陽)의 구절연편을 사용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이 할아버지께서는 여인을 죽이기 싫어하 기 때문에 그저 그녀의 두 손만을 잘라서는 그녀로 하여금 다시 병중 지룡(兵中之龍)의 무기를 만지지 못하도록 했지.] 뭇 사람들은 들으면 들을수록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그들이 보기에도 이 늙은이가 풍량을 노리고 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가 있었는데 그가 횡설수설하고 있는 것 같지만은 또 한편으로는 결 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장사의 팽씨 형제 팽진강(彭鎭江), 팽쇄호(彭鎖湖)는 모두다 구절연 편을 사용했는데 작년에 그 누구에게 해침을 받아 죽었다는 소문을 이 사람들도 요동에서 들은 바가 있었던 것이었다. 풍량은 그만 안색이 시푸르죽죽해져서는 구절연편의 자루를 잡으며 입을 열었다. [귀하는 어째서 구절연편을 사용하는 사람에 대해서 그토록 통한(痛 恨)스럽게 여기는 것이오?] 정불사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터무니 없는 소리. 이 할아버지가 어떻게 구절연편을 사용하는 사 람을 통한스럽게 여긴단 말인가?] 그러면서 그는 손을 품속으로 집어넣더니 철거덕 하는 소리가 나게 되었고 곧이어 그의 손에는 한 자루의 연편이 들려 있었다. 이 연편을 금빛 광채가 번쩍번쩍 나면서 아홉 마디로 나뉘어져 있었 는데 틀림없이 황금으로 만든 듯했고 채찍의 머리쪽은 용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채찍 자체에는 갖가지의 보석이 박혀 있어 서 번쩍번쩍 빛을 발하는 것이 휘황찬란하기조차 했다. 그리고 한 번 움직이자 지극히 위맹해 보이면서도 화려한 것이 정녕 보기에 좋았 다. 뭇 사람들은 그 채찍을 보고 속으로 흠칫했다. (원래 그 자신도 구절연편을 사용하는구나.) 정불사는 이때 느긋한 어조로 점잔을 떨면서 입을 열었다. [새파란 것이 무공을 이삼성도 배우지 못하고 언간생심 건방지게시 리 구절연편을 들고서 남과 싸우기 일쑤이고 싸우다가 나중에는 얻어 맞아서 기어가지 않으면 너부죽이 나가떨어져서는 좀처럼 서서 집으 로 돌아가는 적이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구절연편을 사용하는 사람을 얕보게 하는 짓거리가 아니고 무엇이겠나……] 그리고 그는 기침을 하고 다시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이 할아버지께서는 벌써부터 관동의 금주에 그와 같은 청룡문이 있 어 빌어먹게시리 조상 칠팔대로부터 모두다 구절연편을 사용한다는 말을 듣고 벌써부터 전가족을 모조리 죽여 없애버릴까 하고 생각을 했었지. 그런데 관동땅이 너무나 추워서 이 할아버지께서는 천리 먼 길을 달려가 사람을 죽이는 것도 귀찮고 해서 지금까지 기다리게 된 것인데 공교롭게도 네 녀석이 허리에 구절연편을 두르고 거드름을 피 우며 중원으로 들어왔으니 정말 잘 됐지. 잘 되었고말구. 빨리 빨리 저 대들보에 목을 매달아 죽지 않고 무엇을 기다리는가?] 풍량은 그제서야 원래 이 늙은이가 구절연편을 사용하기 때문에 다 른 사람에게 똑같은 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좀처럼 두고 못보고 트집 을 잡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억지도 너무 엄청난 억지에 입이 딱 벌어질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가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서쪽 머리의 탁자가에서 우렁찬 음성이 들려왔다. [흥, 너 이 늙은 새끼가 칼을 쓰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정불사는 그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입을 연 사람은 감자형의 얼굴에 뺨과 턱에는 구레나룻을 기르고 있 어 얼굴 태반을 가리고 있는 상태였으며 그야말로 그의 얼굴에서는 수염만 보일 뿐 살은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의 사람이었다. 따라서 정불사는 여전히 느릿한 어조로 물었다. [내 칼을 쓴다면 어떻다는 것인가?] 그 구레나룻의 사내는 여전히 우렁찬 음성으로 응수를 했다. [이 할아버지께서도 칼을 사용하는데 너 이 늙은 새끼처럼 억지를 부리게 된다면 이 할아버지까지도 죽여 없애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설사 너 이 늙은 새끼가 이 할아버지를 죽여 없앤다 하더라도 천하에 칼을 쓰는 사람이 수천 수만을 헤아리는데 어떻게 모조리 다 죽일 수 있겠다는 것인가?] 그러면서 싹 하니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더니 탁 하고 탁자에 꽂 았다. 이 칼은 도신(刀身)이 자금(紫金)으로 만들어졌으며 등이 두텁고 날 이 엷었으며 칼자루에는 한 조각의 자색비단을 매달고 있었는데 탁자 위에 꽂히게 되자 전체 탁자가 진동을 일으키게 되었고 그릇과 접시 들이 서로 부딪쳐서 오랫동안 쨍그랑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으로 보아 그 칼이 꽤나 무겁기도 하려니와 그와 같이 칼을 꽂는 힘 역시 엄청 난 것임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이 사내는 바로 장백산(長白山)가의 쾌도장문(快刀掌門)인 자금도 (紫金道) 여정평(呂正平)이었다. 그 순간 철거덕 하는 소리와 함께 정불사는 그 순간에 구절연편을 거두어들여 품속에 갈무리하더니 왼손을 구부려서는 어느덧 곁에 앉 아 있는 사내의 허리에 차여 있는 칼을 뽑아 손에 들고는 입을 열었 다. [설사 이 할아버지가 칼을 쓴다고 해서 또 어떻다는 것인가? 아이 구! 아니로군. 정말 울화통이 터지네! 정말 울화통이 터지네! 정말 울화통이 터지네!] 칼은 무림에서 가장 흔히 보는 무기라고 할 수 있었다. 이들 일행 열아홉 명 가운데 열한 사람은 몸에 칼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그 들은 정불사가 칼을 낚아채듯 뽑아드는 수법이 재빠른 것을 보고 모 두다 속으로 놀라서는 자기도 모르게시리 하나같이 손을 칼자루로 가 져갔다. 이때 정불사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이 할아버지의 별호는 일일불과사(一日不過四)라고 하며 이곳에는 열한 명이나 되는 좀도적들이 칼을 쓰는 것 같고 또 거기다가 구절연 편까지 보태게 된다면 이 할아버지께서는 사흘간 죽일 사람들을 나누 어서 하나하나 처치해야겠군.] 뭇 사람들은 그가 스스로 일일불과사라고 자칭하는 말을 듣게 되자 즉시 몇 사람이 불쑥 내뱉듯 말했다. [그는……그는 정불사이군!] 정불사는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 이 할아버지께서는 오늘 아직 사람을 죽이지 않았으니 네 명의 좀도적을 기분좋게 죽일 수 있겠구나! 그런데 어느 네 명이 될 것인지 스스로 이름을 대도록 하시지. 그렇지 않을 때 저 구절연편을 쓰는 녀석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그저 순순히 나에게 큰절 열 번만 하고 나에게 세 마디 훌륭한 할아버지라고 불러준다면 나 또한 용서 하고 죽이지 않을 수도 있지.] 그러자 싸늘한 냉소 소리와 더불어 네 명의 사람이 벌떡 몸을 일으 켜서는 성큼성큼 반점 문밖으로 나가더니 문밖에서 한일자로 늘어섰 다. 그들 네 사람은 풍랑 이외에 범일비와 여정평 그리고 중년의 여 인이었다. 그 여인은 무기를 들지 않고 문밖에 이르자마자 두 폭의 비단치마를 위로 홱 뒤집고 허리띠를 차는데 허리에는 시퍼렇게 두 줄로 단도가 꽂혀 있었고 단도는 각기 반자 정도의 길이인데 적어도 삼십여 자루 는 될 것 같았다. 그 삼십여 자루나 되는 단도들이 정제하게 허리의 한 꽃을 수놓은 란대(鸞帶)에 꽂혀 있었다. 범일비는 왼손으로 판관쌍필(判官雙筆)을 들고는 낭랑히 입을 열었 다. [불초는 요동학 범일비로서 학필문(鶴筆門)의 장문인이오. 오늘 청 룡문의 장문인 풍량 풍 형제, 그리고 쾌도문의 장문인 여정평 여 형 제, 그리고 만마장(萬馬莊)의 여 장주(女莊主) 비황도(飛蝗刀) 고삼 낭자(高三娘子)와 더불어 다른 사람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본파 문인 제자들을 데리고 관동에서 중원으로 들어온 것이오. 우리 관동 사문 (四門)으로 말하면 정 나으리와는 과거에 원한이 없었고 근래에 와서 도 또 어떤 감정을 살 일도 하지 않았는데 그토록 거듭 희롱을 하고 모욕을 하다니 도대체 무엇 때문이오?] 정불사는 그의 말에 대해서 전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고개를 옆으 로 돌리고는 고삼 낭자를 잠시 동안 바라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 [아름답지 않군. 못났군!] 그는 그 한마디를 내뱉게 되었을 때에 똑바로 고삼 낭자를 바라보면 서 연신 고개짓을 했는데 그것은 서화폭을 감상하던 중 크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하는 행동처럼 보였다. 물론 그와 같은 표정과 태도는 고삼 낭자의 얼굴 모습이 잘 생기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쯤 모든 사람이 다 알 수가 있었다. 고삼 낭자는 성격이 열화와 같았을 뿐만 아니라 평소에 자만심이 많 은 사람이었다. 그 원인은 첫째 그녀 자신에게 정말 놀라운 재간이 있었고 둘째로 그녀의 부친이나 시아버지 그리고 사부님이 강호 무림 에서 모두다 엄청난 권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며 셋째로는 만마장의 좋은 밭들이 만경이나 되는 데다가 거기다가 목장과 인삼밭도 있을 뿐만 아니라 소유하고 있는 임야는 그 평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 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비록 과부이지만 관동에서는 크게 명성을 드날리는 여인이었고 흑백이도의 인물이나 관가 그리고 백성들도 하 나같이 그녀에게 삼푼쯤 양보하는 편이었다. 정불사가 그토록 방자하고 말을 함부로 지껄이는 것은 그녀에게 있 어서 한평생 받아보지 못한 수모였다. 더군다나 고삼 낭자는 젊었을 적에 관동 무림에서 퍽이나 아름답다 고 이름이 난 사람이고 지금은 나이가 근 사십이 다 되었지만 아직도 옛날의 화사함이 완전히 가셔진 것은 아니었다. 관동에서는 풍속이 비교적 순박한 편이고 여자들이 대다수 점잖은 편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녀 앞에서 아름답다고 칭찬을 하더라 도 희롱으로 여길 형편인데 정불사 같이 크게 비아냥거리는 말을 했 으니 그녀가 어찌 참을 수가 있겠는가. 이때 그녀는 성이 나서 얼굴마저 창백해져서는 부르짖었다. [정불사! 이리 나오시오.] 정불사는 천천히 걸어서 반점 밖으로 나가서는 물었다. [바로 당신네들 네 사람인가?] 바로 그때 하얀 광채가 번쩍이는 가운데 다섯 자루의 비도가 아래 위와 좌우에서 격사되어 날아들었다. 이 다섯 자루의 비도는 정말 너무나 빠른데다가 도신(刀身)이 짧았 지만 바람을 가르는 소리는 마치 장검이나 커다란 칼이 휘둘러지는 것처럼 들릴 정도였다. 정불사는 버럭 고함을 쳤다. [사람은 아름답지 않지만 칼은 아름답군.] 그러면서 그는 오른손을 품속으로 집어넣더니 구절연편을 뽑아들었 다. 노란빛이 어른거리는 가운데 네 자루의 비도가 구절연편 맞아서 떨 어지게 되었고 다섯 번째의 비도가 자기의 앞면으로 날아들자 아예 솜씨를 보일 요량으로 입을 벌려서는 칼끝을 받아 깨무는 것이었다. 풍량과 범일비 그리고 여정평은 일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으나 곧 무기를 펼쳐서는 좌우에서 공격을 해왔다. 정불사는 몸을 날려 여정평이 휘두르는 칼을 피하고 발을 들어 범일 비의 손목을 걷어차려고 함으로써 범일비가 부득불 판관필을 움츠리 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손에 들고 있는 황금의 구절연편으로 풍량의 구절연편을 감으려고 들었다. 풍량은 반점에서 나서자마자 이미 십분 정신을 가다듬고 기운을 낸 상태에서 정불사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정불사라는 늙 은이가 실제에 있어서는 그 자신 혼자만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 고 나머지 사람들은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때 그는 정불사의 구절연편이 밀려드는 것을 보고 손목을 떨치며 구절연편을 한 자루의 장창처럼 뻣뻣하게 세워서는 상대방의 가슴팍 을 찌르려고 들었다. 이 일 초는 사이빈복(四夷賓服)이라는 초식으로서 원래 장창의 창법 이었다. 그런데 그는 진력(眞力)을 구절연편에다가 돋우게 되었고 거 기다가 다시 한 가닥의 교묘한 기운을 써서는 구절연편을 창날처럼 뻣뻣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원래 금주 청룡문은 편법(鞭法) 역시 대단한 편이었다. 그렇기 때문 에 풍량은 상대방이 강적인 것을 알고 나서자마자 평생의 절기를 펼 쳐낸 것이었다. 정불사는 입으로 비도를 뱉고는 칭찬의 말을 했다. [도적 같은 녀석에게서도 몇 수 훌륭한 솜씨가 있었군.] 그는 오른손을 내밀어서는 그의 채찍머리를 억지로 잡으려고 들었 다. 풍량은 깜짝 놀라서는 재빨리 팔을 움츠려서는 채찍을 거두어 들였 다. 그러나 정불사의 손이 채찍 끝을 따라 뻗쳐왔다. 다행히 여정평이 알맞게 칼을 휘들러서 그의 팔을 내려쳤기 때문에 정불사는 손을 움츠려 들여야 했다. 휙 하는 소리가 급작하게 울려퍼지면서 고삼 낭자가 다시 한 자루의 비도를 던져내었다. 네 사람이 이와 같이 손을 쓰게 되자 정불사는 대뜸 히히덕거리는 얼굴빛을 거두고 정신을 가다듬고서 싸움에 임하게 되었으며 구절연 편으로 한 무리의 노란 광막을 이루어서는 자기 자신의 몸을 지켰으 며 속으로는 꺼림칙하게 생각했다. (요동의 무공이 조금도 어수룩한 데가 없구나. 이 할아버지께서는 이 자들을 잘못 보았군. 이 네 녀석이 만약에 하나하나 덤벼든다면 이 할아버지가 죽이는데 있어서 조금도 힘이 들지 않겠지만 한꺼번에 몰려들어 떼싸움을 벌이게 된다면 그야말로 약간 어려워지겠는걸.) 이번 관동 사대문파가 중원으로 일제히 들어닥치기 전에 사대문파의 장문인들은 먼저 만마장에서 한 달 남짓한 시일 두고 무공을 익혔으 며 그들 사파 무공의 득실을 연구했다. 즉 적을 임하게 되었을 때에 어떻게 하면 서로 구원을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연구하고 토론한 것이다. 이번 미리 조련을 한 정성이 아니나 다를까 헛되지 않아 강남에 이 르자마자 네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적을 상대하게 된 것이었다. 이때 여정평과 범일비는 가까운 곳에서 공략을 펼치고 있었고 풍량 은 약간의 간격을 두고서 구절연편을 휘둘러 빈틈을 노리고 파고들면 서 주로 정불사의 허리께를 공략했고 고삼 낭자는 멀찍기 서서 한 자 루의 비도를 내던지곤 하는데 던질 때마다 정불사로 하여금 정신을 써서 피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이 네 사람들 가운데 범일비의 초식이 가장 노련하고 매서웠으며 여 정평은 칼힘이 웅후하여 한 칼질에 팔구십 근의 힘이 실려 있었다. 석파천과 정당은 뭇 사람들의 등뒤에 서서 그들이 싸우는 것을 구경 하고 있었는데 삼사십 초를 구경하게 되었을 때에 여정평과 범일비가 동시에 공세를 취하자 정불사가 채찍을 휘둘러서 두 사람을 밀어내고 있었는데 풍량의 구절연편이 알맞게 정불사의 머리를 옆으로 쳐 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정불사가 막 고개를 숙이게 되었을 때에 휙휙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자루의 비도가 그의 목을 스칠듯이 지나가는데 그 간격은 몇 치에 불과했다. 칼을 피하기는 했으나 정불사의 턱아래 기른 반백의 수염은 비도에 의해 수십 가닥이 잘려져 나가게 되고 한 가닥 한 가닥의 수염이 그 의 얼굴 앞에서 난무하게 되었다. 반점의 문가에 서서 구경을 하던 관동 사대문파의 제자들은 일제히 갈채를 보냈다. [고삼 낭자의 비도가 훌륭하군요.] 정불사는 속으로 놀라고 말았다. (저 계집애가 정말 대단하구나. 만약에 다시 살수를 펼치지 않는다 면 아무래도 정불사는 오늘 크게 당하고 말겠구나.) 갑자기 그는 길게 휘파람을 내불며 구절연편을 휘둘렀다. 채찍의 그 림자가 어른거리는 가운데 왼손으로는 금나수법을 펼쳤고 구절연편으 로는 멀리 있는 사람들을 공격했다. 그러니까 왼손으로는 가까이 있 는 사람에게 공격을 하고 구절연편으로는 좀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공격을 한 것인데 왼손만으로도 여정평과 범일비 두 사람으로 하여금 공격하기보다는 수비를 더 많이 하도록 만들어 놓고 있었다. 관동 사대문파의 제자들은 갈채를 보내기는 했으나 그 소리를 끝내 게 되었을 때에 얼굴에 하나같이 우려의 빛을 띄웠다. 옆에서 구경하는 석파천은 그야말로 싱글벙글했다. 그와 같은 수법들은 정불사가 양자강의 배위에서 그에게 전수한 바 가 있었던 것이지만 그 당시 그는 무학의 도리에 대해서 아는 바가 너무나 적었기 때문에 그저 억지로 미처 소화도 못 시키고 주어삼키 는 꼴이 되었던 것이고 따라서 전혀 어떻게 운용하느냐 하는 것을 몰 랐다. 그런데 이 며칠 동안 부모님을 따라 검술을 배우게 되었는데 검술이 크게 진보했을 뿐만 아니라 한 가지 방법이 통하게 된다면 만 가지 방법이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권각법의 조예마저도 이미 적지 않게 터득할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정불사가 조(조), 나(拿), 구(勾), 타(打)의 비결을 여지 없이 발휘하여 펼치는 수법이 하나같이 교묘하고 매섭기 이를데 없는 것을 보고는 놀람과 함께 기쁨을 느끼게 된 것이었다. 다섯 사람이 한참 동안 어울리게 되었을 적에 갑자기 정불사는 왼팔 을 쭉 뻗었는데 그 순간 그의 손은 어느덧 여정평의 어깻죽지를 잡았 다. 여정평은 칼을 휘둘러 그의 손을 내려치려고 들었다. 석파천은 그와 같은 광경을 보고 깜짝 놀라서는 그와 같이 칼을 베 어내게 된다면 정불사가 그 기세를 빌어 반격을 시도하게 되고 그 결 과 틀림없이 여정평의 안면을 후려치리라는 것과 정불사의 매서운 장 력으로 미루어 볼 때 여정평의 목숨을 보존하기가 힘들것이라는 사실 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그는 자기도 모르게 불쑥 소리쳤다. [당신의 얼굴을 때리려는 것이오?] 그의 내력이 충만한 만큼 그 소리는 여러 무기들이 휙휙 하니 바람 소리를 일으키는 가운데에서도 여러 사람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여정평은 무공이 뛰어난 사람이라 그 호통소리를 듣게 되자 즉시 깨 닫는 바 있어 총망중에 손에 들고 있는 칼을 던지면서 몸을 땅바닥에 던져 데구르르 굴렀다. 초식의 변화가 신속하다고 했으나 얼굴은 어느덧 정불사의 장풍에 얻어맞는 결과가 되고 대뜸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콱 막히는 것을 느끼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얼굴은 마치 칼로 살을 발러내는 듯 무척 아픈 것을 참아야 했다. 그리하여 그는 수 장 밖으로 굴러간 이후에야 벌떡 몸을 일으켜 세 우기는 했으나 가슴이 쿵꽝쿵꽝 마구 뛰는 것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는 조금전에 생사의 간격이 그저 한 가닥 실날처럼 가늘었으며 만 약 그 누가 있어 깨우쳐 주지 않았더라면 그의 일 장을 정통으로 얻 어맞게 되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여정평이 싸움의 테두리에서 굴러서 바깥으로 물러나게 되자 범일비 는 즉시 잇달아 위험한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여정평은 급히 숨을 들어마시고는 부르짖었다. [칼을 던져라!] 그의 큰제자가 즉시 칼을 던졌고 여정평은 손을 뻗쳐 그 칼을 잡은 이후에 다시 공격해 들어갔다. 바로 이때 정불사의 금편이 어느덧 풍량의 연편을 휘감아서는 와락 당기게 되자 풍량의 몸뚱아리가 붕 하니 떠서는 여정평의 칼날쪽으로 부딪쳐 왔다. 여정평은 깜짝 놀라서는 칼을 돌리고 급히 피했다. 석파천은 부르짖었다. [범가 양반! 당신의 목을 움켜잡으려 할 것이니 조심하시오.] 범일비는 어리둥절해졌으나 미처 생각해 볼 여유도 없이 판관쌍필을 들어 먼저 목을 보호했다. 아니나 다를까, 정불사의 다섯 개 손가락이 동시에 뻗쳐왔으며 싹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목 옆을 스치면서 다섯 가닥의 혈흔(血痕)을 내는 것이 아닌가? 진정 실날같은 차이로 비켜난 것이었다. 석파천이 잇달아 두번이나 소리를 질러 두 사람의 목숨을 구하게 되 자 관동의 군호(郡豪)들은 하나같이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 그를 바라 보았는데 그의 얼굴에 시커먼 석탄가루가 묻어 있지 않은가? 아마도 자기의 참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싫어서 그런가보다 하고들 짐작할 수가 있었다. 정불사는 버럭 욕을 내질렀다. [제미랄! 어느 개잡종이 쓸데없는 주둥이를 놀리느냐? 재간이 있다 면 나서서 이 할아버지와 한 수 겨루어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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