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객행(김용) - 61편 (61/82)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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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객행(김용) - 61편 (6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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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지 못할 거예요.] 석파천은 갑자기 그녀의 다정한 말에 그만 가슴이 쿵쿵 뛰었다.
[아니, 당신은 어째서 나에게 이토록 잘 대해주시오? 나는 당신의 천 오라버니가 아니지 않소?] 정당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들 두 사람은 똑같아요.
내 마음속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어요.
더군다나 나는 당신과 며칠간 함께 있었으며 또한 나에게 잘 대해주 었지 않았나요? 오래 같이 생활하게 되면 자연 정이 생긴다는 말도 들어보지 못했어요?] 그리고 그녀는 석파천의 두 손을 잡고 다시 말을 이었다.
[천 오라버니, 응락해 주세요.
어찌 되었던간에 능소성에 가지 않겠 다고.] 석파천은 초조해졌다.
[그러나 석 장주 부부를 구하지 않을 수는 없소.] 정당은 눈을 깜박이며 입을 열었다.
[한 가지 계책이 있긴 해요.
내가……내가 나쁜 마음을 품은 것은 아니지만 의심을 받을까봐 이야기하기가 거북하네요.] 석파천은 재빨리 말했다.
[빨리 말해보시오.
어떻게 당신이 나에게 나쁜 마음을 품을 수 있겠 소?] 정당은 잠시 망설였다.
[천 오라버니, 이 일은 정말 천 오라버니에게 불리한 일이에요.
그 누구든 이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면 내가 당신을 함정에 빠뜨렸다 고 할 것이나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이건 틀림은 없지만 너무나 불공 평한 일이거든요.] [어떠한 방법이오? 석 장주 부부를 구할 수만 있다면 좀 고생을 하 고 억울한 누명을 쓴다고 해도 관계치 않겠소.] [천 오라버니가 그렇게 원하신다면 말은 하겠지만 결코 이 방법을 쓸 생각은 하지 마세요.
설산파에서는 어째서 석중옥을 증오하고 죽 이려 드는지 아세요?] [석중옥은 본래 설산파의 제자인데 중대한 문규를 어겼을 뿐 아니라 능소성 안에서 백 대협의 따님을 죽도록 만들었다고 들었소.
거기다 가 그의 사부 봉만리에게도 누를 끼쳐 위덕 선생에게 한 팔을 잘려 나가도록 했다는구료.
그리고 어쩌면 또 무슨 나쁜짓을 했는지도 자 세히 모르겠소.] [맞아요.
바로 석중옥이 사람을 죽게 만들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를 죽이려는 거예요.
천 오라버니, 당신은 백 대협의 따님을 죽인 적이 있나요?] 석파천은 어리둥절해졌다.
[내가? 나는 물론 없소.
백 대협의 따님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 소.] 정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바로 그거예요.
제가 생각해낸 방법이라는 것도 별 것이 아니고 당 신이 석중옥으로 변장하는 거예요.
그리하여 석 장주 부부와 함께 능 소성으로 가서 그들이 당신을 죽이려 할 때 진상을 말하는 것이예요.
당신이 계잡종이지 석중옥이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죽이려는 사 람이 석중옥이지 당신이 아니니까 기껏해야 당신을 꾸지람할 뿐으로 곧 놓아줄 거예요.
그렇게 되면 석 장주 부부도 손을 쓰지 않을 것이 고 목숨을 잃을 염려도 없다는 거예요.] 석파천은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그 방법도 좋긴 하오만 능소성은 멀리 서쪽에 있으니 수천 리를 가 는 동안 백 대협 등과 동행을 하게 될 것이 아니오? 그렇다면 몇 마 디의 말을 하기 전에 탄로나고 말 것이오……] 그리고 그는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했다.
[쟁그랑땡,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언변이 전혀 없소.
어찌 당신의 천 오라버니의 총명함과 영리함에 견줄 수 있겠소?] 정당은 급히 입을 열었다.
[그 문제는 나도 생각해 보았어요.
목구멍에다 어떤 물약을 발라서 목을 붓도록 만드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목병이 난 것처럼 보이므로 입을 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은 의심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다가 그녀는 갑자기 한숨을 내쉬며 서글픈 어조로 말했다.
[천 오라버니, 이 방법이 묘하기는 하지만 괜히 천 오라버니가 고생 을 해야 된단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방법이 싫다는 것이 죠.
나로서는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당신에게 그와 같은 고생을 시키고 싶지 않단 말이에요.] 석파천은 그녀가 자기에 대해서 이토록 깊은 애정을 느끼고 있었는 가 하고 새삼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벙어리로 가장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녀를 위해 죽으 라고 하더라도 용감하게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즉시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좋소! 그 방법이 정말 좋겠소! 다만 내가 석중옥과 어떻게 바꾸어 치기 하느냐가 문제인 것이오.] 정당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들 일행은 황석진(황石鎭)에서 오늘밤 묵고 있어요.
우리들이 지 금 달려간다 해도 늦지는 않아요.
그리고 나는 석중옥의 방을 알고 있어요.
살그머니 들어가 그의 옷을 바꾸어 입은 후 그를 내보내세 요.
그런 연후 내일 아침부터 끙끙 앓기 시작하세요.
목에 상처가 나 서 그렇다고 말하면 의심치 않을 거예요.
그리고 백영감이 당신을 죽 이려고 하기 전까지는 입을 열지 않도록 하세요.] 석파천은 크게 기뻐했다.
[쟁그랑땡, 그 방법이 좋겠구료.
어떻게 하다가 그와 같이 묘한 방 법을 떠올리게 되었소?] 정당은 그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다시금 당부를 했다.
[길을 가면서 그 누구와도 이야기를 하지 말아요.
석 장주 부부와도 너무 가깝게 굴지 말아요.
백 대협 등은 더욱 똑똑하고 눈치가 빠른 사람들이니 조금이라도 마각을 드러내게 된다면 그들의 의심을 사게 될 거예요.
그렇게 된다면 석 장주 부부를 구하지 못해요.
아! 석 장 주 부부는 의협심이 많은 분인데 만약 이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된다면 ……] 그러면서 그녀는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 다.
석파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나도 알고 있소.
당장 나의 목을 친다 하더라도 나는 입을 열 지 않을 것이오.
자, 이제 갑시다!] 별안간 방문이 활짝 열리면서 한 여인이 부르짖었다.
[도련님! 그녀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아요!] 몽롱한 야밤에 한 소녀가 문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바로 시검 이었다.
석파천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시검 누나,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오? 그녀의 속임수에 넘어가 다니?] 시검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방문 밖에서 모두 들었어요.
이 정 소저는 나쁜 마음을 품고 있는 거예요.
자기의 천 오라버니를 구하기 위해서 도련님을 속여 그 대신 죽도록 하려는 것예요.] [그렇지 않소.
정 소저는 나를 도와 석 장주와 석 부인을 구하려는 것이오.] 시검은 급히 말했다.
[잘 생각해 보세요.
도련님, 그녀는 결코 도련님에 대해서 어떤 호 의를 가지고 있는 걸이 아니예요.] 정당은 냉소했다.
[흥! 잘 한다.
너는 본래 진짜 방주의 사람이거늘 이제 와서는 배신 을 할 뿐 아니라 이간질마저 하는군.] 그리고 나서 그녀는 석파천에게 고개를 돌렸다.
[천 오라버니, 저렇게 천한 계집애는 상대조차 하지 말아요.
빨리 진 향주 그들에게 한 대의 미혼향을 달라고 하세요.
하지만 우리들의 일을 이야기 해서는 안돼요.
미혼향을 손에 넣은 후 이곳으로 오지 말고 대문 밖에서 나를 기다리도록 하세요.] 석파천은 의아하여 물었다.
[미혼향은 무엇에 쓰려고 그러시오?] 정당은 재촉했다.
[나중에 알게 돼요.
빨리 가세요.] 석파천은 대답을 하고 즉시 창문 밖으로 달려갔다.
정당은 냉소를 띄우고 시검에게 말했다.
[이 계집애야, 너의 양심은 퍽이나 좋은가 보구나.] 시검은 놀라 몸을 돌려 도망을 치려고 했다.
그러나 정당은 재빨리 다가와 두 손을 일제히 뻗쳐서는 그녀의 등심 을 후려쳤다.
시검은 비명 소리 한 번 내지르지 못하고 그만 절명하 고 말았다.
정당은 창문을 뛰어넘어 나가려고 하다가 갑자기 한 가지 사실을 생 각하고 다시 돌아와 시검의 아랫부분의 옷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그리고 속바지마저 끌어내려 하반신을 나체로 만들다시피 하고서는 시체를 석파천의 침대 위에 눕혔다.
이불자락을 끌어당겨 그녀의 몸 뚱아리도 덮어주었다.
이틔날 장락방의 사람이 발견한다 하더라도 그녀가 반항하다가 석파 천에게 당한 것이라는 생각을 심어주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석파천이 며칠간 돌아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패해석 등 은 그가 잠시 부끄러워 떠나간 것으로 생각할 것이고 서둘러 사람을 밖으로 내보내 찾지 않으리라는 것이 그녀의 계산이었다.
그녀는 모든 안배가 끝나자 살그머니 대문 밖으로 나갔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되자 석파천이 담장을 뛰어넘어 달려왔다.
[미혼향을 손에 넣었소.] 정당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했어요.] 두 사람은 재빨리 냇가로 달려가 조그만 배에 올랐다.
정당은 노를 저어 수 마장을 나아가게 된 후 다시 배를 버리고 뭍으 로 올랐다.
버드나무 아래 두 필의 말이 매어져 있었다.
정당은 말을 가리켰다.
[이 말에 올라타세요.] 석파천은 그녀의 치밀한 계획에 감탄했다.
[당신은 정말 빈틈이 없구료.
말까지 준비해 놓다니……] 정당은 얼굴을 붉히며 짐짓 뾰로퉁한 어조로 말했다.
[뭐가 치밀해요? 이것은 할아버지의 말이에요.
내가 언제 당신이 석 청 부부를 구하려고 급히 달려갈 줄 짐작이나 했겠어요?] 석파천은 그녀가 어째서 갑자기 뾰료퉁해졌는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더 성을 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는 말 위에 올랐다.
두 사람은 사경 무렵까지 말을 달려 황석진 밖에서 말을 내렸다.
그 리고는 황석진 안으로 들어갔다.
정당은 어느덧 그를 이끌고 사해객잔(四海客棧) 문밖에 이르게 되었 다.
문밖에 이르게 되었을 때 그녀는 나직이 당부했다.
[석 장주 부부와 그의 아들은 동쪽채의 두 번째 큰 방에서 자고 있 어요.] [그들 세 사람이 한 방에서 잔단 말이오? 그렇다면 석 장주와 석 부 인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해야겠지?] 정당은 싸늘히 코웃음쳤다.
[흥! 부모 되는 사람들이 아들이 도망을 치게 된다면 설산파에 대해 서 책임을 질 수 없게 되니까 밤낮으로 감시하기 좋으라고 한 방에서 자는 것이죠.
뭐 그들은 그저 자기네들의 협의도와 영웅호걸의 체면 만 생각했지 친아들이 죽고 사는 것은 상관하지 않으니 이와 같은 부 모야말로 천하에서 정말 보기 드문 거예요.] 그녀의 말에는 크게 불평불만이 서려 있었다.
석파천은 그녀가 갑자기 불평불만을 토로하게 되자 어떻게 그 말을 받아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다가 잠시 후에야 나직이 물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참이오?] 정당은 말했다.
[당신은 미혼향에 불을 당겨서는 그들의 창문 안으로 디밀어 미혼향 이 다 타게 되었을 적에는 석 장주 부부들도 이미 정신을 잃고 있을 거예요.
그때 당신은 창문을 열고 들어가서는 살그머니 석중옥을 안 아 나오면 되는 거예요.
당신은 경신법이 훌륭하니 담장을 뛰어넘어 들어간다 하더라도 백 대협 등은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지만 저는 발 각되지 않고 들어갈 수가 없을 것 같으니 바로 저쪽 처마 아래에서 당신을 기다리지요.] 석파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어렵지 않소.
진 향주 등신 설산파의 제자들을 정신을 잃게 해서 사로잡았을 때 사용한 것이 바로 이 미혼향이오.] 정당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웃었다.
[그것은 귀방에서 비열하게 사용하는 법보(法寶)라고 할 수 있으니 아마도 틀림없이 효과가 좋을 거예요.
그렇지 않을 때 설산파의 뭇 제자들 역시 범상한 사람들이 아닌데 어찌 그토록 가볍게 사로잡힐 수 있었겠어요……] 그리고 그녀는 새삼 음성을 낮추어서 다시 당부를 했다.
[하지만 당신은 절대로 조심을 해야 하며 조금도 기척을 내어서는 안돼요.
석 장주 부부는 설산파의 제자들과 견줄 수가 없단 말이예 요.] 석파천은 고개를 끄덕이고 미혼향에다 불을 당겼다.
바깥이었지만 약간 연기를 맡게 되자 머리가 핑 돌았다.
그는 약간 놀라 물었다.
[이 연기에 사람은 죽지 않겠소?] 정당은 웃으며 말했다.
[그들은 이 미혼향으로 설산파의 제자들을 잡았어요.
그러나 이 냄 새를 맡고 그들 가운데 죽은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어요.] 석파천은 말했다.
[그들 가운데 그 누가 미혼향에 죽었다는 소리는 아직 못들었소.
자, 그렇다면 당신은 여기서 기다리고 계시오.] 그리고 나서 그는 담장가로 다가가 가볍게 몸을 날려서는 안으로 뛰 어들었다.
전혀 아무런 기척도 일어나지 않았다.
동쪽 두 번째 방의 창가에 이 르러 귀를 기울였다.
아니나 다를까 세 사람이 숨소리도 고르게 깊은 잠속에 빠져 있었 다.
그는 손가락 끝에다 침을 묻혀서는 창호지에 구멍을 뚫었다.
그런 연후 불을 당긴 미혼향을 그 구멍 안으로 집어넣었다.
미혼향은 매우 빨리 탔다.
얼마 되지 않아 모두 재가 되었다.
그는 사방에서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는 내력을 팔에 돋우어 가볍게 문을 밀었다.
창문걸이가 그대로 부러지면서 창문이 열렸다.
석파천은 왼손으로 창틀을 잡고 가볍게 방안으로 뛰어들었다.
밖으로부터 스며드는 빛에 그는 이 객실이 두 개의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석청 부부는 북쪽 구들목에서 자고 있고 석중옥은 남쪽 구들목에서 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세 사람 다 꼼짝하지 않았다.
그는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갑자기 현기증이 났다.
미혼향을 맡았기 때문에 그러는 줄 알고 그 는 호흡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는 석중옥을 안아서는 가볍게 창 밖으로 달려나가 담장을 뛰어넘었다.
정당은 담장 밖에서 지키고 있다가 나직이 칭찬의 말을 했다.
[정말 깨끗하고 날렵한 솜씨였어요.] 그리고 나서 그녀는 두려운 듯 사방을 살피며 다시 말했다.
[우리 좀더 멀리 가요.
백 대협 등에게 눈치채이지 않도록 말이에 요.] 석파천은 석중옥을 안고 그녀를 따라 수십 장 밖으로 달려갔다.
정당은 그에게 당부했다.
[이제 옷을 모조리 벗어요.
그와 똑같이 변장하려면 주머니 안의 물 건들도 빠짐없이 바꾸어야 해요.] 석파천은 자기의 품속에서 대비노인이 준 한 상자의 나무 인형과 두 조각의 동패를 꺼내면서 물었다.
[이것도 그에게 건네어 주어야 하오?] 정당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꺼내도록 해요.
몸에 지니고 있다가 그 누구에게 발각이라도 당하면 모든 것이 탄로나지 않겠어요? 나는 저쪽에서 망을 보고 있겠 어요.] 석파천은 정당이 저쪽으로 물러간 후 발가벗고는 석중옥의 내의와 속바지를 입었다.
그런 연후에 자기의 의복을 석중옥에게 입혀주었다.
[다 입었소.] 정당은 돌아왔다.
[석 장주와 석 부인의 두 목숨은 당신이 얼마나 비슷하게 행동하느 냐에 달렸어요.] 석파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소.
각별히 조심하겠소.] 정당은 허리춤에서 물주머니를 풀었다.
그리고 그 주머니의 물을 석 중옥의 머리 위에 뿌렸다.
이어 잠시 석중옥의 얼굴을 살펴보더니 몸을 돌리고 품속에서 조그 마한 철합을 꺼내더니 뚜껑을 열고 손가락에 듬뿍 고약 같은 것을 찍 어서는 석파천에게 말했다.
[머리를 쳐들어요.] 그리고 그녀는 고약을 그의 목에다 발라주고는 다시 말했다.
[남들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날이 밝기 전에 고약을 닦아내야 해요.
그리고 내일이면 좀 아프게 될 거예요.
정말 고생을 시켜 미안하군 요.] [상관없소.] 이때 석중옥은 몸을 조금씩 꿈틀거렸다.
곧 깨어날 모양이었다.
석파천은 다시 입을 열었다.
[쟁그랑땡, 그럼 나는 이제 가보겠소.] 정당은 손을 내저었다.
[빨리 가보세요.] 석파천은 객잔으로 다가갔다.
수 장 앞으로 나아가 고개를 돌려보니 석중옥이 일어나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정당과 나직이 무어라고 속삭이고 있는 것 같 았다.
그런데 갑자기 정당은 킥 하니 웃었다.
매우 나직한 음성이었으나 기쁨에 가득찬 소리가 아닌가! 석파천은 갑자기 격렬한 외로움을 느꼈다.
어렴풋이 그는 이제 정당과 함께 있 을 수 없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잠시 망설이다가 그는 객잔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창문을 열고 방안 으로 들어섰다.
방안에는 아직도 미혼향의 향기가 짙게 풍기고 있었다.
그는 호흡을 멈추고 창문을 열었다.
정당과 석중옥이 나란히 말을 타고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가 있었다.
(그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당매는 정말 저토록 기쁜 것일까? 나 같이 우둔하고 말재주 없는 사람이 그녀와 함께 있게 된다면 그녀는 항상 성만 내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그는 하염없이 한참 동안 창가에 서 있었 다.
그러자 차츰 목구멍이 아파왔다.
그는 즉시 이부자락 속으로 들어갔다.
정당이 바른 고약은 정말 영험했다.
반 시진이 되지 않아 석파천은 목이 따가워 죽을 정도로 아팠다.
손으로 만져보니 불덩이 같았다.
그리고 혹 같은 것이 툭 불거져 있었다.
그는 날이 약간 밝기를 기다려 고약을 모조리 이부자락에 닦았다.
그런 연후에 이불의 위와 아래를 바꾸어 덮고 남들이 발견하지 못하 도록 했다.
그는 어느 정도 일이 마무리 되자 신음소리를 냈다.
잠시 신음 소리 를 내자 석청이 그 소리를 듣고 물었다.
[왜 그러느냐?] 그 어조에는 퍽이나 성이나 있었다.
민유는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물었다.
[옥아, 몸이 불편하느냐?] 석파천이 미처 대답하기 전에 그녀는 다가와서 살펴보더니 그의 두 뺨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고 목에 혹 같은 것이 불거져 있는 것을 보 자 그만 당황해서는 불렀다.
[사형, 사형, 이것 좀 보세요.] 석청은 처의 음성에 놀람이 가득 담겨 있는 것을 느끼고 벌떡 몸을 일으켜서는 아들의 앞으로 다가왔다.
목이 크게 부어오른 것을 보자 그 역시 당황하여 어정쩡하니 말했 다.
[아무래도 의원을 불러와야겠소.] 그리고나서 그는 석파천에게 물었다.
[많이 아프냐?] 석파천은 몇 마디 신음소리만 냈을 뿐 대답하지 않았으나 속으로 부 르짖었다.
(나는 당신네들을 구하기 위해서 이와 같이 곤욕을 치루고 있소.
그 런데 당신들이 이토록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면 석중옥이 나쁜 짓을 많이 했더라도 여전히 석중옥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소.
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군.) 서글퍼진 마음에 그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석청과 민유는 그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모양을 보자 매우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더욱더 당황해 했다.
그리하여 석청은 의원을 찾아오겠다고 나서려 하는데 민유는 이 조 그만 고을에 무슨 의원이 있겠느냐면서 진강으로 가서 패해석에게 보 이자고 했다.
그러나 석청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백만검 등에게 의심받을 짓과 패 해석에게 경시당할 일을 하지 말자고 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민유는 뜨거운 국물을 얻어와서 석파천에게 먹였다.
그 독약의 약성은 대단했다.
정당이 너무나 듬뿍 발라놓았기 때문에 목의 안팎이 모조리 부어올 라 국물마저도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민유는 더욱더 당황하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석청이 육십여 세쯤 되는 의원을 데리고 왔다.
그 의원은 석파천의 목을 살피더니 다시 그의 두 손 완맥을 짚어보 고는 연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의서에 같은 종기라 하더라도 치료할 수 없는 여섯 가지 조합이 있 다오.
목구멍에 나게 된다면 약이나 음식을 좀처럼 먹기가 어렵기 때 문에 치료할 수 없는 조항중의 하나가 되는 것이외다.
그리고 에 또 이 세형(世兄)의 맥박이 크면서도 빈도가 긴밀하니 바로 양기가 성하 고 음이 정체된 현상이외다.
기(氣)는 양이고 피는 음이라, 피가 맥 안에서 흐르게 되고 기는 맥의 밖에서 흐르게 되는데 기가 나빠지게 되고 진액(津液)이 많아지면서 끈적끈적해지는 동시에 오래 쌓이게 되다면 맥 안으로 스며들게 되며 피는 탁하게 되는 것으로……] 그는 그래도 연신 도도하게 말을 그치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 하려고 했다.
석청은 불쑥 입을 열었다.
[의원님, 저의 아들 놈의 종기는 이제서야 발병한 것이나 약으로 그 부기를 흐뜨리게 된다면 될 수 있을 것 같군요.] 그 의원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어찌되었든 간에 이 세형의 목숨이 끈질기고 이 커다란 종기가 횡 석진에서 생겨나 나를 만났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큰일날 뻔 했소이다.
다만 수일 안으로 종기를 가라앉히게 되고 건강을 회복하 기는 그렇게 쉬운 노릇이 아니외다.] 석청과 민유는 목숨에 지장이 없다는 말을 듣자 모두다 마음을 놓고 서는 재빨리 의원에게 처방을 써달라고 청했다.
의원은 한참 생각해 본 후 약 처방을 써주었는데 약재는 작약(芍 藥), 대황(大黃), 당귀(當歸), 질경(질梗), 방풍(防風), 박하(薄荷), 망초(芒硝), 금은하(金銀荷), 황기(黃耆), 적봉령(赤봉笭) 등이었다.
석청은 사실 약재에 대해서 좀 아는 바가 있었다.
그 약재들이 모두다 부기를 가라앉히고 화농하지 않도록 하며 독을 제거하고 피를 맑게 하는 약재들인 것을 보고는 칭찬의 말을 하고 두 냥의 은자로 사례를 했다.
그리고 의원을 전송해 주고는 스스로 약포 에 가 약을 지었다.
약을 지어오게 도었을 때 설산파의 사람들도 모두 알게 되었다.
백만검은 석청 부부가 어떤 수작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친히 살펴보았다.
석파천의 목이 부은 것이 엄청났고 민유가 또한 당황해 하는 것이 거짓이 아님을 알아보고는 속으로 은근히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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