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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소설) 하얀 짬뽕 - 1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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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이렇게 어이없어보긴 처음이었다.
내가 강간을 저지르려 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번도...정말로 단 한 번도 난 누군가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었다.
별거 아닌 재주를 이용해서 입시 장사를 해먹고 있기 때문에 이런 벌이 내려진 것이라면 좀 억울했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나보다 더 형편없는 놈들도 많았다.
그런 엄청난 돈을 받고 과외를 해서 난 떨어뜨린 적이 없질 않은가? 대학에 보내 준 것도 죄가 되나?

[내가 지금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궁지에 몰리고 상황이 절박해지자 나답지 않게 별 시시콜콜한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 자신이 이렇게까지 유치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면서 주인여자에게 강짜를 부리던 한국이 떠오르며 그가 이해가되었다.
사람, 다 거기서 거기였다.
많이 배우건 못 배우건, 절박한 상황에 마주하면 그 사람의 바닥이 들어나기 마련이었다.
나도 별 다른 것이 없는 놈이었다.
항상, 나만이 특별하고 고귀한 것처럼 살았지만 대단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인생일 뿐이었다.

강간을 저질렀다는 당면한 문제에 대한 어떤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 난 감옥에 갈 것이었다.
그동안 쌓았던 이 지역에서의 인맥은 먼지처럼 사라질 것이었고, 싸늘한 비판 속에 나는 사라질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무섭고 두려웠다.
그러면서 세상에 나 혼자뿐이란 생각이 들었고,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극한의 외로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17살 때부터 혼자살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나는 외로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어차피 아버지도 새로운 가정을 꾸렸고, 엄마도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잘 살았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엄마와 아버지의 그 지긋지긋한 싸움을 보지 않아도 되었고, 화풀이 하듯 내게 강해지기를 강요하는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서 좋았다.
모든 것은 내 의지로 내가 하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하고 안락한 삶이었다.

아버지와 엄마는 정말이지 내가 생각해도 희한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민사고에 합격했을 때, 아버지는 엄마를 닮은 내가 싫다고 하면서 나를 떠나버렸다.
그리고 내가 민사고를 자퇴했을 때 엄마는 아버지를 닮은 내가 끔찍하다며 더 이상 나를 찾지 않았다.
그리고 각자가 재혼해서 사는 삶 은 나름 행복해보였다.
그 행복한 모습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서 나는 엄마와 아버지를 찾은 적이 없었고, 두 사람도 내가 성장할 때까지 생활비를 대주기만 했다.
그리고 서울대에 합격한 뒤 길 원장 학원에 강사로 나가면서 나는 두 사람이 주는 생활비도 더 이상 받지 않았다.
나만의 완벽한 독립이었고, 나에겐 인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게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도 없었고, 엄마도 없었고, 인영도 없었고, 상인도 없었다.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오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온 몸에 또 다시 소름이 밀려왔고, 한기가 느껴져 이불을 뒤집어썼다.
나를 사랑하던 사람들이 나를 떠난 것이 바로 내 안에 있는 이런 짐승 같은 모습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머리가 쭈뼛거렸다.

창피한 생각과 나 자신이 쓰레기 같다는 생각이 겹쳐지면서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다.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느끼는 분노였고, 나 같은 것은 더 이상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나 같은 쓰레기들은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어...!...]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주방 쪽으로 걸어가 부엌칼을 집어 들었다.
어둠 속에서도 칼은 살기와 함께 번뜩거리는 빛을 내 뿜고 있었다.
그 칼은 상인이 준 것이었다.
집에서는 거의 음식을 해 먹지 않았는데, 상인이 김치를 썰어야 한다며 자기 집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참 희한했다.
나를 위해 나를 사랑한 여자가 가져온 칼로 나는 지금 내 손목을 그으려고 하고 있었다.
첫사랑이었던 인영이 나를 로봇으로 만들었고, 상인은 이제 나를 시체로 만들 것이었다.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려한 대가인가?

“그, 그만둬요, 태복씨...!...”

화들짝 놀라 나도 모르게 벽에 등을 댄 채로 소리 나는 쪽을 보니, 문 앞에 주인여자가 서있었다.
창 밖에서 들어오는 미세한 불빛이 주인여자의 당혹스런 표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겁먹은 얼굴로 손과 다리를 떨고 있었고, 난 다리에 힘이 풀리며 벽을 댄 채로 미끄러지듯 주저앉아 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가 없었고,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고 있었다.
그저 난 주저앉아 벽에 등을 기댄 채로 주인여자를 올려다보고 있었고, 그녀는 입구에 선 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잘 못 본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주인여자의 표정이 어느 새 침착해졌고, 손도 더 이상 떨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오른 쪽 발을 샌들에서 빼내 방바닥에 내딛었다.
그리고 왼쪽 발을 샌들에서 빼내고 그 옆에 놓았다.
주인여자의 발등에 돋아 난 힘줄과 발톱에 칠해진 하얀색이 밖에서 들어오는 불빛에 반짝이는 것 같았다.

다시 주인여자가 오른 발을 내딛으며 내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왔고, 다시 왼발을 들고 또 한 걸음 다가오는데, 그녀의 걸음걸이는 마치 한국 무용을 보는 것처럼 우아해 보였다.
창피함과 수치심에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지만 이상하게 주인여자의 맨 발의 움직임을 보자, 조금 진정이 되었다.
하지만 성욕이 끌어올라 주인여자의 발을 빨고 싶다는 느낌과는 달랐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한번도 느껴 본적이 없는 것이었다.
여자의 신체를 보고 성욕과는 전혀 다른 것을 느낄 수도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주인여자의 맨 발을 보며 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어느새 그녀의 발이 내 바로 앞에서 멈춰서 있었다.
퍼뜩 정신이 들어 위로 올려다보니 주인여자가 인자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보통의 인간은 마음 따로, 행동 따로 그렇게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런 급박한 순간에 주인여자는 너무나 부드럽고 태연한 얼굴이었고, 난 그녀의 반응에 점점 진정이 되어갔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침착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호랑이에 물려가 날카로운 이빨에 살과 뼈가 상처를 입고 다량의 피를 흘린 상황에서도 정신을 차리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었다.
보통의 인간이 그럴 수 있는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런데 지금 주인여자는 그것을 하고 있었다.
난 두려움 속에서도 이상하게 그런 주인여자의 반응에 호기심을 느끼고 말았다.

내 바로 앞에서 천천히 몸을 낮추는 주인여자의 움직임 또한 우아하면서도 기품 있어 보였다.
아무래도 내가 이 여자에 대해 과장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주인여자는 지금 당황했고, 젊은 남자의 죽음을 목격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습관적인 움직임을 하고 있는 것을 내가 멋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일 것이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을 쳐다보기가 곤란했지만, 방 안이 어두워서 그런지 주인여자의 눈을 볼 수 있었다.
표정에서 들어나는 것을 읽어 낼 수가 없어서 이 여자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태복씨...”

주인여자의 눈빛은 알 수가 없었다.
모성의 표정이라고 하기도 뭐했고, 자기 집에서 자살하려는 총각을 막기 위한 절박한 것이라고 하기에도 곤란한 것이었다.

“흠...또 저를 분석하려 드는 군요...당신은 참...!...”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지독한 습관을 지금 또 확인하고 말았다.
천 선생은 오랜 기간 나를 가르치면서도 특별한 말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대학에 합격했을 때 산 낙지에 소주를 사주면서 딱 한마디를 했었다.

<머리로 살려고 하면 피곤하다, 태복아...이건 그냥 낙지지...잘려져서까지 움직인다고 살았는지, 아니면 그럼에도 죽은 것인지를 따져봐야 뭐 하겠냐...하하하...!>

도통 뭔 소린지 알아먹을 수 없는 말을 하고는 천 선생은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연자 연예인들 얘기를 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이소라랑 자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고는 술자리를 끝냈는데, 난 아직까지도 천 선생이 자보고 싶다는 연예인이 슈퍼 모델 이소라를 말한 것인지, 아니면 가수 이소라를 말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좋아요...태복씨가 제 변명을 들어주면...저도 태복씨의 변명을 들어줄게요...어때요?...”

주인여자의 뜻밖의 말에 대답을 할 수 가없었다.
변명은 소크라테스처럼 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처럼 내가 떳떳하지도 않은 상황에서는 유구무언일 뿐이었다.
그런데 주인여자도 내게 변명할 거리가 있다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내 앞으로 왼 손을 내밀어 나는 주인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시선으로 내 오른 손을 가리켜, 돌아보니 내 손에 칼이 잡혀있었다.
화들짝 놀란 내가 칼을 놓치고 다시, 등을 벽에 바짝 붙이고 숨을 몰아쉬었다.
지금까지 내가 칼을 잡고 있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주인여자는 이제 약간의 미소를 보이며 칼을 집어 들고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녀가 싱크대를 열었다.
주인여자가 잡은 칼은 어둠 속에서도 다시 빛을 뿜어냈고, 그녀는 정확하게 그 칼을 입구에 고정시킨 뒤 천천히 칼집에 꽂아 넣었다.
또 다시 좀 전, 상인의 집에서 벌어졌던 상황이 재현되고 말았다.
그녀는 허리를 숙이고 있었고, 내 앞으로 주인여자의 육중한 엉덩이와 튼실한 허벅지, 그리고 종아리와 맨 발이 훤하게 보이고 있었다.

손을 뻗으면 주인여자를 잡아 안을 수 있는 거리였다.
그리고 밖에서 들어오는 불빛 때문인지 얇은 원피스 사이로 주인여자의 팬티가 살짝 들어나 보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알몸보다도 더욱 야했고, 또 다시 내 자지를 발기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고, 주인여자가 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
또 다시 내 몸에서 성욕이 파도처럼 밀려왔고, 내 자지는 터질 듯이 발기했다.
이런 신체의 반응이 진화의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창조에 의해서 처음부터 설계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놀라운 일이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 앞에 서있는 이 여자를 안고 싶었다.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주인여자의 입에 키스를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내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런, 이런...!...하하하!~ 또?...”

주인여자는 발기한 채 불룩해진 내 사타구니를 바라보고는 웃어버렸다.
난 좀 창피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가 내 뿜고 있는 여성미에 흥분이 밀려왔고, 알 수 없는 주인여자의 반응에 대한 혼란스러움이 뒤섞여서 무척이나 정신이 없었다.

“후우!~~미안해요, 태복씨...뭐,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런 상황이라면...우리가 섹스를 하는 것이 맞겠죠.
그러면서 이것저것 끼워다 구색을 맞추면...당신과 나의 섹스에 대한 당위성이 생길 것이고...흐음...
대충, 설득을 시킬 수도 있겠죠...”

“...이 시간에 청소를 하시고...또 제 방에 들어오신 건...저와 같은 생각 때문 아니셨나요?...”

“흐음...저도 현실이 그렇게 단순했으면 좋겠어요.
모든 것이 하나에서부터 열까지...광고에서처럼 생각대로 하면 모든 것이 다되고...하지만 그렇게 태복씨가 생각한 대로 모든 것이 딱, 딱 들어맞던가요?”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주인여자의 말에 강한 반발심이 생기면서, 여자의 ‘안돼요’란 말은 ‘돼요’란 말과 같다는 말이 떠올랐다.
내 본능은 주인여자와의 섹스를 갈망하고 있었지만, 반대편에선 강간하려던 내 행동에 대한 꾸짖음과 함께 지금 느끼고 있는 본능까지도 질책하고 있었다.

“다행이네요...성욕을 느끼는 것을 보니...
이제 쓸데없는 짓을 할 것 같진 않고...전 그만 돌아갈게요, 태복씨...”

주인여자가 돌아서서 천천히 샌들에 앙증맞은 발을 넣고는 문손잡이를 잡았다.

“...제게 하실 변명이란 게 뭐죠? 어차피 전...변명할 수도 없는 상황인 인데요...”

내 말에 고개를 돌린 그녀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동글동글하면서도 푸근한 인상의 주인여자는 상인처럼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갖고 있었다.
그동안 그림에 대한 얘기를 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어떤 것이 주인여자의 모습인가?

“태복씨가 변명할 거리를 찾으면...그때 얘기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아요...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대화를 해봐야 서로에게 상처를 줄 뿐이니까...”

이해할 수 없는 말에 난 더욱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주인여자는 내 얼굴을 보다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조심스럽게 닫히는 문소리와 함께 조금 지나자 주인여자가 걸어가는 소리가 엷게 들려오다가 점점 사라져버렸다.
또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나는 답답한 마음에 냉장고문을 열고 냉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술 때문인지 주인여자 때문인지 좀체 갈증을 달래기가 어려웠다.

강제로라도 섹스를 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핑계거리를 찾을 필요도 없이 저 여자는 내 여자가 됐을 것이었다.
이 큰 자지를 찔러주면 주인여자는 보지 물을 쏟아내며 울부짖었을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를 보고 여보라고 부를 것이었고, 단 한번의 섹스로 그녀는 내 노예가 됐을 것이었다.

[제기랄!...그런 일이 현실에서 가능할리가 없잖아...!]

항상, 어긋났다.
현실에서는 모든 것이 어긋나고 말았다.
난 차에 대해 누구보다도 많은 지식을 갖고 있던 아버지를 존경했지만, 아버지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법조인으로서 누구보다 인정받는 엄마의 능력과 열정을 존경했지만,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내가 중학생이 되고 그림에 점점 빠져버리자, 아버지와 엄마는 더욱 싸움이 치열해졌고, 난 숨이 막혀서 가출을 했었다.
가출한 청소년들의 모습은 주인에게 버림받은 애완견들의 모습과 비슷했는데, 처음엔 같은 처지라는 것에 안도감과 동질감으로 함께 몰려다니며 자유를 만끽했다.
그리고 철저히 본능에 의해서만 움직였다.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었다.
먹을 것이 없으면 훔치거나 빼앗으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안에서도 엄청난 힘 싸움과 생존경쟁이 벌어졌다.

물리적인 파워게임에 의해서 강자와 약자가 정해졌고, 약자들은 자신들이 당하지 않기 위해 강자들에게 아부를 하며 자신들보다 더 약한 자를 만들어버렸다.
그런 식으로 계급은 자연스럽게 형성됐고, 강자와 약자, 그리고 노예라는 계급은 어느새 익숙해져 버려서 엄청난 불합리한 상황을 겪어도 그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부모라는 벽에 갇혀 있다가 못 견디고 가출을 했더니, 또 다른 벽을 마주한 나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
모든 것을 정상으로 돌리기 위해 나는 물리적인 힘을 사용했고, 그로인해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다.
엄마의 힘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미성년이기 때문인지 난 쉽게 풀려났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집에 들어가자, 엄마는 현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가 보자마자 내 뺨을 때렸다.

이상한 일이지만 아버지는 그런 엄마를 말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후부터 두 사람은 내게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난 또 다시 범생이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내 앞에서 싸우지 않던 아버지와 엄마는 이혼을 했고, 난 어느 곳도 선택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 생각을 비웃듯 어긋났다.

인영과는 절대로 헤어진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지만 헤어졌고, 상인을 내 여자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틈이 없었다.
현실에서는 이렇게 모든 상황이 어긋나고 말았다.

새벽 내내 잠을 못 이루다가 겨우 잠이 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벌써 오후 2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나는 옷을 모두 벗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시작했다.
3시부터 초희와 수업을 해야 했는데 이렇게 되면 첫 수업부터 지각을 할 것 같았다.
한번도 이런 적이 없었던 나는 너무나 당황했다.
대충 샤워를 한 뒤 되는대로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런데 아트 백을 두고 나오고 말았다.
아트 백엔 초희에게 보여 줄 이대 합격생들의 그림이 들어있었다.
나는 다시 집으로 뛰어올라가 그것을 챙겨들고 다시 밖으로 뛰어나왔다.

정말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상황이 벌어져버렸다.
뭔가에 ?기 듯 움직이는 것을 난 극도로 싫어했고, 그런 사람들을 보면 정말이지 한심하게 생각했다.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할 때 들어오는 사람들을 나는 테러분자들보다 더 경멸했었다.
그런데 내가 이젠 그런 짓을 하고 있었다.
주차장에 가보니 내 차가 없었다.
어제 학원에 두고 온 것이었다.
미칠 것 같았다.
달리고 달려서 대로변으로 나갔는데, 그렇게 잘 잡히던 택시가 이상하게 잡히지 않았고, 또 택시도 잘 보이지 않았다.

똥줄이 탈 지경이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도로를 살피며 핸드폰을 받아보니 상인이었다.

<자기야? 오늘 가게 오픈인데, 안 올 거야?>

오늘이 광호의 새 가게 오픈이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말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고, 계획도 다 세웠었다.
아침에 테니스를 한 뒤 광호의 가게에 들려 하얀 짬뽕으로 점심을 먹고 초희의 집에 가면 시간이 딱, 맞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늦잠을 자고 말았다.
상인에게 저녁에 들른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고 보니 보연에게도 전화가 와 있었다.
아무래도 연락도 없이 나가지 않은 내가 걱정돼서 전화한 모양이었다.

겨우겨우 택시를 잡아 뒷좌석에 올라타고 보니 기사가 40대 여자였다.
푸근한 인상의 여기사는 친절하게 나를 맞아주었다.

“오래 기다리셨죠? 이 시간엔 모두들 터미널 쪽에 있어서 그래요, 손님.”

여기사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게 명함을 건네주었다.

“콜비, 천원만 더 주시면 10분 내로 달려갑니다, 꼭 불러주세요.”

넉살좋은 여자였다.
나는 명함을 받아들고 초희의 집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천천히 차를 출발시켰고, 너무나도 교통신호를 잘 지켜서 난 전에 없이 짜증이 밀려왔다.
빨리 가자고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은 내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난 초조하게 시간을 확인하면서 1초라도 서둘렀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그녀는 정차를 할 때마다 백미러로 나를 보고 웃었다.

“왜, 웃으시죠?...”

내가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돌려서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 죄송해요...손님, 옷이 거꾸로 되어서요...”

그녀의 말에 내가 티를 살펴보니 황당하게도 뒤집어서 입고 있었다.
창피함에 얼굴이 달아올라버렸다.
이 꼴로 초희의 집에 들어갔다면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었을 것이었다.
그나저나 옷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남자기사라면 옷을 바꿔 입을 텐데, 여자 기사라 그러기도 뭐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유행인가요?...호호...”

여기사는 내 맘도 모른 채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차를 몰고 달려갔다.
초희의 집은 도청 근처의 산 위에 있는 3층 집이었다.
로미의 집도 그 쪽이었는데 이 지역에서 전통적인 부유층 사람들은 모두 그 근처에 저택과 같은 집을 짓고 살고 있었다.
산 중턱에 집이 있어서 전망도 좋았고, 바로 30분만 걸어 올라가면 약수터가 있는 환상적인 곳이었다.

시내를 빠져나간 차는 계천 옆 좁은 도로를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10분 정도만 가면 도착할 것이었다.
계천은 청계천처럼은 아니었지만 잘 정리가 되어있었다.
계천 옆에서는 사람들이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난 초조함을 달래고 있었는데 갑자기 끼이?~ 하는 자극적인 소리와 함께 차가 멈춰 섰고, 난 얼굴을 좌석에 부딪치고 말았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확하고 짜증이 밀려와 앞을 보니, 좌측 골목에서 나온 렉서스가 멈춰선 채 가만히 있었다.

“괜찮으세요?!...”

여기사가 나를 보며 말했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나를 보다가 창문을 내렸다.

“갑자기 나오시면 어떡해요?!”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여기사가 말하자, 골목에서 나온 차가 창문을 열었다.
안을 살펴보니 조수석엔 곱상하게 생긴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고, 운전석엔 선 그라스를 낀 여자가 있었다.

“별 것도 아닌 것 같고 뭘 야단이야...!...
빨리 가 아줌마, 빨리!~”

“아니, 이 사람이, 정말!~”

여기사가 차에서 내려서 렉서스로 다가가 안에다 대고 따지듯 얘기하자, 렉서스에서 젊은 남자가 내려서는 지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정말 짜증나는 날이었다.
두 사람은 점점 더 심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운전석에 앉아있는 여자는 선 그라스를 벗고는 짜증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20대 후반으로 보였는데, 베르디움 여자들처럼 고급 옷에 고급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지각을 면하기는 틀려버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때문인지 모르지만 신경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여기사는 오히려 더욱 난리를 치는 젊은 남자를 보다가 이내, 포기를 하고 돌아서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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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소설) 하얀 짬뽕 - 18편
“병신 같은 년이 길을 막고 지랄이야!... 하여튼 없이 사는 것들은!~” 젊은 남자는 비웃듯 그렇게 말했고, 여기사가 붉게 물든 얼굴로 돌아서서 다가갔다. “뭐라고?~ 당신들이 골목에서 튀어나왔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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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소설) 하얀 짬뽕 - 19편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런 식으로 해서까지 대학에 가야만 하는 것인지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학생이나, 그 중간에 끼인 학부형이나 그런 의문을 갖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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