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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소설) 하얀 짬뽕 - 2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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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운 내 마음과는 다르게 경숙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표정이 밝았고, 나에 대한 어떤 거리낌도 없어보였다.
저 표정은 무슨 뜻일까? 이제는 내가 자기 것이 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나도 종석이처럼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인가? 종석이 말마따나 나도 여자에게 좆 물려서 어쩔 수 없는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인가? 나에게도 이런 이기적이고 천박한 면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어느새 엘리베이터는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멈춰 섰다.
경숙이 먼저 내렸고 나는 우물쭈물 어색한 동작으로 뒤를 따라 내렸다.
경숙이 돌아서려 할 때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주차장 안으로 차 한대가 들어왔다.
마티즈였다.
작은 차는 엘리베이터 근처에 차를 세웠는데 보니 헬스클럽 사장, 영훈이었다.
30대인 영훈은 몸의 근육이 장난이 아니었는데, 그 큰 몸을 하고 마티즈에서 내려서는 모습을 보자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고, 웃기기까지 했다.

영훈은 내가 이곳에 내려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엘리베이터에서 봤었다.
그런데 나를 처음 보고는 대뜸 선수로 나가라고 했고, 근 3개월을 학원에 찾아와 졸랐었다.
너무나 들이대는 것이 짜증이 나서 나는 일부러 빌딩 내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고, 헬스클럽도 시민회관을 이용했을 정도로 짜증나게 했었고, 또 끈질 긴 사람이었다.

우리 쪽으로 영훈이 다가와 경숙과 내가 함께 인사를 했고, 그도 호탕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야!~~이거 오랜만입니다, 사무장님, 장 선생님!~ 이거 한 건물인데도 얼굴 보기가 힘드네, 하하!~ 그래, 장 선생은 정말로 선수가 될 생각이 없는 거요?”

“아이고!~ 사장님도 정말 끈질기시네요.
벌써 몇 년 째에요?”

“사무장님이 모르셔서 그렇지, 장 선생이 마음만 굳히면 내가 세계대회까지 보내 줄 수 있다니까요?”

“평양감사도 자기가 하고 싶어야 하는 거죠, 이제 포기하세요!~~”

“그럼, 경숙씨라도 하세요.
경숙씨도 조금만 하시면 우승은 따 놓은 당상입니다.
어때요?”

“아유!~ 전 몸짱 아줌마 되는 거 그만 둘래요.
그게 어디 사람 사는 거예요? 먹고 싶은 것도 맘대로 못 먹고...후우!~~뭐 몸짱은 아니어도 이정도면 아줌마치고는 괜찮잖아요?...
안 그래요, 장 선생님?”

갑작스런 경숙의 말에 나도 모르게 그렇다고 말했다.
그러자 영훈이 껄껄 웃으며 내 어깨를 두 번 치더니 엘리베이터에 올라섰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서서히 닫히자, 웃으며 손을 흔드는 영훈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동안 귀찮아서 일부러 피해 다녔지만 영훈은 언제 봐도 건강했고, 그 모습을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장 선생님, 우리 밥이나 먹으러 가죠?...해장국 어때요?”

경숙이 나를 보며 맑은 표정으로 말했다.
도저히 경숙의 생각을 읽을 수가 없어서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고, 내 차를 타고 빌딩 밖으로 달려 나갔다.
강한 햇살이 차 안으로 들어와 나와 경숙의 몸을 때렸다.

나는 시내를 벗어나 경숙이 말한 올갱이 해장국 집으로 달려갔다.
이곳은 이 지역뿐만 아니라 외지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곳이어서 그런지 새벽인데도 사람들이 꽤 많이 있었다.
우리는 홀 중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막상, 경숙과 단둘이 이른 새벽에 해장국을 먹으러 왔다는 사실이 멋쩍게 느껴졌다.
그런 느낌 때문인지 경숙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있을 때 고맙게도 종업원이 물병과 잔, 그리고 메뉴판을 들고 왔다.

경숙이 올갱이 해장국과 빈대떡을 시켰는데, 너무나 태연했다.
도대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녀의 모습에 나는 더 어떻게 경숙을 대해야 할지를 몰라서 물병을 들고 잔에 따라서 경숙에게 주었고, 다시 내 잔에 물을 따르고는 목을 축였다.
이상하게 갈증이 심해서 나는 물을 또 따라서 한 잔을 더 마셔야했다.

“장 선생님, 얼굴 좀 펴세요...누가 보면 우리가 진짜 부부라고 생각하겠어요...호호...!”

나를 보고 웃으며 경숙이 말했다.
뭔 말인가 생각하다가 나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나 보다 나이가 많아서 그런가? 경숙은 나와 섹스를 했으면서도 전혀 의식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조금 뒤 해장국이 나오자 나를 의식하지 않은 채 남성답게 먹었다.
그녀의 모습은 나의 부담감을 덜어주었고, 나도 해장국을 맛있게 먹었다.
앞으로 나와 경숙의 사이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몰랐지만 지금은 배속에 음식을 넣는 행위에 집중해야했다.
그리고 다음을 기다려야 했다.

해장국을 맛이게 먹고 가게를 나온 우리는 자판기 커피를 한 잔씩 뽑아들고 가게 옆에 정원처럼 꾸며진 곳으로 걸어갔다.
커다란 나무 옆엔 벤치가 있었는데 이국적으로 보였다.
우리는 그 벤치에 약속이나 한 듯 나란히 앉았다.
경숙은 햇살이 들어오는 자리에 앉아 흰 옷이 눈이 부실정도로 빛이 났고, 난 그늘에 앉았다.
햇살이 너무나 강해 경숙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졌고, 그것을 바닥에서 뜯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먹으러 오길 잘 했네요...아무래도 그냥 헤어지면...장 선생과 너무 불편해질 것 같았는데...”

“...죄송합니다...제가 너무 어린 애처럼 굴었습니다...”

내 말에 경숙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원망의 눈빛이 아니라 내 생각을 이미 모두 알고 있다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경숙의 그런 눈빛을 보자 이상할 정도로 얼굴이 달아올랐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해 할 것 도 없고...책임질 일도 아니에요, 장 선생님...저도 원했던 일이니까요...”

“... ...”

“네...장 선생이 키스했던 날이요...그 날 밤...
한 잠도 못 잤어요...”

경숙의 말에 난 더욱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이 여자는 본의 아니게도 내 키스로 인해 그동안 고민을 많이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 주인여자를 강간하려 했었다.
이 사실을 알면 경숙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아니어도 된다는 것을 나는 인영과 상인에게서 느끼고 말았었다.
그런데 나는 인영과 상인에게 느꼈던 기분을 경숙에게 주려하고 있었다.
아직은 다행히 그 사실을 경숙이 모르지만 알기라도 한다면 경숙도 나와 같은 상처를 받을 것이었다.

“장 선생님은 생각한 것과는 너무나 다르네요...학원에서는 70대처럼 느껴졌는데...나이는 속일 수 없는 것 같네요...즉흥적인 것이...이제야 장 선생이 저보다 어리게 느껴져요...호호...!...”

“...이제야 제가 사람처럼 느껴지나요?...”

“그래요...사람...그 동안 장 선생은 항상, 1미터 정도의 벽을 앞에다 두고 그 거리만큼만 우리를 허락했었죠...이젠 그 벽이 없어졌어요...”

의식적으로 어른스럽게 굴려고 했던 적도 없고, 누군가를 경계하려고 했던 적도 없었다.
그 동안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제멋대로 나를 판단 한 것뿐이었다.
그것은 마치, 학생들이 내 혈액형을 AB형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장 선생님...정말로 저랑 결혼하고 싶었어요?...”

“... ...”

갑작스런 경숙의 질문에 나는 말을 하지 못했다.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얼굴은 달아올랐다.
나는 지금 이기적이고 더러운 먹물들의 행동을 하고 있었다.
경숙의 말마따나 항상, 나만 옳고 남들은 모두 틀렸다고 생각하면서 막상 책임을 져야하는 부분에선 발을 빼려고 하기에 급급하고 있었다.

핑계를 대고 싶었다.
없는 핑계도 만들고 싶었다.
핑계를 대자면 나는 경숙이 싫은 것은 아니었고, 그녀에게 아이가 있다는 것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난 아직까지 결혼에 대한 어떤 생각도 해 본적이 없었다.
아주 저급한 먹물들의 자기 합리화였다.

“하하하!~~ 장 선생이 그렇게 우물쭈물한 모습을 보이니까 너무 재밌네요! 하하하!~~”

나의 비겁함 앞에서 경숙은 크게 웃어주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엔 너무나 추한 모습 같았는데, 오히려 경숙은 재밌어 하고 있었다.
도대체 경숙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좋아요...여기까지 왔으니 아주 손가락이 오그라드는 얘기를 해줄게요.”

“... ...”

“음...전 결혼을 두 번 했었어요.
첫 번째 결혼에서 수오를 얻었는데, 남편이 그만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 떠나버렸죠...그리고 장 선생이 이곳에 오기 전에 재혼을 했었어요...그 남자도 장 선생처럼 즉흥적으로 다가왔었죠...전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고...앞 뒤 안 가리고 재혼을 했어요...”

경숙은 비극적인 얘기를 남 얘기처럼 하고 있었다.
난 아직까지 과거에 대한 일을 생각하면 심장이 떨릴 정도였는데 경숙은 너무나 침착했다.
나이를 먹는 다는 것은 자신을 객관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인가? 아니면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을 객관화시킨 만큼 성숙해 지는 것인가?

“근데...재혼이란 것이 쉽지가 않더군요...시댁에선 처음부터 저를 못 마땅해 했는데...당연 하죠 제가 나이가 많았으니까...근데, 수오에게도 그것이 전해지더군요...남편이 중간에서 모든 것을 막아줬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더군요...남편도 사람이니까 힘든 것이 당연한대도 ...나도 힘이 드니까 떼를 썼고...언제 그랬냐는 듯 우리는 매일 싸우게 됐고...결국, 이혼하고 말았어요...웃기죠?”

“...손가락은 오그라들지 않았습니다...”

내 말에 경숙이 피식 웃어버렸다.
뭔지 모르지만 나는 경숙에게 이해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엄마에게도 느껴 본적이 없던 느낌이었다.

“흠...이제 장 선생 얘기도 해봐요...알고 싶어요...”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경숙에게 인영과의 일을 얘기했다.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 한 적이 없었는데 경숙에게 모든 것을 얘기를 하고 말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었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속이 후련해졌다.
십년 묵은 체증이 쑤욱 내려간다는 말은 바로 이런 느낌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장 선생 얘기는 손가락이 오그라들어요...하하하!~~”

하긴 경숙의 말이 맞았다.
첫사랑에 실패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 같았다.
너 아니면 여자가 없냐? ...라고 단순하게 넘어 갈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이상하게도 난 인영에게 집착을 하고 말았다.
서로 육체관계를 갖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인영에 대한 나의 집착은 사랑을 놓친 안타까움이 아니라 남성들의 속물적인 근성인가?

“이제 돌아가요, 장 선생님.
수오녀석이 징징댈 것 같아요...”

경숙이 그렇게 말하고 벤치에서 일어섰다.
나는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
경숙이 의아하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핑계를 댈게요...결혼을 생각하고 그런 것 아닙니다...그냥...그냥!...사무장님 몸을 보고...
하고 싶었어요...너무나 만지고 싶었고...그래서 키스를 했고...그랬습니다...!”

내 말에 경숙이 얼굴을 붉히고 주변을 살폈다.
가게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우리를 보지 않았고 모두들 주차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경숙의 어깨를 잡고 돌려서 나를 바라보게 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어요...사무장님과 하고 싶습니다...제가 너무 이기적인가요?”

경숙은 얼굴을 붉히고 있었지만 표정은 차분했다.

“...사랑 안 할 자신이 있어요?”

그녀의 말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남녀간의 사랑은 항상, 집착을 동반할 수 밖에는 없었다.
나는 인영에게 그랬고, 남편이 있는 상인에게도 그랬다.
경숙의 말대로 완벽하게 서로를 객체화 시킨 만남을 할 수 있을까?

“...전 할 수 있지만...장 선생은 절대로 할 수 없을 거예요...그때는 또 어떤 핑계를 댈 거죠?”

“... ...”

“두 번째 결혼을 할 때도 ...전 ...사랑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었어요...하지만...현실은 다르더군요...제 집착으로 수오가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장 선생 한 테만 수오가 그런 것이 아니에요...녀석은 젊은 남자만 보면 아빠라고 달려들죠...새 아빠를 좋아했었으니까...전...녀석이 클 때까지 절대로 사랑을 하지 않을 거예요...”

나는 돌아서는 경숙의 손을 붙잡았다.
경숙은 이제 돌아서지 않은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절대로...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당신에게 키스했던 날 ...전 다른 여자를 강간하려 했습니다...술에 취했다는 핑계를 대죠...전...이런 놈입니다...사무장님이나 다른 분들이 생각하는 그런 고상한 사람이 아니라...태어날 때부터 쓰레기였고, 이기적인데다가 짐승 같은 놈입니다...!...”

경숙은 내 말에 돌아서지 않은 채 여전히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쿵쿵 뛰는 내 심장의 소리가 크게 들려왔고, 움직임까지 보이는 것 같았다.
약간 떨리는 손으로 잡고 있던 경숙의 손을 놓자, 그녀가 천천히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상상도 할 수 없는 말을 하고 말았다.
한달도 안 된 사이에 나는 엄청난 일을 겪었고, 또 생각지도 못 할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지금 경숙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경숙을 ?아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차의 문을 열자 경숙이 조수석에 올랐고, 나는 운전석에 올랐다.
차를 몰아 경숙의 아파트 쪽을 향해 달려가는데 그녀는 말이 없었다.
창 밖을 바라보기만 할 뿐 어떤 표정도 없었다.
괜한 말을 한 것인가? 하지만 핑계를 대고 싶었다.
경숙이 어떤 심정일지 모르겠지만 난 너무나 후련했다.
그리고 어쩌면 주인여자에게도 핑계를 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한마디 말도 없었다.
경숙의 아파트까지는 20분이 걸리지 않았는데 마치 두 시간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나는 아파트로 들어가려 했지만 경숙은 비로써 입을 떼며 내려달라는 말을 했다.
그녀가 원하는 곳에 차를 세우자, 경숙은 나를 보지도 않고 차에서 내렸다.
전면으로 경숙의 아파트가 보이기는 했지만 이곳에서 걸어가려면 4거리의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고, 그곳을 건너고도 꽤 걸어야하는 거리였다.
그렇게 터벅터벅 아파트 쪽으로 걸어가는 경숙의 모습을 보니 불안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반응들이 겹쳐서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알 수 없는 경숙의 반응이었다.
괜한 얘기를 꺼낸 것인가?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를 맺고, 또 한 발짝 다가설 때마다 나는 너무나 피곤하고 힘이 들었다.
이렇게 힘이 드는 것을 종석은 너무나 쉽게 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것인지는 정말로 내겐 미스터리였다.

경숙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며 나는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로 인해 경숙의 머리가 복잡해진 것은 미안한 일이었지만, 나는 오히려 속이 후련할 정도로 기분이 차분해졌다.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관계들이 이도 저도 아닌 관계가 되어버리는 상황에서 경숙과 나 사이에 벌어진 일도 그런 과정의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왠지 모르게 심장이 뛰면서 기분이 상승되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난 한번도 핑계를 댄 적이 없었다.
잘 한 것은 잘 한 것이고, 못 한 것은 못 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오직, 내 판단에 의지해서만 살아왔었다.

<너를 사랑하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엄마와 아버지는 나를 떠나면서 저런 핑계를 댔었다.
두 사람이 나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너무나 끔찍한 것이었다.
그리고 더욱 끔찍했던 것은 나로 인해 엄마와 아버지의 사이가 나빠지는 것이었다.
어차피 두 사람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와 엄마의 친자식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나의 친부는 한 가족을 끔찍스럽게 살해한 살인자로 국가에 의해서 죽음을 당한 사람이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친부의 일을 알게 된 나는 더욱 움츠려 들게 됐고, 나 자신에 대해 부정하기 시작했고, 누구도 내게 가깝게 접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그런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림이었지만 이상하게 엄마와 아버지의 싸움은 더욱 치열해져만 갔다.

엄마와 아버지의 싸움이 치열해지는 것이 내가 그림에 미쳐서 공부를 등한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원죄를 받고 태어난 쓰레기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난 가출을 해버렸다.
하지만 가출을 해서 만난 나와 비슷한 애들의 사연은 나보다 더 참혹해 보였다.
세상의 모든 불행은 나에게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공부하라는 잔소리 때문에 가출한 애들은 너무나 귀여웠고, 또 그런 애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친아버지에게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여자애들이나 아버지에게 구타당했던 아이들은 이미 독립적인 기질이 있었기 때문에 가출한 상태에서도 잘 버텼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비행을 저지르면서도 자책감이 없었다.
녀석들은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웠고, 술을 마셨고, 약한 녀석들에게 폭행을 저질렀고, 그리고 꼴리면 언제든 섹스를 했다.

여자애들은 본능적으로 반항했지만 남자애들은 본능적으로 때리고 또 때리다가 여자애들이 기절한 상태에서도 자지를 쑤셔댔다.
내가 그렇게도 끔찍스럽게 생각하는 그런 짐승 같은 짓을 나도 주인여자에게 하려고 했었다.
녀석들을 기절할 정도로 패고 또 팼던 나는 결국, 경찰에 끌려가게 됐고, 주인여자를 강간하려던 나 자신을 죽이려 했었다.

나는 가출을 통해 엄마와 아버지에게 느꼈던 벽 보다 훨씬 큰 벽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갔을 때 엄마가 내 뺨을 때린 것은 엄마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한 것이라고 느꼈고, 앞으로 내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간 다음날부터 나는 다시 범생이의 모습으로 살면서 친자식이 아닌 나를 가슴으로 품어준 아버지와 엄마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사형수의 자식을 올바르게 키우기 위해 애 써 준 것에 대해 고마워해야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왜 두 사람이 내게 원하는 것이 그렇게 극과 극처럼 달랐냐는 것이었다.
엄마의 뜻대로 내가 상위 1프로로 성장해가는 것을 아버지는 왜 부담스러워 했을까? 엄마는 또 내가 왜 아버지를 닮아가는 것을 두려워했을까? 정말로 억울한 것은 이 모든 것이 내가 원했던 일이 아니고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니란 사실이었다.

나는 그때 아버지와 엄마처럼 핑계를 대고 싶었다.
나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핑계를 대면 나 자신이 친부모처럼 하찮고 천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핑계를 대고 후련해하고 있었다.
나의 짐승 같은 행동에 대해 남에게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핑계를 대는 것이 이렇게까지 쉬울 줄은 몰랐고, 또 상쾌함까지 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경숙에게 나의 친부처럼 나도 쓰레기라고 인정을 해버리자 너무나 편해졌고, 이제는 주인여자를 강간하려 했었던 일에 대해서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핑계를 댈 수 있을 것 같았다.

원룸으로 들어와 쓰러지듯 침대에 누우니 한 없이 편해졌다.
전과는 다르게 머릿속이 복잡하지 않았고, 내 몸이 침대 속으로 녹아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다가 깊은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낯선 공간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시각적인 자료를 끊임없이 뇌로 전달하자 겨우, 이 공간이 상인의 아파트 거실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상인의 집에 왔나?]

욕실 문이 열리며 여자가 나왔다.
그런데 그 여자는 상인이 아니었다.
테니스 코치 보연이었다.
어떻게 그녀가 이 아파트에 있는 것인지 알 수 가 없었다.
더군다나 알몸을 한 채로 나오며 나를 보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건...꿈 인가?...]

보연이 내게 안기며 뭔가를 말했지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마치, 소음이 제거된 영상처럼 느껴졌고, 귀가 먹먹할 정도로 고요했다.
그녀가 내게 안겨 알몸을 비벼대자 내 자지가 보연의 다리 사이에 들어가 그녀의 보지 살과 비벼지며 발기하기 시작했다.
옷을 입고 있다고 느꼈는데, 어떻게 된 게 금방 또 내 몸이 알몸이었다.
그리고 꿈속이었지만 촉감도 그렇고 느낌도 너무나 실제와 다름없었다.

내 젖꼭지를 빨아대던 보연이 점점 밑으로 내려가 내 자지를 입에 물고 포르노 속의 여자처럼 익숙한 동작으로 빨기 시작했다.
미칠 것 같은 황홀감이 밀려왔고, 상대가 보연이어서 그런지 흥분감은 더욱 컸다.
지금까지 2년이 넘는 기간동안 보연의 들어난 신체는 얼굴과 손이 전부였다.
심할 정도로 보연은 신체부위를 들어내지 않아서 그녀의 몸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자세하게 그려냈는지 신기했다.

꿈이란 것은 내가 실제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뇌가 꼴리는 대로 조합하는 것으로 알 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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