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소설) 하얀 짬뽕 - 29편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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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소설) 하얀 짬뽕 - 2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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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유연한 진행에 의해 나는 더욱 망가지기 시작했고, 관객들의 웃음소리는 더욱 커져만 갔고 주인여자는 재밌어했다.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어느 순간부터는 완벽하게 즐기고 말았다.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었다.

“너무 재밌었어요.
태복씨도 잘 하던데요? 하하하!~”

연극이 끝이 나 밖으로 나와 차 쪽으로 걸어가면서 주인여자가 행복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다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켰다.

“여보?...”

주인여자의 엉뚱한 말에 약간 놀라 내가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깔깔대고 크게 웃었다.
이 여자 그동안 내가 알던 여자가 아니었다.
어쨌든 나와 주인여자는 연극을 통해 부부가 된 사이였다.
참 엉뚱하면서도 재밌는 일이었다.
핸드폰이 켜지자 문자가 와 있었다.
스팸인가? 아무생각 없이 문자를 확인한 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말았다.
문자의 내용은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런 소식에 한기가 올라왔고 내 몸은 심하게 떨렸다.
후들거리는 손으로 겨우 통화버튼을 눌렀다.
주인여자는 내 반응에 걱정스런 얼굴로 바라볼 뿐 아마말도 하지 않았다.

“태복입니다 고모...”

[넌 뭐하는 놈인데 연락도 없고, 연락도 안 돼!]

고모는 날 싫어했다.
내 출생성분이 좋지 않아서도 그랬고, 동갑내기 고모의 아들보다 내가 뛰어나서 싫어했다.
성격이 단순해서 항상, 말이 먼저 나오는 타입인 고모로 인해 난 내 친부의 일을 알 수 있었다.
고모는 날 싫어했지만 항상, 어린 나를 잡고 별 얘기를 다했었다.
자신의 남편인 고모부 욕은 기본이었고, 아버지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
싫어하는 나를 데리고 그런 넋두리를 해대는 고모가 난 무척이나 불편했었다.
그래서 독립을 한 뒤 당연히 연락 따위는 하지 않고 살았지만 내가 이곳에 내려온 뒤로도 고모는 내게 전화해서 넋두리를 했었다.

[ 하이구!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더니...널 두고 하는 말 아니냐? 어?...넌 아버지가 죽어도 아무렇지도 않냐, 이 배은망덕한 놈아!]

“죄송합니다, 고모...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십년이 넘게 보지 않은 사이였다.
나는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한 번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는데 막상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자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도 모르게 몸이 떨려왔다.

“무슨 일이에요, 태복씨?...”

“... ...”

주인여자는 걱정스런 얼굴로 나를 보다가 내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확인하고는 다시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나를 보기만 할 뿐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집으로 가죠...”

시동을 켠 주인여자가 원룸으로 방향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집에 도착해 내 차를 갖고 아버지에게로 갈 작정이었다.
온통 그 생각뿐이었지만 공포감이 엄습해 왔고 내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주인여자는 한 손으로 운전을 하면서 오른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공포감이 잦아들었다.

원룸에 도착한 나는 집으로 들어가 검은 정장으로 갈아입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내 차 쪽으로 걸어가려는데 주인여자가 막아섰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주인여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를 자신의 차에 태우고 어딘가로 달려갔다.
무슨 일인가 생각해 보니 차의 방향은 고속도로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태복씨가 운전하는 것은 무리에요.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아, 아닙니다.
제가 운전할 수 있어요...전 괜찮습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그렇게 떨고 있으면서!...내 말 들어요, 태복씨.
전 태복씨 아내잖아요?...”

그녀의 말에 난 포기하고 주인여자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주인여자의 말대로 난 몸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이런 식으로 아버지를 보기는 싫었다.
아직은 ...아직은 아버지를 다른 곳으로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10년이 지나서야 왜 이런 감정이 드는 것인지 몰랐지만 억울했다.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도 많았고 듣고 싶은 말도 많았다.
그런데 이젠 아버지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자 미칠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차가 너무나 막혀서 5시간을 넘게 달려서야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새벽 시간이어서 그런지 손님들은 뜸했다.
새엄마와는 딱 한번 본적이 있었지만 나도 그렇고 새엄마도 그렇고 서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많이 울어서 그런지 눈이 부어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이제 8살이 된 아버지의 친아들이 상주 복을 입고 서있었다.
녀석은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영특해 보였고 죽음에 대한 것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의젓하게 상주노릇을 하고 있었다.

나와 주인여자는 함께 올라가 아버지에게 절을 두 번했고, 돌아서서 상주와도 절을 했다.

“죄송합니다...이제야 왔습니다...”

“아, 아니다...왔으니 된 거야...”

새엄마는 내 뒤에 있는 주인여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나와 주인여자는 빈소를 나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차려주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사실, 배가 무척이나 고팠다.
어제 점심으로 선짓국을 먹은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주인여자는 나를 바라보다가 소주를 따서 한잔을 건네주었다.
배가 고팠지만 나는 그녀가 주는 소주를 한 번에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술이 배속으로 들어갔는지 속이 찌릿했다.
나는 다시 소주병을 들어 한 잔을 더 따르며 연속해서 세잔을 마셨다.
주인여자는 그런 내게 뜨거운 국밥을 건넸고 나는 그것도 게걸스럽게 입안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어느 새 국밥 한 그릇이 비워졌고 소주 세병이 내 배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하지만 전혀 취하지가 않았다.

아버지의 빈소를 보고 또 어린 상주를 보면서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버지에겐 뭐였을까? 내 존재는 태어날 때부터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나? 지금 상황처럼 난 그저 아버지에겐 손님일 뿐이었다.
손님으로 왔다가 손님으로 갈 뿐이었다.
아버지와는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다.
새엄마는 내가 오는 것이 부담스러웠는지 연락하지 않았고, 아버지의 주변사람들 모두를 적으로 간주하는 고모는 그것이 못 마땅해서 내게 연락한 모양이었다.
뭐가 뭔지 도무지 혼란스럽고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다.

“밖으로 나갈까요? ...”

주인여자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나는 일어나 그녀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훅 하고 뜨거운 열기가 내 온몸을 감싸고 들어왔고, 그래서 그런지 약간 취기가 올라왔다.
주차장 쪽으로 걸어가는데 샤프한 남자가 우리 앞을 가로막고 섰다.
주인여자가 남자를 보면서 당황했고, 그 남자는 내게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엄마의 비서관이었다.

“인영씨 차에서 기다리세요...곧 갈 겁니다...오래 걸리지 않아요...”

내 말에 주인여자는 자신의 차 쪽으로 걸어갔고, 난 비서관을 따라서 엄마의 차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의 얼굴은 여전히 차가웠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엄마 옆에 앉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추운 기분이 들었다.
분명 빵빵한 에어컨 때문만은 아니었다.

“잘 지내셨어요...?”

“...바보 같은 놈!...”

항상, 느끼는 거지만 엄마는 이런 식으로 사람의 숨통을 조르는데 일각연이 있었다.
아무리 내가 친 아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10년 만에 만나서 꺼낸 첫 마디가 ‘바보 같은 놈’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엄마는 너무했다.

“...죄송합니다...”

“...그 소릴 듣자는 게 아니잖아...!...네가 상주가 되어야지, 왜 그 어린 놈이 상주 노릇을 하고 있는 거냐!”

“...아버지 친 아들입니다...당연한 거잖아요...”

“너도 아들이야! 아직도 네 아버지 호적엔 네가 큰 아들로 되어 있다!...”

아버지는 역시 아버지였다.
천성이 여린 남자가 재수 없게도 나와 연관되면서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남자였다.
어떻게 그런 남자가 엄마와 결혼할 수 있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였다.

“... ...”

“...넌 어떻게 된 애가 자기 밥 그릇 하나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거냐? 저 여우같은 년이 네게 왜 연락도 하지 않은 것인지 이유를 모르겠어?”

“... ...”

유산 때문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까짓 것이 뭐가 대수인가?

“아버지가 부자여서 좋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엄마도 마찬가지구요...제 옆에 있어줘서 고마웠을 뿐입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니!~~ 그 놈의 미술학원 때려치우라니까!”

“...그럴 겁니다...곧 때려 칠 겁니다...하지만 엄마가 바라는 대로 살 지는 않을 겁니다...”

“후우!~ 그만하자...!...너란 애는 정말이지...그게 10년 만에 만난 엄마에게 할 말이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엄마가 하고 있었다.
10년 만에 만나서 한 첫마디가 ‘바보 같은 놈’이었다.
엄마와 만나서 대화를 하다보면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오히려 엄마는 나 때문에 혼란스럽다고 해서 난 답답했다.
원래 맞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나와 엄마가 그런 사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저 여잔 누구냐?”

“...제 마누라요...”

“뭐어!~ 너 정말!~~~”

“걱정 마세요, 엄마.
저 인생 막사는 거 아니니까요...하지만 정말로 전...
정치를 할 생각이 없어요.
미안해요.”

“니가 원하기만 하면 이 나라 전체를 움켜쥘 수 있는데도?...”

“...엄마의 마음도 ...아버지의 마음도 얻지 못한 놈입니다.
그런 놈이 무슨 나라를 움켜쥐겠어요?...
아시잖아요?...”

내가 문을 열고 나가려 하자 엄마가 내 손을 잡았다.

“...그래...아직은 네가 어려서 잘 모르겠지...후우!~ 하지만 이 엄마는 기다린다...22년을 기다렸는데 앞으로 몇 년을 더 못 기다리겠니...”

“... ...”

엄마는 아직도 내게 집착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와의 사이에서도 아이가 없었고, 재혼을 해서도 아이가 없어서 그런 것인가? 분명 엄마는 내 성정으로는 정치판에서 견디지 못할 것을 잘 알면서도 끊임없이 내게 정치인이 되라고 요구했다.
도대체 엄마는 나의 어떤 면을 보고 저런 요구를 하는 것일까?

나는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태복아...이 엄마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라...”

인사를 한 뒤 나는 문을 닫고 주인여자의 차 쪽으로 걸어갔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엄마는 많이 약해져 있었다.
엄마는 지금 여당에서 핵심 인물이었고, 이젠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가 되어 같은 당의 남성 후보들과 일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 엄마가 뭐가 아쉬워서 내게 도움을 청하는 것일까?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꿈꾸고 있는 엄마가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차에 오르니 주인여자는 많이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나도 이렇게 머리가 복잡한데 오죽하겠나 싶었다.

“...이렇게 오래 집을 비워도 괜찮아요?”

“걱정 말아요...남편하고는 통화가 됐으니까...태복씨야 말로 괜찮아요?”

“... ...복잡합니다...아버지의 죽음을 온전히 슬퍼할 수도 없어서 죄송하고...그러네요...”

내 과거에 대해 알고 있는 주인여자는 지금의 상황이 어떤 것인지 짐작하고 있을 것이었다.

“이제 어떡하실 거죠?”

나도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침이면 떠나시는 아버지를 배웅해 드려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새엄마를 위해서 이곳을 떠나야 하는 것인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떤 게 옳은 것인가?

“배웅은 해드려야죠...어떤 식으로든...안 그러면 사는 내내 죄스럽더군요...”

주인여자도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사연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지만 그녀의 말대로 나는 어떤 식으로든 아버지를 배웅해 드려야만 했다.
임종을 지키지 못한 죄스러움이 밀려와 답답했지만 아버지의 친 아들이 나를 대신했을 것이다.
고모나 엄마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겠지 만 아버지에겐 그것이 편했을 것이었다.
나를 보셨다면 그 여린 분이 눈도 제대로 감지 못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

나는 고민을 하다가 천천히 네비게이션에 장소를 입력했고 주인여자는 그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입력이 완료되고 청량한 여자의 목소리가 울리자 주인여자가 내게 묻지도 않고 차를 몰아 달려가기 시작했다.
새벽길이라 길을 막히지 않아 좋았다.
이곳에 올라오면서 길이 너무 막혀서 거의 미치고 팔짝 뛸 뻔 했다.
주인여자는 정적이 불편했는지 라디오를 켰고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 시간에도 잠을 자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만큼의 고민들도 많았다.

장례식장에서 1시간 반 정도가 걸리는 곳으로 그곳엔 아버지의 어머니인 할머니가 묻혀있는 곳이었다.
내 예상이 맞는다면 아버지는 화장을 해달라고 했을 것이었다.
그리고 바다에 뿌려 달라고 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과연 새엄마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버지의 형제들도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새엄마가 더욱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할머니의 산소 근처에 있는 별장에서 밤을 보낸 뒤 아버지를 보내드릴 것이었다.
그들은 절대로 아버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아니...도...도련님!...”

최씨 아저씨가 별장 주변을 정리하다가 나를 보고는 깜짝 놀라서 내 앞으로 뛰어와 인사를 했다.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알면서도 함부로 하지 않고 항상, 이렇게 내게 깍듯하게 구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려선 듬직했던 그런 분이 이제는 살도 많이 빠져있었고 이마와 입 주위엔 깊게 주름이 잡혀있었다.

“아저씨...잘 지내셨죠?...연락도 못 드리고 죄송했습니다...”

“아이구!~ 별 소릴 다하세요!...혹시 몰라서 정리를 했는데...아무래도 도련님이 오시려고 그랬나 봐요 하하하!~~”

“이쪽으로 온다는 연락이 없었나요?...”

최씨 아저씨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뒤에 서있는 주인여자를 보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고, 주인여자도 인사를 했다.

“...잠깐만요 아저씨...안 에 들어갔다가 나올게요...”

나는 인영을 별장 안으로 안내를 하고 함께 들어갔다.
별장 안은 최씨 아저씨의 손길이 닿아서 그런지 빈 집 같지가 않았다.
내 기억으로 아버지는 최씨 아저씨에게 형이라고 불렀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버지가 아버지 집 안에서 유일하게 의지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 방을 쓰시면 되고요...욕실은 저쪽입니다.
욕실 안에 필요한 물건들은 다 있을 거고...
그리고 냉장고는 이쪽에 있어요...”

“걱정 마시고 다녀오세요, 태복씨...내 집처럼 지낼 수 있으니까요.”

주인여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정말로 자기 집처럼 옷을 벗기 시작했다.
낮에 그렇게 서로의 몸을 보고 살을 섞었으면서도 나는 기분이 이상했는데 주인여자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원래 성격이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내가 신경쓸까봐 그런 것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았다.

밖으로 다시 나오니 최씨 아저씨는 팔각정 앞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한 번도 최씨 아저씨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본적이 없었는데 확실히 세월이 흐르긴 흐른 모양이었다.

이제야 취기가 올라와 걷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아저씨 옆으로 다가가 앉자 그가 내게 담배를 권했다.
나는 거절하지 않고 담배를 받아들고 불을 붙여 물었다.
우리 두 사람은 서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길게 연기를 빨아들인 뒤 그것을 하늘로 날려 보냈다.

“...
내일 모두들 이곳으로 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도련님...”

내 예상이 맞았다.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아버지는 죽어서도 자신이 원하던 자유를 얻지 못했다.
손이 귀한 집안에 유일한 아들로 태어나 부모의 뜻에 의해 강요된 삶을 살아야만 했던 불행한 남자...아버지에게 있어서 10년간의 재혼 생활은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할머니에 의해 재혼을 했지만 대신 당신이 하고 싶었던 카센타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집 안의 대를 끊은 죄를 짓지 않아도 되었다.
근 60년의 삶에서 아버지가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자동차를 몰고, 정비하는 일뿐이었다.
아니...나와는 다르게 당신의 혈육을 키우는 재미도 느끼셨을 것이었다.
죄송했지만 내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고모들이랑 새엄마랑 문제가 많죠?”

“...후우!~ 항상 그랬으니까요...이젠 저도 이곳을 떠나야 할 것 같습니다...검사님도 떠나셨고...도련님도 이제 봤으니까요...”

아버지의 직업은 검사에서 변호사로 그리고 카센터 사장으로 변했지만 최씨 아저씨는 항상 검사님이라고 불렀다.
40년이 넘게 있던 곳이었다.
최씨 아저씨에겐 나보다 10살이 많은 두 아들이 있는데 큰 아들은 변호사였고, 작은 아들은 회계사였다.
두 형제의 효심은 이 지역에선 자자해서 그렇게도 모시겠다고 했지만 최씨 아저씨의 고집을 꺾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저씨가 이 집에서 가장 좋아했던 내가 먼저 떠났고 이젠 아버지가 떠났다.
최씨 아저씨의 떠난다는 말이 너무나 아프게 다가왔다.

“...후우!~ 어디로 가실 거죠?”

“...그냥 발 닿는 곳으로 여행을 다닐 참입니다...검사님도 이젠 말리지 않겠죠...”

아저씨는 아무래도 새벽에 떠날 모양이었다.
하긴 ...점점 허물어져만 가는 집구석을 바라보는 것도 고역일 테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최씨 아저씨는 담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인사를 하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이 불안하고 무서웠다.
불시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지옥 같은 이 집에서 어린 내가 기댔던 유일한 내편이 떠나고 있었다.

나 자신이 누군가를 떠나긴 쉬웠는데 누군가가 나를 떠난다고 하니 마음이 아팠다.
아버지도 엄마도 그랬을 것이었다.
그리고 최씨 아저씨도 내가 떠났을 때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오늘도 느끼는 것이지만 나란 놈은 그렇게 항상 이기적인 놈이었다.
내가 받는 상처만 크고 남들이 나를 통해서 받고 있는 상처엔 외면했다.
상처받기 싫어서 떠나려고만 했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내가 쓰레기일 수밖에 없는 것은 살인자의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이런 내 성격 때문이란 것을 최씨 아저씨는 그렇게 알려주고 마지막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아저씨!!~~”

최씨 아저씨가 내 고함소리에 돌아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여행하시다가 친구가 필요하시면 %%시에 오셔서 전화주세요!~~ 그땐요!~~ 그땐 말이에요, 아저씨! 그땐...제 이름을 불러주세요! 도련님 말고요! 태복이요! 태복이! 제 이름 아시죠?!~~”

아저씨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다가 밑으로 내려갔다.
이제 최씨 아저씨의 모습은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내 심장은 이상하리만치 뛰고 있었다.

별장 안으로 들어가자 주인여자는 샤워를 마치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엔 피곤함이 가득 묻어 있어서 너무나 미안했다.

“샤워하세요, 태복씨...조금 있다가 아버지를 보내드려야죠.”

그녀의 말에 나도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이 몸에 닿자 술기운이 확 올라왔고 졸음이 미칠 것처럼 밀려왔다.
간단하게 샤워를 끝내고 나는 주인여자와 함께 침대에 올라가 누웠다.
나도 모르게 주인여자의 품으로 안겼고 그녀는 나보다 훨씬 작았지만 품안은 너무나 아늑했다.
이런 아늑한 느낌은 어릴 적 장롱 속에 들어갔을 때에나 느낄 수 있는 그런 것이었지만 그 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었다.
물컹한 주인여자의 몸에 내 몸이 반응했지만 나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주인여자가 깨워서 일어나 보니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몇 시간 자지 못했지만 10시간을 잔 것처럼 몸이 편했다.
이렇게 편하게 자 본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몸이 좋았다.
주인여자는 화장을 정성스럽게 하면서 나 보고 씻으라고 했다.
모든 것이 엉뚱한 상황이었지만 나와 주인여자는 너무나 태연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도 그랬지만 주인여자도 대단하긴 마찬가지였다.

모든 준비를 끝낸 뒤 나는 주인여자와 함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산소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아버지의 빈소를 준비하는 일꾼들은 10시가 넘어서야 올 것이었고, 아버지를 태운 차는 그 후에 올 것이었다.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예를 다한 뒤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주인여자와 함께 아버지를 기다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산소 위에는 나와 최씨 아저씨만 아는 아늑한 장소가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그 비밀장소는 아직도 그대로 있었고 최씨 아저씨의 손길이 있었는지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비를 걱정하지 않고 누워서 잠을 잘 수 있는 낮은 원두막 같은 것이 있었고 조그만 그네도 그대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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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숙의 엄마가 이 건물에서 서점을 하는 것을 난 3년 만에 알고 말았다. 유정의 말대로 난 정말 주변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이었다. 지난 3년간의 기억을 더듬어 봐도 내 머릿속엔 학원에 관계된 일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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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룡왕(火龍王)] 와룡강 - 3편 (3/36)
파츠츠츠! 천장을 솟구쳐 오르는 십자검형강! 콰우우우우! 그것은 맹렬하게 휘돌며 대기를 산산조각으로 으깨며 진격해 들고 있었다. 그 뒤를 따르는 무적의 일천검호군(一千劒豪軍)! 파츠츠츠! 위이이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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