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장.
성냥개피 유희 .
* * * *
밤이 이슥해진 시각, 목욕을 끝낸 나는 화원 연못가로 향했다.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이 한결 상쾌하게 느껴지며 온 몸으로 활력이 샘솟는 것 같았다.
어둠이 덮힌 화원의 운치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훗! 오늘밤은 설향 누나를 발가벗겨서..
발라당...흐흐~"
시덥쟎은 야릇한 상상을 머릿속으로 마음껏 떠올리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나는 움찔했다.
" 으흑! 저, 정말 죽이는데....!"
연못가에는 의자들이 여기저기 놓여있고 대나무를 통째 엮어 바닥으로 만든
평상이 한켠에 설치되어 있다.
설향누나가 혼자 무얼하면서 나를 기다리나 살금살금 다가가던 나는,
어두운 나무그늘에 의지해 몸을 감추어야 했다.
평상위에는 소향주와 쟁반에 받쳐진 안주 접시,
그리고 설향누나가 아닌 또 다른 한 사람의 여자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낮에 행사를 다녀오면서 쌓였던 스트레스라도 풀려는지,
은은하게 흩뿌려지는 편월의 은가루아래, 술잔을 한 손에 들고있는 이화 누님.
흑단같은 긴머리를 치렁치렁 어깨너머로 흘러내리게 늘어뜨린 누님의 자태.
가느다랗게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턱선 밑에서 찰랑거리는 머릿결이 달빛에 반짝반짝 빛나고,
길고 곧게 뻗은 다리와 말라 보이지 않은 적당한 두께의 팔과 완벽한 곡선을 그리는 허리,
저고리를 비집고 솟아 나올 듯 팽팽하게 부푼 젖가슴
그리고 하얗게 빛나는 목덜미.
화원 구퉁이에서 비쳐지는 불빛을 등지고 서 있는 누님.
야리야리한 한겹 천을 사이에 두고 몸의 굴곡이 아스라히 내비치는 그 모습은 정말이지
월궁의 항아처럼 아름답기 그지없는 한폭의 그림이었다.
누님은 얇은 치마아래로 속곳도 입지않은 듯 몸매를 여실히 드러내는 실루엣이
내 두 눈에 확연하게 비쳐져왔다.
사춘기 소년도 아니고 내가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순애에게만 집중해야 할텐데, 나는 나도 모르게 가슴이 설레어옴을 느꼈다.
진짜 내 피속에 둥이, 바람둥이 유전자가 섞여 흐르는 건지...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세상의 모든 대상과 교감하고픈 욕심이 샘솟는다.
그것은 상상만으로도 싱그럽고 활력넘치는 일이다.
그러나 상대는 나를 친동생처럼 아껴 보살펴주었던 이화누님이 아닌가.
겉으로는 늘 초가을 무서리같은 쌀쌀한 한기를 내게 풀풀 풍기지만,
내면의 숨겨진 마음은 은혜 이모보다도 더 부드럽게 따뜻한 정을 베푸는 그녀에게,
누님..그 이상의 묘한 그림을 연상하다니...
가볍게 몸을 움직일 때마다 치마아래로 굼실거리는 누님의 둔부,
거기에 내 시선은 꽂혀 한참을 떨어지지를 않았다.
도저히 서른 중반의 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만큼 유혹적인 누님의 모습은,
내 마음속 한 구석에 뭔가 뜨거운 흔적을 각인시키는 것 같았다.
길게 숨을 불어낸 후에 천천히 몸을 드러내었다.
가까이 다가가는 내 발걸음은 잔잔한 수면 위를 걷듯 가벼웠고,
두근거리는 가슴속은 마치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처럼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었다.
"마음에 여유를 가지자! "
옷감천이 얇은 개량 한복으로 몸을 감싼 누님은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나자,
얼른 고개를 돌려 바라다본다.
나는 다시 한번 훅! 숨을 들이마셨다.
선명하게 그려진 붉은 입술은 너무나 도발적이라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게했다.
[.....누구? 일영이구나....!!]
[어, 이제와?]
[어쩐 일이우? 피곤해서 쉰대며...]
[후후...훼방놀려구 나왔지...니들 둘이 연애질 하는거]
깎은 무처럼 하얀 이마, 바람결에 살랑 흩날리는 머리카락,
그것을 하얗고 길다란 손가락으로 우아하게 걷어 넘긴 누님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설향 누나는 그 뒤에서 주먹을 쥐고 누님 뒤통수를 때리는 시늉을 해 보이고...
[한잔 할테야?]
[주쇼, 목욕했더니 목이 컬컬하네...]
술병을 쥐어잡고 기울이는 누님의 작은 움직임.
분명하다.
고쟁이는 물론 속옷도 입지않은 게 틀림없어 보였다.
나는 나무의자에 털썩 주저앉을 때까지 누님의 몸 어딘가에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고,
그제사 누님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차린 듯 어색한 표정을 짓는다.
자세를 고쳐앉는 설향 누나의 젖가슴에 잔을 내민 내 팔꿈치가 슬쩍 닿았다.
여인들이 상체를 수그릴 때 살짝 드러나는 가슴골의 그 묘한 곡선도 눈을 자극하지만,
이렇게 은연중에 스치는 촉감도 기분좋은 느낌이다.
"이 여자들이 사전에 작당하고 모의를 했나....
"
내가 목욕하는 사이, 옷을 또 갈아입은 누나는,
바닷물에서 마악 건져낸 듯한 옥빛 원피스를 시원하게 입고 있었고.
둔하지 않은 내 느낌으로 보건데 설향 누나는 분명 젖가리개를 입지않은 것같았다.
남자와 여자는 부딪치면 전기가 통하는 모양이다.
순애의 목욕장면, 누님의 아스라한 몸태, 그리고 설향 누나의 뭉클한 젖가슴.
연이은 시각, 촉각적인 자극에 야릇한 흥분감이 아랫도리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진짜, 우리 연애질하는 거 방해하려구 나왔수?]
[사람 피곤하게 두 번씩 말 시키니..잔이나 비우셔...]
[아까는 금방 쓰러질 것처럼 피곤하다며...왜? 쉬지않구...]
[넘 피곤해도 잠이 잘 오질않쟎아,
훼방질은 농담이구 소향주 한병 들고 후원으로 들어왔더니 마침 설향이 있었네...
근데...정말 요즘 둘이서 연애질 하는거야? ]
[언닌...내가 언제 거짓말하는 것 봤수? 그날두..
봤으면서..]
무슨 자랑이라고 설향 누나는 고주알미주알 입술을 나불거리며 바람을 잡는다.
나를 아주 빼도 박도 못하게 하려구.
[이이, 나쁜, 둥이..너...설향이랑 그래놓고 뭐? 순애데리고 나가 살겠다고 말했다며?]
[누, 누가...누가 누굴 데리고...나가, 그냥...]
[내가 모를 줄 알고, 요즘 부쩍 뻔질나게 자미정 드나들 때부터 알아봤어]
이화누님의 비아냥에, 기다렸다는 듯 사정없이 설향누나의 손톱이 세워져왔다.
[그래놓고 뭐? 이 바람둥이 자식...]
[아야! 아후~ 제발 꼬집지 좀 마.. ]
하여튼 여자는 둘 이상 모이면 뭐가 깨져도 깨지는 모양이다.
이모에게 지나가는 말로 순애랑 살고싶다고 한마디 했는데,
그 말을 왜곡해 뭐? 순애를 데리고 나가 산다구...
이런, 이런 완전 뽀록을 다 내버리네
순식간에 설향누나의 양쪽 눈썹이 겁나게 팔자를 그리며 치켜져 올라간다.
나는 설향누나의 손톱질에 살점이 다 뜯겨져 나갈 것같아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그 얘긴 그만해, 괜히 화원의 좋은 분위기 다 망쳐, 근데...누님.
이모는 어디갔나봐]
[으응, 월선이 아까 집에 가면서 그러네, 큰언닌...오후참에 성포 내려갔다구...]
[성포(腥浦)? 순애...고향이 성포랬는데 이모가 거긴 왜?]
[몰라, 나두...뭔 볼 일이 있나보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모르는 아니, 내게 숨기는 무언가 비밀을,
이모는 감추고 있는 모양이다.
다 큰 순애를 데려다 수양딸을 삼는다는 그것 자체가 모순이다.
그리고 순애가 자미정에서 생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은혜 이모는 내게 더 많은 뭔가를
자꾸만 숨기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엇다.
그 당시 나는 베일에 가려진 그 비밀이 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누님은 몇 번이나 이야기를 할까 말까 망설이더니,
그냥 빈 술병과 쟁반을 챙겨들고는 몸을 일으켰다.
[에구, 늙은이는 그만 비켜야겠다...향이 년 눈꼴시어 더는 못봐주겠구..]
이화 누님은 이내 연못가를 벗어나 화원에서 멀어져갔다.
드러낼 곳을 실루엣으로 노출시킨 하얀 갑사 치마저고리가 가볍게 휘날리는 그 모습은,
언젠가 내가 명명해 별명으로 지어주었던 하얀 배꽃을 연상케 했다.
그렇게 나는 누님의 그 황홀한 모습에 잠시 넋을 잃고 있는 중이다.
설향누나의 꼬집힘에 퍼뜩 정신을 차렸지만...
[아얏! ]
[아예, 넋이 빠졌어요, 빠졌어...순애도 모자라 이화언니도...넘보다니..
아무리 날건달 둥이라지만 해도해도 너무하는 거 아니니?]
[이씨, 꼬집지 말라니깐...그리고 내가 언제...누님을 넘봐?
누님이 뭐...담장 너머 구경꺼리야? 넘보게...
치이, 그게 다 설향 누나가 콧대를 높이니까 그런거라구..
몰라? 마늘쪽 같던 누나 콧대가 요따만하게 높아진 거...]
나는, 정말이지 마늘쪽처럼 딱 알맞게 솟아있는 누나 코를 꼭 집었다.
[풉! 뭐라구...이게?]
티격태격, 마치 사랑싸움을 할 때처럼 자연스러운 스킨쉽,
설향 누나는 어느 순간 내 품안으로 안겨들었다.
순애의 목욕 장면을 훔쳐보고, 그리고 이화누님의 아삼삼한 그림을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그리고 있던 나의 아랫도리는 욕망을 배출할 무언가를 찾고있었다.
소향주의 향취를 살그머니 누나 입술에 옮겨실었다.
[어떻게 된거야? 이화 누님이 왜 후원에 들어왔어?]
[하~ 혼자 기분이 꿀꿀했나보지 뭐. ]
[혹시 정(석채)검사 그 작자 때문에 그런거 아냐?
[나두 자세히는 모르는데 요즘 좀 우울해 보이기는 했어,
난 그냥 가게 영업이 시원치않으니 그런가 보다 했는데, 니말 듣고보니 그것도 또 그러네..]
정석채는 항도지검에 검사보로 있는 누님의 연하남 애인이다.
이화 누님이 자미정에 몸을 담고 기생이 된 것도 그 남자의 뒷바라지 때문이였다는,
소문아닌 소문도 들리긴 했지만, 믿을 수는 없다.
요즘 세상에 무슨 홍도야 우지마라를 뒤집어 놓은 신파극 순애보는 아닐테지만,
남녀 상열지사의 세세한 내막은 경험이 없는 나로써는 이해할 수없는 일이다.
아무튼 결론은 이화 누님이 기생질하면서 온갖 뒷바라지를 다 해 놓았는데,
최근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닌가 미루어 짐작만 할 뿐이다.
그 문제의 핵심에는 누님의 기생이란 레떼루도 원인으로 작용하겠지만,
궁극적으로 내가 판단할 때는 아마 그에게 새 여자가 생긴 것 같았다.
[누나...나 잠깐...누님방에 갔다오면 안될까?]
[...왜? 이 밤중에 뭣하러...? ]
[그냥, 누님 뒷모습이 왠지 애련해보여서....낮에 행사뛰고 했으니 잠깐 안마라도 해줄까봐]
[어쭈, 그럴 땐 착하네...하지만 안돼! ]
[왜에...? 내가 뭔 딴짓거리라도 할까봐...그런거야? ]
[아니, 설마 언니한테 니가 뭔 짓할라구...그냥..내 방으로 가자.
보여줄 게 있어]
[뭔데? 나중에 보면 안돼?]
내 품안에서 슬그머니 몸을 일으킨 누나는, 무의식적인 척 내 아랫도리를 툭 친다.
그게 무슨 사인인지 내가 알턱이 있나...
내 거시기가 필요하다는 신호인지,
아니면 내 거시기를 귀여워해 주겠다는 뜻인지 분간이 되지않았다.
도대체 뭘 보여주겠다는 것인지 모르지만, 이제 곧 알게될 테니까 조급해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화원을 벗어나는 그 순간,
내가 간과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은혜 이모가 성포에 갔다는 이화누님의 말이었다.
순애, 순애가 혼자 있을텐데...그 기막힌 절호의 챤스를.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내가 그때 그 기회를 놓친 이유가,
아마도 설향 누나의 여시(여우)짓 때문이었지싶다.
설향 누나가 꼬리 서너 개쯤 달린 하얀 여시라면 나는 고작해야 새끼 늑대에 불과했으니까.
[치이, 술 취해서는 잘만 껴안더구만.
나 좀 안고가면 안돼?]
평상에 엉뎅이를 눌러붙인 채 누나는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옹알이를 칭얼거린다.
[무슨, 댓 살먹은 어린아이도 아니구...자아, 안겨! ]
솔직히 정식으로 설향 누나방에 들어가는 건 처음이다.
예전에는 가끔 이화 누님방에서 놀다 잠이 들곤 했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는 말이다.
구조는 내가 사용하는 방과 비슷하다.
다만 지분냄새가 물씬 풍겨온다는 것과 여자에게 꼭 필요한 경대와 반합 자개장 등
가구집기가 틀리다는 것 빼고는.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