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 로드의 최후
“바로 이곳인가?”
여기가 바로 그 악마의 소굴입니다.”
사람들은 크게 두 무리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한 무리는 백색로브에 지팡이를 가지고 있어 마법사임을 알 수 있었다.
말을 타고 있는 자들은 은빛갑옷을 입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기사로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자들은 모두 하얀 사제복을 입고 있었다.
또한 기사들의 갑옷에 모두 커다란 십자가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성기사 임을 알 수 있었다.
심지어 주신의 신전에까지 어김없이 신탁이 떨어졌다.
놀랍게도 신탁의 내용은 모두 정확하게 일치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의논 끝에 신탁에서 지칭하는 자가 바로 뱀파이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마족이나 다름없는 뱀파이어가 신탁의 주체라는 것을 이들은 인정할 수 없었다.
결국 이들은 신탁을 왜곡했다.
신의 이름으로 사악한 무리를 말살하라!>
그러나 신전은 확실한 결말을 원했고 그래서 사상 처음으로 일곱 신전과 7대 마탑의 동맹이 이루어졌다.
동맹의 목적은 대륙에 있는 모든 뱀파이어의 말살.
5년간의 길고 지루한 전쟁 ……, 사람들은 그 싸움을 성마대전이라 칭했다.
그리고 그 싸움의 승자는 신전과 마탑의 동맹군이었다.
결국 뱀파이어의 수뇌인 뱀파어어 로드의 소재지가 밝혀진 것이다.
마탑 쪽의 대표자이자 대륙에서 유일한 8서클 마스터인 클로얀은 다소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아무리 뱀파이어 로드라고 해도 이 많은 인원을 당해낼 수 없겠지.’
“드디어 이 위대한 성전의 마지막 싸움이 도래했군요.”
그래도 다름 아닌 로드의 성이니 불화를 일으키는 것은 좋지 않다.
어쨌든 그의 대꾸에 성기사가 크게 기꺼워하며 뒤를 보고 외쳤다.
“드디어 우리는 이곳에 왔다.
저곳에 이 성전의 원흉, 뱀파이어 로드가 있다.
신의 이름으로 대륙을 암흑에서 구해내자!”
“와아아!”
“웃기는군.
잘난 신의 꼭두각시들 …….”
그걸 본 클로얀이 나직이 침음성을 발했다.
“으음, 대낮에 이렇게 당당히 나타나다니 ……, 설마 데이 워커였나? 역시 뱀파이어 로드 …….”
그런 우리를 굳이 찾아 무차별 학살한 것은 너희가 먼저였다!”
“너희 뱀파이어는 존재할 가치조차 없는 종족이다! 그것이 주신의 뜻이다!”
“헛소리! 그렇다면 애당초 왜 우리가 생겨났단 말이냐? 우리도 분명 최소한의 살아갈 권리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대낮이었다.
평소보다 그의 마력이 휠씬 빨리 소모되었다.
게다가 종속들을 부를 수도 없었다.
게다가 그들 중 절반은 그와 상극인 신성력을 쓰고 있었다.
그는 광소했다.
그리고 화염주문에 의해 그의 전신이 순식간에 재로 변했다.
정사대전, 그리고 오백 년 후 …….
백도는 하나의 세력을 중심으로 굳게 단결되어 있었다.
무황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가 주축이 되어 만든 백도대연맹.
이 거대한 세력이 형성된 것은 바로 하나의 혈사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사파에 한 명의 천재가 나타났다.
솔직히 그의 출신문파를 아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야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다.
게다가 그는 중원인도 아니었다.
소위 말하는 색목인이었던 것이다.
손에서 불덩어리를 만들어내거나 번개를 내뿜기도 하고 극히 일부분이지만 지진을 일으키거나 심지어 눈보라를 일으켰다.
처음에 그는 중원인들과 어떻하든지 친하게 지내려고 했다.
사파인들은 그런 그의 진심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것 같았으나 오히려 백도인들은 끝내 그를 외면했다.
흑도의 후기지수 중 상당한 기재로 평가받던 마검살영 종리추라는 자가 화산파 제자에게 죽는 사건이 벌어졌다.
화산파에서는 종리추가 먼저 시비를 걸었으며 게다가 암수까지 썼기에 부득이 했다고 소문을 냈다.
게다가 종리추라는 자는 무공은 제법 뛰어났으나 그다지 이렇다 할 배경도 없었기에 사건은 이대로 끝나는 것 같았다.
일은 백리현(바로 그 화산파 제자 이름)이 거리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는데 그가 홧김에 그 소매치기를 죽이려는 것을 보고 우연히 근처를 지나가던 종리추가 구해줄려다가 일이 켜져 결국 백리현의 손에 그가 죽게 된 것이다.
게다가 암수를 쓴 것은 바로 백리현이었다.
천행으로 그 소매치기는 죽지 않았다.
백리현은 그 아이를 살인멸구하려 했으나 용케 한 달 동안 죽지 않고 도망쳐 다닌 것을 그 색목인이 먼저 찾은 것이다.
사실 종리추는 바로 그의 의제였던 것이다.
그는 그 길로 화산으로 달려가 화산파를 뒤집어 놓았다.
어처구니 없게도 당당한 구파일방 중 하나인 화산파가 단 한 사람을 막지 못한 것이다.
이 일로 강호는 발칵 뒤집혔다.
화산파를 제외한 팔파일방은 즉각 그를 무림공적으로 선언했으나 그는 오히려 백리현의 비리를 모두 폭로하며 자신의 복수가 명분있음을 주장했다.
백도측이 보낸 몇 번의 척살대를 그가 모두 물리치자 자연스럽게 그의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어느 새 그는 흑도대종사가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환마신군이라고 불렀다.
이에 팔파일방은 무림맹을 결성, 환영문에 전쟁을 선포했다.
이로써 무림 전체를 피로 물들인 정사대전이 발발했다.
하늘에서 불비가 떨어지는가 하면 멀쩡한 땅에서 갑자기 화산이 터지고 한여름에 눈보라가 휘몰아쳤다.
무림맹은 전략을 바뀌어 정면대결을 피하고 먼저 환영문도들부터 치려고 했으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아침에는 낙양에 나타났다가 저녁에는 소주에 모습을 보이는 식이었다.
이러니 오히려 그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 못 하고 갈팡질팡하는 형국이었다.
어느새 무림맹과 환영문이 천하를 양분하게 되었다.
그 사이 환영문의 세력은 엄청나게 성장해 있던 것이다.
그 무렵 갑자기 환마신군이 실종되었다.
심지어 환영문의 고위층조차 그의 행방을 몰랐다.
그와 거의 동시에, 백도의 5명의 절세기재가 나타났다.
검 - 백룡검 북리황.
도 - 묵린패도 남궁천.
권 - 철혈신권 서문지헌.
암기 - 천수나한 동방백.
팔파일방은 처음에는 적의 역공작이 아닌가 의심했으나 개방의 정보 등 갖가지 확증들이 뒤이어 나타나자 점차 그들을 믿기 시작했다.
그 뒤, 그들 오인을 선봉으로 한 무림맹의 대대적인 역습이 시작되었고 환영문은 그야말로 사분오열,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그러나 그만 환영문의 소문주, 환마신군의 수제자로 알려진 엽상이라는 자를 놓치고 말았다.
무림맹의 수뇌들은 의논 끝에 훗날을 대비한 일종의 연맹체를 유지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무황천이 탄생했다.
비록 승리했다고는 하나 오랜 정사대전으로 팔파일방은 모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고 그들이 다시 예전의 성세를 회복하는 데에는 수백년이 걸렸다.
역설적으로 비록 환마신군에 의해 상당한 손실을 입은 화산파였으나 봉문한 덕분에 전쟁에서 비켜간 그들은 회복이 빨랐다.
그러나 비록 같은 백도라고는 하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사이에는 미묘한 알력이 존재했다.
구파일방 쪽은 자신들이 침체된 사이 약삭빠르게 세를 키웠다고 생각했고 세가 쪽은 자신들의 조사들이 무림을 구하는데 일조했는데 은혜를 잊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식으로 정사대전이 벌어진 뒤 오백 년이 흐르고 사람들은 점차 환영문과 환마신군을 잊어가고 있었다.
탄생, 그러나 ……
당금의 강호는 무황천의 영도 아래 백도천하, 그야말로 태평성대를 이루고 있었고, 그로 인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역시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현재 제갈세가의 가주는 제갈현, 당금 30세로 천기수사라는 별호로 알려져 있었는데, 다분히 학자풍의 인물이었다.
마을에는 은근히 제갈가주가 아내에게 쥐여 사는 공처가라는 소문이 떠돌았다.
문제는 두 사람 사이에 딸만 둘 일뿐 아직 아들이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대를 끊는 한이 있어도 아내를 배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전대 가주이자 그의 아버지인 제갈성휘와도 그 일로 대판 싸웠으며 그 자리에서 제갈현을 죽일려고 하는 것을 대장로가 필사적으로 만류하여 겨우 넘어간 일이 있었다.
꿈 속에서 자신은 남편과 함께 밤하늘의 별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한참 감상에 빠져있는데 돌연 이변이 일어났다.
하늘 한복판 어디선가 갑자기 별들이 하나씩 사라졌다.
그녀가 유심히 보니 먹구름이 별들을 가리며 점점 커지고 있었다.
먹구름은 은연중에 핏빛이 뒤섞여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덩치가 커지면서 그것에서 심상치 않은 마기가 느껴졌다.
그럼에도 그녀는 어떤 일인지 그 구름에서 묘한 친밀감을 느꼈다.
그러더니 갑자기 빠른 속도로 중심을 향해 압축되었다.
대략 사람 몸통 정도로 작아지더니 갑자기 지상으로 내려왔다.
구름이 자신을 향해서 오는데도 어쩐 일인지 그녀는 별로 두렵지 않았고 그래서 피하지 않았다.
구름은 곧바로 그녀의 몸으로 스며들었고 그 순간 그녀는 잠에서 깨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남궁혜는 태기를 느꼈고 부부는 이번에는 아들이기를 기원했다.
그리고 산달이 다 되어 출산일이 눈 앞에 다가왔다.
“아아악!”
그는 마당을 서성이며 애써 마음을 달랬다.
문득 하늘을 보니 어느 새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어딘가 범상치 않은 기도를 풍기는 그의 두 눈에는 현기가 가득했다.
그러고 보니 아가가 오늘 몸을 푼다고 …….
저것은?”
밤하늘에 갑자기 두 개의 별이 유독 광채를 내는가 싶더니 돌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지남철에 끌리듯이 서로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한 것이다.
두 별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자 그도 다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 또 다른 이변이 일어났다.
부딪치기 직전 갑자기 두 별이 사라진 것이다.
제갈성휘의 두 눈이 커졌다.
그의 나이 70이 넘었지만 오늘밤처럼 기이한 일을 연속으로 겪는 것은 처음이었다.
두 별이 먹구름에 가린 것이다.
헌데 어째서 별이 품고 있던 기운까지 가려진 것인가? 이런 일이 …….’
최소한 그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는 그의 안색이 다시 굳어졌다.
그곳은 ……, 바로 자신의 세가였다!
혹시 태어난 손자에게 무슨 일이 …….”
그는 지금 전력을 다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직 보지도 않았지만 그는 태어난 아이가 사내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또한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으나 밤하늘의 괴변이 그 아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었다.
차라리 노부의 착각이기를 …….’
“아버님?”
“예, 어떻게 알고 벌써 오셨습니까?”
혹시 사내더냐?”
“예, 산모가 건강한 아들이라고 …….”
아이를 봐야겠다.”
의문을 담은 눈길을 보냈으나 부친은 외면하며 잠자코 사랑채로 향했다.
안에는 핏기를 잃은 채 온통 땀범벅이 되어 누워있던 아내가 미소를 띄고 포대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버님, 상공 …….”
“여보, 정말 고생 많았소.”
당신을 꼭 닮은 사내아이예요.”
아이가 입을 오물거리더니 그를 보고 방긋 웃었다.
그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던 그의 미소가 커졌다.
“허허허, 그 놈 장차 크면 여자들이 줄을 서겠군.
사내놈의 미소가 이런 매력이라니 …….”
노가주는 먼저 아이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아이의 몸 구석구석을 짚었다.
마지막으로 아이의 왼손목을 잠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도화살에 역마살은 알겠는데 마지막 상은 …….
근골은 평범하고 혈맥도 보통 …….
특별한 이상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 극음지기는 뭐지?’
사람은 누구나 음양이기를 가지고 있으나 단지 성별에 따라 그 차이가 있을 뿐, 즉 사내는 양기가 보다 강하고 여인은 음기가 더 강한 것이 일반적이다.
묘하게도 사내이면서 양기보다 음기가 대략 한 배 반 정도 강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던 것이다.
오늘따라 상식에 어긋난 괴변만 연속해서 보는 제갈성휘였다.
아무래도 백가 늙은이를 한 번 만나봐야 하나?’
제갈성휘는 짐짓 좋은 말로 그들을 안심시키고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여전히 두 별은 보이지 않았다.
그걸 본 그의 입에서 나직한 한숨이 나왔다.
제갈세가의 소공자
강호는 여전히 무황천의 통제 아래 평화로운 백도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고 오대세가는 여전히 정파의 두 기둥 중 하나로 위세를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대세가 중 제갈세가 역시 여전했다.
확실히 그는 대단한 기재, 아니 천재였다.
그의 나이 네 살 때 이미 사서삼경을 모두 독파했으며 칠 세 때는 이미 세가 내에 더 이상 그가 읽을 서책이 없었다.
그리하여 십 세 때는 시서화는 물론이요, 진법과 기관, 심지어 의술까지 완벽하게 익힌 것이다.
아랫사람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윗사람에게 예의바르며 겸허한 마음까지 가졌다.
게다가 외모 역시 모친인 남궁혜를 닮아 빼어나니 그야말로 완벽한 남자였다.
그는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몸이었던 것이다.
삼 년 전, 그의 나이 십 이 세 가 되던 해에 그는 처음으로 가문의 무공과 접할 기회를 얻었다.
처음 운기진식을 시도할 찰라, 급작스레 찾아온 주화입마로 사경에 놓이게 됐다.
천행으로 마침 세가에 와 있던 성수신의 백한천의 치료로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됐다.
노가주인 제갈성휘와 그는 절친한 지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제갈지민을 철저히 절망시키는 말이었다.
무공만 익히지 않는다면 천수를 누리겠지만, 만약 다시 무리하게 무공을 익히려 한다면 그때는 노부도 어쩔 수 없네.’
그래도 자식을 포기할 수 없었던 제갈가주는 세가의 힘을 동원해 백방으로 극양지물을 찾는 중이었다.
둥근 얼굴, 번듯한 이마에 다소 가는 눈썹이 묘하게 중성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다소 피부색이 창백한 것이 마치 환자 같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매력을 느끼게 만드는 이 소년이 바로 제갈세가의 소공자 제갈지민이다.
이렇다 할 장식품도 없이 단지 한 쪽에 놓여있는 책장에 서책들이 가득 꽂혀 있는 모습이 마치 학자의 방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어쨌든 제갈지민은 한창 독서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등을 돌리고 있어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이어서 청색 옷을 입은 소녀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전속하녀인 취월이었다.
차를 가지고 들어온 그녀는 잠시 선 채로 그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어느 새 그녀의 두 눈은 몽롱하게 풀려있었다.
누군가 그녀의 혈도를 뒤에서 제압했다.
그녀는 순식간에 아혈과 마혈이 제압당해 온 몸이 뻣뻣이 굳어졌다.
황홀한 감정이 사라지고 순식간에 공포에 사로잡혔다.
뒤이어 그녀에게 낯익은 음성이 전음으로 들려왔다.
아혈은 한 식경 뒤에 자연히 풀릴 꺼야.
이건 벌이야.’
그리고 어느 새 다시 몸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뒤에 서 있던 사람에게 공손히 예를 올린 뒤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사실 그녀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뒤끝이 없다는 것은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는 희미하게 웃음이 서려있었다.
제갈지민보다 두 세 살 정도 위로 보이는데 어딘가 모르게 그를 닮은 얼굴이었다.
머리를 양 쪽으로 갈라 묶은 그녀의 두 눈에는 장난기가 반짝였다.
그녀는 발끝을 들고 살금살금 소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두 손을 천천히 들어올리는 바로 그 순간, 소년이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어? 작은 누님!”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며 한 손을 엉덩이로 가져가 문댔다.
“아파라 …….
이 녀석! 누나에게 무슨 짓이야!”
작은 누님.”
그럼에도 오히려 그녀는 동생에게 화를 냈다.
분명 억지지만 그는 순순히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많이 아픕니까? 제가 좀 …….”
그러면서 그가 가까이 오는 것을 만류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은 실로 복잡했다.
하, 하지만 …….’
첫째가 제갈유경, 올해로 이십 세이고 여기 있는 이 소녀가 바로 올해로 십 칠세인 둘째 제갈소소이다.
평소 차분하게 이지적인 첫째와는 달리 그녀는 세가에서 소문난 여장부였다.
이는 다분히 어머니인 남궁혜의 영향이 컸다.
세가 내에서도 그런 그녀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단 셋 뿐이었다.
첫째는 바로 그녀의 어머니 남궁혜였고 둘째는 눈 앞에 있는 동생 제갈지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인물은 …….
“너 또 민아에게 억지를 쓰고 있었구나.”
제갈지민은 빙긋 미소를 짓더니 일어나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딱딱하게 대하지 말거라.
우린 가족이잖니?”
물론 당연히 그와 그녀는 눈이 마주쳤고 제갈지민의 맑은 눈빛과 제갈유경의 심유한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그녀의 눈빛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철없는 여동생을 보았다.
“소소야, 따라 오렴.”
제갈유경은 기품 있는 태도로 방을 나갔고 그 뒤를 축 처진 모습으로 제갈소소가 나갔다.
제갈지민은 그런 그들에게 한 번 고개를 숙여 보이고 문득 심유한 눈길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비밀, 그리고 첫 외출
제갈세가 역시 어둠에 잠겨 있었다.
왕삼은 세가 내 경비를 맡고 있는 경호무사 중 하나였다.
비록 말단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오대세가에 속해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 편이었다.
“쩝, 소가주께서 조금만 더 건강했으면 더 바랄 것이 …….”
“걱정해 줘서 고맙군요.”
감히 소가주에 대해 함부로 평을 하는 것을 다른 사람도 아닌 당사자에게 들켰으니 치도곤을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제갈지민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를 일으켰다.
앞으로도 세가를 위해 힘써주기 바래요.”
그리고 소문대로 소공자가 대인이라는 것을 확인한 그는 속으로 그에게 목숨을 바치리라고 결심했다.
사실 세가 내의 인물 들 중 이런 식으로 제갈지민에게 감명받은 자들은 의외로 상당수에 달했다.
소리는 바로 그의 큰 누님인 제갈유경의 숙소에서 나는 소리였다.
마치 앓는 듯한 소리에 그의 안색이 굳어졌다.
잠을 자기에 다소 이른 시간이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옷 위로 살살 문대는 수준이었으나 점점 힘이 가해지고 있었다.
그, 그 애는 …….”
그것도 상대는 상식적으로 절대 용납이 안 되는 존재였다.
평소 누구보다도 이지적이고 정숙하기로 소문난 그녀의 모습으로는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느 새 그녀의 비부는 애액으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그런 곳을 그녀의 손이 연신 문지르고 있었다.
푸들푸들 떨리던 몸이 활처럼 휜다.
어느 새 그녀의 손가락이 동굴 안에 깊숙이 삽입되어 있었다.
그렇게 망연히 누워있던 그녀의 얼굴이 잠시 뒤 끝없는 자책과 번뇌로 어두워졌다.
사실 오늘이 처음이 아니다.
누구도 모르는 그녀의 이런 기행은 벌써 일 년째 계속되고 있었다.
민아야 …….”
일 년 전 어느 날, 동생인 제갈지민의 미소를 본 순간 눈 앞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바로 그 날 밤 그녀는 동생의 얼굴을 떠 올리며 난생 처음으로 그야말로 격렬한 자위행위로 생애 최고의 환희를 느꼈다.
그 전에도 자위를 한 적은 있으나 그렇게 격렬하게 한 적도 없고, 그렇게 끝까지 간 적도 없었다.
더욱 그녀를 자괴감에 떠 올리게 하는 것은 대상이 다름 아닌 그녀의 친동생이라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도저히 멈출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이 일이 외부에 알려진다면 그 여파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이 비밀을 고백할 수 없었다.
그렇게 속으로만 가슴앓이를 해 온 것이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고 이번에도 비밀을 지켰다고 판단하며 안도했다.
그러나 그녀는 한참 행위 중에 누군가 몰래 다녀갔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그녀는 그 동안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평정을 가장해 왔지만 당사자인 그 만은 뭔가 이상한 점을 느낀 것이다.
얼마 동안 잠자코 지켜보던 그는 제갈유경의 얼굴에 서러있던 그늘이 점점 커지자 오늘 밤 은밀히 그녀를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그 비밀을 알았다.
상식적으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관계였던 것이다.
물론 제갈지민은 큰 누나인 제갈유경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이성과의 감정과는 염연히 다른 것이다.
바로 오대세가의 수뇌인 북리세가의 소가주, 북리천이 그 대상이었다.
물론 다분히 정략적인 성격이 강했으나 북리천은 그녀를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그녀 역시 평소의 그의 성품이나 무공 등으로 인해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녀의 감정이 부디 일시적인 것이기를 자위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 날 낮, 제갈지민은 여전히 그의 숙소에서 독서 중이었다.
그러나 그저 책을 앞에 펼쳐놓고 있을 뿐 그의 머리 속은 한없이 복잡했다.
상의를 한다면 누구에게 해야 하나? 아버님?’
“안녕, 우리 귀염둥이?”
그런 그를 보고 그녀가 피식 웃었다.
“하여튼 책벌레라니까.
누가 오는 줄도 모르고 독서에만 빠져 있다니 …….”
둘째 누님.”
재미없다는 듯이 제갈소소는 한 번 코웃음을 치더니 다음 순간 다짜고짜 그의 손목을 잡았다.
무공을 모르는 그는 피할 수 없었다.
어느 새 그녀의 얼굴에는 예의 짓궂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좋아, 용서해 주지! 대신 ……, 따라와!”
“예? 어디를 …….”
태어나서 난생 처음으로 하는 외출이었다.
그리고 ……, 그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는 외출이기도 했다.
습격, 그리고 납치
두 말 할 것도 없이 제갈소소에 의해 반강제로 세가 밖으로 나온 제갈지민이었다.
소소가 자신의 동생을 돌아보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아무리 신동으로 소문났다고 해도 그는 아직 열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인 것이다.
문득 그녀가 그의 손목을 잡고 한 쪽을 가리켰다.
열 일곱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그녀는 아직도 전병이나 당과 같은 것을 좋아했다.
제갈지민의 얼굴에도 ‘흥미’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그는 전병이나 당과를 먹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재빨리 그녀의 앞을 가로 막았다.
“잠깐만!”
“왜?”
그냥 가자.”
동생의 태도에서 이상함을 느낀 그녀가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전병장수에게 손을 저어 보였다.
“미안해요, 아저씨.
저희 그냥 갈 께요.”
그와 동시에 숨기고 있던 기세를 개방하자 그녀의 얼굴이 긴장으로 굳어졌다.
‘뭐야? 아버지라도 쉽게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은 데 …….
정체가 뭐지?’
소공자님과 이공녀님을 보호하라!”
전병장수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더니 피식 웃었다.
한 번 놀아볼까?”
거의 반사적으로 가로막은 복면인들.
복면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다소 긴장하고 있었다.
이어서 치열한 혈투가 벌어졌다.
“빨리 갑시다, 누님! 저 자 혼자일 리가 없어요.”
그리고 다시 몇 명의 백의복면인들이 튀어나와 그들을 막았다.
제갈지민은 얼핏 습격자들이 핏빛 낫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그제야 이들의 정체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