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을 막게 하기에는 사람들의 숫자가 좀 많은 것 같군." 데이켓이 말했다. "지금쯤은 그 세 사람의 입을 통해서 소문이 퍼졌을걸." "아니,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이 술집은 어젯밤에 처음 문을 열었고, 또 베니 블록사이드 외에는 모두 다른 지방에서 그러모은 사람들이라 아직 서로 얼굴을 익히지 못한 상태입니다. 따라서 서로 서먹서먹한 중에 이런 파문이 일어나면, 그들은 재잘거리기보다는 오히려 입을 다물려고 할 겁니다. 아마이저를 살해한 범인이 곁에 앉아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게 상책이지요." "하여튼 그들을 만나보게. 현장 조사를 끝내고 시체를 치우고 난 뒤의 일은 자네에게 맡기겠네, 조지. 일이 일단락되거든 전화로 보고해 달라고. 그러고 나서는 푹 쉬게 해주지." "과장님이 온종일 일하는데 제가 어떻게 쉬겠습니까?" 조지가 잘라 말했다. 낮에 혼자 선잠을 자는 것보다는 밤에 푹 자는 것이 낫다. "아마이저의 변호사를 만날까 합니다만, 과장님이 만나시겠습니까?" "뭣 때문에?" 데이켓은 멍하니 되묻다가, "아, 내가 만나도록 하지. 자네는 이 술집 종업원들을 철저히 조사하도록. 출퇴근하는 직원들이 나오거든 그로코트에게 어젯밤 이곳에 온 손님들의 명단을 작성하게 하고." 했다. 조지는 현장사진을 찍으랴 지문을 채취하랴 바쁜 그들을 남겨두고 겁먹은 하녀들과 보이, 백금색 블론드의 미인인 캘버리 부인을 만나보기 위하여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예상한 대로 그들에게서는 별로 알아낸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얼어붙은 듯한 침묵에서, 그들이 공포를 남과 나누어 갖기보다는, 자기의 깍지 속에 움츠러들 것이라는 자신의 예상이 옳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간신히 아마이저의 생애 마지막 한 시간 내지 두 시간 사이의 행적을 더듬어 종합할 수가 있었다. 캘버리 부인의 이야기에 의하면, 코마퍼드에 사는 터너라는 젊은 보이가 10시 조금 전에 살롱 바로 가서 아마이저에게 무슨 말인가를 전했다. 아마이저는 곧 합석한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서 보이의 뒤를 따라 일단 바를 나갔다가 2~3분 뒤에 돌아와서는, 친구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시 나가더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름을 알 수 없는 그 젊은 친구가 아마이저를 만나러 왔을 때의 일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 길로 그는 식당 곁의 술창고로 가서 직접 커다란 샴페인 병을 들고 나와, 옆문으로 가던 도중에 베니를 만나 클레이턴과 차에 대한 지시를 내린 것을 끝으로 아무도 살아 있는 그를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조지가 그들 중 마지막 사람을 심문하고 있을 무렵에는 이미 동이 트고 있었다. 아직 존슨이 댄스 홀에 남아 지문이 묻어 있을 만한 곳을 면밀히 검사하고 있었으나 구급차는 이미 시체를 실어가고 없었다. 조지는 집으로 돌아가 목욕을 하고서, 아침식사를 하고 아내 밴디와 간단한 대화를 나눈 뒤에, 도미니크가 아래층으로 달려 내려와 질문공세를 펴기 전에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그는 그 길로 터너라는 보이의 하숙집을 찾아갔다. 터너는 아직 면도도 하지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의자에 앉아 오늘 경마의 예상판도를 점치기에 골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런던 태생에다 몸은 깡마르고, 여름철과는 무관한 도회지 특유의 창백한 얼굴에서는 눈만이 유난하게 빛을 내고 있었는데, 벌써 코마퍼드에는 정이 떨어졌다는 기색이었다. 조만간 다시 런던으로 되돌아갈 사람이다. 아무튼 그는 이번 사건에 말려든 다른 친구들과는 전혀 친분이 없는 모양인지 그들의 이름을 하나도 몰랐다. 갑자기 경찰관이 찾아왔는데도 가벼운 당혹감과 호기심 외에는 불안한 표정은 조금도 살필 수가 없었다. 그는 조지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정확히는 기억할 수 없지만, 10시 5분경 그가 홀을 지나가고 있을 때 젊은 남자가 정면 현관으로 들어서며 그를 불러세웠다. 청년은 이름은 밝히지 않은 채 '아마이저가 있는 데로 가서 중요한 용건으로 만나뵙고 싶다고 전해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의 말을 아마이저에게 전하고는 두 번 다시 그 작은 일을 머리에 떠올리지도 않았다. 아무튼 아마이저는 곧 바에서 나와 홀에서 기다리고 있는 청년을 만나러 갔다. 한편, 터너는 곧 식당으로 돌아갔기에 두 사람의 모습을 본 것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젊은이가 아는 사람이었느냐는 물음에, 터너는 이 마을에는 처음 왔으니 알 리가 있겠느냐는 대답을 했다 -- 그 사람의 특징은? 이렇다 할 특징도 없다고 했다. 나이는 25~26세? 거무스름한 오버를 입고, 양복은 회색, 모자는 쓰지 않았다. 약간 키가 컸지만 유별나게 큰 것은 아니고, 면도를 깨끗이 했으며 머리칼은 갈색. 그밖에는 이렇다 할 특징은 없으나, 다시 한 번 그 청년을 만나면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 사진으로는? 알아볼 수 있을지 모르나 자신할 수는 없다 -- 시험삼아 응해 줄 수는? 그럴 수는 있다. 하지만 왜? 그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조지는 터너의 파리한 입술에 물려 있는 담배를 바라보면서, 생각에 떠오르는 가장 간결하고도 충격적인 말로 아마이저의 죽음을 알려주었다. 담배의 긴 재가 떨어지기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그의 눈은 처음으로 완연한 호기심과 흥분의 빛을 발하며 크게 열렸다. 거기에는 공포도, 경계심의 그림자도 엿볼 수가 없었다. 물론 그로서는 보스에 대한 어떤 원한이 있을 턱도 없겠고, 동시에 서너 번 얼굴을 마주한 보스가 죽었다고 해서 비탄에 빠질 일도 없을 것이다. 아무튼 가까이 알았던 사람의 살인사건에 놀란 것뿐이다. "허, 그렇습니까! 세상에 그럴 수가!" 그의 목소리가 흥분에 차올랐다. "그럼, 당신은 내가 만난 그 청년이 범인이라고 생각하시는군요?" "아니, 이건 하나의 수사활동에 지나지 않소." 조지는 무표정한 투로 말했다. "나는 어젯밤의 사건에 관한 정보를 여러 각도에서 얻으려는 것뿐이오. 그런데 당신이 그곳을 나온 것은 몇 시쯤이었소?" "10시 40분경이었을 겁니다." 자신의 확고한 알리바이를 입증해야 할 판국에 와서도 그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하숙집에 돌아온 것이 11시 조금 전이었습니다. 아래층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시면 돼요. 더구나 같은 술집에서 일하게 된 스톡스라는 친구와 함께 걸어서 돌아왔지요. 그는 길 건너의 루이스 부인 댁에 살고 있습니다." 그는 경마신문을 옆으로 집어던졌다. 이젠 경마에도 흥미가 가신 모양이었다. "자, 가서 확인해 보시지요. 엉뚱한 수확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조지는 지저분한 계단을 내려오면서 터너의 비비꼰 마지막 말을 되십어 보았다. 그리고 비록 터너가 다시는 그 술집에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고 해도, 오늘만은 제 시간 전에 출근하리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내기를 걸 필요도 없을 만큼 확정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사건에 관한 뉴스는 아직 널리 퍼지지는 않은 모양인지, 조지가 '즐거운 술집 하녀'로 돌아왔을 때 새롭게 단장된 현관 언저리에 호기심 많은 구경꾼의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데이켓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까지의 자신의 행적과, 입수한 보잘것없는 정보를 보고했다. 그리고 나서 베니 영감의 도움을 받아 어제 개업 축하에 참석한 사람들의 명단 작성에 착수했다. 물론 가게는 오늘은 영업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이저 황제가 없는 마당에 감히 영업을 맡을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 뻔하다. 10시 반경에 어떤 손님이 굳게 닫힌 현관 앞에 차를 멈추었으나, 휴업을 알리는 간단한 푯말을 보고서 돌아갔다. 하지만 문을 닫게 된 비밀은 곧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의 기억을 종합해서 가능한 한 완벽한 명단이 만들어졌을 무렵, 그로코트와 프라이스 두 형사가 와서 조지의 지시를 기다렸다. 조지는 그들에게 명단에 기재된 인물들을 방문해서 정보를 수집하라고 지시하고, 다시 데이켓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쯤에는 변호사들도 사무실에 출근했을 테니, 이제는 범죄의 '동기'를 파악하는 것이 선결문제였다. 아마이저는 정말로 외아들과 관계를 끊은 것일까? 아니면, 아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 당분간 고생을 하도록 내버려둔 것일까? 하지만 그런 수단으로 아들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남녀간의 애정의 끈은 비록 아마이저의 힘으로도 그렇게 간단히 끊을 수가 없는 것이니까. 따라서 아마이저는 화가 난 김에 그런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아들에 대한 벌로써 가난의 맛을 톡톡히 보여주고, 더 이상 견디지 못할 정도에서 받아들일 생각은 아니었을까 ? 한편, 사무원 출신의 그 여성은 시아버지에 대한 증오는 눌러 참고, 두둑한 보상을 받고서 남편이 항복하도록 유도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이건 지나친 억측이겠는걸......조지는 다이얼을 끝까지 돌렸다. 아마도 십중팔구는 아들 레슬리의 이름은 어떤 굴욕적인 조건이 붙지 않는 한 유언장에는 올라가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아마이저의 아내는 몇 년 전에 죽었으며 달리 혈육은 없다. 따라서 누군가의 호주머니에 생각지도 못한 큰 유산이 굴러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는 생전에는 물론, 비록 죽은 뒤라도 자기의 제국이 무너지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그가 유언장을 다시 쓰는 것을 번거롭게 생각하거나, 심사숙고하기 위해 그것을 연기하는 일도 거의 있을 수 없다. 그는 결코 생각을 번복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일단 생각을 굳히면 저돌적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 그의 성격이 아니었던가. 이번의 경우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하틀리 변호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네." 데이켓이 말했다. "유언장의 내용은 얼핏 보아 우리에겐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흥미가 있던걸. 아마이저는 아들과 관계를 끊던 바로 그날, 과거의 유언장을 파기하고 새로운 것을 작성한 모양인데 -- 거기에는 아들의 이름이 거의 눈에 띄질 않아. 그에게는 아들이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던 것 같더군." "그렇다고 자기의 재산을 잘게 나누어 누구에게 주거나 기부할 사람도 아닌데, 그 점은 어떻던가요?" "맞아. 그는 대단한 수전노였으니까, 죽는다고 해도 재산을 나누어주고 싶지는 않았겠지. 하기야 극히 얼마 안되는 돈을 남겨주고 싶다는 사람들의 명단은 들어 있었네만, 그건 문제도 되지 않는 푼돈이지. 생각지도 않은 돈을 남겨준다는데 그 액수가 적다고 해서 살해할 사람도 없을 테고. 더구나 그는 부하들에게는 두둑한 보수를 주었지 -- 그 점에서는 결코 인색하지가 않았던 걸세. 그리고 그건 그가 자기의 제국을 구축해 나가는 정책이었는지도 모르지. 어쨌거나 그런 친구들에게 푼돈을 나누어주고 난 나머지를 -- 그건 그의 재산의 태반이 넘지 -- 상속받는 사람이 누군지 상상이 가나?" "아뇨, 전혀......설마 손자가 태어날 것을 기대하고, 그 아이에게 재산을 남긴다는 건 아니겠지요?" "그건 전혀 잘못된 억측일세. 그는 과거의 아마이저 왕국의 계보를 버리고 전혀 새로운, 그리고 경이적인 재출발을 꾀했던 모양이야. 상속자의 이름은 캐서린 노리스. 자네는 이걸 어떻게 생각하나?" 제 4 장 사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저 단순한 화풀이일까? 레슬리가 키티 노리스를 제치고 다른 여성과 결혼한 데 대한 화풀이로서 키티 노리스를 돋보이게끔 끌어올린 것인가? 레슬리가 기대하고 있는 것을 챙겨, 그것을 그가 결혼하기를 거절한 여성 앞에 넘겨줌으로써 아들에게 뼈저린 보복을 하려 했단 말인가? 키티에 대한 위로의 의미가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아마이저가 비록 며느리로 삼고 싶었던 키티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었는지는 몰라도, 그런 엉뚱한 짓을 할 만큼 정에 약한 사람은 아니다. 아니면, 그에게는 무엇인가 보다 깊은 의도가 숨겨져 있었던 것은 아닐는지 ? 이것은 분명히 아마이저의 에일(고급 맥주의 일종) 회사와 노리스의 맥주회사를 합병하여, 그의 사후 소유권의 태반을 키티에게 귀속시키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마이저의 원래의 의도는 그의 세력을 교묘하게 구사해서 하나의 도박을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만일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 그것이 성공하면, 키티는 그의 사후에 그 사업을 계승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여간 그의 후계자로서 그녀를 지명한 것은 그 거래에 대한 그의 열의와 진심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 거래에 성공하면 곧바로 노리스 재단을 그의 산하로 편입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하기야 아들 레슬리가 떨어져 나간 이상, 아마이저는 소유한 모든 것을 키티에게 증여한다는 것을 선언하는 데 아무런 희생을 치를 필요가 없었을 테지. 그에게는 레슬리 외에는 가까운 친척도 없거니와, 또한 자기 재산을 저 세상으로 갖고 갈 수도 없는 것이므로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든 그것을 처분해야만 한다. 하긴, 살아 있는 동안 그걸 활용하고 충분히 즐기는 일보다 나은 방법은 없을 것이지만. 아마이저는 실제로 합병을 제안했고, 거기에 대해 노리스의 경영인이 난색을 표명했는지도 모른다. 두 개의 회사가 합병될 경우, 그 대표가 누가 되리라는 것은 뻔한 일이기에 경영인이 반대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래의 보장 내지는 배려가 아마이저의 설득력을 크게 강화시킨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아마이저로서는 어느 쪽으로 뒨굴든 손해날 건 없다. 만일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없다면 그 유언장을 파기하는 것쯤은 식은죽 먹기일 테니까. 하여튼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아마이저는 원하는 것이라면 거의 손에 넣어 온 사나이다. 그만큼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의 그의 보복은 극도로 잔인하고 철저해서, 누구든 상대방을 놀라게 하고 떨게 하는 데 충분했다. 조지는 차에서 내려서, 한동안 차체에 기대어 다음 행동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선 키티의 작고한 아버지 노리스 씨가 아마이저의 심복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물을 딸의 후견인으로 선정한 것도 기묘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 세 사람은 상당한 친분을 맺고 있었고, 또한 셸레이 변호사는 그 성실성을 세상에서 인정받는 사람이다. 따라서 그러한 연관관계가 의외로 잘 유지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기야 키티는 성년이 되었으므로, 현재는 아마도 재산의 신탁도 그 기한이 지났을 것이다. 거기에 관련된 사항을 그가 알고 싶은 바는 적지 않았으나, 공식적으로 그걸 조사할 권리는 그에게 거의 없다. 그가 만나서 키티 노리스의 행동이나 신변에 관해 알아볼 권리가 있는 상대는 단 한 사람 -- 그건 키티 노리스 자신이었다. 그녀는 어젯밤 '즐거운 술집 하녀'에 와서 아마이저와 테이블을 함께 했었다. 아마이저가 방금 완성된 화려한 완구와도 같은 댄스 홀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자리를 뜨기 전까지는 그녀들과 담소를 나누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조만간 그녀를 만나야 할 것이다. 어차피 만날 일이라면 빠를수록 좋다 -- 그는 이렇게 생각을 굳히고는 다시 차에 올라타서 달리기 시작했다. 키티는 코마번에 아파트를 갖고 있었다. 번화가에서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집이 교구 교회 뒤켠의 한적한 거리 쪽에 자리잡고 있어 낮인데도 차의 왕래가 뜸했다. 하지만 그런 거리인데도 주차를 하기가 쉽지 않아, 조지는 차를 세워둘 공간을 찾기 위해 키티의 아파트에서 저만치 더 가야 했다. 다행히 빨간 커먼 기어가 길가에 서 있는 것을 보고 키티가 집에 있다고 짐작했다. 시간은 정오가 가까웠다. 스웨터에 스커트 차림으로 굽낮은 어린이용 샌들을 신은 그녀는 문을 열고 약간 당혹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그가 용건을 말하기를 기다렸다. 조지가 말했다. "나는 경찰인데 -- 펠스라고 합니다." 당혹스런 표정이 사라지며 그녀가 곧 통로에서 뒤로 물러섰기에, 그는 그녀가 사건에 관해서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리스 양, 아마이저 씨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겠지요?" "셸레이 씨에게서 전화로 이야기 들었습니다. 자, 어서 들어오세요." 그녀는 진솔한 호기심을 드러낸 채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것은 경찰이라는 그의 직무에 대한 관심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그에 대한 흥미도 포함된 것이었다. 조지는 그녀의 시선을 눈부시게 느꼈다. 별로 마음에 꺼리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키티는 그 반대로 비록 꺼림칙한 무엇이 있다 해도 태연히 상대방을 마주 보며, 눈길을 피하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것은 그녀의 천성이며, 의식적으로 바꿀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닌 성싶었다. "아마이저 사건을 수사하고 있습니다만, 당신의 협력을 얻을 수 있으면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찾아왔습니다. 결코 긴 시간은 걸리지 않을 겁니다." "저로서는 별로 바쁜 일도 없으니 천천히 하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파스텔풍으로 담백한 색조의 상당히 넓은 방으로 그를 안내했다. 4층인데다가 앞을 가로막는 높은 건물도 없었기에 햇빛이 창마다 환히 비쳐들어 방안은 놀라울 정도로 밝았다. "자, 앉으십시오, 펠스 씨. 마실 것을 가져올까요? 어머, 마치 레이몬드 챈들러의 소설 속 대사 같아졌네요." 그녀는 뒤돌아다보고 약간은 일그러진 미소를 보냈다. "하지만, 저는 막 셰리주를 마실까 하던 참이었답니다. 더구나 댁은 뭐 사립탐정도 아니시고......" "하긴 공적인 탐정이지요." 조지가 얼버무렸다. 아마도 이야기가 그가 기대한 방향을 벗어날 것 같았지만, 그는 대세에 맡기기로 했다. 또한, 그러는 것이 의외로 재미있는 수확이 있을지도 모른다. "셰리주는 드라이도 괜찮을까요? 그것밖에 있는 것이 없어서." 그녀는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잔을 갖다놓는 손이 침착치 못했다. 하지만, 그 손이 다소 떨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제 됐습니다. 그런데 아마이저 씨 사건은 아가씨에게도 큰 충격이었겠습니다, 노리스 양." "네, 깜짝 놀랐어요."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그와 마주앉으며 예상한 대로 정면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셸레이 씨와 해밀턴 양이 전화로 알려주더군요. 정말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그렇게도 건강하고 정력적인 분이었는데. 남들이 그분을 달갑게 생각하든 말든 그분은엄연히 존재했고, 그분이 없는 세상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거든요. 어쨌든 여러 가지 면에서 훌륭하고 뛰어난 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남다른 용기가 있는 분이었지요. 비천한 집안에 태어나서도 세상을 자기 뜻대로 움직여 그만한 재산을 이룩했다는 것은 불굴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대개의 사람들은 큰 부자가 되면 그것을 잃을까 봐 전전긍긍하지만, 그분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때로는 관대한 면도 있었고, 때로는 재치있는 이야기로 사람들을 웃기기도 했지요. 어린애들과 어울려 천진난만하게 노는 것도 보았고요. 그렇게 냉엄한 사람인데도 말이에요. 그분에게 어린애란 장난감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죠. 아이들이란 마구 뛰어노는 것으로 만족할 뿐, 어른들처럼 번거로운 문제의 대상이 되지는 않으니까......그래서 어릴 적에 저는 그분과 아주 친했답니다. 커 가면서 점점 대하기가 어려워지긴 했지만." 그녀는 잔 속을 들여다보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때 조지는 도미니크가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진한 애수의 그림자가 그녀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도미니크와 마찬가지로 거기에 놀라고 관심이 고개를 들면서, 그녀의 그 외로운 그림자의 비밀에 대하여 고개를 갸우뚱하기에 이르렀다. 그녀는 마치 자신의 인생의 항로가 이미 정해져 있기나 한 듯이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 라고 그는 생각했다. 먼 옛날에 어떤 큰 힘이 그녀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결정해 버리고, 그녀의 의지는 거기에 대해서 전혀 무력한 것처럼 말이다. 그건 아마이저의 영향은 아닐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그녀가 그를 그런 식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을 테니까. 아마도 누구의 영향도 아니면서 무엇인가 그녀를 압도하는 일련의 사건이 그녀의 신변에 일어나, 그녀는 거기에 휩쓸려서 저항할 방편도 없는 채로 몸을 맡기고 만 것이리라. "인간이란 누구나 결점은 갖고 있는 법입니다." 조지는 자기의 말이 교훈 비슷한 것이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말했다. "만일 고인이 지금 아가씨의 말을 들으면 기뻐할지는 모르지만......" "저는 그분에게 섭섭한 점도 갖고 있답니다." 그녀는 신중히 방향을 돌렸다. "그러기에 그분에 대해서는 공평한 입장에 서고 싶은 거예요. 물론 댁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기꺼이 협력하겠어요." "아가씨는 어제 적어도 한 시간은 그와 함께 있었지요? 어느 보이의 이야기에 의하면 10시 조금 전에 누군가가 아마이저 씨를 찾아와서 중요한 일로 잠깐이라도 만나야겠다는 말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마이저 씨는 일단 살롱 바에서 나와 그를 만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당신들에게 그 까닭을 말하고 다시 자리를 떠났다는데, 사실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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