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즐거운 여자 - 엘리스 피터스 - 12편 (12/23)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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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즐거운 여자 - 엘리스 피터스 - 12편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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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어쨌거나 운수 사나운 아들은 지금 그들의 협력이나 선의로도 피하기 어려운 곤란한 사태를 일으키려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사태에서, 그것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에만 매달려 있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도미니크는 긴장을 하여 쉰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오늘 키티 노리스가 경찰서에 갔을 때, 저는 밖에서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보다도 먼저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지요.
그녀는 밑도끝도없이 아마이저를 죽인 것은 자기라고 했어요.
이유를 물어보니 아마이저가 무례한 행동을 하기에 그를 계단 위에서 밀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녀는 그를 죽인 게 아니잖아요! 그녀는 단지 기절한 그를 거기에 남겨둔 채 도망친 것뿐입니다." "왜 그런 것을 여기에서 이야기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 " 조지는 이미 결론이 난 사건을 들먹이는 것이 마음애 내키지 않았지만 애써 참았다. "네가 그래야만 직성이 풀린다면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자.
만일 그녀가 기절한 그를 버려두고 달아났다면, 그의 머리를 내리친 것이 대형 샴페인 병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네 말대로 그녀가 범인이 아니고 그녀가 달아난 다음에 누가 와서 그의 숨통을 끊은 것이라면, 흉기가 무엇인지 키티가 어떻게 알고 있느냐 말이다.
신문에는 머리에 상처를 입고 죽었다고밖에는 발표가 나지 않았는데.
그런데 그녀가 어떻게 그런 구체적인 것까지 알 수가 있었을까?-- 그리고 그런 그녀가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네 생각이 뭔지 궁금하구나." 역시 키티는 형사들의 능숙한 유도심문에 걸려 꼬리를 잡히고 만 것이다.
도미니크는 그녀에게 그런 책략을 쓴 형사들을, 아버지까지 포함해서 미워했으나, 그런 결정적인 실수를 한 자기 자신이 더욱 증오스러웠다.
그가 아무리 설득을 해도 그녀는 형사들을 찾아갈 것이라는 걸 계산에 넣었어야 했다.
그녀는 스스로를 희생하더라도 레슬리를 지켜 주려는 마음에 불타 있었던 것이다.
비록 그녀와 결혼하는 것을 외면한 레슬리이지만 그녀는 그를 미워하지 못하는 것이다.
레슬리 이외에는 안중에 없을 정도로 그를 사랑했던 것이다.
아아, 얼마나 바보스러운 여자란 말인가!-- 도미니크는 땀이 밴 손바닥을 겹치며 갈라진 목소리를 약간 높여 잘라 말했다. "키티가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은 제가 이야기를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의자에 앉아 있었던 것을 감사했다.
그 때문에 그의 위신이 얼마간 손상된다 하더라도 자세는 안전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 그는 허리에 기운이 빠져 상체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었던 것이다.
조지는 상체를 앞으로 구부려 식탁을 짚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도미니크는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다.
눈을 감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견뎠다.
아무리 혹독한 맛을 보더라도 그것은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울상을 지을 처지가 아니었다. "이야기를 해줬다고? 뭘?" 조지가 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그녀가 거기에 갔었던 것을 경찰에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까닭을 말해 준 겁니다.
그녀는 자기가 아마이저를 살해했다고 아버지에게 자백하겠다고 했는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마이저가 병으로 머리가 깨져서 살해된 것을 까맣게 모르고, 그저 계단에서 굴러떨어질 때 머리를 다쳐 죽은 것으로만 알고 있었어요.
그녀의 말에서 저는 그를 죽인 사람은 키티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았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생각으로 괴로워하는 그녀를 빤히 눈앞에 보면서 모르는 척할 수가 없었던 거예요.
진상을 얘기해 주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는 자포자기하여 반항적인 말까지 덧붙였다. "언제고 또 이런 일이 있다면 저는 역시 또 그렇게 할 겁니다." 조지는 팽팽한 침묵을 잠시 지켰다가 와락 소리를 질렀다. "너, 아버지에게 매를 맞아야 하겠니?" 궁지에 몰린 도미니크는 때려 달라고 소리쳤지만, 조지의 건전한 사고력이 그 고비를 넘겼다.
그런 방법으로는 더 이상 아무런 해결책도 마련될 수 없는 것이다.
하기야 매를 들어본 지도 2년이 넘는다.
그때와는 달리 이제는 그 후유증이 훨씬 심각하고 복잡하며, 고통스러운 부담이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 분명했다.
도미니크가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잘 알면서도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요.
하지만 그런 호의가 역효과를 낼 줄은 -- " "그런 것보다도 네가 한 짓은 우리로 하여금 키티가 어느 정도 진실을 말하는 건지 분간을 못하게 만들어 놓고 말았구나.
그리고 또 하나 있다.
너도 뭔지 알겠지?" 조지가 기가 찬 얼굴로 물었다.
물론 도미니크는 알고 있었다.
그는 이 집안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을 흔들어 놓은 것이다.
일이 이렇게 꼬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는 어안이벙벙해진 아버지와 유치장에 들어가 비참한 꼴이 된 키티 사이에서 고뇌에 빠졌다.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로서는 마땅히 이 일을 주임에게 보고해야 돼." 조지가 신음하듯 말했다. "하지만 너를 탓하기 전에 나 자신을 책망해야 하겠지.
경솔한 짓을 지금껏 아무렇지도 않게 계속해 온 사실을 주임에게 털어놓을 수밖에 없다.
도대체 수사 정보를 아무런 생각 없이 식구들 귀에 들어가게 한 나의 큰 실수였어.
그건 엄연한 직무태만이지.
난 너무나 안이했던 거야.
네가 무슨 일이 있어도 그런 이야기는 입 밖에 내지 않으리라고 기대했던 내 실수지." 하지만 조지로서는 기대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 믿어 왔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런 스스로의 자유재량에 조금도 불안을 느끼지 않았었다.
도미니크는 아버지의 절대적인 신뢰를 저버린 지금에 와서야 그 가치가 얼마나 헤아릴 수 없이 큰 것이었던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제가 꼭 경솔한 탓으로 입을 놀린 건 아니에요, 아버지.
지금껏 단 한 번도 그런 일은 없었는데......" 도미니크는 더듬더듬 변명을 했다. "그 한 번이 문제가 되는 거란다.
난 내일 아침 데이켓 총경을 만나 책임을 지겠다고 하겠다.
그게 옳은 일이니까." "죄송합니다." 도미니크는 풀이 죽어 말했다. "하지만 꼭 그래야만 할까요?" "그래.
키티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너에 대해서도 공명정대하기 위해서야.
상관이 나에게 사직하다고 할지 안할지는 그가 정할 일이지." 그건 지나친 과장이었다.
왜냐하면 수사가 급진전해서 사건은 끝난 거나 다를 바 없는 단계여서, 비록 키티에게 조금은 유리할지 모를 이 사태도 도미니크가 상상하는 만큼의 중요성을 지닐 것 같지가 않았다.
데이켓 총경은 조지의 보고에 귀를 기울이는 것조차 번거롭게 생각할 것이고, 비록 그를 나무란다고 해도 말로 견책하는 것 이상의 징계조치는 취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조지 자신이 대충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앞으로는 수사중인 사건에 관한 이야기는 삼가기로 하겠다.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곤란하니까.
그리고 너는 이번 사건에 더 이상 개입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야겠다.
나로서는 이 일로 크게 피해를 입었으니 말이다." "싫어요! 그렇게는 할 수 없어요.
키티는 제가 그 이야기를 할 때까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아버지, 제 이야기를 믿어 주세요.
그것밖에는 그녀에게 불리한 증거가 없잖아요? 그녀는 풀려나야 합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 사실을 안 이상 붙잡아둘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녀는 무죄입니다.
만일 아버지가 그걸 증명하기 싫으시다면 제가 하겠습니다." 조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아마도 내뱉고 난 직후에 후회할 말 -- 그리고 밴디가 부자 사이를 원상회복시키기 위해 끈질기고 교묘한 수습책을 며칠이고 계속해야 할 -- 그런 말을 내지르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그를 향해 내뿜어진 젊은이의 격렬한 열기가 그의 기세를 꺾고, 돌이키기 어려운 후회를 면하게 해주었다.
조지는 그의 시선을 퉁기듯 노려보고 있는 도미니크의 분노로 창백해진 얼굴과 핏발이 선 눈을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이윽고 어떤 이해가 그의 머리를 때렸다.
오랫동안 어린아이로 다루어지고 응석받이로 생각했던 아들이 갑자기 어른의 엄숙함과 심각한 비탄의 눈으로 그를 응시하여 그를 놀라게 함으로써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키게 한 것이다.
물론 그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지는 못할 것이다.
아직 지속성을 갖기에는 이른 것이다.
어른과 소년 사이를, 완전히 어른으로 탈바꿈하기 전까지는 몇 번이고 오락가락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조만간 도래할 것이 분명한 전조였다.
조지는 당황스런 마음을 억누르며 생각했다.
아아, 나는 키티에 대한 일로 도미니크를 놀리고 못살게 굴어왔던 거야! 자기 자식의 일에는 왜 이렇게도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것일까 ? 조지는 마치 발소리 하나에 두 사람이 깜짝 놀라고, 또 유리잔이 서로 부딪치는 것 같은 소동을 일으키는 것을 두려워하듯 가만히 걸음을 옮겨,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아들과 마주보는 위치에 걸터앉으며 온화하고 이성적인 말투로 입을 열었다. "좋다.
이번 일은 그 정도로 해두자.
나 자신도 너에게 공평을 잃은 점이 없지는 않았지.
네가 나로 하여금 머리를 숙이게 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지만, 어쩌다가 그런 일이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구나.
나는 결코 네가 부질없이 입을 놀렸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리고 너의 판단을 과소평가하지도 않는다.
또 네가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해 책망할 생각도 없다.
나도 만일 네 입장이었다면 역시 너와 같은 행동을 했을지도 모르지.
더구나 누구보다도 먼저 규칙을 어긴 사람은 나고, 또 그런 위반을 오랫동안 계속해 왔으니.
따라서 내친 김에 꼭 한 번만 규칙을 어기고 이번 사건의 진상을 설명해 주마.
단, 이건 너에게 조금도 반가운 이야기가 못되겠지만 -- " 거기에서 그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되었다. "하지만 궁금증은 풀리겠지.
실은 키티 노리스의 자백을 듣고, 우리는 그 방증 수집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그녀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주민을 이잡듯 만나본 결과, 1층에 살고 있던 어느 부부가 그날 밤 그녀가 돌아오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그 시각은 그녀가 처음에 주장한 10시 반도 아니고, 나중에 바꾼 11시 10분도 아닌 12시 조금 지나서였어.
키티는 그 시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해명하기를 일체 거부하고 있어." "그건 목격했다는 사람들의 착오일 수도......" 도미니크는 궁지에 몰린 느낌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아냐, 그렇지가 않아, 알겠니? 그녀는 그걸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걸 해명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거다." 조지의 목소리가 보다 부드러워졌다. "더구나 그것뿐만이 아니란다, 돔.
우리는 키티가 그날 밤 입었던 드레스도 압수했지.
그날 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그녀는 길고 검은 실크 드레스를 입고 있었어.
그걸 골라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
그녀는 또 인디언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있었는데, 약간 붉은기가 도는 푸르고 엷은 것이었고, 모서리에 금색 장식이 있었지.
사실과 부합되는 증거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전혀 뚱딴지 같은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그 스카프의 끝부분이 찢겨 있었으나 우리가 아무리 찾아봐도 아무데서도 그 조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스커트의 오른쪽 끝단을 따라 몇 군데 얼룩이 있었다.
천이 검어서 육안으로는 식별하기가 어려웠지만 정밀검사에서 반응이 나왔다.
그것은 피였어.
아마이저와 같은 혈액형으로.
나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었지만, 형사 하나가 그녀의 왼쪽 구두 앞쪽에 있는 갈색의 반점이 핏자국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역시 아마이저와 같은 혈액형이고, 키티의 것은 아니었지." 도미니크는 눈을 감았다.
그때 보트 클럽에서 그녀의 손에서 은빛으로 반짝이던 샌들이 눈에 선했다.
그것은 지금 문제가 된 구두와는 다를지 모르지만, 그 선명한 인상은 그의 눈까풀에 인화된 채 지워지지 않았다. "안됐지만, 지금의 상황이 이렇단다." 조지는 일어서서 가만히 도미니크의 뒤로 갔다.
도미니크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등뒤에서 본 그의 양 어깨는 석상처럼 굳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걸로 이 세상이 -- 아니, 이 사건이 -- 끝난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앞날이 장미빛으로 물들어 있지 않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돔.
나는 너를 공평하게 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야기를 했다마는 너무 신경을 쓰면 몸에 해로울 게야." 그는 잠시 도미니크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가 그의 굳은 볼을 부드럽게 쓸어 주었다.
순간 도미니크는 벌떡 일어서더니 와르르 문 쪽으로 돌진했다.
그리고는 하마터면 부딪칠 뻔한 밴디 옆을 빠져 나가 계단 쪽으로 달려갔다.
밴디는 아들을 돌아다보던 눈을 남편에게로 돌렸다.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망설이는 눈치였다. "내버려둬요!" 조지는 엄하게 말하고 머리를 흔들었다.
그녀가 도미니크의 뒤를 따라나간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좋아.
그냥 그렇게 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는 것이 약이니까." 조지가 말했다.
제 9 장 이튿날 아침, 식탁으로 내려올 때까지 도미니크는 생각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어떤 확고한 결론에 도달하여 단단한 결의를 세웠다.
그것은 하룻밤 사이에 어른의 모습에 가까워진 것처럼 보이는 창백해진 얼굴빛이나 야무진 턱의 윤곽에 은연중 나타나 있었다.
또한 부어오른 눈두덩이나 눈 둘레의 검은 그림자는 잠자야 할 시간을 내내 지새웠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는 애써 차분한 태도로 식탁으로 다가와, 위험스러운 혼란상태가 말끔히 가신 것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 언제나 그렇듯이 천연덕스럽게 부모에게 아침인사를 했다.
특히 밴디에 대해서는 남자다운 늠름한 태도를 보였다.
그녀는 거기에 진지하게 대응했다.
그리고 집안에 남자가 둘이 되었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꼈다.
남편인 조지에 대해서 이렇다 할 불만은 없었지만, 두 라이벌이 한 지붕 밑에서 살아가게 된 것을 남몰래 즐기기로 했다.
하지만 도미니크가 그렇게 되기 위해 이런 과정을 겪어야 하는 것이 원망스럽게 생각되었다.
그녀와 조지는 도미니크가 걱정되어 새벽부터 몇 시간 동안이나 목소리를 죽여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이다.
지금도 두 사람은 마찬가지로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지켜보고, 의식적으로 억제되고 있는 그의 행동거지를 살폈다.
그가 말을 꺼내기 전의 망설이는 모습으로부터 말의 선택에 애를 먹고 있는 깊은 마음속까지 그들은 놓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저, 아버지.
어제 저녁 이야기 말인데요 -- " 도미니크는 태연을 가장했지만 목소리가 떨려 어색한 고음이 되었다. "전 어떻게 해야 할지 여러 가지로 생각해 봤어요.
아버지가 한 말을 하나하나 생각에 떠올리고, 제게 이야기해 준 걸 고맙게 생각하며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절대적인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이 하나 있어요.
아버지는 그걸 알지 못하시지만, 저로서는 그것이 절대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키티는 저와 이야기를 할 때 정말로 아마이저가 어떤 상태로 살해되었는지를 모르고 있었어요.
따라서 그녀가 그를 죽인 범인일 수가 없는 겁니다.
아버지는 그때 키티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지 못해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발견된, 그녀에게 불리한 증거는 모두 그녀가 유죄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설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됩니다." "그야 우리 역시 아직은 증거를 갖추는 단계라서, 결코 그녀를 범인으로 단정하고 있는 건 아니야.
사건은 끝난 게 아니지." "그렇게 말은 하지만, 증거를 갖추는 것이란 결국 범인으로 추정하고 하는 일이 아닌가요? 다시 말해서 죄를 단정하기 위한 논리적인 각본을 만들려는 작업일 테니까요." 조지는 절반은 덮어두기 어려운 마음의 상처에서, 절반은 맹목적인 남자의 본능에서 그들이 대등한 입장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무슨 소리야! 이 사건이 그렇게 마무리되는 것은 너보다도 내 마음이 더 아프단 말이다." 그 순간의 조지는 그의 비통한 말투 속에 내포된 개인적인 감정이 밴디로 하여금 의아한 마음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는 것도, 도미니크의 눈뜨는 자아를 자극하게 된다는 것조차도 개의치 않았다.
하룻밤 사이에 움푹 들어가 버린 눈이 놀라움의 눈길로 흘끔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급히 아래로 떨어졌다.
살피는 듯하던 그 눈길은 앞으로 더 자주 조지에게 쏠리게 될 것이다. "그야 그럴지 모르지만 -- " 도미니크는 신중히 말했다.
아버지의 격한 말 속에 숨겨져 있는 의미에 관해서 좀더 깊이 생각해 보고, 그 속에 무엇인가 보다 절실한, 지금이라도 곧 대처할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를 검토하고 싶어 망설이는 듯한 말투였다. "어쨌든 저는 제가 확신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겠습니다.
물론 모든 것이 뒤집듯 달라질 수는 없겠지만, 아버지가 빠뜨리고 있는 것을 찾아낼지도 모르지요.
아무튼 그 결말이 어떻게 되든 저는 제가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겠습니다." "네 기분은 이해가 간다." 조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대하지 않으시겠죠?" "네가 우리를 방해하지 않는 한 반대할 이유가 없지.
하지만 결정적인 것이 나타나면 경찰에 알릴 의무도 있다는 걸 잊지 말아라." "그렇다면 아버지는 저에게 아무것도 알릴 필요가 없다는 말씀인가요?" 그 묻는 태도가 너무나 건방져서, 조지는 아들의 자아발달을 도와줘야겠다는 방침을 취소하기로 했다.
하기야 그것은 그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하는 것이지 도와준다는 것은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는 잘라 말했다. "어제 말한 것처럼." "네, 잘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도미니크는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며 겸연쩍은 듯 말했다.
그는 깊이 마음먹은 바가 있는 듯한 표정으로 자기의 행동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없이 밖으로 나갔다.
토요일이라서 무미건조한 교과서나 강의에 번거로움을 겪을 일은 없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학교에서 하는 강의 같은 건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밴디는 그의 뒤를 따라 마당으로 나가 자전가 타이어에 바람을 넣고 있는 아들 곁으로 가서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고 그냥, "잘해야 한다." 하고 말하고 키스해 주었다.
그것은 도미니크가 시험을 보러 갈 때라든가 그래머 스쿨 입학식날 등, 어떤 중대한 사건에 직면하는 그를 내보낼 때 그녀가 아들에게 하는 행동이었다.
그는 그런 관례에 따라 펌프를 밀던 손을 멈추고 얼굴을 들어 다섯 살짜리 아이처럼 가련하고도 스스럼없는 키스를 어머니에게 돌려보냈다.
그리고 손등으로 입술을 쓱 문지르거나 곧 펌프질을 계속하려고 하지 않고 잠시 동안, 아직 어린애로 남아 있을 것인지 어른 행세를 할 것인지를 망설이는 듯한 눈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설픈 나이에 있는 자신의 모습이 그를 충동질해서, 마치 배드민턴 공처럼 모자(母子) 사이를 오가게 하는 것이다. "고마워요, 엄마." 그는 키스의 여운을 마음에 접어두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밴디는 지갑에서 10실링짜리 지폐를 꺼내어 그의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이건 네 경비의 선불이다." 도미니크는 놀림을 당한 느낌이 들어, "나는 진지하다고요.
그냥 해보는 게 아니라니까." 하며 어머니에게 눈을 흘겼다. "나 역시 장난으로 그러는 게 아니란다." 밴디가 정색을 했다. "나는 그 아가씨를 잘은 모르지만, 네가 그녀가 범인이 아니라면 나도 그렇게 믿어요.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해줄 테니까, 난처한 일이 생기거든 말하도록 해라.
알겠니?" "응, 고마워요, 엄마!" 그가 고맙다고 한 것은 비위를 맞추어 주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던 10실링 때문도 아니고, 또한 어머니가 도와주겠다고 했기 때문도 아닌, 어머니가 그와 키티와의 관계에 대해 한 말 속에 암시된 모든 의미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 관계가 동등한 어른 대 어른의 것이라는 것, 현실성과 정당성을 갖는 중대한 관계이자 경건한 태도로 다루어져야 마땅하다는 것 등이었다.
그는 어머니에 대한 따사로운 애정과, 어머니의 숨겨졌던 한 면을 발견한 놀라움을 지긋이 음미했다.
그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변화에 대한 예기치 못한 보상의 일부이기도 했다.
한편, 밴디는 퇴장해야 할 시기를 잘 알고 있었다.
아들의 젊음만큼이나 가슴 부듯한 젊음 같은 것을 가슴 가득 느끼며 서둘러 집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섬광처럼 스쳐간 환희나 가슴설레임은 키티의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전거를 굴려 농장길을 가로질러 코마퍼드의 거리를 벗어난 도미니크의 머릿속에는 무겁고 어두운 그림자가 더욱 숨막히게 밀려들었다.
그 길은 '즐거운 술집 하녀' 가까운 곳을 지나가게 되어 있었다.
그는 잡초가 우거진 네 갈래길 한쪽에 한 발을 딛고 그 집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 주변을 서성거리며 사건이 일어난 집을 기웃거리던 하릴없는 사람들의 그림자는 이제 눈에 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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