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복청양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 순간 그가 동요를 보이면 모든 것이 허사였다. 시간의 접점을 찾으려는 시도는 물론이고 반천역시대법을 시전하는 천품신성에게도 그 피해가 미칠 것이다. 그래서 복청양은 반듯하게 누운 채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천품신성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고 떨림도 더욱 심해진다. 휘이잉 잔잔하던 호수가 거세게 일렁였다. 그와 동시에 심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바람은 여든한 개의 횃불을 마구 뒤흔들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그처럼 강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어느 횃불 하나 꺼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천품신성이 제상에 놓인 비수를 집어들더니 자신의 팔을 푹 찔렀다. 그러자 선혈이 뭉클 솟았다. 그러나 천품신성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그 선혈을 그릇에 받더니 입에 물었다. 푸우 천품신성이 선혈을 공중에 뿜었다. 바람이 더욱 거세지면서 검은 하늘에서 갑작스럽게 뇌성이 치기 시작했다. 꽈광! 우르릉 번쩍 꽝! 뇌전이 하늘을 둘로 갈랐다. 하얀 뇌전은 곧장 제단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천품신성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복청양 역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가라!" 천품신성이 돌연 두 팔을 휘저으며 피를 토하듯 소리쳤다. "가라. 어서 가거라!" 그 순간이었다. 복청양은 돌연 자신의 몸이 허공으로 두둥실 떠오르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하늘에 구멍이 생기고 그 구멍으로 거센 회오리바람이 몰아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회오리바람은 놀랍게도 복청양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거대한 압력이 복청양을 짓눌렀다. 그것은 수천 수만 근에 달하는 엄청난 압력으로써 인간의 힘으로 저항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어엇!" 복청양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것을 끝으로 복청양은 정신을 잃었다. 그르릉 땅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르릉 그응 구르릉! 흔들림은 아주 먼 곳에서부터 시작되어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처음에는 그 흔들림을 느낄 수 없을 정도였으나 점차 심해졌다. 제상이 흔들리고 여든한 개의 횃불이 너울너울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천품신성의 안색이 사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설마 지진이란 말인가?' 꽝! 천품신성이 미처 생각을 가다듬기도 전이었다. 돌연 수만 근의 폭약을 일제히 터뜨리는 듯한 소리가 저 아득한 땅속에서 울려 퍼졌다. 동시에 제단이 크게 요동을 쳤으며 제상이 뒤집어져 뒹굴었다. 천품신성마저 제단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펄럭! 횃불 하나가 꺼진 것은 그 순간이었다. "아아……." 천품신성의 입에서 나직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땅의 진동은 어느새 멎어 있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조용하기만 했다. 다만 미미한 여진이 땅을 울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여진을 몸으로 느끼며 천품신성은 허탈한 모습으로 꺼진 횃불을 보고 있었다. "이게 진정 하늘의 뜻이란 말인가?" 그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결정적인 순간에 모든 것을 망치고 말았구나. 비록 시간의 접점을 여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청양이는 원하는 시간으로 가지 못했다. 그가 어느 시간대에 떨어졌는지는 나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든 게 허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망연자실하여 서 있는 천품신성의 앞에 제단이 비어 있었다. 복청양의 모습이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하늘이 열리고 달이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제 34 장 소년(少年) 소년은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다소 이례적인 일이었다. 평소 같으면 소년은 이 시간에 절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어디 시원한 나무 그늘을 찾아가서 낮잠을 즐길 시간이었다. 생각해 보라. 어느 얼빠진 놈이 덥디더운 유월 중순에 그것도 태양이 중천에 뜬 대낮에 땀을 뻘뻘 흘리며 움직이고 있겠는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이 시간이면 개도 낮잠을 즐길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소년은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긴장된 표정으로. 소년은 커다란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전면을 바라보았다. 소년의 눈길이 가는 곳, 그곳에는 작은 집이 한 채 서 있었다. 나무로 만든 평범한 오두막이었다. 이 산속에 오두막이 있다는 것이 다소 이상했지만 따지고 보면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 오두막은 사냥꾼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지어놓은 것이었다. 겨울이면 어김없이 사냥꾼들이 찾아와 오두막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여름에는 비어 있었다. 산속에 있는 빈 오두막은 소년처럼 갈 곳 없는 아이들에게는 아주 안성맞춤인 거처였다. 저 오두막에서 소년은 삼 개월을 지냈다. 낮이 되면 마을로 내려가서 먹을 것을 구했으며 밤이 되면 어김없이 이 산속에 들어와 잠을 잤다. 그러니까 저 오두막은 소년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저 오두막은 소년의 것이 아니었다. "아악!" 비명소리가 들렸다. 여인의 비명소리였다. 비명은 날카롭고 급박했다. 뭔가 위급한 상황에 처해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소년을 안타깝게 했다. '어서 누님을 구해야 하는데…….' 소년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마음만 급할 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장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소년은 발을 구르며 안타깝게 오두막을 보고 있었다. * * * 열흘 전이었다. 소년이 기거하던 오두막에 두 사람이 찾아 들어왔다. 남자와 여자였다. 남자는 강철 같은 단단한 몸집을 하고 있었고 여자는 아직 스물이 채 안 된 아름다운 처녀였다. 교굉(喬宏)과 교희(喬姬)라는 이름의 그들 남녀는 남매라고 했다. 비록 소년이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이 오두막은 소년의 집이 아니었다. 그래서 소년은 두 사람에게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었다. 당연히 쫓겨나야 할 처지였다. 그러나 교굉은 소년을 쫓아내지 않았다. "너에게 부탁이 있다." 교굉은 소년에게 약간의 은자를 쥐여 주었다. "며칠만 내 동생을 보살펴 다오. 나는 급한 일이 있어서 어디를 좀 다녀와야겠다. 그 동안 동생을 혼자 둘 수 없구나. 너는 정직한 아이 같으니 내 동생을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다." 소년은 생전 처음 쥐어보는 돈이라는 물건에 잠시 얼떨떨했다. 사실 교굉의 부탁은 부질없는 것이었다. 소년의 형편은 나가라고 등을 떠밀어도 갈 곳이 없는 처지였던 것이다. 그로부터 열흘. 그것은 소년으로서는 일생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평생 남의 천대를 받으며 멸시를 당해온 소년이 선녀처럼 아름다운 여자와 한 집에 살면서 누님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니 말이다. 교희는 소년에게 참으로 잘 대해 주었다. 남들처럼 때리지도 않고 구박을 하지도 않았다. 소년의 옷이 더러운 걸 보고 벗겨 빨아주기도 하였으며 끼니때가 되면 꼭 밥을 지어 주었다. 소년으로서는 꿈인가 싶을 정도로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조금 전에 끝이 났다. 소년이 그들을 발견한 것은 산에 올라가 토끼 한 마리를 잡아서 돌아올 때였다. 소년은 그들이 오두막 입구에서 교희와 무슨 얘기인가를 주고받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모두 중이었고 붉은 가사를 걸치고 있었다. 머리에는 둥근 모자를 썼다. 소년으로서는 처음 보는 복장들이었다. 소년은 아는 것이 많지 않았지만 그들이 중화인들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그들은 라마승이라 불리는 이국의 승려들이었다. 그들은 교희와 안면이 있는 사이인 것 같았다. 서로 몇 마디 얘기를 주고받더니 언성이 높아졌다. 그리고 이윽고 손질을 하며 싸우기 시작했다. 소년은 그때 처음으로 교희가 무공을 할 줄 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도 평범한 수준은 넘는 것 같았다. 소년은 지금까지 무공을 할 줄 안다고 큰소리치는 위인들을 여럿 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시정의 파락호들이었다. 몇 가지 권각술을 몸에 익혀 큰소리를 치고 있었지만 그 수준은 참으로 가소로운 것이었다. 하지만 소년은 그래도 그들이 부러워 그 하잘것없는 권각술을 사정하여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교희와 라마승들이 나누고 있는 무공은 그런 단순한 차원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들은 새처럼 날렵했으며 맹수처럼 사나웠다. 그들의 손짓 하나하나에 휙휙 바람소리가 났으며 발길질 하나에도 살기가 넘치고 있었다. 그것은 소년이 평생 처음 보는 흥미진진한 광경이었다. 만일 그 싸움에서 교희가 이기기만 했더라도 소년이 지금처럼 가슴을 졸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교희는 그들과 상당히 오랜 시간을 싸웠지만 결국은 패하고 말았다. 하기야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우선 셋이나 되지 않았던가. 셋이나 되는 사람이 연약한 여자 하나를 상대로 힘을 모아 싸운다는 것 자체가 소년이 보기에는 비겁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결국 교희는 라마승한테 주먹을 얻어맞고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라마승들은 그녀를 끌고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한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 * * * 소년은 안타까움으로 발을 굴렀다. '야단이다. 어떻게 해서든 누님을 구해야만 하는데…….' 교굉에게서 돈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지금의 소년에게는 그런 것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소년은 그 동안 함께 지내면서 교희와 정이 들었다. 정말로 친누님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 교희가 저 안에서 무슨 봉변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무작정 구경만 할 수는 없었다. 그때 소년의 눈에 무엇인가가 들어왔다. 그것은 오두막 곁에 쌓아놓은 장작더미였다. 사냥꾼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장작을 마련해 놓고 있었고 그것이 오두막 벽에 가득 쌓여 있었던 것이다. "옳지." 소년의 머리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소년은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움직였다. 날렵하게 오두막으로 다가간 소년은 주저하지 않고 마른풀을 모아 장작 아래에 놓았다. 서둘러야 한다. 한시가 급하다. "악!" 그런 중에도 오두막 안에서는 여전히 교희의 비명이 들려오고 있었다. 소년은 품에서 화석을 꺼냈다. 화석을 작은 쇠붙이에 치는 소년의 손길이 떨렸다. 그러나 소년은 화석을 치는 소리가 예민한 라마승들에게 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마침내 불씨가 마른풀에 옮겨 붙었다. 소년은 허리를 굽히고 후후 입김을 불기 시작했다. 불을 장작에 옮겨 붙이려는 것이다. 설마 오두막에 불이 붙으면 제까짓 것들이 나오지 않고 배기나 싶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노성이 들리더니 소년이 미처 돌아보기도 전에 눈앞에 불이 번쩍했다. "이놈이!" "윽!" 소년은 어이없게도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가 쿵, 소리를 내며 나가떨어졌다. 언제 나타났는지 소년의 앞에 라마승 하나가 버티고 있었다. "요놈, 요 쥐새끼 같은 놈이!" 라마승은 막 붙기 시작한 불을 발로 비벼 끄더니 소년에게로 성큼 다가왔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소년의 몸이 다시 떠올랐다 떨어졌다. 라마승의 무지막지한 발길질이 옆구리를 강타한 것이다. 소년은 비명소리도 내지 못하고 몸을 새우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숨이 턱턱 막히면서 지극한 고통이 덮쳐왔다. 아마도 갈빗대가 두어 개는 부러졌을 것이다. "무슨 일인가?" 안에서 웃통을 벗어부친 라마승 하나가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아, 글쎄 요놈이 집에 불을 지르려고 하지 않나. 보아 하니 그 계집과 일행인 것 같은데." "흐흐…… 꼴에 계집을 구해보겠단 말이지." 두 번째 라마승이 음침한 미소를 흘렸다. "그렇다면 잘 됐군. 이 요사한 계집이 무슨 꼴을 당하는지 구경을 시켜주지. 그런 뒤에 연놈을 한꺼번에 죽여주는 거야." "그거 재미있겠군." 안에서 다시 하나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세 번째 라마승이 걸어나왔다. 그는 손에 검은 털 같은 것을 잔뜩 쥐고 있었는데 그것은 여인의 머리털이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 교희가 개처럼 끌려 나오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그런 몸으로 라마승에게 질질 끌려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저, 저놈들이……." 그 광경을 본 소년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소년은 이를 갈면서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얌전히 있어." 다시 발길질이 날아왔다. 이번의 발길질은 아까보다도 더 무지막지한 것이었다. 소년이 다시 바닥을 굴렀다. 소년은 순간적으로 숨통이 막혀 움직이지 못했다. "아악!" 소년은 눈을 떴다. 라마승 하나가 교희를 덮어누르고 있었다. 그녀는 안간힘을 쓰며 버둥대고 있었으나 라마승의 완력을 당해 낸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라마승은 환한 대낮에 여럿이 보는 앞에서 그런 짓을 벌인다는 것에 색다른 쾌감을 느끼는지 히죽히죽 웃으며 교희의 알몸을 마구 유린하고 있었다. "아아……." 교희의 신음소리가 점점 가늘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라마승의 억센 손이 젖가슴을 마구 주무르는 데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터진 입술에는 피가 흐르고 고개를 돌린 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그 감은 눈썹 사이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굴러 내렸다. 라마승 하나는 그 옆에서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었고 다른 하나는 소년의 옆에 있었다. 둘 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기대로 넋이 반쯤은 나간 것 같았다. 소년이 움직였다. 소년은 믿어지지 않는 힘으로 바닥을 기어 옆에 서 있는 라마승의 다리를 부둥켜 안았다. 그리고 입을 벌려 이빨을 깊이 박아넣었다. "억!" 라마승이 비명을 지르더니 발을 들어 소년을 걷어찼다. 소년의 몸이 떼구루루 굴렀다. 라마승이 시뻘게진 얼굴로 씩씩거리며 소년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요 쥐방울만한 놈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군." 라마승은 더는 생각해 볼 것도 없다는 듯 커다란 손바닥을 펴 소년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의 손에는 무시무시한 진력이 담겨 있었다. 바야흐로 소년의 머리가 두부처럼 부서질 판이었다. 펑!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라마승이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의 안색이 돌변하는 것으로 보아 뭔가 손해를 입은 모양이었다. "누구냐?" "짐승 같은 것들." 소년은 자꾸만 무겁게 감기는 눈을 억지로 열어 소리가 나는 곳을 보았다. 한 청년이 서 있었다. 키가 컸으며 얼굴은 여자처럼 곱상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특이하게도 이 여름에 어울리지 않게 두꺼운 겨울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안색이 파리한 것이 몹시 피로해 보였다. 그러나 그의 눈만은 살아서 무서운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명색이 불자라는 것들이 백주에 이 무슨 해괴한 짓이냐?" 청년의 입에서 준엄한 꾸짖음이 터져나왔다. 비록 생김새는 여자처럼 곱상했지만 청년의 음성에는 감히 범할 수 없는 위엄이 깃들어 있었다. 막 바지춤을 끄르고 여인을 찍어누르려던 라마승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 곁에서 구경을 하고 있던 또 하나의 라마승도 몸을 돌리고 있었다. "어디서 굴러온 개뼈다귀냐?" 처음의 라마승이 청년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그러나 그는 아까 당한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 선뜻 달려들지는 않았다. 분노가 이는 청년의 눈이 알몸으로 죽은 듯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여인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그 여인을 놔두고 어서 가거라. 너희들과 손질을 하고 싶지 않다." "흥, 이 부처님들에게 감히 그런 말을 지껄이다니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처음의 라마승이 청년에게로 와락 달려들었다. 그는 어느새 검은 염주를 꺼내들고 있었는데 그걸 무기삼아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청년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소년은 보았다. 라마승이 성난 표범처럼 달려드는 것을. 그리고 청년이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서며 주먹을 휘두르는 것을. 그것은 아주 평범한 주먹질로 마치 장난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라마승은 피하지 못하고 그 주먹에 얼굴을 얻어맞고 말았다. '바보로구나. 저런 주먹에 맞다니!' 그러나 소년은 그 같은 생각을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라마승이 부러진 이를 뱉어내며 짐승처럼 청년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청년이 주먹을 다시 뻗었다. 아까와 똑같은 주먹질이었다. 그리고 소년은 이번에는 라마승이 고개를 틀어 주먹을 피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 주먹이 기묘한 각도로 틀어지더니 라마승의 얼굴을 강타했다. '저, 저럴 수가…….' 소년의 놀라움은 컸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란 것은 라마승들이었다. "이노옴." "죽어라!" 두 명의 라마승이 양쪽에서 달려들고 있었다. 그들은 각각 손에 염주를 들고 있었는데 무서운 기세로 덮쳐들면서 그 염주를 흔들었다. 그러자 염주알이 가닥가닥 흩어지며 화살처럼 쏘아져오는 것이 아닌가! "앗!" 소년이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크윽!" 답답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소년은 청년이 온몸에 염주가 박혀 죽은 줄로만 알았다. 그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그토록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면서 염주를 쏘아냈으니 신선이라도 피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눈을 뜬 소년의 시야에 너무도 놀라운 광경이 들어왔다. 청년은 여전히 그 자리에 버티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청년의 손에 검은빛이 나는 긴 창이 들려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앞에 세 명의 라마승들이 쓰러져 있었다. 꿈틀거리며 신음을 흘리는 것으로 보아 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양쪽 어깨에는 하나같이 동전만한 구멍이 뚫려 있었으며 그리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다. '사람이 아니다.' 소년은 너무 놀라 감탄도 할 수 없었다. 분명 그의 눈으로 보았건만 이 모든 일이 믿어지지 않았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라마승들이 꽁지 빠지게 달아난 후, 청년이 소년의 곁으로 다가왔다. "얘야, 괜찮으냐?" 조금 전 그토록 무서운 기세를 떨쳤던 것과는 달리 청년의 음성은 매우 부드러운 것이었다. 그 말에 정신을 차린 소년이 힘차게 몸을 일으켰다. "보다시피 전 아무렇지 않습니다." 소년이 옷에 묻은 흙을 툭툭 털었다. 그러나 말과는 달리 소년은 얼굴을 찡그리며 아, 하고 신음을 흘렸다. 무리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얻어맞은 옆구리가 저려왔던 것이다. 그러나 소년은 씩 웃고 있었다. "매 맞는 데는 이골이 난 몸이거든요. 이 정도로는 끄떡없습니다." "좋구나." 무엇이 좋은 건지는 몰라도 청년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보다 누님을 좀……." "아!" 그제야 여인에게로 관심이 쏠린 청년이 몸을 날렸다. 청년은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여인의 곁으로 다가갔다. '대단하군.' 이미 청년의 능력을 알고 있는 소년이었지만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청년은 알몸을 내던진 채 의식을 잃고 있는 여인을 보고 잠시 망설였다. 감히 여인의 몸에 손을 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구경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겁니까?" 뒤에서 소년이 말했다. 그제야 청년은 몸을 숙여 여인의 어깨를 가만가만 흔들었다. "이 보십시오." 반짝! 여인이 눈을 떴다. 여인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청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안심하십시오, 누님." 그 모양을 뒤에서 보고 있던 소년이 불쑥 말을 던졌다. "다행히 그분이 누님을 구해주셨습니다. 누님은 아무 일 없으니 마음놓으십시오." 그 말이 받아들여졌음인가. 교희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솟았다. 교희는 고개를 돌린 채 흐느끼고 있었다. 알몸으로 사지를 내던진 채 서럽게 흐느끼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처연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그녀의 울음이 길어짐에 따라 하얀 어깨가 마냥 요동쳤다. 그 모양을 보고 있던 청년이 무릎을 꿇으며 여인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그만 고정하십시오. 다행히 악승들은 물러갔습니다." "흑흑, 공자……." 교희의 울음이 더욱 거세졌다. 그녀는 이제 청년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본격적으로 헤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알몸의 여인이 젊은 청년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광경은 기이하기 짝이 없어서 누가 보았다면 오해하기 알맞은 광경이었다. 그러나 다행히 보는 사람은 없었다. 청년은 난감한지 교희의 어깨를 가만가만 쓰다듬고 있었다. 그러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겉옷을 벗어 그녀의 알몸을 덮어주었다. 그때였다. 우렁찬 고함과 함께 한광이 청년의 몸을 덮쳐왔다. "이놈, 무슨 짓을 하는 거냐?" '핫!' 놀란 청년이 앉은 자세 그대로 뒤로 주르르 물러났다. 그런 청년의 동작은 신속하기 그지없어서 간신히 한광을 피해냈다. 그러나 한광은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연속하여 날카로운 기세로 청년을 덮쳐가는 것이 아닌가! 청년은 미처 자세를 바로잡을 사이도 없이 연속하여 오 보를 물러서서 간신히 한광의 범위에서 벗어났다. 그것은 지극히 빠른 시간에 일어난 사건으로 공격을 하는 자나 공격을 피하는 청년이나 쾌속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이윽고 한광이 사라지며 한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강인한 모습의 청년으로 손에는 도를 들고 있었으며 살기 등등한 눈으로 흑의청년을 노려보았다. "이놈, 감히 내 동생을 희롱하다니!" 청년이 노기 등등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교형님, 그건 오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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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광경을 보고 정신을 못 차리던 소년이 그제야 다급히 소리쳤다. 청년은 교굉으로 바로 여인의 오빠였던 것이다. 그러나 교굉은 소년의 고함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제법 재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