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2 - 1편 (1/16)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본문 바로가기

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2 - 1편 (1/16)

💬 0 👁 3
☰ 목록
책갈피와 음성 읽기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대동기문 완역본 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하) 편저자:강효석 역자:권영대, 이정섭, 조명근 차례 대동기문 서 1.
예론이 당쟁으로 노정승의 몸으로 아버지의 치매를 간병한 효자--조익 친구간이라도 주지 않는 것은 절대 강요하지 말라고 훈계한--심지원 신의를 잃으면 세상에 설 수 없다고 혼인 약속을 지킨--박서 승문원 정자에게 종이와 벼루를 갖고 오게 한--정태화 어여뿐 기생의 유혹으로 인생의 진로가 바뀐--오성군 국수로서 시골 하수에게 당한--덕원령 임금이 내린 명을 받들 수 없다고 한--이경휘 효종의 제삿날 하루 종일 통곡한--송 장군 의로운 신하의 울음소리에 여름서리가 내린다고 한--김홍욱 심양에서 봉림대군의 시중을 든 영리한--논학 불상에 고기를 문지르고 그날 밤에 죽은--어느 선비 꿈을 통해서 전생의 인연을 만난 평안 감사--유심 천문을 잘보아 경술년 기근을 재상에게 당부한--김시진 살아서 백도요, 죽어서 대제학이 된--정두경 꿈에 신덕왕후 강씨를 만난--권유 한 쌍의 학이 양 어깨에 내려앉은 꿈의 주인공--신천익 늦팔자가 좋은--조계원 계속 일곱 대가 골고루 수를 누린--이의전 집안 복이 과하면 반드시 재앙이 따른다고 경고한--정유성 국법에 따라 연좌되어 죽는 것이 옳다고 한--허적 금관자 대신 쇠뿔로 된 관자를 한 재상--송시열 태어날 때 천인이 산구를 보내 온--송준길 산적 두목으로부터 목숨과 재물과 여인을 얻은--이완 순가의 재치로 평안 병사까지 한--이무 병사의 청을 군명으로 들어주지 않은--조석윤 두 아들로부터 술주정 행패를 당한--민정중 나이 겨우 일곱에 피난길의 식구를 모두 살림--민유중 목소리만 들어보고도 죽음을 예견한--심만 앞을 내다보고 난세에 신중한 처신을 한--신정 재주가 없어 백이전을 10만 번 읽은 억만재의--김득신 시재가 뛰어나 까다로운 운자에 강한--홍석기 전서에 동방 일인자--허목 원혼들로부터 철저히 복수당한--김석주 신분이 천한 무인에게 큰 교훈을 얻은--정재숭 유응부의 계시를 받은 숙종조의 충신--오두인 친국을 받으면서 임금에게 간한--이세화 '공의 힘으로 윤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면했다'고 칭송받은--박태보 한번 내뱉은 '말'은 달리는 '말'로도 못 따라 잡는다고 한--이현조 지혜로운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았던--윤휴 과거 급제를 기뻐하다 장인으로부터 크게 꾸중을 들은--권변 꿈에 생사당을 가느라고 임금 앞에서 졸았던--이민서 한쪽 다리가 잘린 뒤 더욱 출세한--윤지완 시골 선비에게 속아 급제시킨 상사관--김진규 기생들로 하여금 누추한 이름을 남기게 한--한지 남을 돕는 일로 즐거움을 삼은--임준원 2.
기사환국과 신임사화 일본 땅에서 제주 귤을 먹은--신유한 남한산성이 함락되자 배나무를 안고 통곡한--유혁연 상복 차림으로 밭을 간--최신 서북인 출신으로 최초로 충청 병사가 된--전백록 늦게 글을 배워 출세한 무인--전종영 대를 이어 학업을 연마하여 훌륭한 선비가 된--윤거형 제비를 시제로 하여 대제학에 뽑힌--권유 숨차 헐떡이는 소를 보고 일평생 소고기를 먹지 않은--김주신 착한 끝은 있는가? 늦팔자가 활짝 핀--김우항과 권 참봉 시를 보고 작자의 미래를 점친--남용익 귀양가면 그곳에 술이 있느냐고 물은--오도일 덕천에 귀양 가서 관아의 뜰을 청소한--이관명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있다고 할 만한--윤지술 의사의 피로 죽어서 사람을 감복시킨--임창 황룡이 버드나무에 걸려 있는 꿈을 꾸고 장원 급제한--이만성 관상을 보면 기이하게 들어맞는--김창흡 거짓말을 한 아전을 도와준--조태채 '양'자 때문에 화를 당한--이이명 참형당할 때 휜 기운이 목에서 나와 하늘에 뻗친--이건명 백수의 노신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세제책립을 반대한--조태구 학질이 떨어질 정도로 위엄이 높던--이광좌 왕의 총애를 받는 후궁의 욕심을 꺾은--신임 목호룡의 기를 꺽은 비파의 명인--김성기 몹시 어둔하여 서당의 스승조차 포기하려 했던--윤봉구 꿈에 하늘로부터 난초화분을 받고 출세한--이재 숙질이 변란에 항거하여 나라를 위해 몸바친--이봉상 30년 묵은 옥사를 처결하고도 애통해 한--황인검 거지와 어사를 분별할 줄 아는 어린 기생에게 감동된--이광덕 체통과 예법을 잃은 감사를 탄핵한--김굉 대나무 찍은 뾰족한 끝을 분별하여 잃은 돈을 찾아준--고유 담을 뛰어넘게 하여 폐세제 전교를 거두게 한--송인명 선정을 펴 삼한을 이룬--최규서 끝내 이름을 고치지 않은--정호 돈피갖옷을 벗어 정순왕후에게 바친--이사관 3.
탕평과 선비들의 의리 사적으로 원수지간이나 공적으로는 도움을 준--이종성 소를 타고 온 객을 보고 초헌에서 내린--윤급 영조의 육상궁 참배를 반대하다 처형될 뻔한--조중회 관아에 불을 질러 잃어버린 병부를 찾은--이만원 삼종제수의 꿈 징조로 문과에 급제한--이태중 원수에게 은인이 된--박문수 어영대장의 마부를 가둔 성균관 장의--서유망 임금이 신하에게 농을 하는 것은 불가하다는--송명흠 눈과 코가 베어졌어도 역신을 꾸짖은--이술원 막하의 비장으로 인하여 아들 하나를 보전한--이사성 못쓰게 된 한 푼을 위하여 두 푼을 들인--정홍순 윗사람의 부당한 지시를 완강히 거절한--양완 하찮은 물건에도 정해진 운명이 있다는 것을 깨우친--이성원 기생 덕분에 화를 면한--조운규 나무를 실은 남의 소를 타고 가서 급제한--윤필병 처자가 정절을 지킨--김하재 4.
변란과 풍운의 국운 교만한 종사관을 반란을 평정시킨 인재로 만든--이창운 '꽃이 진 뒤에 그 위에 다시 피는 꽃'의 뜻을 알고 있었던--채제공 어머니의 병구환 때문에 벽파를 붙좇은--심환지 해흥군의 넋을 머리에 인--김이소 큰 뱀이 배 위에 서려 있었던--김종수 벼슬길에 오르는 것을 비난한 갈처사를 의로운 친구로 사귄--김유근 얼굴은 지독히 못생겼어도 복이 많았던--윤명렬 임금이 내려준 집을 거절한--윤득부 스승의 꿈대로 우부빈객이 된--이의철 성실과 솔직함으로 끝내 아내를 효부로 만든--이규복 귀신도 꺼려하는 억센 기상의--김정묵 과장의 문란함을 보고 다시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은--이직보 사치하고 망하지 않은 사람 없다고 책망한--김용겸 제자에게 좌우명이 될 시를 지어 경계한--정종로 술과 시를 즐기며 경치 좋은 곳에서 숨어 산--이양연 수절하는 기생 무운을 사랑한--이경무 순라군으로 시문을 잘하여 어전에까지 불려간--왕태 도둑에게 해진 갓을 되돌려 받은--정민수 소탈한 천성을 타고난 화가--김홍도 산은 그리고 물은 그리지 않은 산수화가--최북 대나무와 난초를 잘 그린--임희지 닥쳐 올 일을 미리 짐작하고 대처한--이서구 장례 때 백학이 상여를 인도한--이제로 도둑도 감복하여 종이 되겠다고 자청하게 한--홍기섭 용호영의 장교를 곤장으로 다스린--임익상 솔개가 병아리 채가는 것을 보고 운명을 점친--임치종 관서지방에 발길을 끊었던--김삿갓 의주에서 꿈에 선조대왕을 본--임백수 필명은 천하에 떨쳤으나 운명이 기구했던--김정희 노루가 간 길을 따라가서 사형을 면한--이인응 자식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홍순목 외국과의 개방과 통상 논의를 맨 먼저 꺼낸--박규수 효성으로 돌아간 아버지의 초상화를 얻게 된--이희익 민 중전을 변장시켜 장호원까지 피신시킨--홍계훈 피묻은 옷 곁에 대나무가 돋아났던--민영환 이 책을 읽고 대동기문 서 오확(전국시대 진나라의 역사)은 무게 천근을 드는 장사였지만 자기의 몸은 들지 못하였으니 어찌하여 물건을 드는데 강하고 자신을 드는 데는 약하였던가.
이주의 시력은 가을 털 끝은 살필 수 있어도 자신의 눈썹은 볼 수 없었으니 어찌하여 털 끝을 보는 데는 밝고 눈썹을 보는 데는 어두웠던가.
이는 형체에 구애된 때문이다.
초나라 무당은 남을 위하는 데는 혼령도 불러내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재앙도 물리칠 수 없었고, 진나라 의원은 남의 목숨은 살려냈지만 자신의 병은 낫게 하지 못하였다.
어찌하여 남에겐 신비한 효험을 보이면서 자신에겐 보이지 못했을까.
이는 사심에 가리워진 때문이다.
노나라에 살면서 "춘추"(노나라의 역사서)는 읽지 않고 "승"(진나라의 역사서)을 읽는다거나 송나라에 살면서 장보(송나라 의관)를 착용하지 않고 깃 털모자를 쓴다면 이는 형체에 구애된 때문일까, 아니면 사심에 가리워진 때문일까.
여기에서 우리는 어리석고 미혹되기 짝이 없음을 느낄 뿐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제점은 어디에 있을까? 새것을 좋아하고 기이함을 숭상하며 우리 것은 업신여기고 남의 것을 배우기에 급급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주, 진, 한, 당 등 중국 역사에 대해서는 부녀자나 아이들까지도 거침없이 설명하면서 단군, 기자 등 우리 역사에 대해서는 노숙한 선비를 자처하는 사람들까지도 상세히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세대를 내려올수록 더욱 어렵고 우리와 가까운 일일수록 더욱 소홀하다.
의로움과 이로움을 가리지 못하여 도척을 순임금으로 잘못 아는가 하면 아름다움과 추악함을 혼동하여 은을 철이라 우기며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하며 주황색을 자주색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있다.
아니 이러한 자들은 부지기수로 많다.
사람의 이름은 알면서 그 사람의 산 시대는 알지 못하는가 하면, 그 사건은 알면서 그 사건이 누구에 의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며, 성은 알면서 본관을 알지 못하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심한 경우에는 자기 조상에 대한 역사는 캄캄하여 누가 물으면 아예 입도 벌리지 못하고 딴전만 피다가 외국 역사에 대해 말하게 되면 산바람이 나서 바다 건너 멀고먼 불모지까지도 마치 손바닥을 들여다보고 말하듯 소상하게 설명하며 그칠 줄을 모른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병폐인가? 우리들의 의문은 여기서 더욱 심하게 된다.
나의 벗 금천자는 이 땅 대동에서 태어나 이 땅에서 늙은 사람이다.
언젠가 그는 내게 말하기를, 고려 이전의 일은 이미 기록이 정비되어 있으니 두어두고, 조선 태조부터 고종까지 사이에 일어난 기괴한 일들을 기록하여 4권 1책으로 만들어 이름을 "대동기문"으로 했다고 하였다.
또 나도 이 땅 사람이란 이유로 그는 나에게 서문을 쓰도록 하였다.
이 책은 기이한 일을 실은 책이므로 괴이한 이야기도 있고 익살맞은 사실도 실렸으며 야인의 사적도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역사 속의 패사라면 말이 되지만 그저 평범한 일상적인 글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 이 속엔 이름난 공과 큰 업적에 관한 이야기며 뛰어난 충신, 효자 이야기며 숭고한 도학과 빛나는 문학 이야기가 실려 있으니 어찌 단순한 한낱 패사라고만 할 수 있겠는가.
물론 그 속엔 아름다운 이야기와 추악한 이야기가 함께 실려 있고 좋은 이야기와 나쁜 이야기가 섞여 있으니 그 가치 판단은 마땅히 독자가 해야 한다.
만약 새것을 좋아하고 우리 것을 소홀히 여기는 자가 곁에 있다가 하하 웃으면서 이 책이 진부하면 진부했지 기이할 게 무엇이냐고 비웃는다면, 아마 자네는 틀림없이 송나라 사람은 송나라 관을 써야 되고 노나라 사람은 노나라 역사를 읽어야 하듯이 우리나라 사람은 노나라 역사를 읽어야 하듯이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나라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고 말할 걸세.
을축년(1925) 죽취일(음력 5월 13일, 대를 심는 날) 번천 김영한이 서문을 쓰다.
1.
예론이 당쟁으로 효종이 승하하자 현종 원년에(1669)에 효종의 어머니인 자의대비의 복상문제로 예론이 일어나자 기년설(만 1년)로 해야 하는지 3년설로 해야 하는지를 놓고 남인과 서인 사이에 예론이 일어나 당쟁과 정권 다툼이 치열해졌다.
노정승의 몸으로 아버지의 치매를 간병한 효자--조익 조익(1579__1655)의 본관은 풍양이고 자는 비경, 호는 포저다.
어렸을 때 월정 윤근수에게 글을 배웠으며, 특히 예학에 조예가 깊었다.
선조 35년(1602)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효종 원년(1649) 우의정에 올랐으며, 벼슬에서 물러난 뒤 기로소에 들어갔다.
77세에 죽었으며, 시호는 문효다.
그는 50년 동안 벼슬을 하였지만 변변한 집간과 토지가 없을 정도로 청렴하였다.
89세의 고령으로 치매에 걸린 아버지 영중이 늘 변비로 고생하였는데, 나이 60이 넘은 노정승의 몸으로 그는 손가락에 꿀을 발라서 아버지의 변을 직접 긁어내곤 하였다.
그는 병중에 있는 아버지와 한방을 썼으며, 치매에 걸린 아버지는 그 아들을 보고 항상 사촌이라고 불렀다.
또 아버지가 자리 밑에 감추어 두었던 약과를 꺼내어 주면 조익은 더러움도 개의하지 않고 주는 대로 받아서 먼지도 한번 터는 일 없이 맛있게 먹어 아버지를 기쁘게 하였다.
친구간이라도 주지 않는 것은 절대 강요하지 말라고 훈계한--심지원 심지원(1593__1662)의 본관은 청송이고 자는 원지, 호는 만사다.
광해 3년(1617)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장원을 한 이영구가 재생(성균관이나 향교에서 숙식을 하며 학업을 닦던 유생)들을 협박하여 인목대비 폐비를 주장하려는 음모를 미리 알아차리고 고향 영천으로 낙향하였다.
그는 대북의 영수인 이이첨과는 절친한 관계였으나 인목대비 폐위의 일엔 결코 찬동하지 않았기 대문이다.
이 때 수몽 정엽 역시 벼슬에서 물러나 한마을에 은거하던 중이었다.
정엽은 그를 한번 만나 보자 즉시 마음을 허락하는 친분을 맺게 되었다.
인조반정이 일어나던 날 밤에 심지원은 정엽과 더불어 언덕에 올라가서 서울 쪽을 바라보았다.
타오르는 불빛이 온통 하늘을 뒤덮자 심지원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탄식하였다. "우리 임금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 이 때 정엽은 약간 놀랍다는 표정으로 말하였다. "그대의 충의가 이렇게 돈독한 줄은 미처 몰랐구려!" 그 뒤에 심지원이 남상(홍문관 정자(정9품의 벼슬)의 별칭)으로 천거되었는데 사실은 정엽의 추천이었다고 한다.
언젠가 심지원은 자제들을 모아 놓고 당부하였다. "내가 홍문관 교리로 있을 적에 동료의 집에 놀러 간 일이 있는데, 그 친구의 책상 위에 달력 백 부가 쌓여 있는 것을 보자 미처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수십 수를 얼른 집어 내 소매 속에 집어넣고는 친구를 보고 '이 달력을 갖고 가서 마을 사람들이 달라고 하면 주어야지' 하고 얼떨결에 이야기하였더니, 그 친구는 얼굴이 상기 된 채 어떨 줄 몰라 했다.
아마도 안 된다고 즉시 빼앗기도 난처하고 그렇다고 그냥 빼앗기기도 아깝고 한 그런 복잡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실은 그 때 나도 마찬가지였다.
도로 책상 위에 내려놓기도 어렵고 그대로 갖고 가지도 어려워 실로 난감한 순간을 겪어야 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등에서 식은 땀이 날 지경이란다.
그런 일이 있은 뒤로 나는 남이 주지 않는 물건은 절대로 갖는 일이 없었다.
너희들도 내가 겪은 이 일을 거울 삼아 행동하기 바란다.
신의를 잃으면 세상에 설 수 없다고 혼인 약속을 지킨--박서 박서(?__?)의 본관은 밀양이고 자는 상지, 호는 현계다.
박서에게는 어릴 적에 이미 혼인을 언약한 처녀가 있었는데 열병을 앓고 난 뒤에 그만 실명하여 장님이 되었다는 소문이 났다.
끔찍한 소문에 놀란 박서의 부모는 혼약을 파기하고 다른 규수를 물색하기로 하자, 정작 박서는 부모를 설득하였다. "병 때문에 실명한 것은 본인의 잘못이 아닙니다.
비록 장님이 되었지만 약속은 지켜야 합니다.
차라리 장님 아내와 함께 사는 것이 낫지 신의를 잃으면 세상에 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들 박서의 말을 기특하게 여긴 부모는 박서의 청을 받아들여 혼약을 파기하고 않고 혼례를 치르게 되었는데, 이 어찌된 일인지 초례청에 들어 선 신부는 장님이 아니지 않은가! 두 집의 혼인을 막으려는 자가 퍼뜨린 헛소문이었던 것이다.
승문원 정자에게 종이와 벼루를 갖고 오게 한--정태화 정태화(1602__1673)의 본관은 동래이고 자는 유춘, 호는 양파다.
인조 2년(1624) 진사시, 6년(1628) 문과에 각각 급제하였으며, 문과엔 아우 치화와 나란히 합격하여 장안에 화젯거리가 되었다.
1635년에 북방 경비를 위해 설치된 원수부의 종사관이 되고, 이듬해인 병자년 정월에 토산에 진을 치고 청나라 군대와 접전하였다.
이때 원수는 청나라 대군의 위세에 겁을 먹고 도망하고 아군의 진영은 형편없이 무너졌다.
정태화는 패잔병을 수습하여 사력을 다해 싸움으로써 적에게 많은 타격을 가했다.
전공이 조정에 알려지자 그는 사헌부 집의로 승진하였다.
평안 감사로 있을 때의 일이다.
연위사(중국 사신이 오갈 때 그들을 접대하는 사신) 최내길(최명길의 형)이 교자를 타고 평양에 왔다.
정태화는 즉시 이 사실을 위에 보고하고 교자를 타고 역을 통과하도록 묵인한 관리들을 문책하였다(병자호란으로 말미암아 극도로 궁핍해진 지방 재정 형편을 감안, 연위사의 교자 사용을 금지하던 때였다).
우의정 최명길이 정태화의 처사에 매우 화가 치밀어 불만을 토로했다. "공이 우리 형님에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조금 후엔 생각을 고쳐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가 조금 후엔 생각을 고쳐서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가 행한 일은 공적인 처사요 내가 화를 낸 것은 사적인 감정이다.
사적인 감정으로 공적인 처사에 성을 내는 일이 말이 되겠는가!" 그 뒤로 최명길은 이 일을 다시 거론하는 일이 없었다.
정태화가 정승으로 있고 이세화가 승문원 정자로 있을 때의 일이다.
공무로 정승을 방문한 이세화가 정승화가 정승이 보는 앞에서 종이와 벼루를 갖고 오도록 하인에게 시켰다.
이를 본 정태화는 정자 이세화에게 명했다. "하인에게 시키지 말고 정자가 직접 가지고 오라!" 이세화의 얼굴엔 모욕당한 기본 나쁜 기색이 역력하였다.
훗날 이세화는 정태화의 조카인 정재해에게 그 당시의 섭섭했던 심정을 토로하였다. "상공이 나에게 하인의 할 일을 시키다니 그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그러자 정재해가 상세히 해명하여 주었다. "상공의 지위란 일반 백관들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네.
내 예를 하나 들지.
병조판서나 호조판서 자리가 비게 되면 이조 판서가 직접 추천서를 가지고 와서 대신에게 결재를 올리는데 이 때 벼루는 이조판서가 손수 들고 온다네.
정승의 지위란 이러한 것이거늘 불과 9품직을 벗어나지 못하는 승문원 정자가 붓과 벼루를 좀 들고 온들 그것이 무슨 큰 대수인가.
이 사람아!" 정재해의 설명을 듣고 난 이세화는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시골에서 생장한 촌놈이라 조정의 예의를 알 턱이 있는가? 만약 오늘 이러한 설명을 듣지 않았던들 끝내 내 잘못을 깨닫지 못할 뻔하였네." 이세화는 극구 사과하였으며 그 뒤부터 조종의 모든6 예절과 전례를 두루 익혀 몸소 모범을 보였다.
어여뿐 기생의 유혹으로 인생의 진로가 바뀐--오성군 오성군(?__?)은 종실로서 주색으로 일생을 보낸 당대의 호걸로 이름난 사람이다.
그러나 그런 향락생활도 젊은 시절 한때일 뿐 그도 이제 80 고령의 늙은이가 되어 지난날을 조용히 돌이켜볼 때가 되었다.
누군가 그에게 물었다. "젊은 시절을 조직 술과 여자로 일관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유혹에서 도저히 벗어나지 못한 때문인가, 아니면 천성이 그것을 좋아한 때문인가?" 묻는 말에 대답 한참 동안 잠자코 있다가 긴 한숨을 푸욱 내쉬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나는 본시 어릴 적부터 20여세가 될 때까지 계집아이처럼 얌전하기만 하였지.
혹시 누가 쳐다만 보아도 나는 공연히 얼굴이 빨개지고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네.
어느 날 잘 아는 무인이 나를 속이고 유인하는 바람에 그 무인을 따라가보니 그 집은 기생이 있는 술집이었네.
시끄러운 노랫소리, 오고가는 술잔을 보고 심기가 불편하여 나는 즉시 되돌아오려고 했으나 기생들이 애교를 떨며 만류하는 바람에 그만 돌아올 용기를 잃고 말았지.
어여쁜 기생 하나가 나의 눈을 응시하면서 입고 있던 저고리를 벗지 않겠나.
우유빛 같은 속살과 꽃봉오리 같은 그의 유방을 본 나는 그만 정신이 몽롱해져서 결국 그 여인과 잠자리를 함께 하고 말았네.
그런 일이 있은 후로 나는 오로지 주색에 빠져 끝내 헤어나지 못하였다네.
지금 생각하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그 무인 친구 때문에 보게 된 그 여인의 젖가슴 때문일세.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나를 본보기로 삼아 청소년들을 가르쳐서 유흥에 빠지지 않도록 미리미리 조처하는 일이라네." 국수로서 시골 하수에게 당한--덕원령 덕원령(?__?)은 종실로써 바둑에 남다른 재능이 있어 국수의 호칭을 얻었다.
하루 어떤 사람이 마당에 말고삐를 매고 있었다.
덕원이 누구냐고 물으니 그가 대답하였다. "저는 번을 서려고 올라온 향군입니다.
저도 바둑을 무척 좋아합니다.
나으리께서 국수라는 소문을 듣고 이렇게 찾아왔으니 물리치지 마치고 한번 대국해 주시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덕원이 그렇게 하라고 허락해 주니 그 사람은 덕원에게 조건을 제시하였다. "대국에 아무것도 걸지 않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만약 나으리가 지면 소인에게 봄철 양식을 대주시고, 소인이 지면 저기 마당에 매어 둔 말을 나으리께 바치겠습니다."
💬 한 줄 댓글 0
비회원 · 이 글에 하루 1개만 등록 가능
HTML/스크립트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댓글은 최대 120자이며 페이지를 이동하지 않고 바로 등록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Copyright © webstoryboard.com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