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가 물었다. "어찌하여 피해 앉는가?" 정순왕후가 대답하였다. "아비의 이름이 여기에 있는데 어찌 감히 그 자리에 앉겠습니까." 대개 왕비를 간택할 때 그 아버지의 이름을 방석 끝에 썼기 때문이다. 영조가 여러 처녀들에게 물었다. "무엇이 가장 깊은고?" 그러자 어떤 처녀는 산이 깊다고 말하고, 어떤 처녀는 물이 깊다고 말하여 중론이 일치하지 않았는데, 정순황후는 홀로 말하였다. "사람의 마음이 가장 깊습니다." 주상이 그 까닭을 물으니, 정순왕후는 대답하였다. "사물의 깊이는 헤아릴 수 있거니와 사람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주상이 또 물었다. "무슨 꽃이 가장 좋은가?" 그러자 어떤 처녀는 복숭아꽃이 좋다고 말하고, 어떤 처녀는 모란꽃이 좋다고 말하고, 어떤 처녀는 해당화가 좋다고 말하여 대답하는 바가 일치하지 않았다. 이 때 정순왕후가 홀로 말하였다. "목화(면화)가 가장 좋습니다." 주상이 그 까닭을 물으니, 정순왕후는 대답하였다. "다른 꽃은 일시의 좋은 데 지나지 않고 오직 목화는 천하 사람에게 옷을 지어 입혀 따뜻하게 해주는 공이 있습니다." 이 때 마침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주상이 물었다. "월랑의 기왓골이 몇 줄인지 세어보아라." 처녀들이 모두 손가락으로 하나, 둘, 셋, 넷 하며 세었으되, 정순왕후는 머리를 숙이고 침묵하고 앉아 있다가 줄 수를 말하였다. 주상이 물었다. "어찌하여 기왓골이 몇 줄인 줄 아느냐?" 정순왕후가 대답하였다. "처마의 낙숫물을 세어 보았으므로 알았습니다." 주상이 깜짝 놀라며 그를 기이하게 여겼다. 그 이튿날 아침에 채색 무지개가 대궐로부터 일어나서 정순왕후의 세수하는 그릇에 꽂히니, 후비의 덕이 있다 하여 특별히 정궁으로 간택하였다. 장차 입궁하려 할 적에 여관(상궁)이 옷 치수를 재기 위하여 정순왕후에게 돌아앉기를 청하니, 정순왕후가 정색을 하며 말하였다. "너는 돌아앉을 수 없느냐?" 여관이 황공하게 여겼다. 정순왕후가 궁궐에 들어오게 되자, 주상이 말하였다. "옛날 후가 곤궁할 때 돌봐준 사람이 없었는가?' 정순왕후가 대답하였다. "옛날 정묘년(영조 23, 1747)에 서울로 들어오는 도중에 마침 극심한 추위를 만나 장차 동상을 입게 되었는데, 만일 이사관이라는 사람이 돈피갖옷을 벗어 주지 않았으면 지탱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이에 영조가 그를 발탁해 썼는데 그 뒤 14년 만에 덕망이 높아 정승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3. 탕평과 선비들의 의리 "그와 우리 집안은 원수지간인 데 어찌하여 우리집에 오겠습니까?" "공사는 사적인 혐의를 피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이 온 까닭은 무엇이오?" "지금 변무사의 임무를 띠고 연경에 들어가는데 어떻게 하면 무함을 변명하겠소?" 그러자 이종성이 해결책을 일러주었다. 비록 당파는 다를망정 당시 국사의 비중을 쫓아 이종성은 모든 경륜과 지혜를 동원하여 변무사 유척기를 도와주었다. 사적으로 원수지간이나 공적으로는 도움을 준--이종성 이종성(1692__1759)의 본관은 경주이고 자는 자고, 호는 오천이다. 숙종 37년 (1711)에 진사가 되고 영조 3년(1727)에 문과에 급제하고 영조 28년(1752)에 정승에 임명되어 영상에 이르렀다. 영조가 만년에 정순왕후로부터 후사를 이으려는 희망이 간절하여 회임에 도움이 되는 보약을 정순왕후에게 자주 올리도록 하였다. 정순왕후는 성덕이 있어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신이 애기를 가지면 혹 세손(정조를 가리킴)이 임금의 사랑을 잃게 될 것을 염려하여 몰래 약을 다른 곳에 버리고 들지 않았는데 주상은 실로 그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 당시 영조가 문씨 성을 가진 후궁을 귀여워하고 있었는데 이 여자가 몰래 임금의 총애를 독차지할 계략으로 옷으로 배에 덧붙여 마치 아기를 밴 것처럼 꾸미고 아기를 가졌다고 드러내 놓고 말하였다. 그 산월이 되어 몰래 친족에게 부탁하여 민간의 갓 태어난 아이를 구하여 궁중에 들여오게 해서 자기가 낳은 것으로 말하려 하였으니, 그 흉악한 음모는 장차 헤아릴 수 없었다. 한편 이종성이 고향인 장당의 오촌으로 가려 하다가 그 기미를 넌지시 살피고 대삿갓과 도롱이 차림으로 날마다 용산강가에 가서 낚시를 드리우고 있었다. 하루는 석양 때 먼 시골의 무부가 이곳을 지나다가 이종성이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 것을 보고 옆에서 귀고 있는 것이었다. 이종성이 물었다. "그대는 뉘시오?" 시골 무부가 대답하였다. "나는 아무 고을 사람인데, 무과에 급제한 시 10년이 되어도 아직까지 다리 뻗을 길이 없으므로 서울에 올라와서 벼슬을 구하려 합니다." 이종성이 말하였다. "내가 듣건대, 저동 이영부사가 나라의 공권을 장악하였고, 또 남을 구제하는 풍도가 있다 하니, 이번 걸음에 가거든 곧바로 그 집을 찾아가서 그 하인을 찾아 '용산강에서 고기 낚는 노인이 얘기해 보냈다'고 말하면 반드시 유숙시켜줄 것이고, 또 출세하는 길이 열릴 것이다." 그 사람이 기뻐하며 사례하고 곧바로 저동으로 들어가서, 그 노인의 말대로 전하니 모든 것이 조금도 틀림이 없었다. 해가 저문 뒤에 이종성이 집에 돌아와서 그 사람을 불러 만나 보았는데, 그 사람이 그제서야 이종성 대감인 줄을 알고 부복하며 황공하게 여겼다. 이종성이 좋은 말로 타이르고 수일 동안 유숙시킨 뒤에 통화문을 수문장을 시켰다. 하루는 이종성이 무장을 불러 신신당부하였다. "오늘밤 누가 파하고 궁문을 열 적에 반드시 궁비(궁중의 여종)가 붉은 포대기로 함지를 싸서 음식물처럼 이고 들어올 것이다. 네가 곡직을 묻자 말고 수색해 보면 반드시 어린아이가 있을 터이니, 모진 마음을 먹고 손을 대어 한칼에 두 동강이를 내어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네가 죽게 될 것이다." 그 무장이 그날 밤에 명심하고 기다리고 있었더니, 과연 이종성의 말대로 한 궁비가 함지를 이고 들어오므로 불문곡직하고 칼을 휘둘러 죽이니, 온 궁중이 놀라 동요하였다. 이튿날 아침 전정의 국문에 드디어 후궁 문씨의 간악한 계책이 발각되어 같이 모의한 문씨 집안의 족속을 모두 귀양 보내어 죽이고 세손의 자리를 보전하게 되었다. 이종성이 죽은 뒤, 정조가 지어 내려 보낸 제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용산강가에 낚시 드리울 제 기다린 사람 누구였더뇨 또 이러한 구절이 있다. 오월 강가에서 누구를 위하여 지루하게 기다렸던가 이종성이 장단의 오촌에 물러나 있었는데 오촌은 중국으로 가는 사신이 경유하는 곳이었다. 하루는 이종성이 정원을 청소하며 말하였다. "오늘은 유척기가 오게 될 것이다." 자질이 물었다. "그와 우리집안은 서로 원수지간인데 어찌하여 우리집에 오겠습니까?" 이종성이 대답하였다. "공사는 사적인 혐의를 피하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자 동구 밖에 벽제 소리가 들리더니, 유 정승이 과연 이르렀다. 이종성이 병풍으로 마루 사이에 가로막아서 서로 얼굴은 보지 않고 물었다. "공이 온 까닭은 무엇이오?" 유척기가 대답하였다. "지금 변무사의 임무를 띠고 연경에 들어가는데 어떻게 하면 무함을 변명하겠소?" 그러자 이종성이 다음과 같이 일러 주었다. "내가 항상 제삿밥을 좋아하고 있어 아는데, 이웃집에 재가한 여자가 있어 전 남편의 제사를 매우 정성스럽게 지내니 뒤에 얻은 남편이 시기하여 그것을 꾸짖었소. 그 여자가 말하기를, '당신의 말이 잘못되었소. 당신이 불행하게도 죽고 내가 생활이 어려워서 또 개가하면 당신의 제사를 이와 같이 지내지 않겠소'하니, 그 남편이 그 말을 그럴싸하게 여겨 전 남편의 제사를 지내게 하고, 나에게 제삿밥 한 그릇을 주면서 그 사실을 모두 말하기에 나도 그 여자를 기특하게 여겼소." 이종성은 또 말하였다. "내가 금관조복 한 벌을 새로 지은 것을 공에게 줄 터이니, 공은 그 뜻을 유의하기 바라오." 유척기가 그제서야 이종성의 뜻을 알아차리고 떠났다. 연경에 이르러 미리 금관조복으로 갈아입고 청나라 건륭제를 뵈니, 황제가 노하여 물었다. "너희 나라가 대보단(조선시대에 명나라의 태조, 신종, 의종을 제사 지내던 사당으로 숙종 31년 창덕궁에 설치하여 지금까지 전하고 있음) 을 세우고 공복을 아직도 명나라 조정을 잊지 못하니, 어찌 이러한 도리가 있단 말이냐?" 유척기가 이종성의 말대로 비유하여 대답하고, 또 입고 간 금관조복을 가리키며 부복하여 말하였다. "명제의 공복이 이와 같으며 또한 옛말 근본을 잊지 못하므로 폐하지 못합니다." 건륭제가 명제의 금관조복이 화려하고 정제하며 패옥이 쟁그랑쟁그랑 울리는 것을 보고 이어서 분부를 내렸다. "너희 나라가 본디 예의의 나라로 일컬어서 옛 임금을 잊지 않으니 그 뜻이 가상하고 의관문물이 옛날부터 소중화라 일컬어 졌는데, 그 의복을 보니 참으로 거짓말이 아니로다." 건륭제가 특별히 상으로 천리나귀 한 필을 하사하였다. 유척기가 사신의 소임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종성의 뜻에 감사하여 그 당나귀를 오촌 어귀에 매어놓고 알리지 않고 서울에 올라와서 복명하였다. 그 날 이종성은 하인에게 명하여 몇 시경에 동네 어귀에 가면 나귀 한 마리가 매어 있을 테니 끌고 오도록 일렀다. 이종성 대감의 신명함은 온 세상이 경탄하였다. 시호는 문충이다. 소를 타고 온 객을 보고 초헌에서 내린--윤급 윤급(1679__1770)의 본관은 해평이고 호는 근암이다. 오음 윤두수의 후손이며, 일찍이 문과에 급제하였다. 풍채가 좋고 문장을 잘하며 뜻이 또한 높아서 일찍이 남과 가벼이 사귄 적이 없었다. 그가 한성판윤으로 있을 때 한성부의 예하관속들이 모두 말하였다. "오늘날의 세상에 처지나 풍채, 문장과 언론에 있어서 우리 대감보다 앞서는 이가 없다." 하루는 관아의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해진 옷과 허름한 도포차림의 소를 탄 한 사람을 만났는데 두 사람이 서로 만나보게 되자, 한 사람은 초헌에서 내리고 한 사람은 소에서 내려 손을 잡고, 올라온 연유를 물으니 소를 탄 객이 말하였다. "미중(정언 이언세의 자)이 끼니를 거른 지가 이미 사흘이 되었다 하여 어제 우리집에서 마침 환자 받은 쌀이 있으므로 싣고 와서 주었소." 격의없이 환담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하도 의연하여 한성부의 아전들이 모두 경탄하였다. 그런데 소를 탄 객은 곧 부제학 윤심형이었다. 윤심형은 포음 윤봉조의 조카이고 호는 임연이다. 윤급은 벼슬이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영조의 육상궁 참배를 반대하다 처형될 뻔한--조중회 조중회(1711__1782)의 본관은 함안이고 자는 익장이다 도암 이재의 문하에서 수업하고 나이 26세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영조가 세초에 먼저 육상궁(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 등을 모신 사당)에 거동하려 하였다. 조중희가 대신으로 상소하였다. "새해에 태묘를 배알하는 예를 행하지 않고 사묘(사친의 사당)에 먼저 거동하시는 것은 예법에 불가합니다...." 그러자 영조가 크게 노하여 도보로 곧장 홍화문을 나갔다. 이때 창졸간에 당하여 시위와 모시고 따르는 관속과 필요한 준비를 모두 갖추지 못하여 야현을 거쳐 육상궁에 이르러 눈물을 흘리며 하교하였다. "불초한 나 때문에 별세한 어버이에게 욕이 미쳤으니, 무슨 면목으로 다시 신민을 대하겠는가. 내가 자결하겠노라. 군병으로 하여금 창을 잡고 빙둘러 호위하게 하여 대신 이하 조신들을 일체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만일 그들을 들어오게 하면 어영대장은 중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또 이어서 혼자 말하였다. "80 노인이 만일 얼음판 위에 앉아 있으면 오래 못 가서 죽게 될 것이다." 이어서 손발을 눈과 얼음이 얼어붙은 앞 연못의 물에 담갔다. 때가 정월 초라 얼음과 눈이 풀리지 않고 북풍이 매우 차갑고 매서웠다. 백관들이 뒤따라왔으나 군병들의 저지를 받아 들어가지 못하였다. 정조가 당시 세손으로 혼자 모시고 서서 머리를 조아리고 눈물을 흘리며 간하였으나 끝내 듣지 않았다. 조금 뒤에 영조의 옥체가 덜덜 떨리므로 세손이 눈물을 흘리며 다시 간하니 주상은 말하였다. "조중회의 머리를 베어 가지고 오면 내가 환궁하겠다." 세손이 급히 문밖에 나가서 대신을 불러 명을 내렸다. "조중회는 죽을 만한 죄가 없으니 어찌 엄명에 부대끼어 죄없는 신하를 죽일 수 있겠습니까. 저하께서는 애써 성의를 다하여 하늘의 뜻을 돌리시도록 하소서." 그러자 세손이 발을 구르고 울며 말하였다. "종사의 위태로움이 목전에 임박했는데, 대신이 어찌 신하 한 사람을 아껴서 명령을 봉행하지 않소?" 세손과 김상복이 서로 버티고 있는 동안 주상이 냉기를 견디지 못하여 다시 하교하였다. "조중회의 문제는 차치하고 먼저 정청(세자나 의정이 백관을 거느리고 궁정에 이르러 큰일에 대하여 하교를 기다리는 일)을 열어 계사(논죄에 관하여 임금에게 올리는 글)를 들이도록 하라." 대신이 제신들과 함께 계사를 초록하여 드리니, 주상이 그 계사를 보고 찢어서 땅에 던지며 말하였다. "이것은 바로 조중회의 행장이로구나." 제신들이 계사의 초를 고쳐 입계하였다. "어서 나라의 형벌이 바르게 시행되도록 하소서." 그러자 주상이 명하기를 조중회를 멀리 흑산도로 재촉하여 위리안치하게 하고 그날로 떠나보내게 한 후, 이어서 환궁하였다. 그러나 배소인 흑산도에 이르기 전에 조중회를 석방하라는 명이 있었다. 정조가 즉위하자, 특별한 배려로 이조판서에 임명되었다. 시호는 충헌이다. 관아에 불을 질러 잃어버린 병부를 찾은--이만원 이만원(1651__?)의 본관은 연안이고 자는 백춘, 호는 이우당이다. 평안감사로 있을 적에 서윤(한성부와 평양부에 두었던 종4품의 벼슬로 좌, 우윤보다는 아래임)과 서로 화합하지 못하였다. 하루는 병부(군사의 움직임을 신중히 하기 위하여 임금과 지방관이 나누어 가졌던 신표)가 없어졌는데 그 어머니에게 고하였다. "제가 병부를 잃었으니 그 죄가 죽음에 해당합니다. 어찌하겠습니까?" 이를 듣고 어머니가 대책을 일러 주었다. 이튿날 서윤, 도사와 더불어 연광정에서 풍악을 울려 잔치를 벌였는데 갑자기 감영 내아에서 불이 일어났다고 보고하는 것이었다 일어나서 보니, 연기와 불꽃이 이미 하늘에 자욱하였다. 감사가 급히 병부 주머니를 끌러 서윤에게 주며 말하였다. "내가 먼저 불난 곳에 가서 불을 꺼야 할 것이니, 이 병부를 함께 태울 수 없으므로 귀관에게 특별히 부탁하는 것이다." 말을 마치자 곧바로 가버리니, 서윤이 감히 사양하지 못하였다 감사가 감영에 돌아와서 불을 껐는데, 이 불은 일부러 질러서 끈 것이었다. 이어 서윤을 불러 병부 주머니를 찾으니 병부가 과연 들어 있었다. 감사는 태연히 통인을 시켜 병부를 내어 다시 봉하며 말하였다. "이것은 지극히 중요한 것이므로 아무렇게나 관리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러자 그만 서윤의 얼굴빛이 질려 버렸다 한다. 삼종제수의 꿈 징조로 문과에 급제한--이태중 이태중(1694__1756)의 본관은 한산이고 호는 삼산이다. 평안도관찰사로 부임하였을 때의 일이다. 최진해는 현임 선천부사이고, 이인강은 현임 중화부사였는데, 최진해는 영조의 외가이고 이인강은 정조의 외가였다. 이 태중의 행차가 중화에 당도하니 중화부사가 들어와 뵈었다. 이태중이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고?" 이인강이 대답하였다. "동궁(정조를 가리킴)의 외사촌입니다." 이태중이 눈을 부릅뜨고 말하였다. "누구의 누구라고?" 이인강은 또 전처럼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어서 이인강을 물러나게 하고 곧 장계를 써서 아뢰었다. "중화부사 이인강은 아직 철이 들지 않아 세상 물정을 분별하지 못하니 파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평양에 당도한 뒤에 선천부사 최진해가 나와 뵈었다. 이태중이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고?" 최진해가 대답하였다. "하관은 선천부사입니다." 이태중이 목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내가 어찌 선천부사인 줄 모르는가. 그대가 어떠한 사람인지 묻노라." 최진해가 대답하였다. "하관은 문벌이 낮고 미약하되 나라의 후한 은혜를 입어 이에 이르렀으니 이 소임이 하관에게는 분에 넘칩니다. 사또께서는 선천부사 최진해를 아시면 될 뿐이옵지, 그 나머지는 물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관의 일족과 친척이 시정의 사람이 아니면 곧 서리의 무리입니다. 비록 누구 누구 이름을 들어 대답하더라도 사또께서 어떻게 아시겠습니까." 이태중이 빙긋이 웃고 속으로 흡족하여 후하게 대접하여 보냈다. 그리고 다른 수령과 달리 돌봐주어 일마다 말하는 것은 들어주었으니, 한마디로 뜻이 맞았던 것이다. 이인강과 최진해 주 사람의 사람됨을 알 수 있다. 이태중이 문과에 급제하기 전에 결성에 우거하였다. 삼종제 이덕중이 서학현에 살았는데, 집이 가난하였다. 이튿날 새벽에 정시의 과장에 나가게 되어 새벽밥을 준비하기 위해 그 부인이 이웃집에서 쌀을 꾸었는데 한 되가 차지 못하였으므로 나무합 안에 넣어 두었다. 그날 밤 부인의 꿈에, 그 쌀을 쌀알마다 모두 작은 용이 되어 나무합 속에 가득 차는 것이었다. 다음날 그 부인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끼어 일어나서 쌀을 씻어 정성껏 밥을 지을 무렵에 밖에서 문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태중이 들어왔다. 이덕중이 놀라 일어나서 맞이하며 말하였다. "형님이 어디에서 이렇게 일찍 오십니까?" 이태중이 말하였다. "결성에서 도보로 오다가 해질녘에 성밖에 이르러 여관에서 자고 이제서야 도착했네." 이덕중이 안에 들어가서 부인에게 부인에게 말하였다. "밥을 지어 사랑으로 내와서 결성의 형님과 같이 나누어 먹게 하오." 그러자 부인이 말하였다. "밥이 적어서 한 사발도 되지 않고 또 이 밥은 결코 나누어 먹을 수 없소." 이덕중이 그 까닭을 물으니, 부인이 간밤의 꿈에 있었던 일을 고하였다. 이덕중이 부인을 꾸짖으며 말하였다. "어찌 이 때문에 밥을 혼자 먹고 형님을 배고프게 할 수 있소. 만일 이와 같은 마음이 있으면 천신이 반드시 돕지 않을 것이니, 밥을 내오도록 하시오." 부인이 부득이 밥을 사랑에 내보내고 창문 틈으로 엿보니 이태중이 그 반을 이덕중에게 주어 나누어 먹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과장에 들어갔는데, 방을 부를 적에 두 사람이 함께 급제하였다. 이덕중은 벼슬이 부제학에 이르고 이태중은 벼슬이 호조판서에 이르렀다. 원수에게 은인이 된--박문수 박문수(1691__1756)의 본관은 고령이고 자는 성보, 호는 기은이다. 문과에 급제하였다. 영조 4년(1728) 무신란(이인좌의 난)에 종사광으로 나가 훈이등으로 공을 세워 영성군에 봉해졌으며 벼슬은 판서에 이르렀다. 시호는 충익이다. 일찍이 신임사화 때 이우당 조태채와 반대당이 되었다. 노론과 소론의 당쟁이 조금 수그러지자 영조가 화해시키기 위해 탕평론을 내놓고 대신들로 하여금 화합하게 하였다. 박문수가 한번은 금중에 입직하여 회식할 적에 반찬에 콩나물이 있자, 반드시 콩나물 머리를 잘라 버리고 먹으며 말하였다. "콩나물의 머리를 잘라 버리지 않을 수 없다." 콩나물의 태채가 조태채의 태채와 음이 같기 때문에 조태채를 빗대어 말한 것이다. 그러나 그 뒤 조태채의 아들 조관빈도 또한 조정에서 벼슬하면서 비록 서로 만나보지는 않으나 박문수가 평소 조태채의 충절을 흠모하여 조관빈에게 항상 은은한 정을 두고 있었다. 조관빈을 질투하는 자가 모함하여 장차 극형에 처하려 하니 박문수가 그를 구원하고자 하여 주상에게 아뢰었다. "조관빈이 아주 흉악한 죄가 있으니 죄는 진실로 참형에 해당합니다만, 지금 운운하는 이 일은 죽일 만한 죄가 아닙니다." 주상이 말하였다. "이는 네 원수가 아니냐?" 박문수가 아뢰었다. "사적으로는 원수이나 공적으로는 합당한 죄가 아닙니다. 전하께서 조관빈을 꼭 죽이시려면, 신이 원수를 갚기 위해 청한 것으로 안팎에 포고하고 죽이소서." 주상이 이에 크게 감동하고 그를 사면하였다. 조관빈이 판서의 지위에 이르렀다가 갑자기 죽게 되자 박문수가 그 집에 가서 사람을 시켜 그 아들에게 일렀다. "내가 존옹(상대방의 아버지)과 살아서는 원수지간이었다. 그러나 일찍이 동료로서 옛 친분이 있으니 죽음에 임하여 어찌 일곡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대에게 감히 청하네." 그 아들이 박문수가 곡하는 것을 허락하면서도 끝내 나와 맞이하지 않았다. 박문수는 몹시 섧게 울고 곡을 마치자 사람을 시켜 그 관을 뜰에 내어 관을 쪼개어 보려 하였다 집안 사람들이 깜짝 놀라 조관빈의 아들에게 고하니 그 아들이 말하였다. "상관없다. 박공이 비록 서로 원수이기는 하나 반듯 우리 선인을 욕보이지는 않을 것이요, 응당 생각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박문수가 이에 관을 쪼개어 위끝의 나무를 찍어내니 그 안에 낫 쇠끝이 있는데 길이가 한 치 남짓하였다. 무릇 나무를 찍을 적에 낫 쇠끝이 부러져 나무 속에 들어가서 세월이 오래되 것이었다. 박문수는 이에 목공을 불러 꾸짖었다. "일국의 중신의 관을 네가 주의하지 않고 낫 쇠끝이 관의 나무 속에 들어가게 하였으니, 만년의 유택(무덤)에 어찌 후한이 되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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