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함께 사라지 다>의 팬들에게는 버틀ㄹ러 선장이 봉쇄망을 뚫고 용감한 이름을 날렸던 도시 라고 말하면 얘기가 통할지 모르겠다. 나는 딱히 레트 버틀러의 열렬한 팬은 아니지만, 앨라배마 주의 모빌 호텔에 서 미국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찰스턴이라는 곳에 꼭 가보고 싶어져서 비행 기를 타고 곧장 대서양 해안으로 날아갔다. 어째서 찰스턴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나의 여행이라는 것은 대개 늘 그런 식이다. 지도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마음에 들 만한 곳이 있으면'음, 이거야!' 하고 결심하고는 그 곳으 로 간다. 그런 기대에 제대로 부등되는 때도 있고, 전혀 영 아니다 싶을 때도 있 다. 찰스턴은 기대에 부응했던 도시다. 그 사실은 애슐리 강의 다리 위에서 도시 를 한눈에 둘러보았을 때부터 이미 알았다. 물가에 무성한 푸른 풀들은 마치 논 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쓰다듬어 주기라도 하는 듯 부드럽게 몸을 흔들고 있고, 줄줄이 늘어선 요트의 돛대는 여기저기에서 펄럭펄럭 소리를 내고 있으며, 그 위를 갈매기나 황새(!)가 천천히 춤추듯 날고 있다. 시가지는 오랜 기품을 간 직하고 있고, 고층빌딩 같은 건 하나도 없다. 거리를 걸어가고 있으면 몇 사람이 나 "하우 아 유 두잉 투데이?"하고 말을 걸어 온다. 찰스턴이라는 것은 아이 앰 저스트 파인. 생큐, 라고 대답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만약 당신이 유령이라해 도 사우스 브롱스크보다는 역시 이런 곳에 나타나고 싶겠죠? 내가 묵은 여관에도 자주 유령이 출몰한다고 한다. 나는 나중에야 그 사실을 《찰스턴의 유령》이라는 책에서 보고 알았다. 이책에 따르면 "유령은 밤이 되면 복도를 걷다가 2층에 있는 남쪽 침실로 들어가 그 곳에서 사라진다"고 한다. 유 령의 정체는 확실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타르반데라는 부인일 거라고 얘기되 고 있다. 타르반데는 18세기 후반에 이 건물에서 여자 기숙학교를 운영했다고 하는데, 어째서 그녀가 200년도 더 지난 오늘날까지도 굳이 한밤중에 복도를 걷 고 있어야만 하는지 그 이유는 유감스럽게도 불투명하다. 하기야 나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유령이 나오는 여관의 본관에 묵지는 못했 다. 객실이 네 개밖에 없는 곤관이 전부 찼기 ㄸ문이다. 그래도 이 여관의 젊은 주인인 월터 버튼 씨는(소개가 늦어졌는데, 이 여관의 이름은'스워드 게이트 인' 이다) 나를 별채에 묵게 해주었다. 별채는 이웃집 정원을 지나 안쪽에 있는데, 전용 풀이 딸ㄹ려 있는 호화로운 큰 건물이었다. 월터쎄는 나를 안내하면서 "이웃집이지만 지나 다니는 걸 염려하시지 않아도 돼요'라고 말했다. "잠깐만요"하고 내가 끼여들었다. "웨스트 모어랜드라면 ......베트남 전쟁에서 총사령관을 지낸 웨스트 모어랜드 말입니까?" "맞아요"하고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장군의 집 정원에는 동남 아시아에서 가지고 돌아온 듯 한 장식물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타르반데 유령보다 는 인도차이나 땅에서 쓰러져 간 몇십만, 멸백만의 사람들의 피가 훨씬 리얼했 지만, 이 우아한 찰스턴에서 그런 말을 해봤자 풍류없단 소리나 들을 것이다. 게 다가 여관의 젊은 주인은 무척 친절한 사람이었다. 이번 주말에 친구들과 대형 요트를 타고 가까운 섬에 가서 수영도 하고 바비큐 파티도 할 예정인데 같이 가 지 않겠냐며 나를 초대해 주었다. 안타깝게도 일정 관계로 그들과 동행할 순 없 었지만, 딱히 섬까지 가지 않고 이 거리에서 느긋이 지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마도 이 고장 사람들은-이 기품있는 조용하고 깔끔한 고장에 살 고 있는 사람들은-인도차이나가 어떤 곳인지에 대해서 거의 아무것도 모를 것이 다. 결국 그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밤 열 시 반에 달빛이 비치는 웨스트 모어 랜드 장군 일가의 정원 끝의 풀에서 헤엄을 치면서 말이다. 찰스턴의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엄청나게 많은 레스토 랑이 있는 데다가 맛의 수준도 미국 치고는 월등히 높아서 실망시키는 일이 별 로 없다. 나는 퀸 거리에 있는 '푸건즈 포치'라는 남부풍 시프드 레스토랑이 마음에 들 어 그곳에서 몇 번이나 저녁밥을 먹었다. 황당무계한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가게 안은 냉방이 잘 되지 않았다. 천장에 달린 선풍기가 빙글빙글 돌아 가며 공기를 휘젓고, 그 아래에서 우리는 디프 프라이드 캣피시(메기 말이다)를 먹었다. 메기 는 제법 맛있는 물고기다. 보리멸의 맛과도 비슷하지만, 보리멸보다는 약간 진한 느낌이 든다. 암게를 사용해서 만든 수프와 도넛 버터 파이는 이 가게의 자랑거 리고 이 두 가지는 확실히 일품이다. 이 세 가지 외에 머시룸 서테와 슈림프 크 레올과 샐러드와 커피가 딸려 나오면서 20불 남짓이니, 이 정도면 꽤 싼 거다. 이곳에서 '돌핀 사바나 풍(風)'이라는 요리도 먹었다. 가다랭이와 게르치를 뒤 섞어 고급스럽게 만든 듯한 맛이 났다. 약간 오도독거려 꽤 맛이 괜찮았지만, 이 것은 진짜 돌고래는 아니고 아마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만새기였을 것이다. 아 무리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고 해도 미국에서 돌고래를 먹는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푸건즈 포치'의 넘쳐흐를 정도로 양이 많은 정식을 배에 꾹꾹 눌러 담고 나는 애슐리 강을 향해 처치 거리를 걸었다. 이상하리만치 선명한 모양의 달이 은세 공품처럼 부드러운 여름 밤 하늘에 파묻혀 있었다. 나는 강가에 앉아 바람을 맞 으며 포도주의 취기를 씻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각별히 이렇다 할 만한 이유도 없이 백일홍 옆에 앉아 있다. 마치 예약 등록을 끝마친 말없는 유령처럼. 그리운 비프스테이크 -스테이크는 꾸밈 없이 아양도 떠ㅗ지 않고 잘난 척하지도 않는 '남자다운'요 리여야 한다. 이따금 괜스레 비프스테이크가 먹고 싶어진다. 나는 원래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평소에는 거의 생선과 야채만 먹지만,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문득 스테이크의 이미지가 머리 속에 떠올라서는 그냥 그 대로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는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한 번 스테이크 생각이 나면 안절부절못할 정도로 스테이크가 먹고 싶어진다. 이건 아마도 몸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고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일 테지만, 그렇다면 스키야키든 포 크 커틀릿이든 햄버거든 비프 커틀릿이든 불고기든 좌우지간 고기면 될 텐데,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스테이크여야만 하는 것이다. 필시 스테이크라는 것이 내 머리 속에 '육적(肉的) 기호'로서 입력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한다. 기호라고 해야 할지 뭐라 해야 할지 어쨌든 일종의 단순 개념 같은 것이다. 그리고 내 속에 육적 영양분이 부족해지 면 "고기가 부족합니다, 삑삑' 하고 자동적으로 신호가 발신되어 그 기호인지, 개 념인지 하는 것이 백경(白鯨)처럼 의식의 해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그런 까닭 으로 때때로 몸이 근질근질해질 정도로 스테이크가 먹고 싶어진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극히 심플한 스테이크다. 육질이 좋은, 맛있는 고기를 쓱 싹 솜씨 있게 구워 내어 육즙이 흐르지 않게 위에다 슬쩍 소스를 끼얹었을 뿐인 심플하기 그지없는 스테이크 말이다. 가볍게 소금과 후추 정도로만 간을 하면 된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 그러나 그런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는 가게는 유감스럽게도 이 드넓은 도쿄 거리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 여러 사람에게 소개를 받기도 했고 나 스스 로도 찾아다며 봤지만, 정상적인 가격으로 내가 좋아하는 막의 스테이크를 마음 편이 먹을 수 있는 가게란 여간해서 없는 것이다. 나는 고베 태생인데, 고베라는 곳은 아시다시피 스테이크 가게가 많은 곳이다. 그래서 어린 시절에 "오늘은 외식이나 할까?"라고 할 때는 자주 스테이크를 먹 으러 갔다. 물론 그런 외식은 진수성찬이라면 진수성찬이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잠깐 집 근처에' 들른다는 일종의 편안한 느낌을 주었고, 또 그 스테이크 맛도 '짐 근처' 식의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맛이었다. 옛날 예기인 데다 어린아이가 뭘 알았겠느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왠지 그 맛을 지금도 기억하 고 있고, 스테이크란 그런 맛이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한다. 고베에 돌아가면 스테이크가 어떤 맛이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스테이크 하 우스에 들른다. 늘 느끼는 거지만, 고베의 스테이크 맛은 도쿄의 그것과는 전혀 틀리다. 고베 편을 드는 건 아니지만, 도쿄보다는 고베의 스테이크가 내 입맛에 맞는다. 요리의 질이 단순하고 스피드가 있다. 아니면 단순하기 때문에 스피드가 있다고 해야 할까? 어쨌거나, 정말 그립다. 스테이크라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자 면 꾸밈 없이 아양도 떨지 않고 잘난 척하지도 않는 '남자다운' 요리여야만 한다 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스에서 반년 정도 살았을 때는 퍽 자주 스테이크를 먹었다. 무엇보다 믿 을 수 없을 정도로 ㅗ시고기 값이 쌌기 때문이다. 가장 최상급 안심 1킬로 그램 에 1000엔 정도니, 정말로 싼 거다. 두꺼운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그리스 파 를 볶은 뒤, 고기를 중간쯤 익혀 가볍게 간장에 찍어 먹는다. 이 그리스 파라는 게 또 꽤 맛이 있어서, 스테이크에 썩 잘 어룰린다. 1킬로그램 정도의 고기면 두 사람이 세 끼를 먹을 수 있다. 자투리로 남은 고 기로는 필라프를 만들고, 그 나머지로 맛있는 수프도 끓일 수가 있다. 이렇게 해 서 1000엔이다. 이 정도로 싸면 정말 대범하게 요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제 법 대담한 맛이 난다. 일본에서 안심을 사오라고 하면 순간 긴장하게 된다. 나는 스테이크란 원칙적으로 집에서 만들어 먹기보다는 레스토랑에서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집에서 만든 그리스 풍 스테이크만큼은 지금도 무척 그립다. 또 하나 기억이 생생한 것은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먹었던 스테이크 로, 이것 역시 굉장히 샀다. 저녁에 거리를 걷다가 문득 맥주가 마시고 싶어져서 근처에 있는 작은 바에 들어갔다가 내친김에 식사까지 주문했다. 메뉴를 보니 '서프 앤드 터프'라는 것이 있었다. 직역하자면 '파도와 잔디'다. 뭔지 잘 몰랐지 만 뭐 어때 하고 주문해 봤더니, 버터에 엄청나게 큰 새우를 볶은 것과 두께 5 센티미터는 족히 될 듯한 스테이크와 필라프가 듬뿍, 게다가 샐러드까지 수북히 나왔다, 과연, 이래서 '파도와 잔디'인가 하고 납득을 했는데, 그 양이 또 터무니 없이 많았다. 직접 보여줄 수 없는게 유감인데,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도저히 다 먹을 수 없는 양이었다. 그러면서 값은 1,500엔쯤이었ㄷ 걸로 기억한다. 맛은 비교적 심플했고, 고기도 부드러워 그만하면 어디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이렇게 잘 만든 스테이크를 특별히 볼 거리도 없는 동네의 작은 바에 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미국의 저력이란 거구나, 하고 나는 감탄하고 말 았다. 모두들 미국의 스테이크는 크기만 했지 맛은 없다고 하는데, 내가 남부에 서 먹은 스테이크는 대부분 맛이 있었다. 곁들여진 프라이드 포테이토는 바삭바 삭하고, 조금 싱거운 고기에 나이크를 넣으면 주르륵 육즙이 흘러 나와 옆에 있 는 필라프로 스며들고 말이다. 그런데, 이런 글을 쓰고 있으니 점점 스테이크가 먹고 싶어진다. 참 난감하다. 미국 소설에는 종종 스테이크를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가장 맛있을 것 같았 던 스테이크는 허들리 체이스의 《미스 브랜디쉬의 난초》의 첫장면에 나오는 것이다. 소설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 첫장면을 읽을 때마다 나는 확실히, 그야말로 조건 반사적으로 스테이크가 먹고 싶어진다. 지금 책을 가지고 있지 않아 안타깝게도 그대로 인용할 수는 없지만, 대략 설명하자면 시 골의 먼지투성이 도로변에 있는 , 별로 눈에 띄지도 않는 레스토랑에 한 남자가 들어서는 데서부터 소설을 시작된다. 남자는 배가 굉장히 고픈 모양인지 서둘러 웨이트리스에게 스테이크를 주문한다. 굽는 정도랑 곁들이는 양파같은 것에 대 해서 자세하게 얘기를 한다. 주방장이 철판에다 스테이크를 굽고, 양파를 볶는 다. 양파를 볶는 강한 냄새가 남자의 식욕을 거칠게 자극한다. 남자는 군침을 삼 키면서 요리가 나오기를 꼼짝 않고 기다린다. 바깥 도로에서는 트럭이 뭉개뭉개 모래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가고, 건조하고 뜨거운 햇빛은 대지에 쨍쨍 내리쬔다. 체이스의 간결하고 폭력적인 문체와, 남자의 식욕과, 스테이크가 지글지글 익는 냄새가 훌륭하게 잘 어우러져 있어서 나는 그만 소설의 세계에 푹 빨려들고 말 았다. 만약 이것이 포크 커틀릿이었다면 얘기는 좀 달라졌을 것이다. 어쨌든 오늘은 스테이크를 먹으러 가야겠다. 오페라의 밤 -우리는 마음 속으로 '비일상으로의 매몰'이라는 감성의 낭비를 갈구한다. 오 페라는 그걸 만족시켜 준다 '오페라'라는 말에는 이상하게도 매력적인 울림이 포함되어 있다. 나는 결코 오페라광이나 마니아는 아니지만, 그래도 오페라라는 말은 묘하게 내 마음을 뒤 흔들어 놓는다. 지금부터 오페라를 보러 가는 거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두근 거린다. 뿐만 아니라 막이 오르기 전의 객석의 그 웅성거리는 독특한 술렁임이 며, 지휘자가 오케스트라 박스에 들어와 드디어 서곡이 시작될 때의 그 분위기 도 너무 좋다. 굳이 오페라 하우스에 가지 않더라도 집 안에서 고양이를 무릎에 올려 놓고 싸구려 포도주를 홀짝거리면서, 마당의 단풍나무를 바라보며 레코드로 오페라를 한가로이 듣는 것도 제법 운치가 있다. 게다가 요즘에는 비디오로도 오페라를 볼 수 있게 되어 참 고맙다. 한 손에 리모콘을 들고 우리 집 소파에 누워 뒹굴 면서 마젤이 지휘하는 <돈 지오반니>나 아바도의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몇 번이나 되풀이해 들을 수 있다는 건 역시 더없는 행복이라 해야 할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오페라란 참 이상하다, 그처럼 완벽하게 18세기, 19세기 적이고 장황하며 전통적이고 비현실적이며 비일상적인 것이, 어떻게 이처럼 극 히 단기간 동안 다양한 스타일이 반짝하고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이 바쁜 시대에 도 여전히 사람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 것일까? 물론 18세기, 19세기적이면서 지 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은 또 있다. 셰익스피어의 연극도, 가부키(역주: 에도 시대에 발달한 일본의 전통적 미중 연극의 하나)도 지금까지 여전히 공연 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가령 가부키를 예로 들어 보아도, 유럽의 오페라처럼 일본 어느 지방 자그마한 도시엘 가도 반드시 가부키 좌가 있어서 보통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이 용하며 가부키를 즐기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말하자면 이미 가부키는 일종의 서민적인 존통 예솔이 아니다. 셰익스피어 극도 엇비슷하다. 그렇지만 오페라라 는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르다. 오페라는 여전히 현존하는 정열적인 엔ㅌ인먼트인 것이다. 오페라 하우스의 값싼 좌석은 젊은이들로 넘치고 있고, 인기 있는 공연 이라면 관람권은 눈 깜짝할 사이에 매진돼 버린다. 이상한 일이다. 대체 오페라 라는 음악의 형태 속에 무엇이 그다지도 현대인들을 매료시키는 것일까? 나는 음악 평론가도 풍속 현상 평론가도 아니므로 그런 의문에 일일이 대답해 야 할 책임도 필요도 느끼지 않는다(고맙게도). 남의 눈치를 볼 것도 없고, 남에 게 비난을 받는 일도 없이, '이유같은 건 아무래도 좋잖아? 그냥 그런 거라구. 하이호!' 하고 그냥 맘 편하게 생각하며 오페라를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인데, 우리가 오페라에 끌리는 가장 큰 이유는 사실은 '낭비'가 아닌가 한다. 시간의 낭비, 노력의 낭비 그리고 무엇보다 거대한 시대 착오를 가 능케 하는 '비일상성으로의 매몰'이라는 감성의 낭비. 우리는 틀림없이 마음속으 로 그런 것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최초로 오페라라는 형태의 음악을 접한 것은 아마 중학생 때쯤으로, 텔 레비전에서 마리오 델 모나코가 열창하는 전설적인 <어릿광대>를 보았다. 그것 은 지금 생각해도 굉장한 <어랫광대>였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진수라고 할 수 있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해도 좋을 정도로 박력이 넘치는 공연이었다. 비 치보이스의 팬이었던 열두세 살의 소년이 어떻게 텔레비전으로 이탈리아 오페라 단의 공연을 볼 마음이 생겼는지는, 여하튼 오래 전 일이라 불명확하다(아아, 나 이를 먹으면 어찌하여 이다지도 많은 일의 동기가 불명확이라는 희미한 빛 속 으로 사라지고 마는 걸까?) 드르륵드르륵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는 지도 모르고, 어쩌면 호기심이라는 위대한 촉매에 의해 그렇게 맺어졌는지도 모른다. 둘 중 하나겠지. 좌우지간 그게 처음이었다. 마리오 델 모나코의 <어릿 광대>. 최초로 극장에 가서 본 오페라는 <오르페우스>였다. 아마 고등학생 때였을 거다. 밀라노 실내 가극단의 공연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장소는 오사카 페스티벌 홀. 다만 그게 누가 작곡한 <오르페우스>였는지가 지금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것에 대한 기억이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누구였던가 하고 계속 생각해 보지 만, 소용이 없다. 생각이 나질 않는다. 어쨌든 훌륭한 공연이었다. 세세한 것은 잊어버렸지만 굉장히 좋았던 것만큼은 기억하고 있다. 어떻게 좋았느냐고 물어 본다면 거기에 대해 대답하기는 곤란하다. 여하튼 좋았던 것이다(하이호!). 그 후 몹시 감동하여 기분이 들떠서는 전철을 타고 고베의 집으로 돌아 왔던 게 기억 난다. 그 뒤로도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느낌으로 조금씩 오페라를 계속 들었다. 그 래도 나는 오페라 마니아는 되지 않았다.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아까도 얘기 했덧이 오페라의 존재 이유는 그 낭비성 속에 있고, 나에게는 그 같은 낭비성에 익숙해져갈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10여 년 동안 오페라와는 실질적으로 인연이 없 는 세월을 보냈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학생 때는 물론 말할 것도 없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일을 시작했을 무렵에도 오페라를 보러 다니거나 석 장짜 리 오페라 레코드를 살 여유는 도저히는 아니더라도, 하여튼 없었다. 나는 학생 때 결혼을 했기 ㄸ문에 대학을 나와서도 우선 생활에 쫓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무지하게 바빴고, 무지하게 가난했다. 소중하게 간직했던 몇 장 인가의 오페라 레코드도 돈에 쪼들려 중고 가게에 팔아 넘기고 말았던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빚을 갚을 수 없어 쩔쩔맬 때는 어지간해선 그럼 어디 오페 라를 들어 볼까 하는 기분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하기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절망적이던 우리의 경제 상태도 몇 년 후엔 회복이 ㅗ디어 생활이 차츰 안정되어 갔다. 그렇긴 해도 우리는 갓 서른이 넘을 때까지 여전히 일과 생활의 자질구레한 일들에 쫓겨야만 했다. 바빴던 것이다. 해야할 일들이 끊임없이 생겨 났다. 주위에는 항상 뭔가 해열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그러는 동안 어렵사리 짬 을 내서 콘서트에 갈 수는 있게 되었다. 하지만 오페라는 아직 아득한 저 멀리 에 있었다. 그것은 우리에게는 아직 사치였던 것이다. 저 제이 캐츠비가 바라보 던 해협 너머의 녹색 등불처럼, 그것은 늘 멀리 있었다. 겨우 오페라와 재회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그때까지의 일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어,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 간간이 해외에 나갈 수 있게 되고 나서부터 였다. 우선 독일에서 <방랑하는 네덜란드 인>과 <마적>을 보았다. 그러자 순식 간에 나는 또다시 오페라의 매력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 후에 이탈리아에서 살면서 틈만 나면 오페라를 보러 다녔다. 다양한 도시에서 다양한 오페라를 보 았다. 베르디, 로시니, 푸치니, 모차르트..... 휴식시간에는 싸구려 샴페인을 조금씩 마셨다. 달랑 한 벌뿐인 정장차림으로 로비에 서서 소곤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또다시 오페라의 밤다운 감정의 전율을 되찾았 던 것이다. 제4장 꿈이 서린 계절의 회상을 위하여 《scrap(그리운 1980년대)》 문학과 취미와 삶의 주변, 그리고 이성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 어린 탐구. 아주 짤막짤막한 글 속에 그의 큰 문학의 편린이 스며 있어 즐겁다. 그렇게, 지난날은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나날이었다. 독신 남성이란 -핸섬하고 어딘지 쓸쓸해 보이고 스릴 있어 보이는 남성이 바로 독신 남성 여성 잡지를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하고 소리치고 싶어지는 일이 종종 있다. 그래서 그런 유의 잡지에는 손을 대지 않으려고 노력 은 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 밖에 아무것도 읽을 것이 없을 때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페에지를 들춰 보게 된다. 얼마 전에도 그런 식으로, 《하퍼스 바자》지 12월호를 거의 다 읽어 버렸다. 읽었다고는 해도, 이런 잡지는 실질적으로는 읽을 거리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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