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기분 좋은 일야였지만, 괜스레 그의 이마에서 비지땀이 솟고 있었다. 게다가, "으으음…!" 한술 더 떠 여인은 그의 몸으로 기어 오르며 볼비빔을 했다. (으…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하후미린은 이만저만 곤란한 게 아니었다. 한데, 그 때였다. "어마마! 두 분 다 지독한 잠꾸러기들이야!" 기다리다 못한 시녀가 드디어 방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순간, 하후미린과 바짝 맞붙여 있던 여인의 몸이 그대로 경직되었다. (이크… 깼구나!) 하후미린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허나, 그는 느낄 수 있었다. 경악에 찬 한 쌍의 봉목이 자신을 보고 있음을… 이내 여인의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찰싹! 하후미린의 볼에서 불꽃이 튀었다. 화다닥! 여인은 황급히 요로 몸을 휘감으며 침상 한쪽으로 몸을 피했다. 그녀는 비명이 섞인 교갈을 터뜨렸다. "당… 당신은 누구예요?" "소… 소저…!" 하후미린은 할 말을 잃고는 우선 급히 묵잠의를 집어 걸쳤다. 그로서는 실로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순간에 그가 무슨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당… 당신이… 내 몸을… 흐윽!" 여인은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 때, 방 안의 상황을 알아챘는지 시녀가 문을 벌컥 열며 뛰어 들었다. "아가씨!" 시녀는 여인에게 시선을 둔 채 곁눈으로 하후미린에게 눈짓을 했다. "어서 나가세요." 그 때까지 우물쩍거리던 하후미린, 그는 완전히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 되었다. "그… 그럼 … 나는 이만…" 하후미린은 급히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한데 문득, 침상 위 금침으로부터 그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점점이 묻은 혈화! (이 나이에… 처음이었다니…!) 하후미린은 납덩이처럼 무거운 심정으로 방을 나섰다. "흑흑…!" 여인의 흐느낌은 몹시도 처연했다. "아가씨, 고정하세요." 소녀는 울먹이며 그녀를 달래고 있었다. 그 소리를 뒤로 하며 하후미린은 전각 밖으로 나와 버렸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도 주위에는 혈포몽면인들의 사신이 널려 있고, 한쪽으로 많은 나무와 풀들이 쌓여 있는 위에 처참하게 죽은 시녀들의 시신이 올려 놓아져 있었다. 하후미린은 시녀들의 시신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마 화장을 시킬 모양이었나 보군!) 그러나, 곧 그는 눈길을 거두며 혈포몽면인들의 시신을 둘러보았다. 자신에 의해 죽음을 당한 자들, 하후미린은 그들을 보자 살생에 대한 규책에 앞서, 잔악한 행위를 자행하던 무리들의 정체에 의심부터 갔다. (이들은 대체 어느 문파의 인물들인가? 대륙육합천패나 패천사상혈세와는 관련이 없는 것 같은데…) 그는 도시 그들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차림새가 모두 동일한 것으로 보아 일단의 무리라는 것 외에는, 한데 그 때, 툭! 그의 발 끝에 무엇인가 채이는 것이 있었다. "…?" 그는 의아한 듯 그것을 집어 들었다. 허나의 손바닥만한 철패,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지옥마계 혈사단 제 백이십육 호.> "무슨 신패 같기도 한데…!" 하후미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허나, 그것은 분명 그로서는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그렇다면 굳이 그 물건 허나에 연연할 필요는 없었다. "언젠가는 그들에 관해 알게 되겠지." 우수수…! 곧 철패는 그의 손에 의해 가루로 화했다. 이어, 그는 기분을 전환하려는 듯 중얼거렸다. "몸을 좀 풀 수 있겠군!" 그와 함께 그는 즉각 일권을 내밀었다. 순간, 콰콰쾅----! 마치 십만 근의 화약이 일시에 폭발하듯, 그의 앞에는 돌연 십 장이 넘는 웅덩이가 패였다. "천붕권…! 쓸 만하군." 하후미린은 만족한 듯 중얼거리며 양수를 휘저었다. 순간, 콰르르르----! 엄청난 무형의 강기가 해풍을 몰아가듯 혈포인들에게 휘몰아쳐 갔다. 또한 그것은 그대로 혈포인들의 시신을 웅덩이 속에 몰아 넣고 있었다. 쿠쿠쿠---! 마지막으로, "천사지존수! 관음천불수!" 콰르르…! 쩌---쩡! 그는 엄청난 권풍과 장력을 일시에 쏟아냈다. 휘--유웅! 콰르르…! 아! 그것은 주변의 돌덩이와 흙무더기를 파헤쳐 하나의 봉분을 이룩하고 있었다. 하후미린의 가벼운 몇 가지 동작, 그것은 그에게 있어 그저 몸을 푸는 정도의 일에 불과했다. 허나, 결과적으로 그는 몇 사람이 한나절은 소비해야 할 일을 눈깜짝할 사이에 이루고 만 것이었다. 그 때, 두 여인이 그에게 다가왔다. 침실로부터 단정히 옷을 갈아입고 나온 여인과 예이 시녀, 그 두 여인은 약속이라도 한 듯 고개를 떨군 채 말이 없다. "…" 하후미린 역시 다소 어색한 감이 없지 않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입을 열 양으로 여인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과 육이 합해졌던 인물을 바라보았다. 한데, 그 순간, "아…!" 여인은 충격을 받은 듯 그대로 굳어지고 말았다. 이어, 그녀는 무엇인가 찾는 듯이 하후미린의 얼굴을 눈으로 더듬어갔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여인의 시선은 점차 희열의 빛이 짙어져가는 것이 아닌가? 그녀는 내심 이렇게 부르짖고 있었다. (만상전능신혈맥! 아버님이 이십 년 전부터 말씀하셨던 천년검왕이 되실 분…!) 심한 격정으로 그녀는 몸을 떨었다. 또한, 하후미린을 응시하는 그녀의 시선이 부옇게 흐려지고 있었다. 한편, 하후미린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미간을 찡긋했다. (이 여인은 대체 무엇에 이리도 감격하는 것인가?) 부지초면, 하후미린은 전혀 그 여인을 알 리 없었다. 그 때, 여인은 무엇을 확인하려는 표정이 되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혹… 하후씨 성을 갖고 계시지 않는지요?" "맞긴 맞소이다만… 소저께서 어찌 소생의 성을…" 하후미린은 의아한 시선으로 되물었다. (역시…! 만상하후천맥의 천림에서 오신 분…) 이어, 여인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즉시 날아갈 듯이 큰절을 했다. "천첩 단리혜혜, 상공을 뵙사옵니다." "소… 소저!" 하후미린은 당황하여 갈피를 잃고 말았다. 서로의 얼굴과 살을 섞었다는 것 외에는 피차 너무도 모르는 사이가 아닌가? 한데, 여인은 완전히 첩으로 변신하고 있었으니, 그 때였다. 하후미린의 귀에 시녀의 전음이 들려왔다. "무엇 하시옵니까? 아가씨를 슬프게 하시려는 것이옵니까?" "…!" 하후미린은 고소를 머금었다. 그는 일단 단리혜혜라는 여인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그리고, 다소 미안한 듯한 한마디 덧붙였다. "용서하오. 사정이 급하여 그만 소저에게 몹쓸 짓을 했구료." 그의 말 속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하후미린, 사실, 이제껏 그가 취했던 여인들은 두 부류였다. 남이 감히 여인으로 보지 않는 여인을 여인으로 만들어 준 것이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제로 강간당해 경험한 여인들, 물론, 그가 천림에서 얻은 첩들은 달랐다. 천림은… 만상하후천맥의 소왕국이었고, 그곳의 여인들은 모두 하후씨의 첩이 되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다시는… 새로운 여인을 만들지 않으려 했거늘…) 하후미린은 골치가 지끈거렸다. 그러나, 이러한 속사정을 꺼내기도 전 단리혜혜는 기쁜 듯이 그의 말을 받았다. "용서라니요? 오히려 첩신의 생명을 구해 주신 분이신데… 첩신은 일평생 시녀로라도 상공을 모실 것이에요." "…" 하후미린은 뭔가 해야 할 말들을 정리하느라 복잡해졌다. 자연 그의 안색은 침중해지고 있었다. 그것을 본 단리혜혜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눈을 내리깔았다. "상공께서 거절하신다면… 첩신은 이 천한 목숨을 끊을 도리밖에는…" 그녀는 채 말을 잇지 못했다. (결국… 이렇게 되고 마는군.) 하후미린은 나오려던 말을 삼켜야만 했다. (성격이 치밀하고 심기가 깊은 여인이라 어찌해 볼 수가 없군.) 그는 드디어 단리혜혜를 향해 담담히 말했다. "소저의 청결함은 본인이 깨었으니… 소저를 돌보아 드리는 것이 당연한 것일 것이외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단리혜혜는 화사한 미소를 만면에 드리웠다. 그녀의 시녀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었다. "감사하옵니다. 상공, 그리고 이 아이는 천첩의 시녀인 초초라 하옵니다." 하후미린도 새삼스러우나 자신을 소개했다. "본인은 하후미린이라 하오." "…" 단리혜혜는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소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마치 오래 전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데, 어떤 표정이던 간에 미소띤 그녀의 얼굴은 이슬을 머금은 꽃송이처럼 너무도 아름다웠다. 하후미린은 그녀를 마주보며 내심 고소를 지었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여인! 복이 될지 화가 될지는 모르나 아름다운 골칫덩이를 얻은 셈이군.) 뒤이어, 그는 짐짓 호탕하게 물었다. "이제 혜혜라고 불러도 되겠구료?" "물론이오이다." "그러면, 혜혜의 나이 또한 물어도 되겠소? /" 일순, 화사하던 단리혜혜의 얼굴이 다소 어두워졌다. 그녀는 더듬거리듯 어렵게 대꾸했다. "서른… 하나이옵니다." 하후미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밝게 웃었다. "하하… 본인보다 열세 살 위구료!" "…" 단리혜혜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오히려 호탕한 하후미린의 태도는 그녀를 매우 편하게 해주었다. 이어, 하후미린은 화제를 바꾸어 무덤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자들은 대체 누구였소?" 단리혜혜는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대답에 앞서 하후미린을 응시하며 물었다. "상공께선 천병신비가를 아시는지요?" 그 말에 하후미린의 눈길이 번쩍 뜨였다. "아… 그 천세제일장인가를 말하는 것이오? 천하의 이름난 검 중 절반을 제작했다는…?" 하후미린은 탄성을 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천병신비가.> 하후미린도 그 이름을 잘 알고 있었다. 일천 년의 세월을, 오직, 검 하나만을 제조해 온 대… 장인가! 그들의 율법은 인의 열 개였다. 설사, 그들의 옆에서 인간이 죽어가더라도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무림이 혈세되더라도, 그들은 결코 검을 제련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힘은 없으나, 무수한 굴욕을 인내로서 참았기에 그들은 천세를 내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혜혜가 그 위대한 장인혈을 이은 사람이구료." 하후미린은 단리혜혜를 보며 미소지었다. 허나, 단리혜혜는 입술을 깨물며 입술을 열었다. "이 자들은… 저희 가문을 피로, 씻은 지옥의 악마들이에요!" "천병신비가를 이들이…?" "그래요, 그것은…" 일순, 단리혜혜는 절망과 비애가 어우러진 표정이 되어 한숨을 내쉬었다. "한 자루 검 때문이에요!" "단지… 검 한 자루 때문에 일가를 몰살시켰단 말이오?" 하후미린은 살기를 발하며 고성을 질렀다. 단리혜혜는 그를 보며 처연한 신색으로 입을 열었다. "그 검은… 보통의 검이 아니예요! 천년제왕검이라 불리우는 하늘의 검이에요…" "천 년… 제왕검!" 하후미린은 그 말을 되뇌이며 자신의 의수를 본능적으로 내려보았다. "천년검혼으로 하여… 인간의 체내에 잠재되어 뜻만으로 펼칠 수 없는 영검이기도 해요!" 단리혜혜의 말은 이어졌다. "이 자들은… 바로 그것을 노리고 본가를 쳤어요! 이미… 아버님은 돌아가셨을 거예요…!" 그녀는 말끝을 흐리며 눈물을 감추듯 옥용을 떨구었다. 한데, 이 순간, (설마… 그 행위를 할 때 날 기절시킨 예기가…?) 하후미린은 간밤의 일을 떠올리며 기광을 발했다. 그의 생각을 확인해 주듯 단리혜헤는 조그맣게 속삭였다. "천년제왕검은… 상공의 몸으로 이미…" 차마 말을 못하겠다는 듯, 단리혜혜는 목덜미를 붉히며 말 끝을 흐렸다. 이어, 그녀는 싱글거리며 서 있는 초초에게 명했다. "초아야! 올 때 가져왔던 신비철함이 어디 있지?" 그러자, 초초는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그건 초아가 잘 보관해 두었어요!" 이어, 그녀는 쪼르르 하나의 방으로 달려갔다. 초초는 묵직한 철함 하나를 들고 와 단리혜혜에게 두 손으로 받쳐 올렸다. "…!" 단리혜혜는 철함을 받으며 감회 어린 시선으로 내려보다가는 그것을 하후미린에게 내밀었다. "천년검혼을 끌어내… 천년제왕검으로 사용하실 수 있는 방법이 이곳에 있을 거예요." "이것은…?" 하후미린은 의혹 어린 시선으로 철함을 받아 살펴보았다. 아무런 특징도 없는, 그저 강철로 제련된 석 자 크기의 투박한 철함이었다. 딸--칵! 철함은 쉽게 열렸고, 그 안엔 한 권의 철경이 들어 있었다. "지상최극강의 검결… 지존검폭뢰?" 읽어내려가던 하후미린은 실소마저 흘릴 지경이었다. 광오의 극치가 아닌가? 허나, "…!" 철권을 넘기며 읽던 하후미린의 안색은 점차 심각하게 굳어져 갔다. <노부는 천수종(天手宗)이라 하오이다. 이 글을 읽는 분은 필시 천년검혼의 주인일 터, 오직, 천년검왕만이 지존검폭뢰(至尊劒爆雷)를 터득하시리라, …中略… 검을 만들기 어언 삼갑자, 일만 자루의 검을 만들었고, 일만 자루의 검을 부수오이다. 하늘의 검은 짧은 인간의 연륜으로 만들 수 없음을 깨달으니, 이미 죽음의 문턱에 들어섰소이다. 천 년의 시공 속에서 검중제왕이 탄생하리니, 천인이 천년패왕검을 얻으시리라! 하늘의 검은 눈으로 보이는 것은 아닐지니 천인의 손끝에서 피어올라 환우천하를 지존의 검무(劒舞)로 뒤엎으시리라. 지존제왕검은 만들지 못하나 검을 만지며 하늘의 검을 알았소이다. 이제, 허나의 검결을 남기오이다. 천년검왕이시여, 지옥의 악마에게 사용하소서! 악마혈인검(惡魔血人劒)이 부숴질 때 구천에서나마 감읍하오리다.> 글은 거기서 끝나 있었다. 천수종! 그 이름을 아는 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허나, 아는 사람은 알고 있었다. 하늘의 손을 지닌 고금제일의 장인! 일명---제왕의 창조자라 불리우는 인물이 바로 그였다. 제왕의 검만을 만들었다는 전설 속의 인물, 아울러, 그는 천병신비가의 초대가주였다. 그런 그의 유품이 천 년의 세월을 격하고 하후미린의 손 안에 있는 것이었다. 문득, "만일 이 말대로라면 내 몸에 검 한 자루가 박혀 있단 말인데…" 하후미린은 무심히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몸 안에 검을 박은 인물, 하후미린은 괜히 기분이 떨떠름했다. 허나, 그의 내심은 더할 수 없이 흐뭇해 있었다. (흐흣…! 의외의 기연을 얻었는걸?) 하후미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힘을 주었다. 순간, 푸---스스스…! 그의 손에 있는 철경이 철함과 함께 부숴져 흩날려 갔다. 이미, 그 안의 내용은 모조리 하후미린의 뇌리에 각인된 후였다. 지상최극강의 검결--지존검폭뢰! 오직, 천년제왕검으로 펼칠 수 있는 지상최강의 검무! 하후미린은 그것을 얻은 것이었다. 복우산, 초춘의 산풍은 아직 칼날처럼 시리기만 하다. 휘르르…! 스스슥…! 매서운 바람을 가르며 한 줄기 왜영이 복우산에 날아들었다. 이윽고, 왜영이 도달한 곳은 깊은 산곡이었다. "으음…!" 왜영은 휘청이며 내려섰다. 왜소한 청의청년, 그는 계집을 연상시키는 뽀얀 피부에 수려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반듯한 얼굴에서 흐르는 미태는 일반 여이늘 오히려 무색하게 할 정도였다. 한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그는 크고 작은 상처를 무수히 입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상처를 보살피기에 앞서 격분한 듯 이를 갈았다. "으드득! 십자검왕천(十字劒王天)! 정파입네 하면서 겉과 속이 다른 자들!" <십자검왕천> 대륙육합천패 중의 십자천검성을 주축으로 대륙의 대정류가 합일되어 이룩된 대정천! 한데, 그 이름 앞에 이를 갈아붙이는 인물의 정체는…? 문득, 그는 품 속에서 한 알의 단약을 꺼내어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원독에 찬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아버님께서는 십자검왕천의 도움을 원하셨거늘 나를 인질로 잡아 검해(劒海)를 집어 삼키려 하다니!" 그의 분노는 실로 대단한 모양이었다. 한데, 문득 한 소리 웃음이 그의 귓전은 울렸다. "하하하… 이게 누구요? 검해옥신룡(劒海玉神龍) 우문형이 아니오?" 수려한 미청년의 명호는 바로 검해옥신룡이었던가? 그는 벌떡 일어났다. "어느 분이오?" 그러자, 화르르…! 한 줄기 핏빛 그림자가 검해옥신룡 앞에 가볍게 내려섰다. 혈포를 걸친 청년은 비교적 영준한 용모의 소유자였다. 한데, 그는 종잡기 어려운 미소를 입가에 담은 채 검해옥신룡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를 보자 검해옥신룡은 냉랭하게 쏘아보았다. "혈영수라(血影修羅) 마형이었구료!" 그 순간 검해옥신룡은 내심 불안과 분노로 떨고 있었다. (여우같은 자! 용케도 냄새를 맡고 따라왔군.) 그는 어느새 혈의청년, 즉, 혈영수라의 심증을 직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당금의 무림은 패도천하(覇道天下)였다. 마(魔), 사(邪), 혹은 대정(大正)의 기운도 모두 쇄락해 있는 상태였다. 육합으로 대변되는 여섯의 패천세! 그것이 대륙무림의 법이요, 율법으로 군림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미, 사도무림의 종주였던 지저사계가 대륙육합천패에 의해 철저히 와해되었다. 천사의 대종후인 유령사모 야화련! 그녀조차 실종된 상태로 대륙사도계는 지리멸멸해 있는 상태였다. 그 상황은 대륙마도계도 비슷했다. 마도는 패천세의 위엄에 눌려 숨도 쉬지 못할 지경이었다. 결국, 대륙마도가 하나로 합쳐졌다. <천마루(天魔樓)> 대륙마도의 지존세는 그렇게 탄생되었다. 허나, 그들은 결코 대륙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수는 없었다. 대륙육합천패! 그 힘은 너무도 거대했기에… 단지, 천마루의 마인들은 패천세의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보심하기에 급급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 또한 야망을 지닌 자들일 뿐이었다. 그들은 지난 십 년 동안 급격히 세력을 팽창시켰고, 그 잠력은 산서를 기점으로 한 동북무림계를 장악할 지경이었다. 특히, --천마수라종 사우! 그는 절정의 마공을 익혀 마도제일이라 불리우고 있었다. 또한, 그는 심계가 깊기로 이름난 모사로 음흉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었다. 한데, 그에게는 뒤를 이를 수제자가 있었다. 이름하여 혈영수라, 혈영수라! 이 인물은 아직껏 무공 방면에는 다소 미약하나, 자신의 사부에 못지않은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 또한 음흉한 모사라는 점이었다. 혈영수라는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검해가 대륙육합천패의 압력을 받아 고심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소." 검해옥신룡은 잘라 말했다. "천마루와는 관계가 없는 일이니 상관치 마시오." 그러자, 혈영수라는 짐짓 정색을 했다. "관계가 없지 않소이다. 본 천마루 역시 대륙육합천패의 창궐로 위축되는데 저희 사부님께서 같은 처지인 검해와 제휴하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이오." "그럴싸한 말이구료?" 검해옥신룡은 비꼬는 투로 갖다 붙였다. 한데, 검해라 했는가? 검… 해. 일명… 제삼무림! 그렇게 불리웠다. 사실, 그들은 무인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유랑검인들! 어쩌면 그들은 한 포기 잡초와도 같은 인생자들이었다. 한 자루 검을 끌며, 대륙천하를 유랑하는 자들, 그 숫자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지금 이 시각에도 풀의 뜻을 따르는 자가 속속 생겨났기에… 허나, 그들은 가장 방대한 인맥을 형성하고 있었다. 삼류의 축에도 끼지 못하는 무도계의 이단혈! 그들은 뿌리없는 그저 황무지에 버려진 잡초일 뿐이었다. 죽음도 황야에 내맡겨 버리는 죽음의 초월자들, 그들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었다. 초의사신객(草衣死神客) 우문비(宇文飛)! 한 인물! 그는 하루에 한 벌씩의 옷은 지어 입는 인물이었다. 새벽 이슬을 맞은 풀을 뜯어 그것으로 초의를 만들고, 그는 그것들 중 열두 개의 풀잎을 소중히 보관하고 다녔다. 그리고, 그는 그것으로 천하인이 경외하는 대상이 되었다. 광전십이비초술(光電十二飛草術)! 하나의 풀잎이 암천을 가를 때, 빛보다 빠른 광전(光電)이 작렬한다. 적은 자신의 죽음도 깨닫기 전에 죽어가야 했다. 아직, 그 누구도 초외사신객의 손에서 열두 개의 풀잎을 떨구게 한 자는 없었다. 그리고, 그는 풀의 뜻을 따르는 백만 유랑검인을 모았다. 그리하여 탄생된 것이었다. 대륙무도계의 이단혈(異端血)인 제삼무림(第三武林) 검해(劒海)! 그것이 결성된 것은 일갑자 전이었다. 한데, 일 년 전, 초의사신객이 돌연 힘을 잃고 말았다. 그는 하나의 풀잎도 들 힘이 없었던 것이었으니! 결국, 대륙최대의 세력은 구심점을 잃은 채 표류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검해는 다른 세력들의 표적이 되었다. 군림의 야망을 품은 자들! 검해는 그런 자들에게 있어 최고의 인간보급창고가 아니겠는가? 그 중에서도 대륙육합천패는 서로의 비슷한 힘의 균형을 깨기 위해서라도 세력 팽창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런 그들이 검해를 그대로 놔둘 리는 전무했으니! 검해! 그것은 대륙의 폭풍핵으로 대두되었다. 검해옥신룡 우문룡! 검해의 소해 주! 아울러, 그는 천하제일미남으로 알려져 있었다. 초의사신객 우문비의 독자(獨子)! 허나, 그에게는 다른 신분이 또 하나 있었다. 검해옥신룡은 혈영수라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로서는 사실 혈영수라의 속셈을 훤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음흉한 놈 같으니! 검해를 집어 삼키려는 속셈을 누가 모를 줄 아느냐?) 그러나, 그의 심중과는 달리 혈영수라는 다시 덧붙여 강조했다. "이것 보시오! 검해옥신룡! 그대도 잘 알겠지만 만일 천마루와 검해가 합병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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