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당신들이 골목에서 튀어나왔으면 사과를 해야지, 지금 어디서 쌍욕이야, 쌍욕이!~”
“아니, 이 미친년이 어디서 지랄이야, 지랄이!!!”
여기사의 말에 남자 놈이 그녀를 밀쳤고, 그녀가 바닥에 쓰러졌다. 바닥에 주저앉은 여기사를 보며 젊은 남자는 계속 욕을 했고, 차 안에 있는 렉서스 여자가 짜증난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차에서 내려 여기사를 지나 젊은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기선을 제압하려는 듯 내 앞으로 다가와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다.
“뭐야, 넌?~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고, 니 갈 길이나 가라...괜히 쳐 맞고 병원에 입원하지 말고, 알았냐?”
렉서스 여자가 나를 보더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내가 뒤에 타고 있다는 것을 모른 것 같았다. 난 갑자기 두 사람의 사이가 궁금해서 녀석을 보지도 않고, 렉서스가 달려 나온 골목 쪽을 살폈다. 예상대로 그곳은 모텔 밀집 지역이었다. 다시 계천 건너편을 살피니 그곳은 주택단지였다. 계천을 경계로 그렇게 주택과 모텔단지가 나뉜 구조였고,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퍽!~ 소리와 함께 젊은 남자는 뒤로 나가 자빠져버렸다. 내 앞차기 한 방에 나가떨어진 녀석은 캑, 캑 거렸고, 렉서스 여자는 놀란 얼굴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여기사는 벌떡 일어나 상기된 얼굴로 다가와 내 팔을 잡고 말렸다.
“걱정 마세요, 기사님. 제가 알아서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렉서스 여자는 젊은 남자가 어이없이 당해버리자,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인상을 쓰며 내게 다가왔다. 걸음걸이가 어떻게 저리 도도할 수 있을 까 싶을 정도로 렉서스 여자의 모든 동작은 도도했다.
“좋아요, 이쯤 하죠...!...”
모든 동작이 우아한 여자는 명풍 핸드백을 여는 모습도 우아했다. 그녀는 지갑에서 10만 원짜리 수표 세 장을 꺼내서 내 손에 쥐어주었다.
“됐죠?...”
씨발!...정말 좆같은 날이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느꼈던 모든 분노를 합한 것 보다 더한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왔다. 그런데 젊은 남자 놈이 눈치도 없이 이런 상황에서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녀석은 렉서스 여자가 준 돈을 받은 채 가만히 있는 나를 보고는 용기를 얻은 모양인지, 갑자기 내게 달려들며 펀치를 날렸다. 난 놈이 싸움 좀 할 줄 알았더니 이도저도 아닌 펀치를 날리고 있었다. 그렇게 큰 동작으로 휘두르는 펀치에 맞는 것은 샌드백뿐이었다. 일단, 난 가볍게 녀석의 배를 다시 걷어차서 숨쉬기가 곤란하게 했다. 녀석이 맞은 곳은 고통이 크면서 숨을 쉬기가 곤란한 곳이라 다시 움직이려면 시간이 필요한 곳이었다.
렉서스 여자는 그 모습을 보고는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이 여자는 자기감정을 조절하는 상황을 많이 겪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난 그런 여자의 모습이 정말 싫었다. 자기감정을 숨긴 채 나를 분석하는 듯한 표정이 정말이지 싫었다. 더 이상 렉서스 여자와 남자자식과 얽히고 싶지 않아 돌아서서 여기사에게 다가갔다. 난 수표를 그녀에게 전해주고 다시 뒷좌석에 올랐다.
여기사는 수표를 보다가 쓰러진 채 숨을 몰아쉬고 있는 젊은 남자에게 다가갔다. 경멸하는 듯한 얼굴로 내려다보던 그녀는 수표를 젊은 남자의 얼굴에 던져버리고 다시 돌아서서 택시 안으로 들어왔다. 렉서스 여자는 얼굴이 붉어진 채 신경질 적으로 선 그라스를 끼고는 차안으로 들어가 버렸고, 젊은 남자는 우리와 렉서스 여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고맙습니다, 손님...제가 참았어야 하는 건데...죄송합니다...”
여기사는 차를 몰고 달려가며 그렇게 말했고, 난 이제 지각에 대한 어떤 걱정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늦었다는 것도 있었고, 렉서스 여자와 젊은 남자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 아무것도 생각하거나 걱정하고 싶지가 않았다.
“...참는 게 다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가요?...후우!~ 참을 인자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던데...정말, 손님 말씀대로 참기만 하니까 울화병에 걸려서 제가 먼저 죽을 것 같아요...!...아무튼 고맙습니다...”
초희의 집에 도착한 여기사는 내가 주는 돈을 한사코 거절했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서 뒷좌석에 돈을 넣고, 얼른 초희의 집 쪽으로 달려가 버렸다.
안으로 들어가자 일하는 아줌마가 나를 보고 당황했고, 초희와 그녀의 엄마가 나를 보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했다. 옷을 바로 입을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아직도 난 티를 거꾸로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 요즘 유행입니다...”
멋쩍은 얼굴로 그렇게 둘러대고는 초희와 함께 지하로 내려갔다. 정확히 15분 지각이었다. 어차피 오늘 1타임엔 실기 실을 꾸미고, 초희와 대략적인 상담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지하로 내려 가보니 내가 얘기한 보드판과 함께 최신형 컴퓨터와 이젤, 그리고 테이블 형 책상과 싸구려 플라스틱 의자가 있었다. 학생의 집에서 수업을 하다보면 가장 곤란한 것이 화장실 사용문제였다. 그런데 이 안에는 측면에 샤워 실이 있었고, 들어가는 입구 앞에는 칸막이까지 되어있어서 나 같이 예민한 성격의 남자라도 부담이 없었다. 그리고 싱크대가 설치되어서 물 사용과 도구를 닦을 때도 문제가 없었다.
이곳은 말이 지하지 넓고 쾌적한 것이 내 원룸과 비교해서 부족한 것이 전혀 없었다. 돈이 좋은 세상이었다. 이렇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대학에 목을 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난 준비해간 이화여대 합격생들의 그림을 아트 백에서 꺼내들고 책상에 펼쳤다. 이대 회화파트의 실기전형은 전통적인 정물 수채화가 아니라, 제시된 대상을 주고 그것을 이용해 자유롭게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이었다. 실제 물체를 주제로 주기도 하지만 ‘마트에서 찬거리를 사들고 집으로 들어온 여자가 잘 못해서 그것을 쏟고 말았다. 그것을 상상하여 자유롭게 공간표현을 하라’라는 문장 형의 주제가 나오기도 했다.
이런 전형방식을 보면 전통적으로 테이블위에 놓여진 정물을 그리는 수채화와는 차별화되어 학생들의 상상력을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나 같은 입시학원의 용병들이 연구 작을 통해 이미, 유형을 시각적으로 구체화 시켜놓았기 때문에 학생들은 그것에 맞게 짜깁기 할 수 있는 기술만 익히면 그만이었다. 어차피 3~5시간의 시험시간 동안 대단한 생각을 할 수 도 없었고, 화면에 제대로 표현하기도 짧은 시간이었다.
초희는 내가 펼친그림을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바라봤다. 벽에는 내가 부탁한대로 양철 판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일일이 핀으로 꼽을 필요가 없었다.
“초희야, 한 장씩 가져와라...”
“예?...”
초희는 생각한 것처럼 답답한 면이 많은 것 같았다.
“그림말이야...이 벽에다 붙일 거야...”
“예...”
이제야 이해한 듯 초희가 그림을 한 장 들고 왔고, 난 그것을 받아들고 벽에 댄 뒤, 자석으로 네 귀퉁이를 고정시켰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움직여서 30여장의 그림으로 벽을 도배했다. 그림을 다 붙이고 나자 이제야 지하실이 조금 화실 분위기가 나는 것 같았다. 난 초희와 책상 옆에 있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그림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초희야...앞으로는 네 그림으로 이 벽을 채워야 해...알겠니?”
“...예...”
내 말에 초희가 숙인 고개를 들고 내 눈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는 눈도 잘 마주치지 못하더니 30분이 지나서야 겨우 내 눈을 쳐다본 것이었다. 반팔 티에 헐렁한 트레이닝을 입고 있는 초희의 모습이 이상하게 초라해 보였다. 한 번도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없었는데, 오늘따라 정말이지 내가 못 할 짓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뭔지 모르게 불안감이 엄습해 오기 시작했다.
이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너무나 묘한 느낌인 것이 마치, 꺾으면 안 되는 꽃을 꺾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흠...좋아, 솔직하게 말할게...지금부터 너는 지금까지 네가 생각한 미술을 모두 버려야 돼. 예를 들면 피카소니, 고흐니, 폴락이니 하는 그런 류의 형체가 불문명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은 머릿속에서 모두 지워버려 알겠니?”
“...예...”
보통의 학생들은 내게 이유를 물었는데, 초희는 쉽게 그러겠다고 대답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난 그런 초희의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짜증이 났다. 19살의 나이에 로봇처럼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 끔찍한 것도 없었다. 당연히 초희는 왜냐고 내게 따지고 물었어야 했다. 도대체 이런 풍요로운 집에서 태어난 초희가 왜 이렇게 기가 죽어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로미와 비교하면 정말 극과 극이었다. 이곳에는 밖으로 통하는 창문이 만들어져 있었고, 분명히 환풍 시설이 잘 돼있어서 공기가 전혀 탁하지 않았음에도 난 초희를 보면서 숨이 턱턱 막혀왔다. 지금까지 가르쳤던 학생들에게선 볼 수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내 앞에 앉아 있는 초희가 사람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좋아, 그럼 바로 시작하자.”
난 일어나 화판에 도화지를 끼우고 이젤에 올려놓은 뒤 연필을 하나 빼내들고 연필을 깎기 시작했다. 초희를 옆에 두고 연필을 깎는 법부터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연필 깎는 것만 봐도 저 자식이 어느 정도 실력인지 보이니까 유심히 잘 봐둬...”
“예, 선생님...”
초희는 정말로 내 행동 하나 하나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조금 재미있기도 했다. 빈 병, 빈 가방...하얀 도화지...초희는 그렇게 느껴졌다. 어떤 것을 채워주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모습을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너도 해봐 초희야...”
“네...”
내 말에 초희가 4b 연필을 꺼내들고, 커터 칼을 집었다. 내 모습을 보며 칼 질을 하는 초희는 정말 못 봐줄 정도였다. 뭐 당연한 일이었다. 연필 깎기에 익숙한 상황이었고, 모두 정형화된 필기구를 사용하기 때문에 칼질이 서투를 수밖엔 없었다.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집중해서 칼질을 하는 초희는 역시, 다른 학생들처럼 질문을 하지 않았다. 보통은 왜 이렇게 깎아야 하느냐? 연필 깎기를 사용하면 안 되느냐는 질문을 하기 마련이었는데, 초희는 그저 연필을 깎는 것에만 집중했다.
“자, 그쯤하고 ...이 쪽으로 와서 앉아 봐...”
나는 플라스틱 의자를 들고 이젤 앞에 앉고, 초희를 불렀다. 그러자 초희가 플라스틱 의자를 들고 내 옆에 와서 앉았다.
“지금부터 선 연습을 할 거야. 이걸 하는 이유는 연필의 각도를 자유롭게 사용하게 할 수 하려는 목적인데, 음...농구로 치면 드리블 연습, 수학으로 치면 구구단이라고 해두자.”
“예...”
대략적인 팔의 움직임과 연필의 각도를 조정해 주고 일단 초희 스스로 화지를 채워나가게 했다. 물론, 나는 초희 앞에서 같은 선 연습을 했고, 초희는 나를 참고하면서 하는 방식이었다. 선 연습은 재미가 없어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었기 때문에 요즘은 입시학원에서는 잘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초희 처럼 시작이 늦은 학생들에겐 일부러라도 이런 선 연습을 더욱 가혹할 정도로 시켰다.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이렇게 오늘 2타임정도로 선 연습을 끝내면 초희는 매일 스스로가 선 연습을 해야 했고, 난 그것을 주말에 검사를 하는 방식이었다.
1단계의 색감을 모두 채운 나는 뒤로 나와 초희의 상황을 살폈다. 녀석은 얼굴이 붉게 물들 정도로 상기된 채 땀까지 흘리며 팔을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 지금 초희는 죽고 싶을 정도로 짜증이 날 것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일어나 싱크대 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엔 내가 말한 국산커피 몇 종류가 있었다. 원두커피를 준비해 주겠다고 했지만 난 원두커피는 이상하게 입에 맞지 않았다. 태생이 싼티가 나서 그런지 나는 그냥 뜨거운 물에 국산 커피 한 스푼만 타서 마시는 것이 좋았다. 물론, 이것도 천 선생 때문에 생긴 습관이었다. 그분은 기타도 잘 쳤고, 술을 매우 좋아했고, 음악을 사랑했고, 시를 좋아했다. 어린 마음에 나도 모르게 그 분을 닮고 싶었는지 천 선생의 방식들을 따라했고, 어느 새 몸에 익고 말았다.
나는 1층으로 올라가 초희 엄마에게 오늘은 저녁을 다른 곳에서 먹어야 한다고 미리 말을 전한 뒤, 다시 지하실로 내려왔다. 그리고 5단 계로 나눠서 나는 4b 연필로 하얀 화지를 까맣게 채워 넣었다. 초희는 단계가 진행 될수록 나를 쫓아오지 못한 채로 당황하고 있었다. 항상, 보는 모습이지만 저렇게 초희 처럼 당연한 일에 크게 상심하는 학생들을 보면 오히려 가르치는 내가 힘이 빠져버렸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너무나 힘들어하는 초희와의 1타임 수업은 어쩔 수 없이 30분 일찍 끝을 냈다. 이런 경험이 많은 나였지만 초희같은 학생은 본적이 없었다. 저녁을 먹고 또 다시 시작되는 수업에서 과연 초희가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택시를 타고 가려고 했는데 초희 엄마가 한사코 태어주겠다고 해서 나는 그녀의 차에 올랐다. 운전을 하는 초희엄마의 모습을 보자니 신기하게도 상인과 많이 닮아보였다. 단순하게 안전운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능숙해 보였고, 여유가 있어보였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그녀가 할 말이 떨어졌는지 음악을 틀었다. 그러자 조금 무거운 느낌의 샹송이 흘러나왔는데, 들어보니 이베뜨 지로의 ‘미라보 다리’였다.
“음악이 좀, 청승맞죠? 제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애들 노래는 손가락이 오그라들어서 못 듣겠더라고요...이건 프랑스에 사는 친구가 구워 준건데...듣기 거북하세요, 장 선생님?”
“아닙니다...이베트 지로의 노래는 저도 자주 듣던 노래였습니다...”
내 말에 초희엄마가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어머나!...이베트 지로를 아세요?~”
“제게 그림을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께서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란 시를 좋아하셨는데, 이베트 지로나 티노 로씨의 노래 말고도 쟈크 라스리가 작곡한 노래도 갖고 계셔서 ...운 좋게 모두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요?...음...왠지 모르게 그 분도 술 꽤나 드실 분 같네요...”
“그렇지 않아도 선생님 별명이 바쿠스였습니다.”
내 말에 초희엄마는 그녀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깔깔대고 웃었다. 확실히 사람들은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면 초희에게도 다른 모습이 있을까? 나는 초희엄마의 웃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하면 초희에게서 다른 모습을 끄집어낼까를 고민했다.
“장 선생님은 그렇게 재밌는 얘기를 어떻게 그런 식으로 담담하게 하는 거죠?”
초희엄마는 과장되게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내 얘기가 정말로 재미있다는 것인데 조금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도 내가 말을 재미있게 잘 한다는 소리를 들은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광호의 가게에 들어가니 깔끔한 정장차림을 한 상인과 광호가 우리를 맞아 주었고, 예쁜 여자들이 유니폼인 듯한 흰색 블라우스와 검은 색 스커트를 입고 서빙을 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정장차림을 한 광호를 보자 다르게 느껴졌다. 상인과 광호가 안내해주는 룸으로 걸어가면서 상인과 시선이 마주쳤다. 미소를 짓고 있는 상인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상인과 광호가 안내해준 룸으로 들어가자 주인남자인 석관부부와 함께 도의원인 권중부부, 신문사 대표인 경섭부부와 kbs 지역 본부장인 지환부부가 자리를 잡고 술도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정 원장과 학송이 그들 사이에 껴서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과분하게 환대를 받으며 나와 초희엄마가 안으로 들어가 난 학송 옆에 앉았고, 초희엄마는 내 옆에 앉았다.
“장 선생, 첫 수업을 해보니 어때요?...우리, 초희 가능성이 있습디까?”
“...가능성을 보고 시작한 일이 아니라서요... 무조건 합격시켜야죠...”
내 말에 학송과 주인남자 그리고 도의원 권중이 크게 웃었고, 주인여자가 묘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주인여자와 내 눈이 마주쳐서 얼마간 시선을 주고받다가 다시,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주인여자가 말한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새벽에 벌어진 일에 대한 어떤 변명거리도 찾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주인여자의 변명도 들을 수 없는 것인가?
수업 때문에 한사코 거절했지만 기어코 학송이 주는 소주 한 잔은 마실 수 밖에 없었다. 상인과 특별한 사이가 된 후로 자꾸 이렇게 나만의 룰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술을 마시는 행위는 내게 있어선 엄청난 일이었다. 한번도 어긴 적이 없었는데 이젠 내가 정한 규칙들이 깨져가는 것을 나 스스로가 은근히 즐기고 있는 것도 같았다.
조금 기다리고 있자니 상인이 나와 초의엄마의 음식을 들고 들어와 앞에 내려주었다. 흰색 스타킹을 신고 있는 상인의 모습도 너무나 섹시했고, 그녀의 다리를 보자 내 자지는 금방 발기해버리고 말았다.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자지를 위로 올리는데 주인여자와 또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녀의 눈빛은 나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 생각에 내 얼굴이 확 달아오르고 말았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음식이야?...우동도 아니고, 울면도 아니고...!..”
내 앞으로 나온 하얀 짬뽕을 보고 학송이 이상한지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주인남자가 하얀 짬뽕의 유래를 설명해주었다. 초희엄마도 모르고 있었는지 주인남자의 설명에 신기해했고, 내게 양해를 구하고는 면과 함께 국물 맛을 보았다. 그러자 학송도 면과 국물을 떠서 맛을 보았다.
“어머!~ 정말 신기한 맛이에요. 이런 것도 있었구나...!”
초희엄마는 하얀 짬뽕의 맛이 괜찮은지 연신 감탄을 하며 자꾸 짬뽕을 뺏어갔다. 나는 이런 식으로 내 음식을 누군가가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제 나는 초희 엄마의 송이 덮밥을 뺏어먹고 있었다.
“에이!~ 이건 맹숭~ 맹숭한 게 이도 저도 아니잖아...! 짬뽕은 그저, 칼칼한 빨간 짬뽕이 제격이지...!”
학송은 맛이 없는지 그렇게 말하고는 소주를 마셨다. 그러면서 또 자기 잔을 내게 주면서 술을 따라 주려했다. 보다 못한 정 원장이 학송을 말렸지만 내가 괜찮다고 말하고 학송이 주는 술을 받아 마신 뒤 다시, 학송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정 원장은 외계인이라도 본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녁을 모두 먹고 조금 얘기를 나누다가, 나와 초희엄마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 뒤 자리를 떠났다. 룸에서 나오자 광호와 상인이 우리를 배웅했다. 상인은 지금 내가 어떤 기분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와 난 섹스를 했고, 신혼부부가 된 것처럼 여행을 하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 했다. 인영과는 몇 년이 걸려도 하지 못했던 것을 상인과는 일주일 사이에 모두 다 했다. 하지만 인영이나 상인이나 내게는 다른 것이 없었다.
광호와 함께 서서 내게 손을 흔들어주는 상인을 보자, 두 사람의 빈틈이 보이지 않았고 상인은 인영보다도 더욱 멀게 느껴졌다. 주인여자의 말대로 현실은 내 생각과는 달리 이렇게 철저하게 어긋나고 있었다.
“장 선생님은 ...하얀 짬뽕을 닮은 것 같네요...”
초희엄마가 운전을 하면서 내게 그렇게 말했다.
“맹숭~ 맹숭 한가요?...”
“하하하...!...그건 아니고요...너무나 담백하다고요...아무튼 다행이에요...”
“다행...이라뇨?”
“...초희를 가르치기가 쉽지 않으실 거예요...하지만 장 선생님과는 잘 맞을 것 같아서요...”
“그럴만한 이유라도 있나요?”
“그냥...느낌이 그러네요...다른 과외선생님들 하고는 다른 것 같아서요...”
초희에겐 나 말고도 국어, 영어, 수학을 가르치는 과외선생들이 있었다. 그들과 내가 다른 것이 뭐가 있을까? 초희엄마는 더 이상 자신의 말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고, 다시 음악을 틀었다. 처량한 샹송이 초희엄마와 나 사이를 지나 차안에 맴돌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해 지하실로 내려가니 초희가 벽에 붙은 그림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내 발자국 소리를 들은 초희가 돌아서서 나를 보더니 얼굴을 붉혔다. 나는 그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저녁, 맛있게 먹었니?”
“예...”
나는 싱크대 쪽으로 다가가 컵을 들고 커피를 넣었다.
“너도...커피...마실래?”
고개를 돌려 초희를 보고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진행될 수업을 견디려면 카페인을 섭취하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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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소설) 하얀 짬뽕 - 19편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이런 식으로 해서까지 대학에 가야만 하는 것인지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학생이나, 그 중간에 끼인 학부형이나 그런 의문을 갖는 것조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