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난 명기다!! -65부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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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난 명기다!! -6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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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호는 집으로 내려간지 며칠이 지나도록 전화연락 한통이 없었다. 

성현이라도 있었으면 수소문을 해 안부라도 물었겠지만 성현 역시 군대에 가있었기 때문에 그럴수도 없었다.

간간히 석민도 사무칠 정도로 그립게 다가왔지만 진호가 집을 빠져 나갈때의 쓸쓸한 모습이 더욱 머릿속에 

날카롭게 박혀 심장을 도려내고 피를 흘려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전화 한 통..
한 통만이라도...'

 

잔인한 놈이었다.
그는...

나를 너무도 아프게 만들었다.
이유를 모르니 더 답답했다.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 해야 할 지도 모를 만큼 그렇게 나의 정신의 혼을 빼버리고 있었다.

 

'호..혹시......'

'승수가 진호에게 말을 한걸까?'

'아니야..
자신이 내게 그랬다는 것을 알면 진호가 가만히 안 있을거라는걸 알고 있겠지..'

'도대체 왜 그러는거야....'

 

진호를 기다리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아팠다.

사랑이라는 것을 논 할 가치도 없는 나였지만 내가 아는 사랑은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만남과 불타오르던 만남도 추억이 되어 아프고 어둠의 그림자처럼 서서히 다가오는 이별도 고통이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왔다. 

나를 이해해 달라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호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고 효진과 함께 한 약속을 순조롭게

지켜나가고 있던 나에게 한 번만이라도 기회를 달라는 것이었다.

간절한 소망이고 끝없는 외침이었다.

 

'이대로 끝인가?'

 

사랑은 내게 무엇이었을까?

배운다고 이뤄지고 유지가 되는 것이 아니란 것 쯤은 이미 알고있는 나였지만 진호가 내게 알려준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물음이었다.

정의 할 수 없는 사랑이란 단어의 답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만약 진호가 지금 내게 다가와 진하게 안아준다면

연기처럼 사라질 부질없는 고민을 하고 있는 나였다.
하지만 그는 철저히 그것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고민을 하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복잡해지고 더 어려워지는 사랑이라는 녀석에 힘이 들었다.

그 아픈 사랑에 무릎 꿇고 항복을 해야만 하는걸까?

결국 진호는 연락도 그리고 모습도 보이지 않고 예정된 휴가를 마쳤다.

 

 

휴가를 끝낸 진호의 걱정은 하루하루 계속해서 이어졌다. 

입술은 이미 말라 거칠고 부르터 우지끈하는 소리를 낼듯 찢어지고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피폐해진 나의

모습에 내 스스로도 위험을 감지할 정도였다.

 

'그깟 사랑?....쳇! 잊자 잊어! 씨발놈의 사랑 따위에 나 이혜미가 쓰러질것 같아?'

 

메아리없는 외침에 지쳐있던 나였지만 잊더라도 대답만은 듣고 싶었다. 

하지만 편지를 보내도 답장은 없었고 전화 역시 없었다.
하루가 일주일처럼 지나가고 일년같은 일주가 지나도

항상 눈만뜨면 같은 생각과 같은 고민으로 살고 있는 나였다.

 

'뭐야..무슨일이 있는거야...분명해! 진호가 나한테 이럴순 없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걱정과 고민으로 더이상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작정을 하고 옷을 갖춰입는 나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미쳐 버릴것만 같았다.
이미 미쳐도 몇번은 미쳤어야

할 만큼 많은 고통이 나를 휩쓸고가 이미 황폐해진 마음과 기억이었지만 그런것들은 진호만 있으면 참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화장도 무시한채 서둘러 집을 나와 차를 몰았다.

 

이곳저곳 익숙하진 않지만 낯익은 풍경들이 펼쳐져 있었다.

좌우로 펼쳐진 논엔 황금빛들녘 대신 검은 흙바닥과 목아지가 날려진 벼의 뿌리가 남아 황폐해진 마음같았다.

봄이 다가오려는지 이곳저곳에 쌓여있던 눈들은 전부 녹았고 한파에 꽁꽁 얼었던 모든 사물들이 서서히 깨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아직까진 칼바람이 슝슝 불어와 피부를 파고 들었지만 아직 빙하로 싸여있는 얼어붙은 나보다

덜 차가웠다.
주변 사물을 볼 만큼 여유도 정신도 없었다.

교통법규까지 어겨가며 달려간 곳은 진호의 부대였다.
나 조차도 도착을 하고나니 그곳인 것을 알아챘다.

그만큼 정신없이 달려온 것이었다.

 

"필~ 승!! 어떻게 오셨습니까?"

"저..저기 안진호 병장 좀 만나러 왔는데요~"

 

"죄송하지만 오늘은 평일이라 면회가 불가능 합니다"

"아..알아요..
근데 잘 지내고 있는지 그것만 확인 하려고 왔거든요"

 

늠름한 군인답지 않게 고참근무자의 눈치를 몇번 살핀 남자는 천천히 입을 벌려갔다.

 

"그..그게....안진호 병장님이...지."

 

/야 임마!!/

 

일병 계급장을 단 위병소 근무자의 말을 끊은건 병장 계급장을 단 한 사내였다.
두꺼운 옷으로 온몸을 무장한

그 사내는 손으로 일병을 불러들였다.
쌍욕을 하는듯 입모양이 거칠게 느껴졌다.
묵묵히 고개를 수그린 일병은

나를 슬그머니 쳐다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내고 자신의 위치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위병소에 설치된 군용전화로

통화를 하더니 잠시 후 간부로 보이는 사내가 내려와 면회실로 나를 이끌었다. 

알 수 없는 불길한 느낌이 몸을 타고 내렸다.

군대라는 곳이 원래 보안에 철저한 곳이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행동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았다.

같은 군복과 같은 모자 였지만 모자에 달린 다이아몬드 모양의 계급장이 더욱 듬직하고 강인해 보였다.

그 사내라면 숨김없이 얘기를 해 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안진호 면회 오셨다고요?"

"네...
잘 지내는지 궁금해서요"

 

"휴가 때 못 만나뵜나봐요~"

"아뇨..자..잠깐 보기는 했는데......"

 

"안진호병장 전출 갔습니다.
아마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을 거예요"

"전출이요? 그게..."

 

차분하게 말문을 연 간부는 진호의 이야기를 서서히 펼쳐나갔다. 

그러다 전출이라는 말에 놀란눈을 하자 전출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는 그였다.

전출의 뜻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 이유가 궁금했던 나였지만 차분하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
학교로 따지면 전학 같은겁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별 일 없으니 돌아가셔도 됩니다.
워낙 성실하고 착한

녀석이라 게다가 이제 군생활도 얼마 안남았으니 다른 부대에서도 적응 잘 하고 있을겁니다"

"거..거기가 어디죠? 한 번 봐야겠어요~"

 

전출을 갔다는 진호의 부대를 묻자 갑작스레 말을 더듬으며 당혹해 하는 그였다.

차분하게 말을 잘 하다가 갑자기 흔들리는 말투에 의심이 갔지만 그는 끝까지 얘길 해주지 않았다.

 

"아! 규정상 알려드릴수 없습니다.
그리고 찾아가셔도 면회가 안되세요..
원래 전출자는 적응기간 동안 휴가,

외출 그리고 면회가 불가합니다."

"아~ 그래요..
진호 잘 지내기는 하는거죠? 건강하죠?"

 

"그럼요..워낙 튼튼한 녀석이니까요"

"근데 그..
전출은 왜....."

 

"아! 그...그게..
그..그 쪽 부대에 인원이 부족해서 지원을 나갔다가 이번에 아얘 옮기게 됐습니다."

"아~~~그럼 진호한테 전화라도 한 통만 넣어달라고 좀 전해주시겠어요?"

 

그는 또 다시 말을 더듬으며 이어갔다.
다른 이야기 였다면 의심을 했겠지만 전혀 모르는 군 내부상황에 대해

뭐라고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고 왜 이렇게 더듬냐고 물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의심은 가지만 믿어야 하는 상황, 그 상황이 그랬다.
내 앞에 있는 듬직한 사내가 거짓없이 말했기만을 빌어야 

했다.

 

"그러죠..
제가 전출간 부대로 연락해서 진호에게 꼭 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꼭 좀 부탁드릴께요"

 

소대장이라고 소개한 그 간부의 말을 듣고 조금이나마 안심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하다만 목욕처럼

개운치 못한 기분이었다.
온 몸에 거품이 뽀드득하게 씻겨 내려가지 않은 미끈한 느낌이었다.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중에도 크디 큰 한숨과 뜨거운 눈물만을 흘리며 진호를 생각했다.

 

 

>>>>>

 

 

"혜미야!"

"어...어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생각은 뭘..."

 

넋을 놓고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나 보다.
효진이 묘한 얼굴을 하고 이상한 눈빛을 흘려 보내주고 있었다.

요즘 들어 밥도 제대로 못먹고 잠도 제대로 못자서 인지 사포처럼 변한듯한 거친 피부와 몰라 볼 만큼 검게 

들어가 버린 눈이 초췌함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언제나 효진과 만날때면 사회에 지친 현대여성들의 휴식처인 그 커피 전문점에 자리를 펴고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커피 한 잔과 조각케잌을 놓고 수다를 떨어냈다. 

 

"진호 아직도 연락 없어?"

"응.."

 

들릴듯 말듯 작은 대답과 고개를 끄덕여주자 효진도 터져 나오는 한숨을 참지 못하고 제 일처럼 걱정을 했다.

내 얼굴을 안쓰럽게 쳐다보는 효진의 눈이 무척 따사롭게 느껴졌다.

 

"휴가 끝나고 들어가서 아무런 연락도 없었던 거야?"

"응"

 

"뭐..싸운것도 없었고?"

"응"

 

상황을 이것저것 물어오며 따지고 생각해보던 효진이었다.

곰곰히 눈을 내리깔며 고뇌하던 효진은 번뜩 무언가가 생각 난 것처럼 눈을 치켜뜨더니 의자를 당겨 내쪽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무언가를 알아챘다는 듯 그녀의 눈동자는 빛이 나고 있었다.

 

"혹시 뭐 집히는거 없어?"

"혹시 뭐?"

 

탐정같은 눈빛과 표정을 하고는 하나 둘 씩 탐문을 해왔다. 

마치 범인을 잡아내는 것과 같은 나의 주변에 관해서 말이다.

 

"왜~ 나는 집히는게 있는데..."

"뭐..?"

 

"둘 중 하나야...석민 아니면 승수!"

"승수는 나도 의심을 하긴 했는데 석민오빠는 또 왜?"

 

이제 겨우 기억 속 깊은 곳에 묻을 수 있던 석민의 얘기가 나오자 마자 나는 몸을 떨었다. 

연민이라고만 치부해놓고 왠만해서는 꺼내보지 않는 잊고 싶은 기억이었기 때문이다.

효진에겐 석민과의 관계를 깊게 얘기한 적이 없었지만 승수와 같이 살면서 어느정도 전해들은 얘기로 

말을 이어갔다.

 

"하나는 승수가 진호한테 얘길 했거나..
또 하나는 석민오빠가 얘길했거나.."

"에이..
그건 아니다..."

 

"이도 저도 아니면, 진호 다른 여자 생겼던가~"

"............."

 

진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음속으로 바라고 바라던 바였다.

나같은 여자보단 더 착하고 순수한 여자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 또 그렇게 진호에게 얘길했었지만 몸이

떨려 오는 것이 실제 내 마음과는 조금 다른듯 했다. 

하지만 처음 진호의 유혹이 시작 됐을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리 없었다. 

지금은 내 곁에 있어주었으면 하는것이 솔직한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근데..나는 승수나 석민보다는 다른 여자가 생긴게 니 속이 훨씬 편할 것 같애.."

"........."

 

효진의 어이없는 말이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효진다운, 효진만의 해답이 터져나왔다.
기가 막히기도 했지만 그녀의 말이 맞는것 같기도 했다.

여전히 정신없이 뒤죽박죽이 되어있는 머릿속이었다.

 

"그냥~ 니가 먼저 차버리는게 어때? 다 잊고 새롭게 시작하는거야..
옆에 있는 내가 힘들어서 못보겠다!"

"....새롭게?"

 

효진의 낙천적인 성격에서 나오는 것이 정답일 수도 있었다.
사랑이란 것을 처음 해봤지만 거칠고 아픈 이별 

후에도 또 다른 예쁘고 아름다운 사랑은 다시 찾아온다고 믿었으니 말이다.
아니 헤어진다면 두 번 다시 사랑 

따윈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해도해도 결론이 나지 않는 생각은 여전히 더욱 복잡하게 얽기고 섥힌 실타레 처럼 머릿속을 더욱 꼬아놓는다.

어렸을때 엄마가 성현이 엉켜놓은 실타레를 풀다 결국엔 가위질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애절하고 간절하게 머릿속을 채우던 진호의 모습에 힘들어 하던 나도 그 실타레를 끊던 가위질 처럼 그를

잘라내야 하는지까지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유는 알고 싶었다. 

언제나 움직이지 않는 산처럼 등뒤에서 버티고 버텨 줄 것 같던 진호가 다른 사람처럼 변한 이유를...

 

 

>>>>>

 

 

다시 일주일이 지났지만 진호에겐 연락이 없었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진지하고 차분한 진호였지만 승수에 의해서건 석민에 의해서건 아니면 효진의 말대로 다른 여자가 생긴 거라면

이미 말을 하고 용서를 하던 이별을 통보하건, 그런것을 해야 할 시간이 이미 지났다는 생각이들었다.

한 달이 넘은 시점이지만 전화도 편지도, 그렇다고 이메일이나 메신저로도 그를 만날 수가 없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그도 힘들겠지만 나도 더 이상은 못버틸것만 같았다.
이대로 가다간 바짝 말라 죽은 고목처럼 

변할 것 같았다.

효진만큼 낙천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나 역시 복잡하고 머리 아픈것을 싫어 했다. 

그렇지만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모두 내가 만들어 놓고 내가 자초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떠 넘길수도 없었고 떠 넘겨받는이도 없었다. 

오롯이 나의 몫이었다. 

 

하얀 운동화, 무릎까지 내려오는 스웨터와 얼굴을 반쯤 가린 목도리.

그렇게 얼굴과 몸을 감쌀정도로 추운 날씨는 아니었다.
아파트의 현관을 나와 붉은 십자모양이 크게 박힌 약국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나였다. 

예전의 당당하고 활기찬 모습의 이혜미는 완전히 소멸한 기분이었다.
어디있던 어디서 무얼하던 무슨일에도

내 자신을 먼저 밀어넣지 못했다.
단순히 승수에게 당한 일로 인한 잠정적인 현상으로만 치부하기엔 내 스스로도

심각하다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심을 했다가도 무기력하게 고개를 숙이고 다시 문을 열려다가도 다시 뒷모습을 보이던 나는 큰 결심을 하고

약국의 문을 열었다.

 

/딸랑..딸랑..딸랑..../

 

요란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숨기고 싶은 치부를 들킨것 마냥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순간이었다.

 

"손님~ 소..손님?"

"네...네?"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은 나를 바라보며 불러대던 목소리에 화들짝놀라 살짝 고개를 들어 눈을 치켜떴다.

놀라는 내 모습에 약사도 놀랐는지 동그래진 눈을 뜨고 말없이 바라보다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내왔다.

 

"괘..괜찮으세요? 어떻게 오셨죠?"

"저...저기...그게~"

 

"아~ 삼천오백원 입니다."

"그..그게..."

 

남자 약사보다 여자 약사에게 부탁을 하는것이 덜 챙피 할 것 같아 일부러 도로변에 위치한 약국까지 나왔지만

쉽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약사가 꺼내 놓은 것은 콘돔박스였다.

여자가 약국에 와서 머뭇거린다면 콘돔을 꺼내놓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빗나갔음을 말로 표현해야 

했다.

 

"찾으시는게...."

"그..그...이..임신테스트기 하나만...."

 

"아~~~ 죄송합니다..."

".........."

 

뒤로 돌아선 약사의 모습을 보자 졸였던 가슴이 숨통이 트이는듯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금새 뒤를 돌아선 약사는 앞에 놓여진 유리로 된 진열대를 받침삼아 팔을 괴고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안에 내용물을 보시면 창이 두개가 나오는데 소변을 뭍히고 5분정도 지나면 붉은 줄이 나타납니다.
한 줄이면

임신이 아니고 두 줄이면 임신으로 추정되고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처음보는 소변이 더 정확하지만 별 차이는

없습니다.
그리고...."

"어..얼마예요?"

 

"만 오천원입니다~"

"여기요"

 

약 봉지에 담아준 그것을 들고 서둘러 약국을 빠져나왔다. 

가뜩이나 심란한 마음에 무거움이 느껴졌다.
대홍수에 쓸려내려온 커다란 바윗덩이가 낡은 집을 덮쳐 무너뜨리듯 

나의 낡고 얇게 만들어진 너덜한 마음도 점차 찢겨지고 구멍이 날 지경이었다.

 

'저번달에...
하긴 했는데...
조금 밖에 안했고...
하아~ 미치겠다!'

 

지극히 정상적인 생리주기를 갖고있던 나의 몸에 이상이 생긴것은 승수와의 안 좋은 기억이 생기면서 부터였다.

심한 구타와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인지 조금씩 불규칙적으로 변하던 주기가 결국엔 한 달을 건너

뛰는 경우까지 생겨났다.
게다가 저번달엔 하기는 했지만 소량의 양이 나왔을 뿐 또다시 한달이 훨씬 지난 지금

까지 생리를 하고 있지 않았다.

처음엔 그저 스트레스때문일 거란 생각을 했지만 내 자신이 두렵고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미치광이가 되어가고 있는 나였다.

매일마다 찾아오는 무시무시한 악몽과 서서히 신경이 거슬리는 이명까지 들리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의 불면증과 거식증의 초기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눈을 감으면 태양보다 더욱 밝은 빛이 몰려와 눈을 떠야만 했고 죽음이 찾아온것 같은 허기짐에 먹은 음식들은

10분도 되지않아 하얀 양변기로 쏟아내야만 했다. 

 

어느새 소파에 앉아 테스터기를 꺼내들은 나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그저 봉양하는 마음으로 받들듯이 들고있는 이녀석이 나를 거부해 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용기가 나질 않았다. 

임신이 아니면 다행이지만 만약 붉은줄이 두 개가 나타났을때를 생각하면 너무도 겁이나 섣불리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하지만 미룰수도 없었다.
어쩌다 이지경까지 망가진 모습이 됐는지 내 자신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사실 내 스스로가 깨끗하고 죄가 없었다면 진호의 연락두절은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을 이유가 되질 못했을 

것이다.

결국 내가 만들어놓은 덫에 내 스스로가 걸려들어 지나가는 도와줄 사람만을 기다리는 꼴이었다. 

마음속으로 기도를 마친 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갔다.
몇 걸음 되지않는 거리였지만 지옥길로 접어드는 

것처럼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이었다.
그러나 그 때 전화벨소리가 나를 완전히 멈추게 만들었다.

가기싫은 길을 누군가 부른다는 이유로 다시 되돌아오는 심정이었다.

처음 보는 번호였다. 

 

[여..여보세요~]

[여보세요? 누나...나...진호...]

 

[너 뭐야! 왜 이제 전화하는거야! 얼마나 걱정했는데]

[미안해~]

 

그렇게 기다리고 바라던 진호의 목소리였다.
막혔던 혈관들이 시원하게 뚫려나가듯 온몸에 찌릿한 전기의

느낌이 전해졌다.
만약 전화가 온다면 투정을 부리거나 화를 내지 않겠다는 다짐도 진호의 목소리에 잊혀졌다.

이미 심한 어리광을 부리는 중이었다.
엄마젖을 보채는 아이처럼...

 

[왜 이제 전화해? 뭐야..
무슨일이냐구!]

[그..그냥..
좀 일이 있었어]

 

[그러니까 그 일이 무슨일이냐고! 얼마나 큰일이길래 이제서야 전화하는 거냐니까!]

[미안해~]

 

진호는 여간해선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꼭 듣고 싶고 알고 싶었다.

무엇이 진호를 그리고 나를 그리도 괴롭혔는지를... 

말하고 싶지 않아하는 것을 느꼈지만 물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진호에 대한 믿음이 깨질 것 같았다.

그럴 자격도 없지만 진호에 대한 믿음을 깨고 싶지 않았다.

 

[빨리 말해!]

[누나~ 건강하지? 잘지내는거지?]

 

[말 돌리지 말고 빨리 얘기해! 이 나쁜놈아~]

[그치? 나 나쁜놈 맞지? 그치 누나?]

 

눈물은 나의 버릇이 된 것처럼 툭하면 볼을 타고 내려왔다.
아무래도 눈물샘에 문제가 생긴것이 틀림없었다.

어느새 촉촉히 젖은 눈아래로 커다란 눈물 방울이 타고 내려와 흐르고 있었다.
진호의 말이 무슨뜻인지 알 수 

있을것 같았다.
그래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제발 그 말 만은 하지 않길 바랐다.

 

[...........]

[나..
누나한테 한 약속 못 지킬것 같애..
끝까지 지켜주겠다는 말 더 이상은 못지켜 줄 것 같애...

건강하고~ 나 이제 전화 끊어야 해! 나 찾지도 말고 그냥 나 같은거 잊어버려 알았지?]

 

충격, 그리고 말로 형용 못 할 고통과 슬픔. 

순간적으로 말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스스로의 자책과 후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마지막 남은 꽃잎이 떨어져나가는 순간이었다.
그 만개했던 예쁜 꽃은 이미 거친 바람과 거리의 흙먼지로

이파리가 더럽혀지고 병들었으며 고운 꽃잎, 마지막으로 버티던 꽃잎 한장마저도 떨어지려는 순간이었다.

 

[지..진호야! 내..내가 잘못했어...응? 가지마...나 버리지마...응? 내가 잘못했어..사랑해..사랑한다고..]

[.........해..행복해야돼! 알았지?....]

 

[왜..왜 그래? 무..무슨일 때문이야? 내가 다 잘못했어~ 무조건 잘못했어...]

[...........찰칵...뚜..뚜..뚜..뚜]

 

[지..진호야! 자기야! 진호야!!!!]

 

터져나오는 한숨, 모조리 불타버린듯한 마음, 의지가 꺾인..
날개가 꺾인 한 마리의 새가 된 나였다.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아 가야 할 그 새가 꺾인 날개를 바라보며 한없이 끼룩거리다가 결국 한파를 얻어맞고

처참한 최후를 맞이 하기 직전인듯 나 역시 그 어떤 움직임도, 말도 할 수 없었다.

 

'진호야.....진호야...너 왜 그래~'

 

애절하고 간절한 부탁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이미 꽃잎은 떨어져 외길 낭떠러지로 날아가 모습을 감추었다.

끊긴 전화기에 대고 애원을 해봐도 보이지는 않지만 무릎까지 꿇고 빌어대는 나는 미친여자였다.

대답도 반응도 없는 전화기를 붙들고 소리치며 욕도 해 보고 미친년처럼 깔깔대며 웃어도 보고 가슴이 찢어져라

서글프게 울어대도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다.

겨우, 이제 겨우 못난 나를 발견하고 고치겠다, 달라지겠다 굳게 다짐을 하려했던 나였지만 부질없이 떠나버린 

그를 잡기엔 너무 늦어버린듯 했다.
너무 슬프다는 느낌.
그 느낌은 생각보다 고통이 덜 했다.

생각이 없다.
그저 숨을 쉬고 있다는 것도 사치라고 느껴질 뿐이었다.

 

 

>>>>>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매섭던 꽃샘추위가 가시자 완연한 봄기운이 아파트에도 어김없이 찾아들었다.

같은 햇살이지만 왜 봄의 햇살과 겨울의 햇살은 그리도 다르게 느껴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에겐

무섭도록 춥고 날카로운 바람이 불어 들어오고 있었다.
한 계절이 느린건지 세 계절이 빠른건지 시간 관념도

무너진지 오래였다.
넋이 나간 상태.
완전히 폐인의 길로 접어든 나를 그나마 지켜주고 있는것은 다름아닌 

효진이었다.

 

"야! 좀 먹어..
너 이러다 진짜 죽어 이년아!"

"..........."

 

"먹기 싫어도 좀 먹자..응? 내 성의를 봐서라도 좀 먹자~"

"........."

 

모기 소리처럼 앵앵대는 간지러운 소리로만 들릴 뿐 효진의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가끔씩 그랬다.
정말 정상인처럼 멀쩡하다가도 어느 순간 넋을 악마에게 뺐기고 나면 그 어떤 욕구도 욕심도

생겨나질 않았다.
소리도 그 어떤 것의 움직임도 모두 망가지고 일그러져 보이고 왜곡되어 들려왔다.

빛은 있지만 언제나 어둠속에 살아가야만 했고 조용하지만 시끄러움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배가 고픈데 역한 냄새가 풍겨와 도저히 넘겨낼 수 없었고 씻고 싶은데 피부에 닿는 물이 몸을 녹이는것 같이

아려와 씻을 수 없었다.

 

"혜미야..
정신 좀 차려....응?"

".........."

 

"너 이거 안 먹으면 병원데리고 갈꺼야!"

"........."

 

효진의 그 어떤 협박도 부탁도 귀엔 들리지 않았다. 

해가 웃음을 가득 머금고 창을 통해 반짝이고 있었다.
잘 시간이었다.

해님이 나를 보고 방긋 웃어주며 잘자라고 인사를 나눠준다.
앵앵대는 간지러운 소리가 자장가처럼 달콤하게

들려오고 고요함이 나를 더욱 심하게 흔들어준다.
엄마가 아이의 등을 토닥거리듯...

서서히 해님의 웃는 얼굴이 사라지며 하얀 세상이 펼쳐진다.

 

 

 

나의 꽃잎처럼 모두 실낱같이 남아있던 꽃잎들이 떨어진듯 형형색색의 낱잎들이 온 세상천지에 흩날리고

그 사이를 수많은 인파가 가로지르고 다니며 땅에 떨어지지 못하도록 바람을 일으킨다.

땅에 떨어진 꽃잎들도 다시 힘을 내 그 세상을 두둥실 떠다니고 있다.
활기차고 사랑이 넘치는 표정들이다.

나도 그들 사이에서 두팔을 활짝 벌려 사방천지를 뛰어다닌다.
한껏 물오른 앳된 얼굴과 햇살을 받은 표정은

수많은 인파의 표정과 같은 표정이다.
모두 나와 같이 실연과 아픔, 그리고 고통의 시간속에 헤메던 사람들인것

같았다.

 

'어?'

 

듬직한 어깨, 강직해 보이는 목선과 두툼한 다리..
어디선가 보아온 모습, 몸을 내맡기던 튼실한 몸통이 나의

시선을 끈다.
어찌나 선명하게 보이는지 내 뜻과는 상관없이 발걸음이 옮겨진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잡으려하면 멀어지던 그가 점점 가까워져온다.

마음속의 소유욕과 배신감, 슬픔, 그리고 그리움을 모두 버리고 나니 점점 마주 할 수 있다.

가까이 할 수 있다.

그렇게 다가온 그 사람이 내게 환한 미소를 번져준다.
햇살만큼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다.

 

"누나!"

"지..진호야!"

 

"잘 지냈어?"

"그...그럼~ 진호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아주는 그는 다름 아닌 진호였다. 

변함없는 얼굴에 변함없는 몸매, 변함없는 말투까지 영락없는 진호였다.

 

"잘 지내지...
얼굴이 많이 안됐다.
밥 좀 잘 챙겨먹어~"

"그..그럴께"

 

눈물이 흘러내려 작은 냇가를 만든다.
너무도 맑은 냇물이 졸졸 흘러내리며 가슴 속 안에 있던 많은 아쉬움과

자책감이 씻겨져 내려가는듯 후련해진다. 

 

"이제 나 잊어~ 잊어도 돼...
누나 원망 안할꺼야...누나도 내 원망하지마"

"....."

 

"원래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데..
나도, 그리고 누나도 첫사랑이잖아.
받아 들이자~"

"......."

 

그의 말에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목이 메어 목소리가 도저히 터져나오질 않은것이다.

작은 냇물이 더욱 거세지며 점점 폭이 늘어간다.
흐르는 눈물이 더욱 많아졌기 때문이다.

진호의 웃는 얼굴도 무척 편안해 보인다.
나와 함께 일 때 보다 편안해 보인다.

 

"누나! 웃어 봐~"

 

진호의 말 한 마디에 흐르던 눈물이 그치고 어느새 밝은 웃음을 짓는다.

나 역시 그 누구와 함께 일 때 보다 더욱 환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고 진호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지금까지 다쳤던 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환한 웃음은 내가 봐도 믿지 못 할 정도로 밝았다.

 

"누나는...혜미는 그렇게 활짝 웃을때가 가장 예뻐...
너무 예뻐"

"정말?"

 

"그럼..
얼마나 예쁜데.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것 보다 백 배, 아니 수 천 수 만배 예뻐.....

그러니까 앞으로도 이렇게 웃으면서 살아야해! 알았지?"

"그럴께"

 

"항상 누나곁에서 살께..
누나만 보면서 살테니까 아프거나 힘든거 걱정하지마~ 내가 다 혼내줄꺼야"

"지..진호야....난 너 사랑해...그냥 우리 같이....어? 진호야! 진호야~~~~"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진호를 찾는 내모습이다.

선명하게 보이던 그 듬직한 녀석은 소유욕이 생겨난 그 순간부터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다.

사라졌던 수많은 인파가 다시 보이기 시작하고 나는 다시 마음을 비우고 그들틈을 돌아다니며 진호를 찾는다.

하지만 사라진 진호의 모습은 시간이 지나고 아무리 찾아봐도 다시 드러나지 않았다.

 

"진호야~~~"

 

"진호야!! 나쁜새꺄!! 이 멍청아~~"

 

나처럼 땅을 치며 우는 사람, 미친듯이 깔깔대며 웃는사람,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해진사람..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보이다 점점 어둠속으로 사라져간다.

 

'알았어! 잊을께...
그래야 한다면...
그럴께...
사랑해~~~진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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