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난 명기다!! -62부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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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난 명기다!! -6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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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에서 투닥이던 그들은 점점 거실바닥에 진동을 울리며 실내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나를 미처 추스리기도 전에 눈 앞에는 승수가 바닥에 구르며 내동댕이 쳐져 뒷걸음질을 치는것이 보였다. 

그리고 뒤이어 나타난 사내를 보자마자 안도감에 멈췄던 눈물이 터져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누..누나!"

"서...성혀..."

 

나는 말을 전부 잇지도 못한채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서럽게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창피했다.
죽고 싶을만큼 창피했다.
승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수 있다는 기쁨보다 친동생이지만 보이지 말아야 

할 나의 치부를 보여준 것 같이 수치심이 들었다.
성현이의 표정도 설마라는 표정이 역력했다. 

자신의 윗옷을 벗어 나의 알몸을 덮어주고는 재빠르게 도망가는 승수를 붙잡아 다시 바닥으로 패대기를 쳤다.

승수가 내뿜던 살기나 미치광이의 표정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표정없는 냉철한 얼굴하며 한 곳만을 

주시하는 강한 눈빛만으로도 승수는 이미 꼬리를 만 강아지의 모습을 하고 구석에 쳐박혀 방어자세를 취한채 

겁을 먹고 있었다.

 

"니가 우리 누나 저렇게 만들었냐?"

".........으억!"

 

/쿵! 콰직!/

 

성현의 발이 승수의 얼굴을 밟아 짖이기듯 벽으로 밀어차자 뒷통수가 벽에 부딛치며 머리통이 깨져나갈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아직 군화를 벗지도 못한 성현의 모습은 군복차림이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성현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러나 냉정하고 무서웠다.

 

"참을성이 부족하니까 묻는 말에 바로바로 답해라.."

"..........."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이는 승수의 모습이었다.
예전 기태와 기범을 물릴때와는 전혀 다른 성현이었다.
사실

그때는 성현보다는 진호가 더욱 화가 난 모습이었다.
진호의 스치듯하던 말이 떠올랐다. 

 

'저 새끼 화나면 나도 못말려~ 얼마나 무서운데...'

 

진호의 말은 과언이 아니었다.
창백하던 얼굴이 나를 한번 뒤돌아 본 후 벌겋게 달아오르며 더욱 살기 가득한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 난생처음 보는 동생의 모습이었다. 

언제나 든든한 모습의 성현이었다. 

어려서부터 자신보다 몇살이나 많은 형들에게도 용감하게 덤비던 성현의 모습이 떠올랐다.
귀찮게 굴거나 

괴롭히던 동네 남자애들 중 성현에게 맞고 돌아가지 않은 애들이 없을 만큼 나를 든든하게 지켜주던 성현이

바로 눈 앞에 있었던 것이다.

 

"니가 미쳤구나! 감히 우리누나를..."

"죄..죄송ㅎ..."

 

/퍽! 빡! 빠각!....우둑....뻑~ 퍽...../

 

승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현은 미친듯이 주먹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말리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당한

고통보다 수십배, 아니 수천배 수만배는 더욱 고통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짧은 시간이었다.
채 1분도 되지 않아 승수의 눈은 풀려 촛점이 흐려졌다.

 

"야이 섀꺄! 정신 차려~"

"........"

 

성현이 승수의 뺨을 때리며 거의 혼절 직전까지 몰린 승수의 넋을 다시 찾아왔고 눈의 촛점이 다시 맞춰지며

정신을 차린 승수는 여전히 멍한 표정이었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던 것이었던 것 같았다.

 

"연약한 새끼! 벌써 그러면 안돼지~ 씨발놈아! 기절하면 아픈걸 못느끼잖아이개새꺄!"

"자..잘못했어요...으..으으...악!...윽"

 

성현은 강한 주먹과 발길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구석에 몰려 얼굴을 잔뜩 감싼 채 일방적으로 얻어 맞고만 

있는 승수는 고통의 신음만 내뱉을 뿐 내게 보이던 악랄한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순한 강아지 같은 모습이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한자에게 강한 전형적인 비겁한 놈 중 하나였다.

 

"성현아! 그 개새끼 죽여버려!"

"누...누나~"

 

성현의 표정이 놀란 표정이었다.
왠만해서는 성현이를 말리던 나였다.
항상 성현이 그렇게 남자들을 때릴때

마다 부추기기보다는 매달리다시피 하며 말려대던 모습만을 기억하던 성현에게 나의 고함은 더욱 피를 끓게

만들었을 것이었다.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성현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긍정도 부정도 표현하지

않은 채 덤덤한 표정의 성현이었다.

 

"야이 씨발새꺄! 너 우리누나한테 도대체 뭔짓을 한거야!"

".........."

 

성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은 점점 심해졌고 떨림이 심해짐과 동시에 더욱 강한 발길질을 해대기

시작했고 공포로 가득찬 승수의 얼굴은 이내 편안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연기하지마! 진짜 죽여버리기 전에.."

"........"

 

이미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망가진 승수의 얼굴이었다.
피보다 더욱 짙게 물든 그의 얼굴은 온통 멍투성이

였고 정신을 잃은 승수의 입에서는 붉은 피가 주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성현은 내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포근하게 나를 감싸안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누..누나...대체 뭐야...
이게 무슨 꼴이야..."

"미안해 성현아...흑~"

 

"누나가 뭐가 미안해.."

".......너한테도..진호한테도...다..."

 

"그런소리 하지마!"

".......흑~"

 

성현은 나를 번쩍 안아들고 침실로 향했다.
그리고는 침대에 사뿐히 올려놓고 나가는 성현에게 너무도 미안했다.

진호의 친구로서, 나의 동생으로서, 한 남자에게 너무도 못난 모습만 보여주는 여자이고 누나였다.
주체못할

서러움이 몸을 휩싸안았고 또 다시 시작됐는지 거실에서는 마치 떡매라도 치듯 쿵쾅거리는 진동이 전해져 왔다.

나는 서둘러 방에 딸린 욕실로 향했다.
보일러를 켤 생각도 잊은채 차디찬 물에 뭄을 씻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얼음장같이 찬 물도 전혀 춥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시간이 거꾸로 지나가 이번 사건만큼은 기억에서 지우고

싶을 뿐이었다.
소름이 돋으며 유두까지 바짝 선 몸이었지만 씻는것을 관두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개새끼! 개새끼!'

 

얼마나 오래 씻었는지 모를만큼 그의 흔적을 지워내느라 무척이나 꼼꼼하게 씻고 나와 옷을 입는 순간에도 구타는

계속 되고 있었다.
정말 죽도록 맞고 또 맞고 있는것 같았지만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이 컸던 만큼 말리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옷을 챙겨입고 거실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내눈으로 엉망이 되어가는 승수의 몰골을

봐야 속이 조금 풀려나갈것 같았다.
문을 여는 순간 또 한번 놀랄수 밖에 없는 나였다.

이미 혼절을 한 승수는 오줌까지 지렸는지 축축히 젖은 바지를 입고 구석에 쳐박혀 두 눈두덩이가 잔뜩 부풀어 

오른 채 피를 흘리고 움직임이 없었고 성현의 발길질에 잔뜩 몸을 움추린 석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나 두들겨 맞았는지 이미 피투성이가 된 그의 모습이었다.

 

"서..성현아! 그 사람은 아니야..."

 

나는 성현의 팔에 매달리며 죽기 살기로 말리기 시작했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성현의 주먹질과 발길질은 여간해선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성현과 석민 사이를 파고 들어 석민을 끌어안으며 몸을 던진 후에야 성현의

주먹질은 멈춰섰다.

 

"누..누나~"

"성현아..
이 오빠는 그런사람 아니야~ 오빠 괜찮아? 응?"

 

"괘..괜찮아~ 다..다행이다.
이제 승수한테 완전히 벗어날 수 있어서.."

"미안해..오빠! 너..너는 무조건 사람을 때리고 보면 어떡해!"

 

나도 모르게 석민의 편을 들고 있었다.
석민의 피투성이가 된 모습을 보자마자 나 조차도 이성을 잃은 것이었다.

성현의 표정은 너무도 황당하다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휴지를 들고와 내게 건내며 무안한듯 나지막하게 미안함을

피력했다.

 

"미..미안합니다...
갑자기 들어와서는 이 새끼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아서..."

"아...아녜요~ 오해 할 만 했죠"

 

석민은 기다리는 서류가 오지 않자 직접가지러 왔다가 승수가 처음보는 사람에게 맞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란 

마음에 그의 이름을 불렀다가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다행히 성현은 석민에게 바로 사과를 했고 석민도 

성현의 사과를 받아주었다. 

모든것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어왔다.

생각지도 못한 성현의 등장과 승수의 마주침, 너무도 정신없이 이루어진 일이라 차마 석민에게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이 모든일이 잘 됐다고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곪아 터질 일을

안고 무겁게 살아가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엉망이 된 거실만큼 나의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 있었다.
한바탕 커다란 소동이 조금 잠잠해져 있을때 우리셋은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서류를 가지러 왔던 석민도 자리를 뜰 생각을 하지 못했고 나 역시 무슨 말을 어디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몰랐다.
그러나 성현의 말 한마디가 너무도 마음을 아프게 했다.

 

"우리 누나랑 사귀는 분이세요?"

"네?..아...네..."

 

얼떨결에 대답한 석민도 나도 눈이 휘둥그레질 수 밖에 없었다.
모든것을 알고 있는 우리 셋이지만 성현은 자신의

누나인 나를 이남자 저남자에게 몸을 대주는 걸레같은 여자로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표정의 변화없이 담배를 피워내던 성현과 석민은 거의 동시에 담뱃불을 꺼나갔다. 

석민은 재떨이에 성현은 담배곽에 비벼껐다.

 

"죄송해요..
매형 되실지도 모르는 분한테.."

"아녜요..
괜찮아요~"

 

"우리누나 잘 부탁해요...
이런일 생기지 않도록!"

"아...네...미안하네요...오히려 내가..."

 

성현은 말에 힘을 주어 얘길했다.
다시는 이런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누나를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성현이 그럴수록 더욱 진호에게 미안해지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도저히 성현의 얼굴을 마주 할 수가 없었다.
성현의 얼굴에서 비쳐지는 또 한명의 남자.
진호의 얼굴이

떠오르며 눈가가 뜨거워짐이 느껴져서 서둘러 침실로 들어왔다.
마음이 미어지며 모든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뒤를 따라 들어온 성현은 방문을 닫고 등뒤에서 나를 살포시 끌어안았다.

 

"바보같이 왜 당하고만 있어! 신고라도 할 것이지!"

"몰라! 나도...
신고하면 모든게 끝날것 같았어~ 진호한테 너한테..엄마한테..너무 아픈 상처를 줄 것 같았단 

말이야~"

 

처음엔 진호에게 알려지는 것이 겁이 났다.
순진한 진호가 그 사실을 알게 될까 초조했고 나중엔 독을 품고 

승수를 꼭 내 손으로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였지만 결과는 예상을 뒤집고 성현의 손에 의해서 끝이

나는듯 했다.

미치도록 부끄러웠다.
죽고 싶을만큼 성현에게 미안했다. 

언제나 못난 모습만을 보여주는 누나였다.

 

"누나..
많이 힘들었지?"

"성현아....미안해"

 

"괜찮아~ 군대 간 남자친구 기다리는게 그리 쉬운가? 미주도 도망갔는데 뭘..."

"훌쩍...나..
어떡해? 나 어떻게 해야 하는거야?"

 

"뭘 어떡해..
그냥 누나 마음 가는대로 하면 되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마~"

"성현아......"

 

"누나..
잘 들어~ 나 누나 동생이야..
세상에서 누나를 제일 사랑하는 성현이라고..
누나가 아파하면

나는 누나보다 더 아파...
아프지마~ 그 누구에게도 못 할말 있으면 나한테 해~ 나한테는 괜찮아....알았지?"

"미안해...미안해.....흑~"

 

성현이는 다시 한 번 힘주어 나를 안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최대한 이해해 주려는 성현의 마음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주저 앉아 울고 또 울었다.

 

 

>>>>>

 

 

거짓말처럼 찾아와 악의 무리를 무찌르는 어린이 영화의 영웅처럼 성현의 도움으로 승수를 떨쳐놓을 수 있었다.

혼절을 했다가 깨서도 성현에게 반 죽도록 얻어맞고 기어나가던 꼴을 보고나서야 응어리졌던 마음을 조금 풀어

냈던 나지만 성현에게 미안한 마음을 숨길 수는 없었다.
은근슬쩍 자리를 피하듯 집으로 내려간 성현이지만

그의 마음도 나의 마음처럼 편하지만은 않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나를 위로하고 이해하려는 성현이

내려가기전에 했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어른거리는것 같았다.

 

'누나~ 난 모르는 일이야..
진호일은 누나가 알아서 해~ 근데 최대한 상처는 덜 줬으면 좋겠어'

 

성현이 남긴 한마디의 의미는 왠만하면 그냥 진호와 사귀기를 바라는것 같았다.
사실 아직까지도 석민보다는

진호에 대한 마음이 컸다.
그러나 그 마음이 미안함인지 순수한 사랑인지는 알 수 없었다.
같이 있으면 행복한

사람, 보고싶은 사람, 섹스하고 싶은 사람, 진호나 석민 모두 마찬가지 였다.
도무지 무엇으로 그 둘을 갈라

선택을 해야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혜미야~ 밥먹어"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던 나는 석민의 말에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나갔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식탁에는 먹음직한 북어국과 하얀 쌀밥이 나를 반기고 있었다.
심하게 부어오르지는 않았지만 석민은 눈두덩이가 살짝 부풀어 있었고 입술이 터져 피가 응고 되어 있는 모습을 보자 괜한 미안함이 들어왔다.

 

"오빠~ 괜찮아?"

 

손을 뻣어 석민의 얼굴을 매만지자 웃음을 머금고 괜찮다는듯 고개를 끄덕이는 석민의 모습이었다.
그나마 내가

일찍 나갔으니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늦게 나갔으면 석민의 얼굴도 승수의 몰골처럼 엉망이 됐을 것이었다.

미안했다.
괜히 나 때문에 여러 남자가 다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밥을 어찌 먹었는지도 모른채 나는 수저를 식탁에 내려놓고 있었다.
절반도 못 비운 밥그릇을 본 석민은 안타까운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밥이 들어가질 않았다.
속 후련하게 승수라는 나를 괴롭히던 남자가 무릎을 꿇고 두 번

다시는 귀찮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난 후에도 왠일인지 편치 못한 마음이었다. 

 

"혜미야..왜 이렇게 못 먹어~"

"몰라..
안 들어가네!"

 

"물 마셔~"

"응"

 

석민은 물컵을 내게 밀어주었다.
언제나 자상한 모습의 석민은 그대로였다.

물컵을 내려놓고 일어서려는데 석민이 무언가를 결심한듯 떨리는 입술을 열기 시작했다.
아무말도 하지말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말을 하지 못했다.
신경을 오르내리는 불길하고도 안타까운 기운이 그저 머릿속을

복잡하게만 할 뿐이었다.

 

"저기..
있잖아."

"저기 뭐?"

 

"나..
고향 내려가려고...."

"왜...왜?"

 

"아니.
그..그냥...서울 생활이 나한테 안 맞는거 같애.."

"무..무슨 소리야?"

 

"사실은 내가 여기 있으면서 너한테 너무 피해만 주는거 같애"

".........."

 

"그래서..
괜히 니 남자친구한테 자꾸 몹쓸짓만 하는거 같고..."

"왜? 내가 승수한테 당하고 그런거 생각하니까 나랑 못지내겠지? 그치? 더럽지?"

 

"그런거 아니야!"

"그럼 뭐야? 왜 갑자기 내려간다는건데?"

 

석민이 고향으로 간다는 소리에 그렇게 느껴졌다.
과거는 이해하지만 자신과 있을때 승수에게 강간을 당한 것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이 들었다.
화가났다.
차라리 그런 것이라면 처음 당했을때 가버리지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그에게 빈정대고 있었던 것이다.
화를 내 듯 목소리가 커지자 석민 또한 나의 말에 반박이라도 하듯

크게 목소리톤을 높였다.

 

"다..
나 때문이잖아~ 다..."

"아니야~ 오빠 때문이 아니야....
가지마~ 응?"

 

생각할 틈도 없이 내 입과 행동은 석민을 붙잡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석민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붙들고 애원을 하는 나였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생각보다 빠른 

행동을 하는 것이 나의 진심이었다.
그러나 석민의 표정은 단호했다. 

 

"내가 계속 여기 있다가는 너한테 상처만 줄 것 같애.."

"나쁜놈아! 내가 그 벌레같은 새끼의 모진 고통을 왜 참았는데!! 왜 나 혼자 아파하고 속 끓이면서 꾸역꾸역 

참아냈는데!!"

 

이미 받을 만큼 받은 상처였다.
더이상 그 어떤 상처가 여자인 내게 그보다 심하고 그보다 치욕적으로 다가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위로가 필요했다.
이기적이라고 생각 할 만큼 누군가가 상처가 아물때

까지 곁에 있어줬으면 하는 생각 뿐이었다.

 

"미안해..
같이 지내면서 좋은 추억만 줬다면 내가 매달려 사귀자고 했겠지만..."

"미안하면 가지마~ 계속 나 지켜줘..
이 나쁜놈아..."

 

"못 지켰잖아..상처만 줬잖아.."

".....다 잊었어~ 나 다 잊었어..
나 괜찮아~ 이렇게 씩씩하잖아"

 

내 생각을 머릿속으로 정리해내고 말을 내놓을 만큼 이성적이지 못했다.
상처가 아물기는 커녕 이제 출혈이

멎은 정도의 나였지만 어떻게해서든 석민을 잡아두고 싶은 마음에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거짓말하지마...."

"야이! 나쁜놈아~ 못 가! 가지마~흑"

 

결국 나의 눈에선 눈물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석민은 나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팔에 매달려있는 내게 눈길도 주지 않고 정면만 주시하는 그가 이토록 매정한지 몰랐던 나였다. 

다짐을 할 뿐이었다.
다 잊겠다고..
승수에게 받은 상처가 부담된다면 그저 다 잊고 씩씩해지겠다고... 

 

".........."

"오빠! 나 다 잊을께..
그냥 옆에 있어줘...
나 씩씩해질께~"

 

"니 남자친구는! 그럼 그 남자친구한테도 상처줄꺼야?"

".........."

 

"그냥..
서로 더 끌리기 전에 여기서 끝내자! 그게 맞는것 같애!"

"나쁜새꺄!..
왜? 내 정체를 알고 나니까 더러운 년이라서 도망가는거지!"

 

석민이 떠난다는 말에 오로지 생각나는 이유는 그것 뿐이었다.
확신했다.
분명히 내 몸이 더러워져서 떠난다는

생각만 할 뿐이었다.
그러자 석민은 벌떡 일어서 양 어깨를 잡고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아니야! 아니라고! 그런 이유라면 예전에 갔어! 알어?"

"그럼~"

 

"말했잖아..
나랑 있어봐야 너한테 좋을게 하나도 없다고!"

"난 좋아.."

 

"난 싫어!"

"정말?"

 

"그래! 다 싫어! 서울생활도 다른것도 모두 다!"

"그래? 나는? 내 얼굴은? 몸은?"

 

"혜미야.."

"알았어...그..그럼 한 달만 더 있다가~"

 

"안돼!"

"왜 안돼?"

 

"..........."

"오빠 마음 알았어! 나도 정리할 시간 줘야지..
한달만 우리 원없이 사랑하고 원없이 아껴주고 헤어지자!"

 

"........"

"오빠 지금 이대로 가버리면 내가 더러워서 가는거라고 밖에 생각 못해! 그러니까 딱 한 달만"

 

"한 달?"

"응..
나도 그러면 더이상 욕심 안 부릴께.
한 달만"

 

"그..그래 그럼..."

"대신 마음속에 있는 감정 전부 쏟아줘야돼! 알았지? 그게 좋은 감정이건 싫은 감정이건"

 

"알았어..
그럴께~"

"오빠..
나 안아줘~"

 

남자에게 매달려보는 것을 처음 해보는 나였다.
그 누구에게도 서운한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툴었던 나였지만 

석민에게는 그것이 창피하거나 부끄럽지 않았다.
어차피 석민은 나의 유혹에 넘어온 가장 큰 피해자였고 그런

그에게 받기만 한 기억 밖에 없었다.
물질적인 선물이 아닌 그의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과 손길은 언제나 나를

기쁘게 해주었고 웃게 해줬다. 

여전히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나를 안아주는 그의 팔에 나는 가슴에 얼굴을 묻고 조용히 숨결과 심장의 

뜨거움을 느낀다.

 

 

>>>>>

 

 

석민의 갑작스런 고향행을 겨우잡아 놓고 나는 석민에게 말한것 처럼 승수의 일을 지우려 노력했다.
석민 또한

전보다 훨씬 사랑을 표현하고 많은 애정을 쏟아주며 하루하루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고 나 역시 그런 석민의 

마음과 같이 잃어버린 일년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중이었다.
미안한 진호에게 더 이상 미안한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했다.
승수의 구타로 인해 코뼈가 금이 갔고 은밀한 부분도 상처가 많이 나 치료를 해야만

했다.
다행히 승수의 아이를 갖는 저주스러운 임신은 없었고 몸의 상처가 아물어 갈수록 마음의 상처도 조금씩 

아물어만 갔다.
내 스스로도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병원을 나와 효진과의 약속장소로 향하고 있었다. 

혹시 승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더욱 주위를 살펴가며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고 

그 때마다 문득 들어온 생각이지만 아직도 승수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 한 나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사실 효진을 만나는 것도 꺼려졌지만 그녀의 계속된 만남의 부탁에 더이상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전 날 첫눈이 내린 탓인지 걷는 내내 미끄러운 바닥에 신경을 집중했고 어느새 약속장소에 도착해서는 통유리로 된 커피숖을 

한 바퀴 돌아 정문에서 뒷문으로 갔다가 승수의 여부를 확인하고 실내로 들어섰다.

 

/어서오세요/

 

점원의 밝은 인사를 뒤로 하고 주위를 둘러보자 때 아닌 선글라스와 두꺼운 목도리를 두른 효진이 보였다.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의자를 빼고 앉자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나를 반기는 그녀를 볼 수 있었다.

 

"왔어?"

"...왠일이야?"

 

커다란 썬글라스 때문에 표정을 살피지는 못했지만 악의가 있는 분위기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예전과 같이 하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반기는 목소리가 왠지 슬프게 들려왔다.

 

"차 마셔~ 내가 살께."

"됐어..
별로 생각없어"

 

반면에 나의 목소리는 바깥에 부는 바람보다도 더 사납고 쌀쌀했다.
그러지 않겠다라고 다짐을 하고 왔지만 막상

그녀와 마주하자 달라진 내 모습에 나도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혜미야..흑!"

"......."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는 효진이 이상했다.
연기인지 아니면 무슨일이 있는건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커다란 선글라스 밑으로 굵은 눈물이 주륵 흘러내리는 것을 닦아내는 효진은 한동안 말없이 울기만 했다.

아무말 없이 휴지를 더 가져다 주는걸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하며 자리에 앉으려는데 살짝 들려 올라간 

선글라스 사이로 퍼렇게 변한 눈을 볼 수 있었다.

 

"훌쩍!...흑..."

"야! 너 얼굴 왜 그래! 응?"

 

"혜미야..
미안해...
나 용서해줘"

"미친년아! 얼굴이 왜 그 모양이냐고!"

 

누가 그랬는지 궁금해서가 아니었다.
왜 얼굴이 그 모양이 되도록 얻어 맞았는지 이유가 궁금했다.
하지만 효진은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 한동안 눈물만 훔쳐내는 그녀였다. 

 

'친구라는 것이 이런걸까?'

 

망신창이가 된 얼굴을 한 효진의 얼굴을 보자 안쓰러움이 밀려와 마음을 아프게 했다.
예전의 어린애같이 효진과의 절교를 마음속으로 다짐을 다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친구의 아픈 모습을 보고 나 자신마저도 그 아픔을 같이 

나누려 하고 있었다. 

점차 울음이 멎어가던 효진도 어느정도 진정이 됐는지 어깨를 들썩이며 몇번 흐느끼고는 큰 호흡을 하며 코를 

훌쩍거리며 서서히 입을 열었다.

 

"미..미안, 괜히 니 얼굴 보니까 울음이....흑"

"아직도 덜 운거야? 그래! 실컷 울어! 실컷 울고 후련해지면 얘기해"

 

말을 잇다 말고 다시 울음을 쏟아낸 효진은 또다시 한동안 울음을 쏟아내고야 다시 진정을 했다.
왜 나를 보고 

울음이 나왔다는지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슨 말부터 어떻게 꺼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후우~~....하아~~ 이제 됐다!"

"미친년! 꼴갑한다..."

 

어느새 예전의 사이로 되돌아온 우리였다.
생각보다 길어진 효진의 눈물파티에 덩달아 슬퍼지려 하던 것을 참아

내느라 먹고싶지 않던 주문했던 커피를 받아들고 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검은 커피가

목을 타고 넘어가자 막혔던 속이 뚫리는 것 같이 후련한 느낌까지 들어왔다.

 

"혜미야~ 너...
아니다.
미안해 나 때문에...."

"무슨 소리야~ 답답해 죽겠다!"

 

"그..그게~"

"뭐~"

 

"승수하고 안 좋았던 일..."

"알고 있었어?"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버렸다.
머리가 바짝서는 느낌에 손까지 떨려왔다.

 

"응"

"언제?"

 

"며칠전에 만나자고 전화했던날..."

"그래..그랬구나~"

 

다시 침묵에 빠져 들어가는 나와 효진이었다.
말없이 커피잔만 만지작거리는 우리는 그렇게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지난 상처따윈 시원하게 잊자고 다짐했던 것도 생각처럼 쉽게 되지는 않았다. 

 

"........"

"어떻게 알았어? 승수가 얘기하든?"

 

어느새 차갑게 변한 내 목소리가 감정이 싹 빠진채 그녀에게 던져졌다.
커피만 바라보던 효진은 살짝 놀라듯 고갤

들었다가 다시 테이블로 내리깔며 나지막하게 대답을 건내왔다.

 

"승수 컴퓨터보고.."

"도..동영상?"

 

"응...
내가 지우긴 다 지웠는데 모르겠어 따로 보관한게 있는지..."

"너 그거때매 승수한테 맞은거지? 그치?"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효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친구라고 여자로써 치욕이 될 만한 것을 지워준

것이 너무도 고마웠다.
차마 그것까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나는 뒤늦게 다시 소름이 끼치듯 걱정과 고민이

몸을 휩싸 안았다.

 

"나 니맘 알 것 같애..니맘 알아....전엔 정말 미안했어"

"......."

 

"왜 그날..
승수가 어디서 맞고 왔는지 피떡이 되서 들어왔더라고~ 오자마자 옷을 찢어버리듯이 벗겨내더니 거의

강간수준으로 나를......흑! 그래서 그 날은 무슨 안 좋은일이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다음날 컴퓨터를

하다가 자기 컴퓨터 만졌냐고 묻길래 안 만졌다고 잡아 뗐거든..."

"그래서?"

 

"나가더라고..
그냥~ 그 얼굴로..
나는 학교에 간 줄로만 알았는데 한 시간 정도 지나서 다시 들어오는거야...

처음보는 남자 둘하고...
흑! 미안해...
이렇게 아픈건지 예전엔 진짜 몰랐어...미안해 혜미야"

"아니야..."

 

"씨발새끼..사진찍고 동영상찍고...
개처럼 빌어도, 울고불고 빌어도 안되더라...."

"진정해...
그냥 다 잊어~"

 

"그 새끼들 가고 나니까 동영상 지웠다고 두들겨 패더니..
나 어떡해야돼?"

"어떡하긴 헤어져..
신고하던가.."

 

"씨발..
나 또 임신했어....흑!"

".......지..진짜?"

 

"응..
오늘 병원갔다왔어..
4주됐대...."

"승수는? 알어?"

 

"아니...아직..."

"너는 무슨애가 그렇게 잘 들어서? 미친년! 피임약이라도 먹지!"

 

"아~ 몰라..
짜증나...
어쩌지?"

"......."

 

"나 겁나..
나중에 애기 못가지면 어쩌지?"

".....휴~....."

 

효진은 다시 눈물을 쏟아냈다.
처음과는 다르게 이번엔 별다른 말을 해 줄 수가 없었다. 

그 짧은 기간에 두번의 낙태는 나도 어떻게 해 줄 말이 없었고 다시 한번 그 잔인하고 빌어먹을 저주스런 임신이

내게 오지 않은 것을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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