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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사 -3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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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장소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선 지연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지난 번 인사를 나눴던 수영이 보이지 않자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순간 말쑥하게 차려입은 웨이터가 다가왔다.

- 어서 오십시오, 혹시 찾으시는 분이라도.. -

- 네, 혹시 한 지연을 찾으시는 손님 없으셨나요 -

- 아, 네..
도착해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으로 들어오시죠 -

- ........ -

정중히 손짓을 하는 웨이터를 따라 걸음을 걷던 지연은 양쪽으로 몇 개의 룸이 보이는 복도를 걸으며 수영이 넓은 홀을 놔두고 왜 이런 곳을 골랐는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 똑..
똑... ]

- 네 -

창문 아래로 작게 보이는 사람들을 내려 보던 수영이 노크 소리에 대답을 했고 문이 열리며 웨이터가 들어왔다.

- 기다리시던 손님 오셨습니다 -

- ........ -

먼저와 지연을 기다리던 수영이 웨이터의 말에 이어 지연이 안으로 들어서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안녕하셨어요 -

- 네, 다시 뵙네요 -

- 앉으세요 -

- ...... -

수영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목례를 한 지연이 의자에 앉자 수영이 그 모습을 지켜보다 자신도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다시 마주치던 순간 수영과 지연이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식사는 나중에 주문할 테니까, 그때까지 아무도 못 들어오게 해주세요 -

- 알겠습니다 -

커피 잔을 내려놓고 수영의 말을 듣던 웨이터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가자 짐짓 굳은 표정을 짓던 수영이 다시 지연을 응시했다.

- 드세요 -

- 네 -

수영의 말에 커피 잔을 들던 지연이 커피 잔을 들려다 황급히 손을 내리는 수영을 발견했다.
수영은 이내 다시 왼손으로 커피 잔을 들었지만 지연은 수영의 오른 손, 손목에 붕대가 감겨 있는 것을 이미 발견했지만 모른 척 커피를 마셨다.

- 갑자기 만나 뵙자고 연락 드려 놀라셨죠 -

- 아니에요, 친구한테 연락은 받았어요, 전화하신다고 하셨다고 -

- 네, 실례인 줄 알지만 만나 뵙고 부탁드릴 것도 있고... -

- ........ -

말끝을 살짝 흐리는 수영을 바라보던 지연은 수영이 무언가 불안해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입술이 말라오는 듯 자꾸만 침을 발랐고, 목소리로 살짝 떨리는 듯 했다.

- 저기 괜찮으세요? -

- 네? -

- 얼굴이 안 좋아 보여서... -

- 아...
네..
괜찮아요 -

대답을 한 수영이 다시 커피 잔을 들었고, 자신과 함께 커피 잔을 드는 지연을 빠르게 훔쳐 보았다.
지난 번 볼 때도 그랬지만, 지연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자신도 내심 평균 이상은 된다고 자부했지만 지연을 마주하자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자괴감이 자꾸만 자신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근데, 혹시 하실 말씀이, 따님 문제인가요? -

살짝 길어진 침묵이 지루한 듯 지연이 먼저 입을 열었고 지연의 물음에 순간 대답을 하지 못한 수영이 천천히 커피 잔을 내려놓았다.

- 이런 이야기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듣기 거북하더라도 제 이야기 끝까지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

수영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던 지연은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수영은 다음 말을 이어가려는 듯 입을 열었다.

- 오래전부터 남편에게 여자가 있었어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전 제 가정이 깨지는 게 두려워 그걸 애써 외면하며 살았어요.... -

- ........ -

전혀 뜻밖의 이야기에 지연이 무언가 말을 하려했지만 조금 전 자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달라고 했던 수영의 부탁이 떠오르자 그냥 입을 다물었다.

- 아내로써의 자리도 잃어갔고, 여자로서의 행복도 차츰 멀어져 갔어요, 그냥 하루하루 의미 없이 살아가는 그런 시간이었어요, 이혼도 생각해봤지만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부담이 됐고, 무엇보다 혼자가 된다는 사실에 겁이 났어요 -

- ........ -

- 그러다가 한 남자를 알게 됐어요, 늘 미소를 잃지 않았고, 늘 남을 배려 할 줄 알았고, 자신의 부족한 삶에 한 번도 투정을 부리지 않은 채 열심히 살던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 사람이 점점 다가왔어요, 아니 제가 그 사람에게 조금씩 다가갔어요, 언제부터인가 그 사람이 나를 보며 미소를 지어줬어요, 그 미소를 보면서 가슴이 떨렸고, 행복했어요 -

- ........ -

조용히 수영의 이야기를 듣던 지연이 문득 형진을 떠올렸다.
수영이 말했듯 어느 날 자신에게 다가와 자신을 향해 미소를 지어주고 행복을 안겨준 형진이 수영이 말한 남자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 그리고 그 사람이 제 이름을 불러주던 날, 알게 됐어요, 그 사람을 깊이 사랑하게 됐다는 걸, 그 사람의 미소 하나에 가슴이 떨렸고, 그 사람의 손길에 잃어가던 여자로써의 가치도 찾았고, 무엇보다 아직 제 가슴이 굳어버리지 않은 채 누군가를 향해 다시 뛴다는 것이 너무 기뻤어요, 너무 행복했고...., 영원할 것 같았어요, 그 사람과의 행복이, 비록 세상에 드러낼 수 없는 그런 사랑이었지만 둘 만의 시간에서는 너무 행복했으니까요 -

- ...... -

- 하지만 영원하지 않았어요, 아니 영원할 수도 있었지만 겁이 났어요, 그 사람에게 점점 빠져드는 내가 모든 걸 버리고 그 사람에게 가게 될까봐 겁이 났어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릴 자신도 없으면서 그 사람이 내 곁에 그냥 그렇게 머물 수는 없을까하고 욕심도 내봤어요...... -

잠시 말을 멈춘 수영이 목이 마른 듯 물을 마시는 것을 지연은 말없이 바라보며 수영이 왜 수영의 과거를 자신에게 이야기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 헤어지자고 했어요, 더는 겁이 나서 못 만나겠다고, 난 이제 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하겠다고 말이에요 -

- 그 사람은 뭐라고 하던가요? -

처음으로 지연이 수영에게 물었고 수영이 잠시 지연을 응시하다 말을 이었다.

- 그 사람이 그랬어요, 미안하다고...
자신도 마음이 가는 여자가 생겼는데 이제야 이야기해서 미안하고 말이에요, 제가 그랬거든요, 좋은 여자 만나면 솔직히 말해 달라고, 그러면 언제든지 미련 없이 헤어지자고 말이에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보내 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아니 보낼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이 떠나면서 모든 것이 나에게 등을 돌렸어요, 저희 엄마도, 남편도, 아이도, 세상 모두도............ -

- 저기..... -

지연이 다시 무언가 말을 하려던 순간 시선을 약간 떨구던 수영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 보고 싶었어요, 그 사람이..
내가 먼저 보냈던 그 사람이...
나중에야 알았어요, 그 사람에게 했던 내 말이 모두 거짓말이란 걸, 난 애초부터 그를 보낼 생각이 없었던 거예요, 시간이 지나 그가 그리우면 달려가 애원하고 매달리면 날 다시 만나 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그 사람은 모질지 못한 사람이니까... -

- ........ -

- 그런데 어느 날 그 사람이 어떤 여자와 행복한 모습으로 걸어가는 것을 봤어요, 너무 아름답고, 너무 젊어 보이던 여자와 함께...., 그 남자가 날 배신했다고 생각했어요.
나보다 어리고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기 위해 이런저런 핑계를 생각하다 마침 내가 헤어지자고 하니까, 자신은 모든 것에 솔직한 척 거짓말을 늘어놓고 떠났다고 말이에요 -

-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고 말했다면서요? -

- 그랬죠, 나와 비슷한 연배의 여자라고..... -

- ....... -

지연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수영의 말을 빌자면 자신들과 비슷한 연배의 남자가 수영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다 젊은 여자가 나타나자 바로 수영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수영이 먼저 헤어지자고 말을 했다지만 분명 그 남자는 그 기회가 절호의 차느라고 여겼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지연은 그렇게 수영을 가슴 아프게 한 남자에게 작은 적대감을 느꼈다.

- 그래서 복수 하고 싶었어요, 그 사람에게....
그런데 알게 됐어요, 내가 봤던 그 여자가 젊은 여자가 아니라 나와 같은 나이의 여자였다는 것과 그 사람은 단 한순간도 날 속이지 않았다는 걸 말이에요 -

- 그 말은 그럼 수영씨가 오해를 했다는 말인가요? -

- 네, 그 사람 말은 모두 사실이었어요, 마음에 담아가는 여자가 있었다는 것도, 그 여자가 나와 비슷한 나이의 여자라는 것도 모두...... -

- 그럼, 그 사람을 다시 만났나요? -

어느덧 지연도 의아함을 풀고 수영의 이야기에 빠져든 것 같았다.

- 아뇨, 만날 수가 없었어요, 그 사람은 절대 나를 만나주지 않을 거예요 -

- 하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

- 아뇨, 그 사람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 자신이 현재 사랑하고 있는 여자를 위해서라도, 날 만나주지 않을 거예요, 그건 그 여자를 배신하는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 -

- 정말 그럴까요, 수영씨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잖아요 -

지연의 말에 수영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 그 사람, 내가 헤어지자고 말하던 순간에도 날 속이지 않기 위해 끝까지 솔직했던 사람이에요, 그냥 말없이 돌아서도 됨에도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좋아하는 여자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으니까요 -

- ......... -

-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란 걸 지연씨도 수긍 할 거예요 -

- 제가요? -

- 네 -

- 어째서 제가 그렇게 생각할거라고 생각하세요, 전 수영씨가 말한 그 분이 어떤 분이지 모르는데.. -

- ........ -

영문을 몰라 하는 지연을 응시하던 수영이 핸드백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고, 핸드폰 화면에서 무언가를 찾았다.
그리고 다시 지연을 응시하던 수영이 지연 앞에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의아한 표정으로 수영의 핸드폰을 바라보던 지연의 눈동자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 ........ -

지연의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수영과 환하게 웃고 있는 남자, 형진이 분명했다.
핸드폰을 들고 있는 지연의 손이 살며시 떨리고 있었고, 지연의 시선이 천천히 수영에게로 옮겨졌다.

- 미안해요, 이래서는 안 되는 거 아는데, 그 사람을 한번 만이라도 만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연씨를 만나자고 했어요, 형진씨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은 지연씨니까.... -

- 수영씨....... -

믿기지 않은 표정으로 수영의 말을 듣고 있던 지연이 다시 시선을 내려 수영과 형진이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을 응시했다.
지연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지금의 사태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머릿속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언가 떠오르자 지연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 나..
지연씨한테 해야 할 말이 있어요 ]

[ 잠깐만.....
내 말에 대답부터 해줘요 ]

[ 네 ]

[ 혹시, 형진씨 나와의 관계 후회해요? ]

[ 아닙니다.
그런 거.. ]

[ 그럼, 형진씨가 네게 하려던 말..., 혹시 여자와 관련 된 일인가요? ]

[ ........ ]

[ 혹시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일인가요, 아니면 과거의 일인가요? ]

[ 정확히 말하면 과거가 되었네요 ]

[ 과거....
그 말 확실해요? ]

[ 네..
실은 그 여자는... ]

[ 됐어요, 그만해요 ]

[ ...... ]

[ 믿을게요, 형진씨 말... ]

[ 지연씨 ]

[ 지나간 과거라면 나에게 말 할 필요 없어요, 누구에게나 과거는 있는 거예요 ]

[ 하지만 난 솔직하게 지연씨에게 모든 걸 말해주고 싶어요 ]

[ 아뇨, 됐어요.
그리고 형진씨는 이미 솔직했어요.
내가 듣고 싶지 않아요, 알다시피 나도 과거가 있는 여자에요, 마음 같아서는 형진씨가 그 과거를 몰랐으면 좋겠지만 이미 알아버렸고, 그 과거 때문에 형진씨가 험한 일까지 당했잖아요, 그러니까 나에게 미안해 할 필요도 없고, 고백 할 필요도 없어요 ]

[ 그 말 진심이에요? ]

[ 네, 대신 한 가지만 약속해줘요 ]

[ ....... ]

[ 우리 서로의 과거는 오늘 모두 묻어요, 대신 앞으로 서로에게 솔직하기로 하고, 상처도 주지 않기로 해요, 나도 형진씨도, 그럴 수 있어요? ]

지연은 또렷하게 생각이 났다.
지난 날 형진이 자신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했고, 자신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던 걸 말이다.
그리고 그때 형진이 말하려던 여자가 바로 수영이었다는 걸 말이다.

- ......... -

지연은 살짝 눈을 내려 감았다.
지난 번 수영을 만났던 순간을 떠올렸다.
자신을 보고 놀라던 수영의 표정, 그리고 자꾸만 시선을 잡아끌던 수영의 뒷모습, 그것이 모두 이렇게 연관이 있었기에 일어난 일이라는 생각을 하던 지연은 문득 조금 전 수영이 봤다던 형진의 젊은 여자도 자신이었음을 알았다.
형진이 자신에게 청바지와 옷을 사주고 젊게 꾸며주었던 그 날, 그 날 자신과 형진이 행복해하며 거기를 걷던 걸 수영이 보았다는 결론은 내렸다.

- ......... -

그렇게 지연이 모든 상황을 천천히 이해하던 순간 수영이 초조한 마음으로 지연을 응시했다.
지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에게 욕을 해도, 아니면 드라마에서처럼 물 잔을 들어 자신에게 끼얹어도 상관없었다.
지연이 무엇을 하든 그대로 그걸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지연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과 달리 점점 차분해지는 얼굴로 시선을 돌려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고, 수영은 알 수 없는 조바심이 났다.

- 이 수영씨 -

- 네 -

지연의 부름에 대답을 하던 순간 수영이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지연이 뜻밖에도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기 때문이다.

- 아까 그랬죠, 형진씨가 절대 수영씨를 만나주지 않을 거라고, 그건 형진씨가 날 배신하는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맞죠? -

- 네 -

- 그렇다면 오늘 날 만나자고 한 건, 나보고 형진씨에게 부탁을 해서 만나게 해달라고 하는 거죠? -

- ........ -

너무도 정확한 말에 수영이 대답 없이 지연을 응시했다.

- 만나세요, 형진씨.... -

- ....... -

수영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너무나 순순히 지연이 형진과의 만남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 난 형진씨가 수영씨를 만나도 상관없어요, 왜냐면..... -

- .......... -

지연이 잠시 말을 멈췄고, 수영도 긴장한 얼굴로 지연의 말을 기다렸다.

- 난 형진씨를 믿어요, 내 사랑에 어떤 배반도 하지 않을 거란 걸, 그리고 그건 수영씨도 잘 알고 있는 것 같네요 -

- 네 -

너무나 순순히 만남을 허락하는 지연의 모습에 평정심을 지키려는 듯 수영도 덤덤하게 대답을 했다.
하지만 테이블 밑에 내려가 있는 수영의 손이 살며시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지연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지연과 수영은 서로에게 자신의 본심을 숨긴 채 팽팽한 긴장감을 이어가고 있었다.

- 그럼, 저는 이만 일어날게요, 더 이상 긴 이야기는 필요 없을 것 같네요 -

- 잠시만 기다려요 -

지연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수영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지연을 불렀다.

- 제 이런 행동 지연씨가 이해하기 쉽지 않겠지만, 다른 뜻은 없어요, 그냥 형진씨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

- 아뇨, 이해해요 -

이해한다는 지연의 말에 수영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묘한 반발감이 들었다.
지연이 본심을 숨긴 채 애써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 이해한다고요? -

- 네, 이해해요, 형진씨...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남자에요, 나라도 수영씨처럼 행동할 만큼 좋은 남자니까요 -

- ....... -

수영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선택한 남자에요, 난 내 선택을 믿어요, 그리고 날 선택해준 그 사람의 마음도 믿고... -

- ........ -

수영의 손이 주먹을 쥐기 시작했다.
지연에게 반발하고 싶었다.
너무나 확신 찬 표정으로 형진이 자신의 남자임을 선언하는 지연에게 자신도 그만큼 형진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의 사랑도 당신만큼 크다고 말이다.
수영은 말을 마치고 돌아서는 지연을 보며 입술을 움찔거렸고, 지연이 문 앞에 다다르는 순간 말을 내뱉고 말았다.

- 그 사람..
항상 내 이름을 불러줬어요, 수영이라고..
그냥 수영이라고... -

- ....... -

지연의 몸이 순간 움찔하며 걸음이 멈춰지자 수영은 자신도 모르게 다시 말을 내뱉었다.

- 그리고 그 사람이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했어요, 여자로써 부끄러운 일도 그 사람이 기뻐만 한다면 난 즐겁게 했어요, 그 사람이 기뻐만 한다면...... -

수영은 차마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그리고 그 순간 지연이 천천히 돌아서 수영을 응시했다.

- 수영씨 모르죠, 그 사람 죽을 뻔 했던 거.. -

- ......... -

수영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 그 사람 나를 지켜주다 죽을 뻔 했어요, 그리고 내 품에 안겨서 눈을 감는 그 사람을 보면서 맹세했어요, 이 사람 내 곁으로 돌려만 준다면 평생 이 사람만을 위해 사는 여자가 되겠다고 말이에요 -

- ....... -

수영은 보았다.
말을 이어가는 지연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가는 것을 말이다.
자신을 만나고 처음으로 보이는 흐트러진 모습이었고 지연의 그 모습을 통해 수영은 지연의 말이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 난 여자로써 부끄러운 일 하지 않아요, 형진씨가 기뻐하는 거라면, 내가 하는 행동이 여자로서 부끄러운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그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 사랑하는 그 사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일뿐이에요, 설사 그 사람이 나보고 거리에서 발가벗고 춤을 추라고 해도 말이에요 -

- ......... -

지연의 말에 수영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 마지막으로 이 말만 하고 갈게요 -

- ........ -

- 박 형진이란 남자, 내가 사랑하고, 내 목숨만큼 소중한 사람이에요, 그 사람이 무엇을 하든 난 이해할거에요, 설사 그 사람이 수영씨를 다시 만나 날 안아주듯 수영씨를 안아줘도 상관없어요, 그게 그 사람이 원하는 거라면 말이에요, 갈게요 -

- ....... -

가볍게 목례를 한 지연이 문을 열고 나가자 입술과 함께 눈동자를 떨던 수영이 힘없이 의자에 앉았다.

[ 아냐, 이런 게 아니야...
이러려고 저 여자를 만나게 아니라고, 이 수영...
넌 최악이야..
그런 말을 해서는 안됐어.
절대로...... ]

괴로운 표정을 짓던 수영이 천천히 상체를 숙여 탁자에 이마를 기대고는 눈을 내려 감았다.

[ 미안해, 형진씨...
내가 아무래도 실수를 한 것 같아...
난..
지연씨가 내 말에 흔들려 형진씨를 의심한다면, 그런 여자에게 형진씨를 주고 싶지 않았어.
내가 다시 빼앗아 오고 싶었어.
그런데...
아니네...
지연씨...
외모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마음까지 깊은 거 같아.....
너무해, 어떻게 저런 여자를 만났어..
어떻게...... ]

- 야, 임마, 너 서울에 있다면서 어떻게 연락도 한 번 없냐 -

- 그러는 넌.. -

- 나야, 임마, 늘 바쁘잖아 -

- 자식은.... -

친구의 말에 형진이 웃음을 웃었다.

- 참, 너 대현 선배 결혼하는 거 아냐? -

- 아니, 못 들었는데, 결혼한데? -

- 응, 다음 달에 한데, 그런데 신부가 누군지 알아? -

- 누군데? -

- 연우 선배 -

- 뭐, 연우 선배? -

- 그래, 임마 -

형진은 친구의 말에 놀랐다.
대현 선배가 3년 선배였지만 군대를 다녀온 탓에 학교에서 자주 부딪치기는 했지만 언젠가 대현 선배가 술을 먹고 연우 선배 옷에 오바이트를 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앙숙이 되었다.
그런데 그런 두 사람이 결혼을 한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 아니 연우 선배, 대현 선배 싫어했잖아 -

-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는데, 연우 선배 임신 5개월이란다 -

- 뭐, 정말이야 -

- 그래, 이래서 여자랑 남자관계는 모르는 거라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연우 선배한테 대시 하는 건데, 연우 선배의 글래머러스한 그 몸매하며, 도톰한 입술까지..
아으... -

- 이 자식이 미쳤나, 형수님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어, 너 정신 안 차릴래 -

- 농담이다.
임마.
연우 선배가 너무 아까워서 그런다 -

- 뭐..
그렇긴 한 것 같아도, 대현 선배가 사람은 좋잖아, 그리고 우리가 모르는 매력을 연우 선배가 알고 있는지도 모르고... -

친구의 말에 형진은 지연이 떠오르자 자격지심에 대현 선배 편을 들었다.

- 매력, 글쎄다, 남자인 난 전혀 모르겠는데... -

- 됐고, 오랜만에 당구 한 판 어때, 나 저녁까지 시간 괜찮은데... -

- 좋지, 종호도 부를까? -

- 그러던지 -

- 점심 자장면 사기다 -

- 그래 -

자신도 오늘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던 지연의 말을 떠올린 형진은 오랜만에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 들어갈 생각을 했다.
자신을 둘러싸고 지금 두 여자가 어떤 모습으로 만나고 있는지 전혀 모른 채 말이다.

[ ....... ]

힘겹게 주차장까지 걸어 온 지연이 차 문을 열기 위해 핸드백에서 열쇠를 꺼내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키 뭉치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연은 잠시 떨어진 키를 바라보다 천천히 몸을 숙여 키를 잡았다.

- ........ -

바로 그 순간 지연은 갑자기 눈가에 눈물이 고이려하자 당황하며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눈가에 눈물이 고이려 하자 손을 들어 눈가를 훔쳐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애써 감추려던 눈물이 끝내 눈가를 벗어나자 지연은 쭈그려 앉은 자세 그대로 아랫입술을 굳게 물었다.
그리고 조금 전 수영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 그 사람..
항상 내 이름을 불러줬어요, 수영이라고..
그냥 수영이라고... ]

[ 그리고 그 사람이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했어요, 여자로써 부끄러운 일도 그 사람이 기뻐만 한다면 난 즐겁게 했어요, 그 사람이 기뻐만 한다면...... ]

그렇게 수영이 했던 말을 떠올리던 지연이 수영이 보여줬던 핸드폰 사진도 함께 떠올렸다.
너무도 다정한 모습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수영과 형진 두 사람의 모습이 떠오르자 지연이 더욱 눈물을 참기 힘들었다.

- 하...
흑.... -

자꾸만 밀려나오는 눈물이 참기 힘들자 지연은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리고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조금 전 수영 앞에서 너무도 당당했던 지연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 형진씨...
어디 있어요...
보고 싶어요..
형진씨... ]

[ 미안해요, 내가 울면 안 되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요,,, 어떡해요..
형진씨..
미안해요..
바보 같이 굴어서...
정말 미안해요... ]

그렇게 지연은 수영 앞에서 숨겨왔던 두려움과 괴로움을 혼자 토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마음 한 구석에서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형진을 자꾸 떠올렸다.

[ 아냐, 아냐...
한 지연..
너 왜이래...
형진씨..
그럴 사람 아냐..
절대..
너..
안 버려..
믿어야 해...
한 지연.... ]

- 어, 너 왜 이렇게 일찍 들어왔어? -

- 엄마가 아프다고 해서요 -

형진의 말에 미진이 조금 퉁명스럽게 말을 했다.

- 어머니 아프셔? 어디가? -

- 몰라요, 쌤은 뭐하다 이제 들어와요, 엄마가 저렇게 아픈데.. -

- 야, 오랜만에 친구 만나고 들어온 거야, 그리고 난 어머니 아픈 줄 몰랐어 -

- 됐어요, 암튼 남자들은.... -

미진이 퉁명스럽게 말을 하고 휙 하니 돌아서서 방으로 향하자 형진은 미진이 왜 자신에게 투덜거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거실로 들어섰다.
마음 같아서는 방으로 들어가 지연을 보고 싶었지만 미진이 들어가 있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자 형진은 대신 주방으로 들어갔다.

- 아주머니, 안 가셨어요? -

- 네, 사모님이 아무것도 못 드셔서 죽 좀 끓여놓고 가려고요 -

- 어디가 아프세요? -

- 몸살인가 봐요, 아까 낮에 나갔다 들어오셔서 몸이 안 좋다고 바로 누우셨거든요 -

- 언제 들어오셨는데요? -

- 두시 안돼서 들어오셨어요 -

- 네 -

- 그나저나 큰일이네, 내일 나도 없는데, 어떡하지 -

- 어디 가세요? -

- 네, 내일 사돈되시는 분이 서울에 오신다고 해서요 -

- 걱정 마세요, 제가 집에 있으면 됩니다 -

- 어휴, 선생님이 무슨 사모님을 돌봐요, 미진이라면 모를까 -

- ....... -

말을 마친 아주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주방을 나서자 형진이 조금 굳어진 얼굴로 주방을 나와 지연의 방을 잠시 응시하다 이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지연의 방에서 나오던 미진이 이 층으로 올라가는 형진을 발견했다.

- 암튼, 나중에 봐, 내가 가만 안 둘 거야 -

삐죽거리며 말을 하던 미진이 주방으로 향했고 이 층으로 올라간 형진은 지연이 아프다는 소리에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는 자신이 답답한 듯 방을 서성이고 있었다.

- 우리 엄마 잘 돌봐야 해요 -

- 걱정하지 마, 임마 -

현관에 선채로 단호하게 말하는 미진의 말에 형진이 근엄한 인상을 하며 대답을 하고 있었다.

- 대신, 학원 수업만 끝나면 바로 올게요 -

- 알았어 -

- 그럼, 부탁해요 -

- 응 -

형진의 대답에 이어 미진이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고 있었다.

[ 철컹... ]

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돌아 선 미진이 안을 바라보며 무언가 말을 하고 있었다.

- 어휴, 힘들다, 힘들어..
그냥 빨리 나에게 말하지... -

샐쭉거리는 표정으로 말을 마친 미진이 돌아서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똑..
똑... ]

- 네 -

대답 소리에 이어 형진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자 지연이 형진을 보며 엷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 미진이는 갔어요? -

- 네 -

어제 집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지연의 초췌한 얼굴을 본 형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 몸살이에요? -

- 그런 것 같아요 -

- 죽이라도 끓여 올까요? -

- 됐어요, 형진씨가 무슨 죽을 끓여요 -

- 저, 그런 거 잘해요, 그리고 실은 아주머니가 끓여 놓은 것도 있고... -

형진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하자 지연이 다시 미소를 머금었다.

- 그나저나 왜 아파요, 지연씨 아프니까, 내가 다 힘이 없어요 -

- 정말, 그래요? -

- 네, 마음 같아서는 어제 내려와서 지연씨 옆에서 자고 싶었는데, 미진이가 있어서 그러지도 못하고... -

형진의 말에 여전히 미소를 짓던 지연이 옆으로 눕고는 자신의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건드리기 시작했다.

- 올라오라고요? -

- ....... -

지연이 고개를 끄덕였고 형진이 얼른 침대로 올라갔다.
그러자 지연이 형진의 품을 파고들었고 형진도 그런 지연을 포근히 안아 주었다.
형진의 품에 안긴 지연이 눈을 내려감은 채 더욱 형진의 품을 파고들었다.

- 나, 조금만 이러고 있어도 괜찮죠? -

- 하루 종일 이러고 있어도 좋아요 -

- 고마워요, 형진씨 -

지연을 형진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로 말없이 안겨 있었고, 나지막이 들려오는 형진의 심장 소리가 들리자 천천히 눈을 떴다.

[ 당신 심장 소리가 들리네요, 이 심장 소리..
나만을 위해 뛰는 거 맞죠, 그렇죠.. ]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형진의 심장 소리가 너무 좋은 듯 흡족한 표정을 짓던 지연이 무언가 떠오르자 살짝 얼굴 표정이 굳어졌다.

[ 그 사람..
항상 내 이름을 불러줬어요, 수영이라고..
그냥 수영이라고... ]

수영이 했던 말이 떠오르자 지연이 다시 눈을 감고는 잠시 형진의 심장 소리를 듣다가 천천히 눈을 떴다.

- 형진씨 -

- 네 -

- 내 이름이 뭐에요? -

- 이름, 한 지연이잖아요 -

- ....... -

형진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가슴에서 떨어진 지연이 형진을 응시했다.

- 형진씨, 우리 애인사이 맞죠? -

- 그럼요 -

- 그리고 한 지연은 박 형진 여자 맞죠? -

- 왜 그래요? -

- 대답해요, 맞죠? -

- 그럼요, 지연씨 내 여자 맞아요 -

- 그럼, 지금부터 그냥 내 이름 불러줘요, 지연씨가 아니라 그냥 지연이라고.. -

- ........ -

- 그래 줄 수 있죠, 우린 애인 사이니까, 나이 같은 거 상관없이.. -

- 갑자기 왜 그래요 -

- 그리고 이름만 아니라 우리 둘이 있을 땐 말 놓고 싶어요, 그냥 편안하게 지내고 싶어요, 다른 연인들처럼.. -

지연의 말에 잠시 지연을 물끄러미 응시하던 형진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지연의 머리칼을 가만히 쓸어 넘겨주었다.

- 우리 지연씨가 아프기는 아프나보네, 생전 안 하던 말을 다 하고... -

- 형진씨, 그렇게 해요, 우리...
네.. -

-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뭔데요? -

- 갑자기 아니에요, 난 형진씨가 먼저 다정하게 내 이름 그냥 불러주고 말도 놓기를 기다렸는데, 형진씨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잖아요, 그래서 지금 말하는 거예요 -

- ....... -

형진이 자신을 가만히 응시하자 지연이 다시 말을 이었다.

- 만약 형진씨가 내 부탁 안 들어주면 계속 아플 거예요 -

- 어, 지금 나 협박 하는 거예요? -

- ...... -

지연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런 지연을 응시하던 형진이 입가에 미소를 짓고는 지연을 가슴에 안았다.
지연은 그런 형진의 등에 손을 얹고는 형진을 마주 안았다.

- 빨리 대답해요 -

- 지연씨가 그러고 싶다면 그래야죠, 계속 아플 거라고 협박까지 하는데 내가 무슨 수로 거절을 해요, 난 지연씨한테 꼼짝 못하는 남잔데.... -

- ....... -

- 하지만 괜찮겠어요, 내가 정말 말을 놓고, 지연아라고 불러도? -

형진의 말에 지연이 엷은 미소를 머금고는 형진의 가슴에서 다시 떨어졌다.

- 네, 괜찮아요, 그러니까 불러 봐요, 내 이름.., 지연아..
하고... -

- ....... -

지연의 말에 형진이 선뜻 입을 열지 않고 자신을 응시하자 지연이 입술을 살짝 내밀고 떼를 쓰는 표정을 하자 미소를 지은 형진이 손을 들어 지연의 뺨을 어루만졌다.

- 지연아.... -

처음 듣는 자신의 이름이 낯설었지만, 형진이 이름을 불러주자 지연의 얼굴이 금세 밝아졌고 환한 미소까지 머금었다.

- 한 번 더 불러 봐요 -

- 지연아... -

- 네 -

조금은 쑥스러운 듯 어색하게 대답을 한 지연이 다시 형진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지연의 가슴에 어두웠던 감정이 밀려나고 다시 행복감이 밀려왔다.
아팠던 몸도 언제 그랬냐는 듯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형진이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 이렇게 행복한 마음이 들 줄 몰랐던 지연은 좀 더 일찍 형진에게 자신의 이름을 불러달라고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을 했다.

- 근데, 난 지연아 이렇게 불렀는데..
네라고 대답하면 어떡해요 -

형진이 말을 했지만 지연은 형진의 가슴에 얼굴을 더욱 밀착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다시 불러 볼게요, 지연아... -

- ........ -

- 지연아... -

- 응 -

두 번의 부름 끝에 지연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을 하자 환한 표정을 지은 형진의 자신의 가슴에 안겨있는 지연의 머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 형진씨 -

- 네 -

- 형진씨.... -

대답을 했음에도 지연이 연거푸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형진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 응 -

형진은 이내 짧게 대답을 했다.

- 이제부터 그렇게 내 이름 불러주고, 말도 편하게 하는 거야 -

- 그래, 그럴게 -

형진이 대답을 했고 지연은 말을 놓는 것만으로도 형진과 자신이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지연은 수영이 말한 것처럼 형진이 자신의 이름을 그냥 불러주고 말을 놓게 된 것에 안도하고 있었다.

- 형진씨 -

- 응 -

- 나, 사랑하는 거 맞지? -

- ........ -

지연의 물음에 형진이 가슴에서 지연을 떼어내고는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 지연아 -

- 응 -

- 아직도 내 마음이 믿겨지지 않아, 왜 매번 사랑 하냐고 물어, 나 진심으로 사랑해..
정말 진심으로... -

형진의 말에 지연이 일렁거리는 시선으로 형진을 응시했다.

- 형진씨 -

- 응 -

- 그건 내가 아직 믿어지지가 않아서 그래 -

- 뭐가? -

- 당신이 내 남자라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 어느 날 당신이 갑자기 내 곁에서 없어지고 다시 나 혼자 있던 시간으로 돌아 갈 것만 같아, 그래서 그래..
너무 행복해서, 꿈만 같아서.... -

- 꿈 아니야, 이렇게 내가 옆에 있잖아, 그리고 혼자 두고 사라지는 그런 일 절대 없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

- ........ -

형진의 말에 지연이 다가가 입술을 포갰다.

[ 그래, 믿어..
나...
형진씨 믿어, 하지만 그럼에도 자꾸 불안해, 이래서 여자는 속이 좁다고 하나 봐, 자기를 믿으면서도 불안해, 아니라고 하면서도 불안해... ]

입맞춤이 끝나자 서로를 응시하던 두 사람이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었다.

- 형진씨 -

- 응 -

- 나, 자기한테 확인 받고 싶은 게 또 있어 -

- 뭔데? -

형진의 물음에 지연이 형진의 손을 잡고 자신의 사타구니로 가져왔다.

- 넣어서 만져 봐 -

- 뭐, 보지? -

- ........ -

말을 놓아서인지 형진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보지라는 단어를 내뱉었고, 지연도 머뭇거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진의 팬티 안으로 손을 넣었고 살짝 다리를 들어 준 지연은 형진의 손이 보지에 닿자 다시 다리를 내려 형진의 손을 압박했다.

- 천천히 만져 줘 -

말을 놓아서일까, 아니면 느닷없이 나타난 수영이란 존재에 대한 일말의 불안감 때문일까, 지연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형진에게 보지를 만져 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지연이 수영을 만났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형진은 갑작스런 지연의 변화가 어리둥절했지만 지연에게서 느껴지는 친밀감에 아무 의심 없이 손을 움직여 지연의 보지를 만지기 시작했다.

- 형진씨 -

- 응 -

- 지금 당신이 만지고 있는 보지, 누구 건지 알아? -

다시 한 번 지연이 거리낌 없이 보지란 말을 입에 담자 형진이 그것이 싫지 않은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 흐음, 그야 지연씨 보지잖아, 한 지연.. -

- ....... -

지연이 고개를 저었다.

- 한 지연 게 아니야, 당신이 만지고 있는 보지는 당신거야, 박 형진거야 -

- 내거라고? -

- 응, 당신거야, 당신이 거기를 보면 살짝 부끄럽지만, 그래도 당신이 만져주면 기분이 좋고, 당신이 입맞춰주면 흥분되고, 당신이 들어오면 행복해지는 곳이야, 그렇게 당신 없이는 아무 의미가 없는 곳이야, 거기는...
그래서 당신거야, 당신만이 그곳을 통해 날 행복하게 해주니까 -

형진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지연에게 다가와 입맞춤을 하고 물러났다.

- 지연씨, 아파서 용감해 진건가, 아니면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

무심코 던지 형진의 말에 지연의 표정일 살짝 굳어졌다 풀어졌지만 형진은 미처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 원래 용감했어 -

- 그런가 -

맞장구를 친 형진이 다가오자 지연이 입술을 내밀어 형진을 반겼다.

- 그나저나 이제 좀 괜찮아? -

- 음, 형진씨가 옆에 있으니까 다 낳았나 봐, 아무래도 난 형진씨가 없으면 안 되는 여자인가 봐 -

- 흐음, 그건 내가 할 소리인데 -

형진의 말에 지연이 바지춤으로 손을 넣으려 하자 형진이 숨을 들이마셔 공간을 만들어 주었고 지연의 손이 거침없이 팬티 안으로 들어와 형진의 자지를 거머쥐었다.

- 형진씨, 대신 이거는 내꺼 해도 되는 거지? -

- 당연하지 -

형진의 대답에 지연이 다가가 다시 입맞춤을 하고 물러났고, 형진을 응시하던 지연이 다시 입을 열었다.

- 형진씨 -

- 음 -

- 나, 편하게 만지고 싶어 -

- 그래 -

지연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형진이 먼저 바지와 팬티를 벗었고, 지연에게 다가간 형진이 먼저 치마속의 팬티를 내리려 하자 지연이 엉덩이를 살짝 들어 형진을 도왔다.
팬티를 발끝으로 빼낸 형진은 남은 치마마저 벗겨낸 뒤 보지털이 돋아있는 보지 둔덕에 입맞춤을 하고는 다시 지연의 옆에 누웠다.
지연은 기다렸다는 듯 형진의 옆구리를 파고들었고, 가슴과 아랫배를 살짝 더듬던 손이 밑으로 내려가 형진의 자지를 손에 쥐고는 천천히 아래위로 훑기 시작했다.

- ........ -

형진에게 좀 더 밀착한 지연이 시선을 내려 자신의 손에 쥐어진 형진의 자지를 가만히 응시했다.

[ 형진씨가 내거라고 했어, 전에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내 거야, 나만이 만질 수 있고, 나만이 볼 수 있고, 나만이 몸속에 넣을 수 있는 내거야, 한 지연 거야,, 한 지연 거... ]

자신의 손에서 잔뜩 성을 내고 있는 자지를 아래위로 천천히 훑어가며 지연은 그렇게 형진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고 있었다.

너무 많은 변화였다.
수영과의 짧은 만남을 통해 지연은 너무 많은 것이 변하고 있었다.
형진과 편하게 말을 놓고, 거침없이 형진에게 보지를 만져 달라는 식의 변화가 아니라, 애틋하고 가슴 절절하게 보였던 지연의 사랑에 집착이란 단어가 머리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건 어찌 보면 평범한 반응일지 모른다.
누구나 자신의 연인이 자신만을 바라보고, 자신만의 것이기를 바라지만 지연에게 그런 감정은 남의 것이라 여겼다.
그저 형진에게 점점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고, 그것만을 느끼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하지만 수영이 그런 지연의 느긋함을 깨버린 것이다.

그렇게 지연은 처음으로 자신의 것, 자신의 남자에 대해, 집착을 했다.
언제나 자신의 곁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남아있으리라 생각했던 형진이 그러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수영을 통해 처음으로 느꼈고, 그 두려움은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지연을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를 통해 지연은 완전한 여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감추지 않고, 모든 것을 자신의 남자 앞에 드러내는 그런 여자로 말이다.
그 옛날 수영이 형진에게 그랬듯이 말이다.

[ ........... ]

그렇게 운명은 한 남자를 두고 두 여자를 갈라놓은 채 두 여자를 똑같은 모습으로 만들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그것이 두 여자를 불행하게 할지, 아니면 그 반대일지도 모른 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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