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쪽 기록 속일본기에만 확인되는 인물로 국서 한장 없이 입만 털어서 일본을 속였다
이부분은 일본도 찝찝했는지 김태렴을 배웅하면서 다음엔 꼭 국서를 가지고 오라고 당부했을정도.
신라쪽 기록은 속일본기 상 김태렴의 사기 행각 이후 다음 해 일본 사신이 왔는데 태도가 오만불손하여 내쫒았다는 기록만 있다
무엇보다 당시의 신라왕이었던 경덕왕에게는 그 시점에 아들이 없었다.
다만 사기치는데 선단과 700명이나 되는 인원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절대 보통 사람은 아니고 최소한 유력한 호족이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