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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안의 나르시시스트들

자기애적 인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라는 정신질환이 있습니다. 대체로 자신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며, 문제가 생기면 나는 잘못이 없고 죄다 남들의 잘못이라고 여기며, 세상이 나를 위해 존재해야만 한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대다수 사람들은 약간씩은 그런 성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심해지면 질환이 되는 거죠. (이 아래부터 언급하는 "나르시시스트"는 엄밀한 정신의학적 용어가 아니며, 대체로 그런 성향을 지닌 사람들을 지칭하기 위해 자의적으로 선택한 단어입니다.)

조직 내에 있다 보면 나르시시스트들이 의외로 자주 보입니다. 더 뜻밖인 건 그들이 조직 내에서 나름대로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우월감을 느끼길 원하기 때문에 남들보다 열심히 일하는 경우가 많고, 자신의 판단에 확신을 가지기 때문에 태도에도 자신감이 드러납니다. 그러니 언뜻 보면 일을 잘 하고 또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비춰지죠. 그리고 종종 좋은 성과를 내곤 합니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들과 오랫동안 부대끼다 보면 뭔지 모를 기묘한 위화감을 느끼게 됩니다.

우선 자신의 우월성을 지나치게 드러내려 합니다.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고 주워섬김으로써 자신이 그보다 우월하다는 걸 증명하려 들지요. 그렇기에 누군가가 그 사람에게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했을 때, 필요 이상으로 날선 반응을 보입니다. 마치 그걸 개인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요. 또 사소한 대화를 나누다 보면 대화의 주제를 자꾸만 자기 자신에게 맞추려 든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러면서 남들을 드러내 놓고 비판하지요.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우월함을 남들이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타인을 아군과 적군으로 명확하게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관이 자주 보입니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그들이 원하는 아군은 "동료"가 아닙니다. 그들이 바라는 건 자신과의 상하 관계가 명확한 상황에서 자신을 떠받들어 줄 "숭배자"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기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자신의 생각과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순간, 그 사람을 냅다 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하려 드는 경우도 잦습니다.

또 나르시시스트들은 조직 내에서 역할을 하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해하지 않습니다. 조직을 이끌고 가는 자신의 모습을 원합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 조직보다 우월하다고 여깁니다. 우둔한 대중을 올바른 길로 이끄는 영도자의 모습이야말로 그들이 머릿속에서 그리는 스스로의 모습입니다.

그렇듯 스스로가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은 실패를 마주했을 때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습니다. 대신 타인의 잘못을 찾으려 듭니다. 내 판단은 모두 옳았고 내 결정은 백 퍼센트 제대로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실수를 했거나 혹은 내게 앙심을 품었기 때문에 일이 망쳐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실패의 이유를 항상 밖에서 찾습니다. 반면 자신이 성공한 이유는 항상 자기 자신이 훌륭하고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편리한 가치관입니까? 잘 된 건 내 덕분이고 못 된 건 남을 탓하면 되니 정말이지 마음이 편하겠네요.

그렇기에 나르시시스트는 단기적인 성과를 낼 수는 있을 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거의 반드시 조직에 해를 끼칩니다.





모 프로야구 감독이 있습니다. 지금은 나이가 많이 들어서 은퇴했지만 현역 시절에는 항상 논란의 중심에 서던 인물이었죠.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즐겼습니다. 인터뷰를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했지요. 그런데 성공가도를 걸을 때의 그는 항상 자신의 능력에 대해 말했고 자신이 어떤 식으로 팀을 잘 이끌었는지를 강조했습니다. 반면 하락세에 접어들자 남들이 어떤 식으로 자신의 기대를 저버렸고 누군가가 어떻게 자신을 속였는지를 말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성공은 오롯이 자신의 공로였고, 실패는 모두 남의 탓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러 팀의 감독을 역임하면서 분명 업적이라 할 만 한 결과를 남긴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선수들도 여럿 있습니다. 그 또한 그런 선수들에 대한 애정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곤 하지요. 다만 저는 그런 애정이 그리 탐탁하게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제 편견이겠지만, 마치 그 선수들이 자신의 뛰어난 능력을 증명해 주는 수단이기 때문에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또 자신의 의견을 따르지 않는 선수나 코치진에 대해서는 유독 지나칠 정도로 가혹했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모 연예사 대표도 있습니다. 그는 위에 언급한 모 감독과 놀랄 만큼 유사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업계에서 뛰어난 성과를 냄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대규모의 투자를 받아 이직했습니다. 새로운 회사에서 그가 받은 대우는 그야말로 전례가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속한 조직과 충돌이 일어난 순간, 그는 역사에 남을 만한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밑천을 남김없이 드러냈습니다. 같은 행동도 자신이 하면 정당하고 올바른 것이지만 남이 하면 잘못되고 비도덕적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타인의 행동에서는 악의를 찾아냈지만 자신의 행동은 선의로 포장했습니다. 자신에 대한 공격에 울분을 토하면서도 남에 대한 공격은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자신이 키워낸 그룹을 아끼고 사랑한다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정말로 그 그룹에 대한 애정이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주는 결과물에 대한 애정이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조직 내에서 겪은 일도 있습니다. 모 중간관리자는 활기차게 자신의 팀을 이끌었고 업무적으로도 좋은 성과를 냈습니다. 상급자가 고맙다는 말을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겉보기에 좋았던 팀은 실상 내부적으로는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자신과는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보이지 않게 괴롭히기까지 하는 중간관리자에게 직원들은 진저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갈등이 격화되어 터졌을 때, 그 중간관리자는 울분을 터뜨리며 말했습니다. "내가 정말 잘해줬는데 그들이 나를 배신했다."고요. 그에게 있어 문제의 원인은 자신이 아니라 타인에게 있었습니다. 아니, 타인의 탓이어야만 했던 겁니다.





이러한 나르시시스트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에 거의 반드시 큰 피해를 줍니다. 그렇기에 조직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싫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잘나가는 사람에 대한 시기나 질투 따위와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조직이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모인 집단인데, 나르시시스트들은 그런 조직 내부의 결속을 망가뜨림으로써 결과적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도록 합니다. 설령 단기적으로는 성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이득보다 손해를 더 많이 끼치게 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할 수도 있겠지만 속으로는 심하게 곪아가게 됩니다.

이런 일을 겪다 보면 조직의 구성원들은 대체로 나르시시스트들에게 바득바득 이를 갈 수밖에 없게 되지요. 이는 결국 조직의 생존 자체에 악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조직은 나르시시스트들을 배제하려 합니다. 아니, 배제해야만 합니다.

사람들은 "능력있는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무능한 조직"과 "그런 조직을 내부에서 극복하고 성공을 쟁취하는 개인"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그런 주제를 다루는 드라마나 소설 등도 무궁무진하게 많지요. 하지만 현실에서도 과연 그럴까요. 오히려 개인이 조직의 힘을 등에 업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개인보다 조직이 항상 더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예컨대 저는 조직 내에 속해 있기에 어느 정도의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권한으로 일정한 규모의 예산을 집행할 수 있고, 자신의 결정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사표를 내고 조직을 떠난다면 내일부터 저는 그저 평범한 동네 아저씨일 뿐입니다. 조직을 등에 업지 않은 제게는 무언가를 이루어낼 수 있는 힘이 거의 없다시피합니다.

스포츠계의 격언이 하나 있습니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거죠. 대부분의 조직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개념입니다. 조직보다 뛰어난 개인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나르시시스트들은 그 사실을 간과합니다. 그렇기에 혼자 불만을 품게 되고 결국 조직을 망가뜨립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억울하다고 생각하죠.





유감스럽게도 조직 내에서 이런 사람들을 만나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서두에 언급했다시피 나르시시스트들은 대체로 초반에는 조직 내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마련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조직 내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가지는 자리에 올라가게 되고, 그렇게 권한이 커지면서 비로소 본색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내가 피해 다니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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