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반년째 공전 중인 플랫…
EU 플랫폼법 3월부터 본격 시행…미국·영국도 의회 논의 중
일본·인도서도 입법 가시화…"지배적 사업자 사전 지정" 포함
(CG)
[연합뉴스TV 제공]
(세종=연합뉴스) 박재현 기자 = 정부가 플랫폼 독과점 규제를 위한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 추진 계획을 밝힌 지 반년이 지났지만, 구체적인 법안의 내용은 아직 윤곽조차 드러나지 않고 있다.
국내 논의가 공전하는 동안 해외에서는 "지배적 사업자 사전 지정"과 "의무 부과"를 골자로 하는 규제 법안들이 입법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일 공정거래위원회와 업계에 따르면 현재 미국과 유럽, 일본 등 해외 주요국 대부분은 플랫폼 관련 규제 입법을 추진 중이거나 시행하고 있다.
"플랫폼 규제"의 선두 주자로 꼽히는 유럽연합(EU)은 지난해 5월부터 디지털 시장법(DMA)이 시행됐다.
DMA의 주된 내용은 플랫폼 분야별로 시장을 지배하는 사업자를 "게이트 키퍼"로 정하고 각종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EU 경쟁 당국은 법 시행 이후인 지난해 9월 정량 요건과 정성 요건을 고려해 검색엔진, SNS, 중개 서비스 등 10개 서비스 분야에서 6개 사업자(알파벳, 아마존, 애플, 메타, MS, 바이트댄스)를 게이트 키퍼로 정했다.
올해 3월부터는 게이트 키퍼에게 적용되는 의무 규정들이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최혜 대우, 자사 우대, 멀티호밍 제한, 끼워팔기 등 대표적인 불공정 행위의 금지는 물론 데이터에 대한 무료 접근 허용, 선탑재 애플리케이션 허용 등 작위 의무도 부과됐다.
게이트 키퍼들은 이 밖에도 디지털 관련 기업 인수 계획 시 EU 경쟁 당국에 사전 통지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
입점업체 또는 최종이용자에게 회복 불능의 피해가 발생하는 긴급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임시 중지 명령도 부과될 수 있다.
처벌 규정의 수위 역시 매우 높게 설정됐다. 관련 법 위반 시 전 세계 매출액 10% 이하의 과징금 부과가 가능하며, 8년 내 동일·유사한 법 위반 행위 재발 시 부과 한도가 2배 상향된다.
영국 역시 디지털 시장 경쟁·소비자 법안이 지난해 4월 발의된 상태다. 현재 의회에서 최종 합의가 진행 중이며, 올해 상반기 내 제정이 예상된다.
이 법안 역시 정성적·정량적 요건을 고려해 지배적 사업자를 "전략적 시장 지위 플랫폼"으로 사전 지정하고 각종 의무를 부과한다는 점에서 DMA와 유사하다.
전략적 시장 지위 플랫폼으로 지정된 업체들은 공정하고 합리적인 거래 조건을 설정, 실효적인 분쟁 절차 마련, 이용자에게 명확하고 접근할 수 있는 정보 제공 등 의무를 지게 된다.
자사 우대 및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 불공정 행위를 금지하는 의무 규정도 적용받는다.
기업결합 신고 의무나 임시중지 명령 부과 조항, 전 세계 매출액의 10% 이하로 규정된 과징금 규정 등도 DMA와 비슷하다.
미국 역시 "온라인 선택과 혁신 법안"이라는 이름의 플랫폼 규제 법안이 상원에서 논의 중이다.
이 법안 역시 정량적·정성적 요건을 고려해 지배적 사업자인 "적용 대상 플랫폼(covered platform)"을 지정하고, 자사 우대 금지 등 10가지 금지행위 유형을 규정하는 것이 골자다.
관련 법 위반이 적발되면 민사 벌금이나 금지명령, 임시중지 명령 등이 부과될 수 있다. 벌금은 위반 기간 미국 내 연매출액의 10% 이하로 부과된다.
BELGIUM EU COMMISSION
EPA/OLIVIER HOSLET
공정위 역시 해외 플랫폼 규제 움직임에 발맞춰 지난해 12월 시장 독점력을 가진 핵심 플랫폼 사업자를 사전 지정하고, 감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플랫폼법 추진 계획을 밝혔다.
공정위는 당초 올해 2월께 정부안을 발표하고 입법에 속도를 낼 예정이었지만, 법 제정을 둘러싼 업계 반발을 우려한 여권이 플랫폼법 발의 요청에 난색을 보이면서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에 공정위는 당초 계획한 정부안 발표를 미루고, 추가적인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기로 했다. 이후 총선 국면이 시작되면서 플랫폼법은 지금까지 "잠정 보류" 상태로 공전 중이다.
국내 입법 논의가 제자리걸음 하는 동안 해외에서는 플랫폼 규제의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한 입법 작업이 속도를 냈다.
인도는 지난 3월 정부 주도로 디지털 경쟁법 제정안을 공개했고, 이달까지 의견 수렴을 진행 중이다.
일본 역시 당정 협의로 지난 4월 플랫폼 규제 방안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으며 상반기 통과를 목표로 의회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두 법안 모두 지배적 사업자를 사전 지정하고, 각종 금지 행위와 의무를 부과하는 등 서구권 플랫폼 규제 법안과 유사한 구조로 설계됐다.
특히 인도는 자국 시장에서 지배적 위치를 가진 "토종 플랫폼"이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유사하다.
인도의 "플립카트"는 e커머스 분야에서 아마존을 압도하며 인도 내 1위 사업자 지위를 유지하고 있는데, 향후 법안이 시행되면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의 경우 플랫폼 독과점 규제 관련 입법은 상대적으로 늦었지만, 플랫폼과 입점업체 간 갑을 관계를 규율하는 법안은 이미 제정돼 시행 중이다.
육성권 공정위 사무처장, "플랫폼법은"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처럼 세계 각국에서 플랫폼의 독과점화 고착과 반칙 행위를 막기 위한 입법이 속도를 내는 만큼, 정부 역시 "플랫폼법" 입법 논의를 재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앞서 열린 기자단 차담회에서 "플랫폼 특성상 독과점이 고착되면 승자 독식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고 경쟁 회복도 매우 어렵다"며 "국회에도 법안의 필요성을 잘 설명하며 입법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