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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재정 투입해 저소득층 보험료 지원" 통해 장기적 연기금 안정 방안 확보 가능
김우창 카이스트 교수 등 "국민을 위한 국민연금은 없다" 책에서 제안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종합상담실.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 제도는 여러 문제를 안고 있지만, 크게는 2가지 핵심 문제로 모인다.
하나는 급격한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 급변으로 보험료를 낼 사람은 급감하는데, 연금 받을 사람은 급증하면서 연기금 고갈로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 "빨간불"이 들어왔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연금기금이 모두 바닥난 뒤부터 그해 지급할 연금을 그해 거둬들인 보험료로 충당하려면 소득의 30% 이상을 보험료로 내야 하는 등 미래세대의 재정 부담이 감당 불가능할 정도로 커질 것이 명약관화하다. 세대 간 불평등으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심지어 "연금 폐지론"마저 흘러나오는 이유이다.
다른 문제는 보장성이 떨어지고 "사각지대"가 넓다는 점이다.
역사가 길지 않다 보니, 현재 노인 2명 중 1명은 아예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국민연금에 가입해 있지만, 연금 수급을 위한 최소 가입 기간(120개월)을 채우지 못해 국민연금 제도 바깥에 남아 있는 사람도 많다.
국민연금공단 조사 결과 2020년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은 모두 1천263만명으로, 전체 국민연금 가입 대상자(3천500만명 기준)의 약 40%에 달했다.
게다가 연금 수급권이 있더라도 가입 기간이 짧아 연금액이 최소 생활 유지에도 벅찰 정도로 적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개혁방안을 논의하지만, 재정 지속가능성을 높이자는 쪽(재정안정론)과 소득 보장을 강화하자는 쪽(소득보장론)으로 갈려 보험료와 소득대체율을 어떻게 조정할지를 놓고 대립하면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전문가가 국민연금의 양대 이슈인 재정안정과 소득 보장을 모두 충족할 수 있다고 내세우는 새로운 개혁 대안을 들고나와 관심을 끈다.
일종의 "제3의 길"을 제안한 셈이다.
보건복지부, 국민연금 개혁안 발표…보험료 인상 필요성 강조
(서울=연합뉴스) 서대연 기자
◇ 평행선 달리는 재정안정론·소득보장론, 국민연금 "양대 문제" 해결 못 해
국회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와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등에 참여한 김우창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와 국민연금연구원 부원장을 역임한 원종현 기금운용위원회 투자정책 전문위원회 위원장 등은 "국민을 위한 국민연금은 없다"(더숲)라는 최근 펴낸 책에서 정부 재정 지원을 전제로 한 연기금 안정 방안을 제시했다.
새로운 개혁모델을 제안한 이들 전문가에 따르면 재정안정론자와 소득보장론자의 연금개혁안은 국민연금의 양대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다.
먼저 재정안정론의 경우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여 세대 간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고자 한다.
재정안정론자 방안대로 보험료율을 현재의 9%에서 15%로 높이고 수급 개시 연령을 65세에서 68세로 늦추며, 기금 운용수익률을 현행 4.5%에서 5.5%로 1%포인트 더 올리는 등으로 개혁하면 개혁 완료 후 향후 70년 동안, 즉 적어도 두 세대가량은 추가적인 보험료 인상이나 수급액 삭감 없이 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수급 개시 연령을 3년 늦춤으로써 실질 연금액이 삭감되는 등 보장성 미비와 세대 내 불평등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아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연금제도를 시행하는 근본 이유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이들 전문가는 지적했다.
특히 한국의 취약한 노동환경과 복지체계 아래에서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까지 68세로 늦춰지면, 건강수명이 65세 이하인 중하위 노인들은 현재 수급 기준인 65세까지도 버티기 힘든데 3년을 더 기다려야 하는 등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소득보장론도 하자가 있긴 마찬가지다.
소득보장론자의 개혁안은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끌어올려 국민연금의 보장성을 확대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이 과정에서 보험료율도 9%에서 13%로 올려 소득대체율 인상에 따른 추가 재정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한다.
이렇게 하면 보장성은 개선되겠지만, 세대 간 불평등 문제는 지금보다 커진다.
소득보장론자의 대안대로 하면 현세대는 보험료로 국내총생산(GDP)의 3.8%만 부담하면 되지만, 미래세대는 GDP의 11.3%를 짊어져야 하는데, 기금고갈 이후 미래세대가 과연 현세대보다 GDP의 7.5%만큼 보험료를 기꺼이 더 부담할지는 의문이다.
이들 전문가는 그래서 소득보장론자들이 그리는 미래는 선언적일 뿐,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전혀 제시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이들 전문가는 결론적으로 "재정안정론자가 연금의 존재 이유를 무시하고 기금 고갈만 걱정하는 게 문제라면, 소득보장론자는 이상론만 설파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맹점이 있다"고 평가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보장하라!'
(서울=연합뉴스) 이정훈 기자
◇ 새로운 개혁안 성사되면 향후 100년간 연금재정 안정화·실질소득 강화
이들 전문가는 한국이 연금 개혁 과정에서 늘 가입자의 보험료와 소득대체율을 조정하고 연기금 운용수익만으로 수지타산을 맞추는 데만 몰두했다고 비판하면서 그간 국민연금 개혁 논의의 장에서 거의 등판하지 않았던 "정부 재정"의 역할에 주목했다.
이들 전문가는 현재 적립금이 1천조원 넘게 쌓인 국민연금의 경우 정부의 재정지원이 뒷받침되면 100년 이상 든든한 연금 재정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공적연금을 굴리는 가장 큰 재원은 "가입자가 낸 보험료, 정부 재정, 기금운용 수익" 등 3가지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국민연금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책임이 있는 정부가 정부예산을 국민연금에 거의 쓰지 않고 있다.
세계적 기준으로 봤을 때 공적연금에 정부 재정이 거의 투입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이해하기 힘든 희한한 일이라고 이들 전문가는 꼬집었다.
이와 관련, 이들 전문가는 40년 가입기준으로 현행 40%인 명목소득대체율을 유지하면서 보험료와 기금, 정부 재정의 역할을 잘 조율해 국민연금 재정을 튼튼하게 다지는 개혁방안을 내놓았다.
즉, 보험료율을 지금보다 3%포인트 올려 12%로 인상하고, 정부 재정은 연간 GDP의 1%를 매년 투입하며, 기금운용 수익률은 지금(4.5%)보다 1.5%포인트 올려 장기적으로 연평균 6%로 하자는 것이다. 이들은 이를 "3-1-1.5 개혁안"이라고 불렀다.
GDP의 1%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약 3.5%포인트 올리는 규모로, 2022년 기준 약 22조원 정도이다.
다만 한꺼번에 보험료를 올리고 거액의 정부 재정을 한 번에 투입할 수는 없는 만큼, 2025년부터 5년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매년 보험료율은 0.5%포인트씩 올리고, 정부 재정은 0.17%포인트씩 투입해 2030년에 개혁을 완성할 것을 제안했다.
또 새로 투입된 정부 재정은 저소득층에 집중적으로 지원해 일정 수준의 노후소득을 보장하는 등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사용하자고 주장했다.
이들 전문가는 이렇게 하면 명목상 연금 급여를 소득비례로 책정하지만, 정부재정 투입분을 저소득층 및 사각지대의 보험료를 대신 납부하는 데 사용하기에 미래세대에 부담을 떠넘기지 않으면서도 전 국민의 최소 노후소득을 보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개혁이 이뤄진다면 향후 100년간 연기금 규모가 GDP의 120% 수준에 도달한 뒤 100년 동안 그 수준을 유지해 사실상 영구적으로 기금이 고갈되지 않는 구조를 완성할 수 있다고 이들 전문가는 전망했다.
이들 전문가는 특히 새로운 개혁안은 보험과 재정, 기금 등 3가지 조합을 잘 활용한다면 준 항구적인 재정안정을 유지하면서도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부담 수준으로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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