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46년째 &#…
우리銀 구내 이발소 이경재 씨…1978년부터 근무
"저도 은행원처럼 입 무거워져…"100살까지 일하라"더라"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우리은행 본점 구내 이발소를 운영하는 이경재(86) 씨가 1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시중은행 구내 이발소에서 반세기 가까운 세월 십수 명의 은행장들 머리를 다듬어온 이발사가 있다.
옛 상업은행에서 가위를 잡아 "은행권"에 입문한 뒤 올해로 46년째 행원들의 헤어스타일을 책임지고 있는 우리은행 구내의 이경재(86) 씨다.
서울 중구 관내 최고령 이발사이기도 한 이씨는 우리은행 본점 지하 2층에 20평 남짓한 이발소를 열어놓고 매일 오전 7시부터 흰 와이셔츠 차림으로 손님을 맞는다.
과거에는 은행마다 구내 이발소가 있었다고 한다. 고객에 "신뢰" 주는 모습을 유지해야 하는 은행원들에게 회사가 제공하는 일종의 사내 복지 차원이었다.
외환위기 전에는 한국은행과 시중은행 본점에 모두 15곳의 이발소가 있었고, 거기서 일하는 이발사끼리 모임도 자주 이뤄졌다.
하지만 바깥의 일반 미용실이 더 인기를 끌면서 하나둘씩 사라져 이제는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이발소 정도만 겨우 명맥을 잇고 있다.
경기 양평 출신의 이씨는 16살부터 고향에서 이발 기술을 배웠다. 육군 5사단에서 이발병으로 근무한 뒤에는 광화문 뉴국제호텔 이발소에서 근무했다.
상업은행 본점 이발소로 스카우트 된 게 1978년. 그 후로 현재까지 은행장만 19번이나 바뀌었고, 행장들 대부분이 이씨에게 머리를 맡겼다.
대리 시절부터 이씨를 찾은 이순우 전 우리금융 회장은 저축은행중앙회 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로도 계속 정든 구내 이발소를 방문했다고 한다.
황영기 전 회장이나 김진만, 이덕훈, 이종휘, 이원덕 전 행장도 단골이었다.
수십 년 동안 행장부터 부행장까지 여권 사진을 구해 노트에 붙여놓고 소속 부서 등 인적 사항을 달달 외운 덕에 이씨도 은행 조직에 훤했다.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 우리은행 본점 구내 이발소를 운영하는 이경재(86) 씨가 14일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씨는 요즘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의 "전속" 이발사로 일한다. 2~3주에 한 번씩 이발소에 들르는 임 회장의 머리를 깎아준다.
임 회장은 지난달 초 회사 창립기념일 행사에 이씨를 초대하고 자신의 바로 옆자리에 앉게 하는 등 각별한 애정을 표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회장이나 은행장이 아니더라도 1만원만 내면 누구나 이씨에게 머리를 맡길 수 있다.
이씨는 지난 14일 연합뉴스와 만나 "상업-한일은행 합병되고 나서 입사한 친구들이 벌써 부장되고 지점장 나가더라"며 은행과 역사를 함께한 "산 증인"으로서 자부심을 내비쳤다.
신이 난 표정으로 단골손님들의 이름을 줄줄이 읊던 이씨는 그러나 그룹 회장이나 임원들과 나눴던 인상 깊은 대화를 전해달라는 말에 입을 꾹 닫았다.
그는 "돈 얘기, 정치 얘기는 일절 안 해요"라며 "은행 분들은 입이 무겁잖아요. 여기서 오래 일하다 보니 저도 그렇게 됐어요" 하고 손사래를 쳤다.
이씨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비싼 땅에서 나만큼 오래 일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며 "아무런 여한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원덕 전 행장이 나보고 "100살까지 일하시라"고 하더라고요"라며 웃었다. 악수로 배웅할 때 손아귀 힘이 아주 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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