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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으로서의 소회

지방에서 전산직으로 일합니다. 주로 보는 일은 행정시스템 관련 업무죠. 사실 크게 뭐 목적이 있는 글은 아닙니다. 요즘 들어서는 거의 동네북이 되어버린 9출 공무원이지만, 인터넷 커뮤니티 돌아다니다가 간만에 더 씌게 긁혀서요 흐흐. 임용된지 이제 한 5년은 지난 것 같고, 이 정도 지나고 나니 어느 정도 이 직업에 대해서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는 정도 짬은 먹은 것 같습니다. 객관적인지 주관적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 직업에 대한 소회는 이렇습니다.

1. 왜 했냐?
솔직히 9급 준비하는데 큰 뜻을 품고 준비하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보고, 그냥 준비하던 시점에 제일 쉬워보이는 게 공무원이어서 준비했었습니다. 1년 안되게 준비했었으니까 실제로 쉽게 붙기도 했었고요. 5년 전까지도 약간 대기업 vs 7급 공무원 같은 시덥잖은 배틀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는데(저는 당시에도 왼쪽 완승이라고 생각했었어서 저걸 왜 논쟁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갔었지만) 지금은 중소만도 못하다는 소리 듣는 걸 보면 좀 긁히긴 합니다..

2. 할 만 하냐?
케바케가 너무 심해서 딱 한정할 수가 없습니다. 가장 많이 준비하는 일반행정직, 육군으로 따지면 111알보병이나 다를바가 없는데 이러면 이제 업무 강도가 룰렛 돌리는 거랑 똑같다고 보시면 돼요. 최악으로 유명한 방사건토환(방재 사회복지 건축 토목 환경)은 미달도 잘 나고 여기 업무 배치받으면 민원인 육두문자 듣는거랑 허구한날 비상업무로 불려나오는 게 일입니다. 저는 전산직으로서 솔직히 전산 업무 볼때는 워라밸에 매우 만족했었는데, 한번 인사이동 뺑뺑이 돌리다가 교통관련 민원업무 봤을 때는 면직 충동이 시시때때로 솟아오르긴 했었습니다. 주차금지 구역에서 30분도 넘게 주차를 해두고는 본인은 "잠깐 차를 세우고 다른 곳에 다녀온 거지" 주차가 아니라서 돈 못내겠다고 소리지르는 사람들을 주에 3번은 봐야합니다. 아 그것 빼놓고 코로나 시국때는 진짜 끔찍했었습니다. 허구한날 동원되는게 진짜 지옥도가 따로 없더라고요.

3. 만족하냐?
솔직히 월급이 너무 적긴 합니다. 그래서 투자 재테크를 생각하기에 시드머니 자체가 쪼들리는게 마음에는 안 듭니다. 그래도 그것 뺴고는 나가고 싶을 때 연가 쓰고 부서가 칼퇴는 보장이 되는 편이라 그럭저럭은 만족합니다. 저는 그나마 월급으로 본가를 부양해야하는 건 없어서 혼자 하고 싶은 거 하고 여자친구랑 데이트 나가는 정도는 되네요. 아마 학자금을 갚아야 한다든가 본인 월급 절반이 부모님 용돈이면 안하느니만 못한 직업일 겁니다. 지방에서는 의외로 결혼도 잘 합니다. 9+9커플은 꽤 많은 편이고요. 다만 결혼의 성사 여부는 집에서 얼마나 보태줄 수 있는가(액수의 문제가 아니라, 해당 지방에서 전세집이라도 구할 수 있는가)가 제일 커보였습니다.

전반적으로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수준은 로우바둑좌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다른 사람한테 직업 얘기했을때 크게 마이너스 되지 않는 정도라고 해야할까요. 아마 수도권이면 직업인식평균에서 조금 아래일 거고 지방이면 평균보다 살짝 윗급이겠죠. 비난이나 좀 덜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넷에서만 그런 건지 아니면 사람들 기본 인식이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유달리 공무원 얘기만 나오면 입에 거품물고 빈정거리는 사람이 너무 많더라고요.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번외로 어느 직업이든 안 그렇겠느냐만은, 이 바닥은 진심 why(왜들어옴?)사람들과 how(어케들어옴?)사람들의 갭이 심합니다. 2년단위 뺑뺑이가 의외로 순기능이 있기도 합니다. how들이 2년 내내 공문 재작성만 누르며 버틴 자리에 why들이 와서는 식은 땀을 흘리며 2년간 외형상이나마 정상으로 만들어두면, 또 한 몇 년 버티는 거죠. 한번씩은 이 나라 행정이 어떻게 굴러가는건지 신기하기까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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