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해도 괜찮아. 구형 로봇청소기 후기
원래는 가전 삼신기 중 건조기, 식기세척기만 썼습니다. 로봇청소기도 관심은 많았는데 방이 좁아서(4평) 가구 놓고 나면 방바닥이 정말 쥐똥만해서 도저히 놓는 의미가 없더라고요. 오히려 자리 차지하는 게 방해되는 수준.
그러다 어쩌다보니 새로운 보금자리로 옮겨가게 됐는데,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광활한 크기(7평 남짓)에 압도됐습니다. 사실 뭐 이것도 큰편은 아니라 처음에는 무선청소기나 하나 마련해서 대충 슥슥 닦고 말지 싶었는데, 우연히 당근을 둘러보던중 구형 로청이 5만원 정도에 팔리는 거 보고 급 뽐뿌 와서 질러버렸습니다 흐흐.
제가 산 건 샤오미 미지아 G1이란 약 4년된 모델입니다. 흡입 + 물걸레 겸용이고, 당시에 저가형으로 나온 모델이라 라이다 센서 없이 자이로와 적외선 센서만 달려있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피를 토하면서 말하는 게 "로청은 라이다가 필수다!"입니다. 자율주행차에도 들어가는 센서라 비싼 대신 성능이 짱짱해서 맵핑도 정밀하고, 아무튼 똑똑합니다. 맵 보고 청소 구역 설정 같은 편리한 부가 기능도 많고요. 그래서 저도 고민을 좀 많이 했습니다. 어차피 라이다 달린 구형 모델도 대충 5만원 밑으로 살 수 있는데, 당장은 매물이 없더라고요. 언제 나올지 모르는 불확실성을 견디고 더 좋은 제품을 기다릴 것이냐, 아니면 걍 이거 사고 치울 것이냐...
근데 생각해보니까 어차피 방도 좁은데다 원룸이고, (반강제) 미니멀라이프를 실천 중인데다 방바닥에 물건을 안둬서 굳이 고등한 기능이 필요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바로 샀습니다. 방 청소 너무 미루는 것도 좀 그렇고... 근데 물건 받고 한 이틀 지나니까 딱 원하는 매물 나온 건 함정.
암튼... 그래서 어떻냐면... 대만족입니다. 솔직히 기대를 안했는데 생각보다 똑똑해요. 벽 보면 그대로 박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잘 인지해서 피하고, 좀 복잡하게 생긴 물체도 몇 번 부딪힌 뒤에는 슥슥 잘 피합니다. 동선도 생각보다 최적화를 잘하는 것 같고요. 가만 보면 전체적으로 지그재그로 훑고, 모서리까지 한 번 훑은 뒤 스스로 충전기로 돌아옵니다.
흡입도 흡입이고, 제일 마음에 드는 건 역시 물걸레 기능입니다. 사실 저가형, 구형 로청의 물걸레는 제대로된 게 아니라 그냥 바닥에 물칠하는 수준이긴 합니다만, 애초에 딱히 바닥이 오염될 일이 없으니 그정도만 해도 충분합니다. 청소할 때 물걸레질이 제일 귀찮아서 거의 안하고 살았는데, 그 물걸레 하고 난 바닥의 산뜻한 느낌을 매일 즐길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또 방이 크지 않으니 하루에도 몇 번 씩 돌려도 배터리가 한참 남아서 별로 부담도 없고, 매일 돌리니까 방이 언제나 말끔합니다. 제가 머리가 털갈이하는 수준으로 많이 빠지는 사람이라 항상 머릿털과의 전쟁이었는데, 방에 널리는 털이 없으니 참 깔끔해요. 그리고 애가 빨빨 기어다니면서 청소하는 거 멍때리고 보고있으면 은근 귀여움(?).
물론 라이다가 없어서 단점도 있습니다. 제일 큰 건 역시 자석벽, 금지구역 설정을 못하는 것. 샤워하고 환기한다고 화장실 문을 열어놓으면 화장실로 다이빙해서 못빠져나옵니다(...). 현관도 마찬가지로 안막아두면 거기 계속 갇혀있음... 그래서 저녁에 화장실 다 마르면 그때 화장실 문 닫고, 현관은 다른 물건으로 막아둔 다음에 돌리는 편입니다. 이것만 아니었으면 진짜 밖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돌렸을 것 같은데 아쉽습니다.
그리고 애가 좀 멍청하기도 해요. 자이로 센서가 자기가 움직인 거리를 바탕으로 매핑을 하는데, 가끔 애매한 턱 같은데 걸려서 공회전하면 그걸 또 멀쩡히 간 거리 취급해서 맵이 겁나 커지더라고요. 맵이 어그러졌으니 애가 복귀도 제대로 못하고... 그래서 좀 걸릴만한 가구는 구석에 치워두는 편입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론 겁나 만족합니다. 라이다 달린 게 물론 더 좋기야 하겠지만 제 상황에선 굳이 꼭 필요한 건 아니니까요. IT 기기 보면 항상 최고스펙!만을 외치던 저를 반성하게 됐습니다. 그냥 멍청한 구형 써도 충분한데???
물론 요즘은 라이다가 대중화 돼서 저가형에도 대부분 달려 있으니 새로 사실 분이라면 꼭 달린 걸로 사시길 추천드립니다만 흐흐.
지금은 이걸로 만족하지만, 나중에 언젠가 더 넓고 방 많은 집으로 이사가게 되면 진짜 프리미엄 로청을 구매할 생각입니다 흐흐. 스테이션 자동 먼지 비움! 물걸레 자동세척! 물걸레 열풍건조! 직배수 키트로 물도 안갈아줘도 됨! 귀차니즘의 끝판왕 흐흐흐흐. 이제는 로청 없는 삶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
그러니까 여러분, 로청 사십셔. 구형이라도 상황에 따라 꽤 쓸만합니다? 물론 새거는 더 더 좋음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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