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OK!제보] 집에선 …
환자한테 수년간 거액 선물 받아
의사, 김영란법 위반 인정하고 사과
국민권익위에 신고돼 조사 진행
의사·환자, 법정 다툼도 벌여
의대 교수가 환자로부터 받은 상품권들
국내 최상위권의 명문대 의대 교수가 수년간 수십차례에 걸쳐 환자로부터 고가의 상품권과 한우 선물 세트 등을 받았다. 사진은 교수가 받은 상품권의 일부. [제보자 제공]
(서울=연합뉴스) 김대호 기자 = 국내 최상위권의 명문대 의대 교수가 환자에게 선물을 요구하고 거액의 금품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 당국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11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의사인 A 교수는 2020년 11월 담도암 환자 B씨의 수술을 한 이후, B씨와 그의 보호자 C씨 등과 수시로 연락하며 거액의 상품권과 선물을 받았다. A 교수는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며 평소 필요한 일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다. 그러나 B씨의 몸 상태가 악화하며 양측의 사이가 크게 틀어졌고, 그 과정에서 A 교수의 비위 사실들이 폭로됐다.
60대 여성인 B씨는 수술 후 2년쯤 된 2022년 11월 췌장염에 걸린 데 이어 작년 7월 담도암의 일종인 팽대부암 진단을 받았다. 암이 재발한 것이다. 그는 췌장염과 암이 겹쳐 고통이 심해지자 A 교수에게 전화해 도움을 호소했지만 불친절하거나 성의가 없는 응대에 실망하고 분노했다고 한다. A 교수는 수술과 진료 일정이 많아 바쁜 데다 마땅한 치료 방법도 찾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은 감정의 골이 깊어졌고 B씨의 여동생 C씨가 A 교수를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과 의료법 위반 등의 혐의로 보건복지부와 국민권익위에 신고했다. A 교수는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C씨에게 김영란법 위반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모든 신고를 취하토록 했다.
A 교수는 이후 B씨로부터 다시 거액의 상품권과 식사 접대 등을 받으며 관계를 개선하는 듯했지만, B씨 건강이 악화하며 양측은 또 파국을 맞았다. C씨는 결국 올해 3월 다시 국민권익위와 병원 쪽에 A씨의 비위 자료들을 추가로 정리해 신고하게 됐다. A 교수는 이에 B씨 등이 자신을 스토킹했다고 고소,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 20차례 걸쳐 상품권·한우 선물 등 700만원 넘게 받아
C씨가 국민권익위와 병원 측에 신고한 통화 녹취와 카톡 대화, 선물 목록 등을 보면 A 교수는 2020년 12월 24일 진료실에서 50만원 상품권과 20만원 상당의 찻잔을 받은 것을 비롯해, 20차례에 걸쳐 730여만원 상당의 금품과 선물을 챙긴 것으로 나타났다.
한 번에 전달된 상품권과 선물의 금액은 서민들이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컸다. 2021년 1월 21일에는 한우 선물 세트(38만원)와 과일(12만원)을 서울 강남의 집으로 배송받았으며 같은 해 1월과 3월, 7월에는 진료실에서 각각 20만 상당의 스타벅스 카드 상품권을 받았다고 한다. 같은 해 12월에는 자택에서 백화점 상품권(50만원)과 스타벅스 카드(40만원)를 택배로 전달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설과 추석 등의 명절에는 한우와 홍삼, 상품권 등으로 60만~70만원 상당의 선물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A 교수는 이 밖에도 B씨 등에게 저녁 식사도 같이 하자고 제안해 학교 앞의 고급 중식당에서 7만원짜리 코스 요리를 먹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A 교수 등 3명의 총식사비는 21만원에 달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된 A 교수의 김영란법 위반 내용
명문대 의대 교수가 2년여에 걸쳐 환자로부터 진료실과 자택 등에서 고가의 상품권과 선물 세트를 받았다는 증거 목록이다. [제보자 제공]
◇ 환자에게 대놓고 금품·선물 요구
A 교수는 작년 5월 8일 카카오톡 대화에서 "사골은 누님께서 보내주셔서 있어요. 아래 주스면 좋겠어요. 감사"라고 원하는 선물을 요청했다. B씨는 이틀 뒤 A 교수가 말한 감귤 주스를 7만1천원에 결제한 후 택배로 보냈다.
또 작년 4월엔 커피머신 5개가 필요하다며 학교로 보내달라고 말했다. B씨는 즉시 65만원 상당의 커피머신을 택배로 보냈다. 그러나 커피머신은 양측의 관계가 악화하며 B씨가 반환을 요구해 돌려주었다. A 교수는 작년 5월 받은 백화점(50만원)과 스타벅스 상품권(20만원)도 B씨 요구로 같은 달 반환했다. 그러나 상품권의 일부는 이미 사용해 다시 구입해 돌려준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2월 5일에는 카톡으로 "선물 잘 받았습니다. 집에 오니 탐스러운 과일이 와 있네요"라며 택배 상자를 인증 사진으로 첨부해서 보냈다. 그는 당시 50만원 상당의 한우와 과일을 받았다. 병원에서 와인과 고급 과자를 받은 후에도 "너무 맛있어서 외과 식구들과 같이했다. 와인은 병 자체가 예뻐서 먹겠나요?"라고 감사를 표시했다.
환자로부터 금품 수수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의대 교수
명문대 의대 교수가 사골 대신 주스를 원한다거나 커피머신을 5대나 사달라고 요구하며 환자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다. 오른쪽 위의 사진은 교수가 환자의 선물을 잘 받았다고 사진을 찍어 보내며 감사하다고 말하고 있다. [제보자 제공]
◇ 김영란법 신경 안 써도 된다더니 비위 적발되자 환자에 사과 편지
A 교수는 2020년 12월10일 진료실에서 C씨가 작은 성의의 표시로 목도리를 선물하자 "김영란법은 아무도 신경 안 쓰며 누가 신고하겠냐"며 대놓고 선물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사실은 진료 당시 녹취록에 나와있다.
그는 그러나 B씨 측과 사이가 소원해져 김영란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자 C씨에게 이메일을 보내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는 이메일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켜 환자와 보호자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점에 대해 사과합니다. 김영란법에 의해 그 어떠한 선물도 받았으면 안 되었습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조심스럽게 보여 주시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고마운 마음을 단호히 거절하는 것보다 오히려 환자의 회복을 책임지고 관리해야 하는 주치의로서 적절한 범위 내에서 주시는 마음의 선물이라 생각하고 감사히 받는 편이 환자나 보호자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으로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라고 김영란법 위반 사실을 인정했다.
김영란법 무시해도 된다는 의대 교수
명문대 의대 교수는 진료실에서 환자에게 김영란법을 신경 안 써도 된다고 말했다. 아래 사진은 교수가 환자의 제보로 병원 내부 감사를 받고 금품수수 사실이 드러난 후 작성한 사과 메일이다. [제보자 제공]
◇ 진료 외 시간에 환자와 수시로 사적인 연락
B씨는 담도암 수술 후 4개월이 지난 2021년 3월29일 A 교수에게 "집에 승마 기구가 있는데 타도 되는지, 코로나 백신을 맞아도 되는지" 물어보았다. A 교수는 "승마 기구를 타도 될 것 같으며, 몸이 다 회복된 것 같으니 코로나 백신도 맞아도 될 듯하다"고 친절하게 상담해주면서 저녁 식사 자리를 제안했다.
A 교수는 B씨 등과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한 작년 4월 24일에도 다시 식사 약속을 잡았다가 다음 날 장소를 변경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말했다. 이외에도 수시로 환자에게 건강 관리를 위한 조언을 해주는 모습이 포착됐다. 한 카톡 대화에서는 C씨가 A 교수에게 전화번호를 알려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A 교수는 필요한 일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환자와 수시로 연락 주고받는 의대 교수
교수는 환자에게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준 후 필요한 사안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했다. 이들은 평소 전화나 카톡으로 연락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제보자 제공]
◇ A 교수 김영란법 위반 인정…B씨 측과는 법정 다툼
A 교수는 연합뉴스에 보낸 해명을 통해 "선물을 받은 사실에 관해 제보자(B·C씨)로 추정되는 분으로부터 진료에 대한 감사의 인사표시로 명절 선물 등을 받은 사실이 있으나, 상대방의 요구로 일부 선물은 반환하기도 했다"고 김영란법 위반 사실을 시인했다.
그는 그러나 "제보자(B·C씨)로 추정되는 분과 부적절한 연락을 주고받은 사실이 없다. 제보자로 추정되는 분의 요청에 따라 의사로서 답신을 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부당하게 진료 편의를 봐준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만 "제보자로 추정되는 분을 포함한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주변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들의 지속적이고, 도를 넘어서는 연락과 제보자로 추정되는 분의 반복되는 민원 및 내용증명 송달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형사 고소했다"고 밝혔다.
A 교수는 최근 소속 병원에서 감사를 받았다. 감사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A 교수와 B씨 측의 소송 결과를 보고 판단한다는 전제를 달았다고 한다. A 교수가 B씨 측을 스토킹 혐의로 고소해 재판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김영란법 위반에 대한 최종 판단을 재판이 끝날 때까지 보류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스토킹 혐의는 경찰에서 무혐의 결정이 나왔으나 A 교수가 불복해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B씨는 A 교수에 대한 명백한 증거들이 많이 있는데 그의 징계를 미룬 것은 제 식구 감싸기라고 지적하고 있다. 권익위도 지난 3월 A 교수 사건을 접수해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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