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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사랑하고, 진정으로 보게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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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미술작품을 볼 때 쓰는 시간은 평균 30초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고작 30초. 한 예술가가 수개월, 때로는 수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을 우리는 단 30초 동안 훑어보고 지나간다. 그리고 다음 작품으로, 또 다음 작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우리는 보기는 하지만 과연 제대로 볼까? 보고 이해하는 것일까? 단순한 첫인상 느낌에 그칠까.
고대 그리스 비극 "오이디푸스"에서 맹인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눈은 멀었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졌다. 반면 육체적 시력은 온전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운명을 전혀 보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비극적 운명의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당신은 눈이 있으나 당신 자신의 불행을 보지 못하고, 당신이 누구와 함께 살고 있는지도,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군요."

폴 오스터의 소설 "달의 궁전"에서는 주인공이 시각을 잃은 할아버지 토머스 에핑을 만나 특별한 경험을 한다. 그는 에핑에게 책을 읽어주다가 브루클린 뮤지엄에 있는 블레이크록의 "문라이트"를 여러 날에 걸쳐 보고 묘사하는 법을 배운다.

"중요한 사항은 에핑의 눈이 멀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할 일은 긴 설명으로 그를 지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스스로 사물을 볼 수 있도록 돕는 것이었다... 몇 가지 암시를 기초로 해서 이미지를 구성하고 내가 그에게 설명해 주고 있는 사물을 향해 자신의 마음이 여행하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에핑으로부터 그림을 "읽는" 법을 배운다.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읽는 법을.

"자네는 블레이크록의 그림, 문라이트가 벽들 중 어느 한 곳에 걸려 있는 걸 보게 될 건데,
그러면 그 자리에 멈춰 서. 그리고 그 그림을 봐. … 구체적으로, 다양한 거리를 두고 그 그림을 봐. 3미터 떨어져서, 60센티 떨어져서, 바로 눈앞에서. 그 전체적인 구도를 살펴보고 세부적인 사항들도 살펴봐. … 그 그림의 모든 요소를 기억할 수 있는지 알아봐. 사람들의 모습과 자연적인 물체들, 캔버스에 찍힌 한 점 한 점의 색깔들을 모두 다. 하나하나의 정확한 위치를 외면서 눈을 감고 스스로 시험을 해봐. 그리고 다시 눈을 뜨고서 자네가 눈앞에 있는 풍경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할 수 있는 지 알아봐, 자네 눈앞에 있는 풍경화를 그린 화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할 수 있을 지 말야. 자네가 직접 그 그림을 그리고 있는 블레이크록이라고 상상해 봐."

이 그림이 실제로 블루클린 미술관에 있는 블레이크 록의 그림이다. 그림을 자세히 오랫동안 집중해서 보고 묘사해보자.

주인공은 이 가르침을 따라 그림을 바라보며 마음속에 세밀히 기억하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운 묘사로 이어진다.

"완벽한 보름 달이 자리잡았고 그 창백한 흰색 원반이 그 위쪽과 아래쪽에 있는 모든 것들을 비추고 있었다. 하늘, 호수, 가늘고 긴 가지들이 뻗친 커다란 나무, 그리고 지평선에 낮게 깔린 산들, 앞쪽에 그려진 넓지 않은 땅은 그 사이를 흐르는 개울에 의해 두 뙈기로 나뉘어 있었다. 왼쪽 제방에는 인디언의 원추형 천막과 화톳불이 있었고, 몇몇 사람들이 불 주위로 둘러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모습을 분명히 알아보기는 어려웠다. 그것은 단지 아주 조그맣게 인간의 모습을 암시한 것으로, 대여섯 명쯤 되는 사람들이 불빛을 받아 벌겋게 달아 있었다. 커다란 나무 오른쪽으로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뚝 떨어져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이 명상에 잠긴 듯 혼자서 조용..."

"나는 그림 아래쪽의 어두운 세부 묘사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일에 너무 몰두해서 마침내 다시 하늘을 살펴보려고 눈을 들었을 때는 위쪽에 있는 모든 것들이 얼마나 밝은지에 놀랐다. 보름달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하늘이 너무 눈에 띄는 것 같았다. 표면을 덮은 웃칠 물감이 갈라져 밑의 그림이 그 갈라진 틈새로 부자연스러울 만큼 강렬한 빛을 발했고, 지평선 쪽으로 더 멀어질수록 그 광채는 더 밝아졌다. 마치 거기는 낮이고 산들이 햇빛을 받고 있는 것처럼. 그것을 알아차리고 나자 나는 그 그림에서 다른 이상한 점들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자면 하늘이 대체로 초록빛을 띠고 있다든가 하는....... 구름들 가장자리로 노란색이 번진 그 하늘은 깊숙한 우주의 성운 같은 나선형을..."

이 묘사는 단지 30초 동안 그림을 훑어본 사람의 기억이 아니다. 이것은 그림 속으로 들어가, 화가의 마음속을 탐험하고, 그 안에서 그림을 다시 그려본 사람의 기억이다.

조지프 퓰리처는 이렇게 말했다.
"짧게 써라. 그러면 읽힐 것이다.
명료하게 써라. 그러면 이해될 것이다.
그림같이 써라. 그러면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림같이 쓰는 것, 그것은 단순히 묘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보는 이의 마음에 영원히 남는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그림을 볼 때와 같은 깊이 있는 관찰에서 비롯된다.

조선시대 문인 유한준은 그의 저서 "저암집"의 "석농화원"에서 그림을 보는 네 단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림에는 그것을 아는 자, 사랑하는 자, 보는 자, 모으는 자가 있다. 한갓 쌓아두는 것이라면 잘 본다고 할 수 없고, 본다고 해도 칠해진 것밖에 분별하지 못하면 아직 사랑한다고는 할 수 없다. 사랑한다고 해도 오직 채색과 형태만을 추구한다면 아직 안다고 할 수 없다. 안다는 것은 화법은 물론이고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오묘한 이치와 정신까지 알아보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그림의 묘미는 잘 안다는 데 있으며 알게 되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면 참되게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나니 그때 수장한 것은 한갓 쌓아두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유한준의 말은 놀랍도록 통찰력 있다. 그에 따르면 진정한 순서는 "알고, 사랑하고, 보고, 모으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그의 순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순서와 정반대다. 우리는 보고, 수집하고, 점차 사랑하게 되고, 마침내 이해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한준은 이것이 더 깊은 차원의 "봄"으로 가는 길이라고 제안한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너무 바쁘다. 발걸음을 멈추고 30초 이상 무언가를 바라볼 시간조차 없다고 느낀다. 하지만 작품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치 폴 오스터의 주인공이 여러 날에 걸쳐 동일한 그림을 관찰했듯이, 우리도 같은 작품을 반복해서 보며 새로운 세부사항, 새로운 의미, 새로운 감정을 발견할 필요가 있다.

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으로 보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맹인 테이레시아스와 시각을 잃은 토머스 에핑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듯, 때로는 육체적인 시각보다 정신적인 시각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우리가 본다고 해서 항상 이해하는 것은 아니며, 우리가 이해한다고 해서 항상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사랑하고, 진정으로 보게 되면, 세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림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대화의 상대가 되고, 창문이 되고, 영혼을 위한 거울이 된다. 30초는 작품과의 인사에 불과하다. 진정한 관계는 그 후에 시작된다.

석농화원에 대한 유홍준 교수님의 설명입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1604262159005
우리 사회에서는 미술품 애호가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편견이 만연해 있지만 미술 애호는 음악 감상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고급 취미 중 하나이다. 그뿐만 아니라 미술품 애호가가 작품을 사주지 않으면 미술문화란 이루어질 수가 없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미술품 컬렉터는 그 시대 미술문화의 강력한 패트론으로 되고, 민족문화를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한다...
www.khan.co.kr
<석농화원>10권에 수록된 작품은 물경 267폭에 이른다. 수록 화가를 보면 공민왕, 안견부터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단원 김홍도에 이르기까지 101명이다. 조선 400년간의 유명한 화가를 총망라한 ‘조선시대 회화사 도록’인 셈이다.
인생철학이 담긴 화평도 있다. 그가 요절한 원명유(元命維)의 그림에 부친 글에서는 애잔한 마음까지 일어난다.
“사람으로 인해 그림이 전해지는 것은 그림에겐 행복인데, 그림으로 인해 사람이 전해지는 것은 사람에겐 불행이다. 원명유는 사람 때문에 전해졌어야 마땅한데, 오직 이 한 폭의 작은 그림이 인간 세상에 전해지고 있으니 이 어찌 원명유의 불행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후세에 이 그림을 통해 그의 재주를 상상할 것이니, 오히려 허전하게 아무 명성이 없는 것보다 낫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원명유는 일찍 죽었고 또 자식도 두지 못하여 더욱 슬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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