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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 해외 생활 넋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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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게에 글 남긴 지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최근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일이 겹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고, 이 기회에 지난 제 삶을 한번 정리하고 나누고 싶어서 이렇게 다시 글을 씁니다.

어릴 적 저는 그저 그런 아이였습니다. 특별히 공부를 잘하지도, 그렇다고 아주 못하지도 않은.
운 좋게도 아버지가 해외 파견을 가시게 되면서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국제학교에서 다니게 되었고, 어린 나이에 영어를 접하며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중학교 시절은 잠시 한국에서 보냈지만요.

사실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성적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고등학교 시절 해외로 나가게 되었고, 아마 한국에서 경험한 빡빡한 공부 리듬 덕분인지, 성적이 어느 정도 괜찮게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카이스트와 미국의 한 대학에 동시에 합격했는데, 결국 학비 문제와 미래에 대한 기대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미국 유학을 선택했습니다.

입학 당시엔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어쩌면, 착각이자 불행의 씨앗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땐 생각했어요.
"좋은 대학만 가면 인생이 술술 풀리겠지."
물론 좋은 친구들도 사귀고, 즐거운 기억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대학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뒤로 저는 멈춰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공부 외에는 큰 노력을 하지 않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친구들과 놀기 바빴습니다.
결국엔 현지에서 취업이 잘 안 되었고,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됐죠. 졸업식 날 부모님을 보며, 마음 한구석이 너무 무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많은 돈을 써서 유학을 보내주셨는데, 저는 제대로 된 결과를 보여드리지 못한 것 같았거든요.

그때까지만 해도 ‘어디엔가 취업은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습니다. 전 ‘book smart’였을지 몰라도, 사교성이 유별나게 좋은 것도 아니었고 (사실 어찌보면 안좋은 편에 속하는거 같습니다), 면접에서는 계속 고배를 마셨습니다. 그러던 중 운 좋게 취업이 됐고,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일단 감사한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죠. 7-8개월 뒤에는 지인의 소개로 이직에 성공했고, 이후 4-5년을 그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힘들었습니다.
무능한 상사들이 연봉은 더 받고, 일은 대부분 제가 도맡아 했고, 수고는 고스란히 그들 몫이 되더군요. 밤중에 전화해서 소리치는 상사까지...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미국에 있는 친구들과 비교하면 저는 배우는 것도 적고, 받는 월급도 낮았습니다.
윗사람들처럼 살고 싶진 않았고, 그러다 보니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면 뭔가 바뀌지 않을까?’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고, 여기저기 지원서를 넣었지만 대부분 떨어졌습니다. 다행히 한 곳에 합격했고, 다시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대학원 생활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정신없이 바빴지만 마음만은 여유가 있었고, 좋은 인턴 경험에 정규직 전환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졸업 즈음엔 “이제 진짜 행복해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까지 들었죠. 부모님이 말씀하시던, "좋은 대학 – 좋은 직장’의 공식이 완성된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막상 직장에 다녀보니…
학교와는 정말 달랐습니다.

회사는 철저히 개인주의였고, 한국과는 다르게 동료들과의 교류가 제한적이었고 직장 문화 차이에 적응하는라 꽤 애를 먹었었네요. 직종도 워낙 업무가 고강도라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근무시간도 거의 밤 11시 넘게 끝나니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도 제한적이었습니다.

대학 시절 친구들과는 이미 연락이 끊긴 지 오래고, 대학원 친구들도 몇 안 되었죠. 늦은 퇴근 시간과 바쁜 업무에 쫓겨 새로운 인연을 만들 시간조차 없었고, 외로움은 쌓여만 갔습니다.

초반 몇 달은 매일 밤 내일 출근이 두려워 잠도 잘 오지 않았습니다.
회사에서 특별히 따돌림을 당한 건 아니지만, 아무도 저에게 큰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모든건 혼자 해내야 되었고 저한테 기대하는게 느껴져서 부담으로 다가왔고 또 회사에서 쓰는 영어는 일상에서 쓰는거와 아예 다르더군요. 또한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제 자신을 보며 계속 위축 되더군요...

아이러니하게 인생에서 가장 행복할줄 알았던 시절이 가장 불행한 시간이 되어버렸습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으며 어찌보면 잘될려고 한 모든 일들이 저에게 최악의 결과를 가져다 주게 되었네요. 제3자가 보면 괜찮을 삶 같아 보일수 있어도 정말 속은 썩어 들어갔습니다.

그때 느꼈습니다.
‘아, 내가 너무 순진했구나. 남들이 좋다고 한 길만 따라가면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결국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은 다르구나.’

지금까지 저는 사실, 남들이 만들어놓은 정답 같은 인생을 따라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안정적이고 멀쩡한 인생처럼 보여도, 마음속은 늘 허전하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았고, 타인의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추며 살아왔던 거죠.

하지만 이제는 이 모든 방황도 결국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믿고 싶습니다.
성장통이었고,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자양분이었다고요.

요즘은 매일 하루 5분이라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봅니다.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이, 내가 원한 길인가?"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치열한 현대 사회 속에서도 가끔은 잠시 멈춰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겐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며, 모두가 각자의 방식대로 잘 살아가길 바랍니다.
언젠가 이 모든 순간도, 웃으며 추억할 수 있기를.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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