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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병문안을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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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정말 가까운 친구가 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다행히 큰 일은 발생하지 않았으나, 그 곁을 지키는 일도 참 쉽지 않았습니다. 이후 친구의 핸드폰을 정리하다가 메모장에 남겨둔 글을 보게 되었고, 읽는 내내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이걸 공개해도 괜찮을까 많이 고민했지만, 친구와 충분히 이야기했고, 따뜻한 댓글들이 친구에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심스레 올려봅니다. 혹시나 문제가 될 경우 삭제하겠습니다.

위법한 것도 아니고 결혼한 것도 아니니 문제 없다는 생각들이 어쩌면 소중했던 사람을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는 구렁텅이로 빠지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인기있는 연애 프로그램들도 어쩌면 정리가 안된 상태에서 다른사람을 품게되는 하나의 문화 현상을 만든 것도 같구요. 다들 행복하시고, 주변에는 이런일 없이 평안한 일만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힘든 이별 뒤에, 예상치 못하게 그녀를 만났다. 나와는 모든 게 달랐고, 그 다름이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활기차고 자신감 넘쳐 보였지만, 알고 보면 낮은 자존감을 강한 말투와 태도로 감추는 사람이었다. 처음엔 그런 점이 신비롭게 느껴졌고, 우리의 관계는 그동안 내가 해왔던 어떤 연애보다도 격정적이고 불타올랐다.

그녀의 꿈은 oo전자 입사였고, 나는 진심으로 그녀를 응원하며 도왔다. 이직 준비를 같이 하고, 멘탈이 무너질 때면 곁에서 붙잡아 주며 버텼다. 그녀는 결국 그 꿈을 이뤘다. 나는 우리가 서로 진심이라고 믿었고, 또 믿고 싶었다. 그녀가 나와의 대화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어느 날 우연히 그녀가 남자 동기와 나눈 카톡을 보게 되었다. ‘나중에 아이 몇 명 낳을 건지’에 대한 얘기를 꺼낸 건 그녀였고, 그 대화 속 남자는 “뭐해~”라고 답했다. 충분히 친한 사이끼리는 할 수 있는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시각이 새벽이었고, 바로 그날 나는 그녀 옆에서 자고 있었다. 그 사실 하나로 마음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그녀는 동기들과 단체방도 있었지만, 일부와는 따로 개인 톡을 자주 나눴다. 예전에는 무심코 넘겼던 것들이, 이제는 자꾸 불길하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한때는 우리가 찍은 인생네컷을 부모님 사진 옆에 붙이며, 나를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했던 그녀. 하지만 내가 그녀의 집에 갈 때마다, 우리 사진은 어디에도 붙어 있지 않았다. 그때부터 ‘내가 정말 이 사람의 남자친구가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다음날,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얘기했다. “주말에 남자친구랑 같이 있는데 새벽에 다른 사람에게 연락하는 건 불편해.” 내가 메시지를 봤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 관계를 조금 더 명확히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녀는 이미 말했다며 조심하겠다고 했다. 그 때가 25년 1월 초였다.

그 후로도 나는 몇 번이나 “나에게 좀 더 집중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나를 속이고 있었다.

2월 2일, 전날 우리는 데이트를 했고, 그녀는 피곤하다며 먼저 잠들었다. 나는 복잡한 머릿속을 안고 거실로 나왔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예감이 너무 좋지 않아, 결국 그녀의 애플워치로 메시지를 몰래 보게 됐다.

전날 밤, 나는 그녀에게 울면서 말했다. “내가 네게 온전한 남자친구가 아닌 것 같아.” 오열하는 나를 그녀는 꼭 안아주며 “그런 생각 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 말에 잠시 안정을 찾은 나는 침실을 정리하러 들어갔고, 그 사이 그녀는 다른 남자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동생 옆에 누웠어”라는 말과 함께, 그를 애칭으로 부르며 “잘 자”라고 보냈다. 그리고 그에게 받은 답장은 “사랑해융”이었다. 총에 맞은듯 가슴이 아려왔다. 2년 가까운 기간을 그녀에게 헌신했지만, 돌아온건 기만 뿐이였다.

사랑도, 일도 모두 잘 안 되던 시기였다. 나는 내가 잘못했기에 모두가 떠난 거라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내 편은 어머니 한 사람뿐이라는 생각만 남았고, 어머니마저 없다면 정말 아무 미련도 없이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고통 없이 사라지는 방법을 검색하면서, 이런 비참한 생각조차 털어놓을 사람 하나 없는 내 처지를 원망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나는 원래 행복해질 운명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30년 넘게 살아보니, 어쩌면 그건 내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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