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강대국의 세계 질서를 구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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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알렉산드르 두긴(Александр Дугин)
편집: 타냐 데그레챠프
오늘날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이 결연히 구축하려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지정학이 점점 더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이번에는 ‘트럼프 2.0’이 좌파 자유주의적 세계주의(globalism)와 네오콘(사실상 이들도 세계주의자들) 모두와 단호히 결별할 의지를 드러내며, 이들의 프로젝트와 어떤 타협도 거부하고 있다. 그는 모든 끝을 잘라내고, 미국 항공모함을 새로운 항해로 출항시키고 있다.
트럼프가 따르는 국제관계 모델은 "강대국 질서(Order of Great Powers)"로 정의할 수 있다. 이는 바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MAGA)’라는 이념의 논리적 연속이다. 이 슬로건 자체가 말해주듯, 그것은 ‘서방’, ‘자유민주주의의 세계 확산’, ‘대서양주의’에 관한 것이 아니라, 바로 ‘국민국가로서의 미국’에 관한 것이다. 트럼프의 생각에 따르면, 이 국가는 세계주의와 그에 수반되는 제한, 의무, 강제에서 완전히 해방되어야 한다. 그의 눈에는 현존하는 거의 모든 국제 기구들이 ‘오래된 질서’를 반영하고 있으며, 그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자 한다. 이는 유엔, 나토, WTO, WHO 등 모든 초국가적 기구에 해당한다. 그는 이것들이 자유주의자들과 세계주의자들의 창조물이라고 보며, 자신은 그와 정반대인 ‘현실주의적 입장’을 확고히 취하고 있다.
현실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은 국제 관계 이론에서 서로 반대되는 두 주요 학파이며, 특히 ‘주권(sovreignty)’ 개념에서 가장 극명하게 갈린다. 현실주의자들은 주권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반면, 자유주의자들은 그것을 상대적인 것으로 여기고, 국가 행정을 초국가적 기구에 종속시키려 한다. 이들의 목표는 장기적으로 인류 통합과 세계 정부(World Government) 창설이다. 현실주의자들은 이를 국가의 자유와 독립에 대한 침해로 간주하고 강력히 거부한다. 그래서 트럼프 지지자들은 세계주의자들을 ‘딥 스테이트(Deep State)’—즉 미국 정책을 초국가적 목표에 종속시키려는 세력—라고 부른다.
세계주의적 정책의 원형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우드로 윌슨이 제시한 ‘14개 조항’이다. 그는 미국을 전 인류 차원에서 자유민주주의를 확산시킬 책임이 있는 세계적 강국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현실주의 학파의 정신에 따라 훨씬 이전의 먼로 독트린(Monroe Doctrine)을 따르려 한다 — ‘미국은 미국인을 위해(America for Americans)’, 즉 유럽 정치에의 개입을 회피하고, 미주 대륙 외 국가의 내부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단, 미주 대륙의 사건이 미국의 국익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경우는 제외).
하지만 트럼피즘은 고전적 현실주의와는 약간 다른 점이 있다. 트럼프에게 중요한 것은 단지 법적 주권의 지위가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국가가 가장 심각한 잠재적 경쟁자 앞에서 독립성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강화하고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이다. 즉, 모든 주권이 아니라, 실질적이고 자원을 통해 뒷받침된 주권 — 경제력, 군사력, 인구, 영토, 자원, 지적 능력, 기술력, 문화력 등 — 만을 의미한다.
국제 관계 전문가 스티븐 크래스너(Stephen Krasner)는 이러한 법적이고 명목적인 주권을 ‘허구’ 혹은 ‘위선’이라 부른 바 있다. 현실주의의 고전인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 역시 같은 입장을 취한다. 트럼프 또한 이 입장에 동의한다. 이들에 따르면, 진정한 주권은 오직 ‘위대한 강대국(great power)’만이 가질 수 있다. 따라서 현실주의는 단순한 국가가 아니라 ‘문명국가(civilizational state)’ — 자급자족이 가능한 자원과 능력을 지닌 국가 —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질서, 즉 극소수의 국가-문명 간 관계로 구성된 세계질서를 트럼프는 자신의 지정학적 혁명의 청사진으로 보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세계주의의 완전한 거부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공간(big space)’의 지역 통합을 향한 방향 설정이며, 강대국의 자립성과 자급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캐나다와 그린란드의 병합(annexation), 그리고 미국이 가장 유리한 방식으로 라틴아메리카와의 관계를 재구축하려는 움직임은 논리적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MAGA라는 구호의 이중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말하는 ‘미국’은 어디까지를 의미하는가? 단지 현재의 미국(USA)인가? 아니면 캐나다와 그린란드를 포함한 북미 전체인가? 혹은 남미까지 포함한 전 대륙인가? 이 모호함은 우연이 아니다. 이는 ‘대공간’의 지평을 열어두되, 사전에 명확한 경계를 설정하지 않음으로써 확장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더 나아가 트럼프가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자’고 외치는 것은 영토 확장의 요구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는 ‘러시아 세계(Russkiy Mir)’ — 러시아 연방을 넘어 확장된 개념의 문명국가 — 개념과도 유사하다.
트럼프 또한 자신만의 문명국가 개념인 ‘위대한 미국(Great America)’을 구상하고 있다. 그는 패권을 포기하려 하지 않으며, 적어도 지역적 차원의 패권은 여전히 유지하고자 한다. 다만 그 주체를 바꾸고자 한다. 그것은 더 이상 자유주의적 세계질서 — 끊임없이 바뀌는 규칙과 국제적 코스모폴리턴 엘리트들의 권력 독점 — 가 아닌, 현실적 주권을 갖춘 몇몇 강대국들과의 관계 속에서 미국이 지도국가로 기능하는 체제다.
그렇다면 트럼프의 신질서가 인정하는 ‘위대한 강대국’은 몇 개일까? 미어샤이머 교수는 단 세 나라만을 인정한다: 미국, 중국, 그리고 이 둘보다는 다소 뒤처지는 러시아. 인도는 아직 시작 단계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평가한다. 물론 다른 견해도 존재하며, 인도를 문명국가로 포함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미국, 중국,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보는 데에는 현실주의자 대부분이 동의한다. 이들 국가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지만 진정한 주권을 갖춘 강대국이다.
이처럼 트럼피즘은 냉전 시대의 양극 체제도 아니고, 네오콘의 단극 체제나 자유주의자들의 무극 세계도 아니다. 오히려 3~4개의 극으로 이루어진 다극 체제를 구상하며, 이들 간의 힘의 균형이 미래의 세계질서를 형성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 새로운 세계를 반영하려면, 기존 국제 기구 대부분은 폐기하고, 현실을 반영하는 새로운 체제를 구성해야 한다.
이러한 구상은 ‘다극성(multipolarity)’과 유사하게 보일 수 있다. 실제로 최근 미국 국무장관 마르코 루비오는 우리가 다극 세계에 살고 있음을 인정했다. 중국, 러시아, 인도 모두 이에 동의한다. 이들은 실제로 ‘극’의 모든 특성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브릭스(BRICS)와 같은 다극 연합에 비판적이다. 그는 특히 중국을 가장 심각한 경쟁자이자 반대자로 인식하며, BRICS 내에서 중국이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다고 본다. 더 나아가,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나 시진핑의 ‘인류 운명 공동체’ 같은 프로젝트도 세계주의의 또 다른 형태 — 미국 중심이 아닌 중국 중심 — 로 본다. 따라서 그는 러시아와 인도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거나 최소한 중립으로 만들려 하며, 그 외 지역은 각자의 선택에 맡기는 전략이다.
이제 유럽연합(EU)의 위치를 살펴볼 차례다. 미국 정권 교체 이후 브뤼셀은 곤란한 입장에 놓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은 일종의 미국 식민지나 군사적 속국 역할을 했고, 미국이 자유주의적 세계주의를 추구할 때 유럽도 그에 따라 움직였다. 유럽연합 자체도 국가의 주권을 포기하게 만들고 초국가적 기구를 세운 자유주의 실험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이념 축이 바뀌었고, 유럽은 여전히 과거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이것은 모순을 낳으며, 결국 유럽연합의 해체 또는 급진적 개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유럽 내 일부 국가는 이미 트럼프의 노선에 동조하고 있다: 헝가리, 슬로바키아, 세르비아(EU 비회원국), 크로아티아, 그리고 일부 이탈리아 및 폴란드. 이들은 일론 머스크가 표현한 MEGA — “Make Europe Great Again” 구호를 받아들이려 한다. 반면 다른 국가는 아직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과거 노선을 이어가려 하지만, 미국 없이는 글로벌화를 계속하기 어렵다. 유럽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려면, EU를 해산하고 개별 국가 주권을 회복하거나, 주권과 전통 가치, 자국 이익에 기반한 새로운 연합체로 재탄생해야 한다. 이 경우 유럽도 하나의 문명국가로 부활할 가능성이 생기며, 다극 체제에 여덟 번째 극으로 참여할 수 있다.
‘강대국 질서’는 아직 계획일 뿐이지만, 이미 실현되기 시작하고 있다. 지금 상황은 마치 봄철 해빙기의 시작과 같다. 옛 세계의 얼음이 갈라지고, 빙판들이 서로 뒤엉키며 떠오르고 있으며, 머지않아 봄의 거대한 압력으로 물살을 이루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바로 이 과도기적 시점에 살고 있다. 빙하가 완전히 움직인 것은 아니지만, 그 움직임은 이미 돌이킬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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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긴에 대한 호오나 신뢰와는 별개로, 두긴의 지정학적 강론은 언제나 이해하기 쉽고 흥미롭게 읽힌다는걸 부인할수는 없을듯합니다.
사실 트럼프나 두긴이나 하는말은 비슷합니다. 둘 모두 패권적인 자유주의 외교노선 일반, 그리고 그것의 군사주의적 버전인 네오콘의 정권 교체 독트린을 어리석음과 오만의 산물로 비난하고 있죠.
패권국가 미국이 세계에 전파하고 유지하려고 했던 자유주의적 세계 질서와 세계화가 미국의 다른모습이였던 잭슨주의·제퍼슨주의에 바탕을 둔 트럼피즘에 해체되는것도 흥미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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