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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자본주의는 주주를 등쳐먹기로 모두가 합의한 체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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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환원이 늘어나면 R&D에 쓸 돈이 줄고 기업, 국가 경쟁력이 떨어진다!"]

유명한 상법 개정 반대 논리 중 하나입니다. 자세히 뜯어보면 굉장히 재미있는 발언입니다. 이 간단해 보이는 문장 하나에서 한국인이 생각하는 자본주의와 회사에 대한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거든요.

우리는 서구의 자본주의를 "이식"받았습니다. 자본주의의 근간에는 개인의 권리, 자유주의 등 여러 사상이 깔려있는데, 우리는 서구의 체제를 받아들였으나 그 사상까지 받아들여 뼛속까지 서구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되려 우수한 "체제" 자체를 국가 운영, 발전의 수단으로 취급한 것에 가깝죠. 인권이 존귀하고 사유재산이 보호되어야 함이 보편타당해서가 아니라 그게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되니 도입하고 써먹은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대부분의 경우 잘 굴러갑니다만 근저에 깔린 사상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보니 충돌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게 "회사"와 "주주"에 대한 취급에서 두드러집니다.


기본적으로 서구에선 회사란 투자자의 투자 수단입니다. 회사의 존재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함이고 그 외의 효과는 부수효과에 가깝습니다. 제빵사는 사회에 빵을 공급하기 위한 사명을 지고 일을 하는 게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그 과정에서 사회에 빵이 공급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고용도 하고 협력업체도 먹고 살고 세수도 확보될 뿐입니다. (미국식과 유럽식에 대한 차이는 생략하겠습니다.)

반면 이런 제도를 도입한 우리나라에선 그 부수효과 자체를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회사란 고용을 하고, 세금도 내고, 국가 발전 및 경쟁력에 이바지하는 존재입니다. 주주의 이익이란 목적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달성되는 부작용 중 하나일 뿐입니다. 어찌되든 알 바 아닌 거죠.


[큰 틀에서 보면 고전적인 자본주의 vs 국가주도 사회주의 구도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한국인의 사고방식은 명백히 후자에 가깝습니다. 사회주의자가 무슨 욕처럼 쓰이는 현실이지만 딱히 그게 나쁜 건 아닙니다. 당장 우리나라가 발전한 경로를 보십시오. "제철보국", "산업역군"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우리는 "근대화", "산업화"라는 기치 하에 국가주도적으로 투자하고 국민들도 이에 응했습니다. 수많은 강제 "저축", 국가주도의 차관 분배, 기업 육성 등은 어디까지나 [조국의 발전을 위한 것이었지 주주의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투자자에게 제몫을 줘야 한다는 당위를 제치고 국가 운영의 측면에서만 보면 이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많이들 공산주의는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이라 망하기 마련이고 자본주의는 효율적이라 성공한다고 생각하는데 언제나 그런 건 아닙니다. 당장 소련도 70년을 넘게 갔습니다. 그리고 4, 50년대만 해도 소련은 자본주의 국가 따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고도성장을 보이며 후진적인 농업 국가이던 러시아를 강력한 산업 열강으로 탈바꿈시켰고 서구인들조차 사회주의가 미래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장 우리에게도 익숙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소련에서 나왔습니다. 명백히 계획경제, 사회주의적인 요소죠.

꼭 소련 뿐만 아니라 영국, 네덜란드를 제외한 후발 산업국인 독일도 국가 주도(정확히는 국가가 은행을 밀어줘서)로 성장했습니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우리를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도 그렇게 성장했거든요. 시장 원리를 따른 게 아니라 "될 것 같은 분야(공업화)"에 국가주도 자본분배, 통제를 해가며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자유진영에 있었을 뿐 경제 자체는 자유주의라기보단 국가주도 관치경제였죠. 그리고 그 결과가 동아시아의 번영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주주를 등쳐먹는 현재 체제는 너무나도 이상적입니다. 기업은 이자 안나가는 공짜 자본(주주의 돈)을 조달하여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투자로 회사가 잘나가면 임직원들은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으니 행복합니다. 투자로 기술이 발전해서 국가 경쟁력도 강화되고 세금도 잘 내면 국가도 행복합니다. 단지 거기에 돈을 부은 주주만 울상일 뿐입니다. 주주만 희생하면 모두가 행복합니다. 그렇죠?


그렇다고 모두가 주주를 털어먹기로 합의했다니 비약 아니냐고요? "투자자본"에 대한 대중의 반응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외국계 투기자본의 약탈, 먹튀"]
["황제 배당 잔치"]
["단기적인 이익창출을 위해 기업을 망가뜨리는 사모펀드"]

굉장히 친숙하지 않습니까? 투자했으면 과실을 얻어야한다는 "상식"보다는, 임직원, 협력업체, 국가 등에게 돌아가야할 돈을 부당하게 뺏어가는 악인 취급입니다.

사실 당연합니다. 결국 파이를 나누는 게임인데, 쟤가 더 가져가면 내 몫이 줄잖습니까. 당장 기업 구조조정해서 감원하고 그렇게 생긴 돈으로 주주환원하는 걸 좋게 볼 사람은 없을 걸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어디갔습니까?


근데 이 그림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주주가 계속 돈을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주가 불합리함을 깨닫고 돈을 끊어버리면 이 모든 그림이 붕괴합니다. 기업은 자본조달처 하나가 막히고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겠죠. 주주가 바보도 아니고 왜 손해만 보면서 돈을 계속 주식에 넣겠어요?


놀랍게도 이런 구조 하에서도 사람들은 주식을 삽니다. 그들에겐 꿈과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쁘게 말하면 꿈과 희망에 취해 기업과 국가에 돈을 상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꾸준히 존재한다면 이 그림은 계속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원래 꿈과 희망에 도전하는 진취적인 존재입니다. 수학적으로 기댓값이 1 이하인 복권도 불티나게 팔리고 구조적으로 도박장이 돈을 벌어가더라도 카지노는 호황입니다. 아무리 낮은 확률이라도 누군가는 로또 1등을 맞고 카지노에선 잭팟을 터트립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돈을 못번다는 뜻이 아니니까요. 잃는 게 나만 아니면 되잖아요? ["할 수 있다, 나라면!"]

조롱하는 거 아닙니다. 확률이 불리하더라도 도전할 수 있는 겁니다. 애초에 안전한 선택만 했다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중진국 함정을 못벗어났겠죠. 누군가는 도박을 해서 성공시켰기에 현재의 우리가 있는 겁니다.


문제가 있다면 점점 이 그림이 어그러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국장에서 희망보다 불합리에 초점을 맞출수록 자금 유입은 줄어듭니다.

요새 공모주 시장 예전같지가 않죠? 대규모 유증이나 분할상장에 대한 반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게 단순히 푸념이나 조롱에서 끝나면 괜찮은데 전체 그림이 어그러질 정도면 문제가 됩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보는 우리나라 자본주의 과거와 현재입니다. 제가 쓰고싶은 글의 1부이죠.

2부는 앞으로의 미래입니다. 제가 이 글에서 굉장히 국가주도 관치경제를 옹호했지만 딱히 이게 언제나 옳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이른바 "계획경제 희망편"입니다. 전반부의 희망편이 있으면 후반부의 절망편도 존재하는 법입니다. 소련, 공산주의는 결국 체제 모순으로 망했죠?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언제까지고 이런 체제를 가져갈 순 없어요. 부작용도 상당하거든요. 외국 자본 투자 위축, 자본시장의 높은 변동성, 무능한 세습 경영자, 기업이 돈을 깔고 앉아 돈이 돌지 않는 사회, 진취적인 투자 위축, 자본의 부동산 쏠림, 수요부진 과잉공급 등. 하나하나 정말 재밌는 주제 아닙니까?

저는 기본적으로 결국 시장원리에 맞게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게 딱히 성공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고 부작용, 거부감도 상당하겠지만요. 더 자세히 쓰면 글이 너무 길어지기에 이만 줄이겠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써보고싶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관점과 디테일에 대한 비판은 달게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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