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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없었던 일로 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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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에세이]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없었던 일로 해줄래?
-계엄을 둘러싼 마음


<1> 계엄이라뇨?

2024년 12월 3일 밤 11시. 해괴한 일이 발생했다. 독서를 하려고 방해금지모드 설정을 했던 폰을 켜보니, 난리가 났다. 부재중 전화가 몇 통 와 있고, 여러 카톡방의 붉은 숫자가 세 자리다. 무슨 일인고 했더니,

“계엄이다. 뉴스 봐라!”
“응? 그게 무슨 말이냐?”
“내 말이 그 말이다.”

놀랍게도 계엄은 사실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종북과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고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전국단위의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에 따라 계엄사령부가 설치됐고 계엄군이 동원됐다. 포고령에 따라 ①국회 및 정당의 정치활동 일체 금지 ②모든 언론과 출판의 자유 통제 ③전공의 및 의료인 불복종 시 처단 ④재판 절차나 영장 없는 일방적인 체포, 구금, 압수수색 등 전 국민의 정치적·사회적 기본권을 박탈하는 통제 조치가 이뤄질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이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처음 계엄 이야기를 듣고는 북한의 기습이나 김정은 사망 따위가 순간 떠올랐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국가적 위기 상황은 아니었고, 단지 윤석열 대통령의 주관적 비상사태였다.  


<2>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없었던 일로 해줄래?

계엄이 해괴하고 황당한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이를 필사적으로 저지해야 한다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있었다. 전시나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에는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국회에 통고해야 하여 의사를 물어야 한다.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도록 되어 있다. 윤석열 대통령 계엄의 문제는 이러한 법률을 무력화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다.

계엄 선포 직후 국회경비대가 국회의원의 입장을 막았고, 경찰들도 이에 가세한다. 뿐만 아니라 계엄군도 국회에 진입했다. 이러한 상황은 참담한 국가 폭력의 양상을 보이는 것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빛나게 했다. 계엄 소식을 들은 수많은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서 국회가 장악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은 것이다. 의원들은 담을 뛰어서 국회에 들어갔고, 신속하게 계엄 해제를 결의했다. 그러니까 계엄군의 작전 수행은 실패한 것이다.

이번 계엄군은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악의 평범성’의 군인이 아니었고, 주저하는 MZ 군인이었다. 작전 실패 후 돌아가는 계엄 군 중에는 시민들에게 사과를 하는 군인도 있었다. 그 군의 가족들은 절대 시민들을 살상해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고, 대한민국의 최정예 부대는 세상 무력했다. 그렇게 실패했고, 그래서 천만다행이었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선포된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결국 12월 4일 새벽 5시경에 해제되었다.

한국사에서 있었던 과거의 쿠데타 지도자는 이렇게 말했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이런 태도다.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없었던 일로 해줄래?’

나 원 참.


<3> 젊은 보수주의자

이번 계엄 사태는 학기 중에 진행되었기에 내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과 관련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내란의 책임을 물어서 탄핵 촛불집회가 열리기 시작했고, 우리 학생들도 상당수가 참석하여 주권자로서의 의사를 표현했다. 그러는 와중이었는데, 한 학생이 강의 후 찾아왔다. 보수정당 지지자였다.

여러 이야기를 나눴는데, 사실, 그 친구가 왜 보수정당을 지지하는지에 대한 사연을 주로 들었다. 나는 보수정당도 당연히 필요하고,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믿기에 학생의 주장에 그리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수강생의 사연을 요약하면 이렇다. ‘우리나라 보수정당의 역사관에는 일부 동의할 수 없는 지점이 나도 있다. 하지만 진보정당이 바라보는 세계에 대한 관점, 특히 젠더 문제에 대해서는 불편함이 크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금수저다.’

그 친구도 윤석열의 계엄 카드는 최악의 무리수였다고 판단했다. 더 골치 아픈 건, 그 덕분에 야당의 유력 주자가 대통령이 되기 쉬운 길을 열어줬다는 점이었다. 자신의 입장에서 그는 너무 리스크가 큰 인물이기에 빨리 조기 대선 준비를 보수 정당이 해주기를 바랐다. 오히려 침몰선이 명확해진 지금, 보수가 혁신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지금의 위기가 갈급함의 계기가 되기에 더 절절히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에는 여전히 보수의 가치를 지지하는 많은 국민들이 건재하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줬다.


<4>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됩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에 대한 책임을 물어 탄핵소추가 발의되었다. 그리고 12월 14일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어 대통령 업무가 정지됐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심판만이 남았다. 대학 수업은 잘 마무리가 되어 종강을 했고, 이제 2025년의 해가 밝았다. 그런데 이상한 여론조사가 나오고 있다.

리서치뷰에서 계엄 이후 12월 8일 했던 조사에서는 대통령 지지도가 14.8%였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난 오늘(1월 8일) 발표에는 36.9%가 나왔다. 세상에나. 보수의 가치를 지지하는 국민의 결집인가? 그런데 보수의 가치는 이런 게 아니지 않나?

대개의 경우 주말에는 부모님 가게 일을 거들러 간다. 이번 주도 갔었는데, 동네 단골이 오셨다. 어릴 적에 용돈도 종종 주시고, 나를 예뻐하시던 분이다. 지체 장애 특수학교에서 일하셨는데, 지금은 퇴직하고 손주를 봐주고 있다고 했다. 교회에서 가끔 봉사활동을 하러 갔었기에 나름이 추억도 있다.

얼마 전 시장에서 플래카드 하나를 봤는데, 깊이 동감했다고 했다. 하얀 바탕에 단 한 줄의 문장만 쓰여 있었다.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됩니다!”

윤석열의 계엄을 지지하는 건 아니지만, 오죽하면 그랬겠냐고 하셨고, 이번 일을 내란이라고 선동하는 민주당의 행태에 분노한다고 하셨다. 그 누구도 다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윤석열 대통령은 단지 민주당의 폭정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계엄이라는 불가피한 방법을 쓴 것이라고 주장했다. 젊은 사람들이 민주당의 공작에 휘둘려서 감옥에 가야하는 이재명을 대통령으로 만들 것을 심각하게 우려한다며 나에게도 학생들을 잘 선도하라고 하셨다. 나는 입장이 다르다고 말했는데, 엄마는 아저씨의 말에 동조하며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

손님은 왕이기도 하고, 또 정치적 견해 차이보다 소중한 게 단골과의 추억이기에 그저 하나의 질문만 덧붙였다.

어쨌거나 조기대선은 불가피한 것 같은데, 윤석열과 결별하고 어서 보수 쪽에서도 경쟁력 있는 후보군을 만들어 준비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대선에서 지더라도 힘 있는 견제 세력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요.

아저씨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면서, 절대 대선에서 져서는 안 되며, 최대한 끝까지 윤석열을 지키는 것이 보수가 살 길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강경한 단골의 말을 계속 듣고 있자니, 금수저 수강생이 생각났다. 어차피 나는 아저씨의 입장에 하나도 동의할 수가 없었기에, 사실 시큰둥했다. 오히려 아저씨가 대화해 봐야 하는 상대는 금수저 수강생이었다. 보수라도 이렇게 다른 것이다.


<5> 되어가는 민주주의

각자 생각은 다를 수 있고, 누구든 편향은 있을 수 있다. 나도 나의 편향을 부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적극적으로 내가 누구편인지를 확인하고 또 밝히며, 그 이유의 맥락을 설명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이번 윤석열의 계엄은 과거의 것과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합당한 심판을 받아야 하며, 어물쩍 넘길 수 없는 한국 민주주의의 사연이 있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볼 수 있듯이, 지금의 현장은 당대를 살아가는 우리만 보는 것이 아니다. 죽어간 아이들과 백골이 된 뼈와, 혼들이 함께 본다. 심지어 바람과 땅, 하늘과 눈(雪)도 지켜보고 있다. 죽었기에 녹을 수 없어서 시신의 얼굴에 소복이 쌓이던 그 눈들도.

2025년은 이제 시작했고, 민주주의는 항상 되어가는 중의 민주주의다. 나는 나의 몫을 감당하기 위해, 듣고, 말하고, 쓰고, 토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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