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러가 사랑한 수 e》 - 역사를 통해 수학 상수 e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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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엘리 마오
출판:경문사
발매:2020.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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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 코사인의 즐거움》을 쓴 엘리 마오가 쓴 또다른 책, 《오일러가 사랑한 수 e》(원제 e: The Story of a Number)입니다. 경문수학산책 16권이기도 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은 2005년에 나온 것으로, 절판된 《사인 코사인의 즐거움》과는 달리 이 책은 2020년에 다시 발간이 되어 현재까지도 판매되고 있습니다. 원서는 무려 1993년에 나왔기에, 아직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도 증명되지 않았다고 나옵니다.
2005년 발간된 《오일러가 사랑한 수 e》
책 제목에서 나오는 수 e는 자연로그의 밑 2.71828…으로, 원주율 π=3.14159…만큼 유명하지는 않으나 수학적 의의는 결코 그에 뒤처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π가 원이라는 고대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끈 도형에서 나온 것에 비해, e는 사람들을 수포자로 만드는 미적분학과 관련된 수이기 때문에 대중들에게 그만큼의 주목은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글쓴이도 머릿말에서 “π에 관한 책 중에서 베크만의 π의 역사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중략)… 내가 알기로는, 베크만의 책과 견줄 만한 e의 역사에 관한 책은 아직까지 출판되지 않았다.”라며 e의 역사를 조명한 책이 거의 없음을 피력했습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수 e의 역사를 다루는 책입니다.
e는 미적분학에서 중요한 수입니다. 그러나 e의 발견은 아이작 뉴턴과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가 미적분학의 기본정리를 찾아내기 한참 전의 사건으로 보이고, 그 시작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책의 전반부는 존 네이피어와 그가 발견한 네이피어 로그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원리합계, 반비례 그래프로도 유명한 쌍곡선 등 e와 관련이 있는 여러 가지 개념들을 소개하는데, 이는 그만큼 e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극한과 미적분학이 뉴턴과 라이프니츠라는 두 영웅이 오롯이 세운 업적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기여를 통해 발전해 왔다는 사실을 웅변합니다.
잭의 후반부에서는 레온하르트 오일러가 이 수에 e라는 기호를 붙여줘, 오롯이 e만의 역사를 다루게 됩니다. 오일러 이전은 e의 선사시대, 이후는 e의 역사시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가 밑인 자연로그, e의 거듭제곱인 지수함수라는 가장 기초적인 e의 응용부터 시작해, 어떤 변형에도 끄떡없는 신비로운 로그 소용돌이, 두 줄을 늘어뜨린 모양을 나타내는 현수선과 쌍곡 함수, 허수와 복소 지수함수 등 e가 들어가는 다양한 수학적 대상들을 소개합니다. 마지막으로는 e라는 수 자체를 조명해, 이 수가 어떤 종류의 수에 속하는지를 탐구합니다.
15장에 이르는 e의 역사 사이사이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지식들이 조금씩 들어 있습니다. 이 부분도 e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본문에서 얻은 지식을 조금 더 깊이 파고들거나 사소한 흥밋거리를 더한다고 생각하고 읽으면 좋겠습니다.
부록에서는 네이피어 로그의 초기 정의 등, 그냥 넘어가기엔 중요하지만 일일이 증명하기엔 책의 내용을 너무 부담스럽게 할 수 있는 부분들을 짚어줍니다.
원주율 π와는 달리 우리 주변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무리수인 e를 다루기 때문에, 어떻게 e에 다가가야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이 책은 역사적인, 간접적인 방식으로 e에 다가갑니다. 따라서 e 자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수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e를 알려주는 책으로 보입니다. 글쓴이는 머릿말에서 수학사를 내용의 중간에 끼워 넣어 수학을 신성한 것으로 여기고 거리감을 느끼는 사람들에게서 그런 거리감을 지워 주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책에서는 수학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넣어서, 수학을 연구하는 사람도 인간적이라는 느낌을 주고자 한다는 의도가 보입니다. 이는 《사인 코사인의 법칙》과도 비슷합니다.
e는 기하학적으로도 나타낼 수 있지만, 극한과 미적분학에서 나오는 수라는 점에서는 함수와 식을 다루는 대수학과 해석학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이를 설명할 때 수식보다는 말과 이야기로 설명하려는 편이라고 느꼈습니다. 글쓴이가 같은 《사인 코사인의 법칙》은 그림을 그려서 하는 기하학적 증명이 많다 보니 오히려 더 어렵게 느꼈습니다. e의 역사를 통해 e를 사람들이 발견한 경로를 알려주는 설명은 수식보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 책을 더 쉽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e에 있는 매력은 무엇일까요? 제가 고등학생 때 이 책을 처음 읽고는,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수학 상수들인 e, π, i, 1, 0을 하나로 이어주는 다음 식이 강렬하게 남았습니다.
e^(πi)+1=0그러나 지금은 같은 수식이라도, 다음과 같이 재배열하는 것이 더 좋아 보입니다.
e^(πi)=−1이 식은 양변을 제곱하면 실수 범위에서는 무한정 증가하는 것처럼 보이는 지수함수에 허수 주기인 2πi가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e, π, i, -1만으로 지수함수의 주기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수학적으로는 더 가치 있는 식이 아닐까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식은 허수의 허수 제곱도 가능하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는 “상상이 현실로”라는 14장의 의의기도 합니다.
i^i=e^(i ln i)=e^(i(πi/2 + 2nπi))=e^(−π/2−2nπ)
ln i = πi/2 + 2nπi인 이유는 e를 πi/2제곱하면 -1이 되는 것과 지수함수의 주기 2πi 때문입니다. 이를 적용한 결과, i의 i제곱은 한 가지의 값이 아닌 무한히 많은 실수가 되었습니다. 허수는 상상의 수라는 의미가 있으므로, “상상이 현실로” 된 것이지요.
π는 소수점 밑으로 무한히 많은 수가 아무 규칙도 없이 나타나는 무리수입니다. 그러나 이 소수점 밑의 숫자들을 최대한 많이 외우려는 사람들의 열정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글쓴이는 이를 광기라고 표현했지만, 이런 비이성적인 열광이 e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e에게는 안타까운 일일 것 같습니다. 사람이 어떤 대상에 느끼는 사랑과 열정에는 비합리성도 어느 정도 섞여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e에게는 더 어울릴지도 모릅니다. 숨어 있는 e를 드러내는 데에는, 직관보다는 숙고가 더 알맞으니까요.
변화율이 자기 자신과 같은 함수의 밑, 쌍곡선 함수의 면적을 나타내는 수,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수, 여러 가지 특징이 있는 e의 다양한 면모를 접할 수 있는 이 책을 통해 e의 매력을 조금 더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