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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무기력한 자의 회고와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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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일단 제 성향은 극도의 친노친문반명성향입니다.

그래서 이재명 XXX

전 민노당을 좋아했고, 지선이나 총선에서 가능하다면 표를 줬으며 이후에 정의당으로 넘어갔죠. 그러던 와중 안철수의 "새정치","혁신전대"라는 말에 정말 열이 받아서 새정련에 입당했습니다. 원래 김한길을 증오하기도 했지만요. (제가 민노당이나 정의당에 더 관심이 많고 지지를 보낸 이유도 김한길의 온갖 잡질때문이기도 했습니다.)

12~13년에는 피지알에 글을 올리며 어느정도 정치를 잊었지만(사실 그때 박근혜의 당선으로 인해 멘탈이 산산조각났었습니다) 2014년 김-안의 온갖 패악질에 넌덜머리가 났던 때(당시에 할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집안에 풍파가 이는 등 는 창고관리직을 전전하면서 정치를 잊어봤고, 15년에는 해외 롤을 보고 분석하며 정치에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국정농단 정국을 거쳐 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었을때 "이제 뭐 다시 롤보고....그러면 되겠네 뭐"

근데...제가 응원하던 CJ 엔투스가 날아가더라구요? 하하하..

뭐 코로나때는 이거 저거하면서 자가격리도 당해보고....하하하...

에..저는 이재명을 굉장히 혐오합니다. 17년 대선경선과정에서 벌어진 이재명의 "손가락혁명군"과 그들의 패악질에 질려버린 사람이거든요. 거기다 뭔 오렌지 색을...

거기다 성남시장 시절이나 경기도지사 시절 보여줬던 굉장히 과격하고 합의 따윈 개나줘버려라 하는 스탠스에서도 저는 정말 질렸습니다. 20대 때의 과격한 양비론이나 비회색지대론에 틀어박혀 살던 시기에서 30대 초반으로 들어오면서 저 양비론과 비회색지대론을 산산히 깨부숴버린 사건이 저에게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매우 중요한 것을 잃었기 때문에 이재명의 그런 행태를 매우 혐오합니다. 물론 오늘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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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12월 이후 전 다시 정치에 눈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화가 났기 때문입니다.

비명횡사 공천이다. 라고 말이 나오면서 이낙연을 비롯한 비명계들은 당을 탈당해 신당을 만들었습니다.

정말 화가 났습니다. 이재명이 아닌 비명계들에게요.

"공천에 불만이 있다면 경선을 요구하고, 그 경선에 당당히 승리해서 말해야지 고작 한다는게 탈당인건가? 정치인이 되어서 당에 남아 본인이 생각하는 불만을 제대로 말도 못하는 자들이 비명횡사 공천을 말하는게 타당한가?"

저는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을 뽑는 대선 투표를 모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투표 과정에서 모멸감에 몸서리친 대선이 두번 있는데 바로 이명박과 윤석열이 당선된 대선입니다.

이명박vs정동영의 선거가 질걸 알면서도 투표해야했던 선거였다면, 윤석열 vs 이재명은 둘 다 증오하는데 어쩔수 없이 이재명에게 표를 주어야 하는 나 자신에 대한 모멸감에 휩싸인 선거였습니다.

그리고 그날 전 투표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 샤워기를 틀고 펑펑 울었습니다. 차라리 포기할걸. 거기에서 투표하지 말걸. 이렇게 모멸감에 미쳐 문을 잠궈두고 우는 것밖에 못할거면서 투표는 왜 했냐며. 선택지가 없던 나에게 결국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사람 중 한명에게 내 표를 줬다는 모멸감은, 눈물 콧물과 토사물까지 나오고 탈진한 뒤에도 저를 감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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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분과 잠깐 대화를 나눌때 윤을 두고 대화를 나누다가 이런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전 이거보다 더 못할거라 예상했어요."

그게 12월 1일 오전 11시 24분 이었습니다. 그리고 12월 3일. 제 생각보다 더 심각한 일이 터졌습니다.

저는 광주사람입니다. 몇번 말한적 있지만 5.18의 거의 한 가운데인 전남대 정문이 제가 뛰어다니며 놀던 곳입니다. 1980년대 그곳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누가 살았는지도 가끔씩 꿈에 나옵니다. 그리고 거나하게 취하신 어르신들이 그때 당시의 상황과 본인들이 느낀 공포를 지겹도록 들으며 살았고, 어떤 시점까지도 매해 4월부터 터져나가는 최루탄을 맡으며 건물 틈에 낀 최루탄 가루가 조금 부는 바람에 퍼지며 다시 또 눈물 콧물 짜며, 빈틈없이 비가 내려 잔존 최루탄이 씻겨 내려가는 것에 기뻐했죠.

최근 저는 5.18 당시 그때 동네에 사셨던 분들의 감정을 비슷하게 느낀것 같습니다. 처음엔 의문, 다음은 공포, 마지막엔 분노.

냉담자가 된 지금이지만, 저는 기도를 올리는 것 밖에 할 수 없네요.

"신이시여. 위기에 빠진 제 조국과 제 조국의 민주주의를 지켜주소서. 오늘의 민주주의를 위해 피흘린 분들의 피가 증발하지 않게 해주소서. 제 조국과 조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자들을 징벌하고 처단할 기회를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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