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국과수도 모르겠다는데... 설마 대법원까지 보내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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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들어가면서
https://pgr21.com/freedom/98983
제가 변호인이었던 1심 사건에 관한 글입니다.
굳이 이전 글까지 눌러보실 생각이 없으실 분들을 위해, 혹은 제 이전 글을 읽으셨더라도 다시 읽으실 생각까지는 없으시거나, 잊으셨던 분들을 위해 말씀드려보자면... 한겨울, 군부대 앞 도로에서 음주도 아니고, 과속도 아니고, 그 외 기타 다른 모든 교통법규를 준수하신 상태에서 운전하였던 분에게 교통사고가 나서 피해자를 다치게 했던 사건입니다. 원래대로라면 보험 가입자였으니 재판까지 올 일이 없었던 분이셨는데.... 하필이면 피해자에게 [중상해]라는 결과가 발생했던 탓에 재판까지 이르렀던 사건이었습니다. 1심에서는 국과수의 보고서 결론에 따라 제 의뢰인에게 무죄 판결이 났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했었습니다. 그 때 제가 넋두리 삼아서 올렸던 글이 위의 이전 글입니다. 대체 국과수마저도 [그 교통사고]가 제 의뢰인의 잘못 때문이라고 단정하지 못하는데도... 왜 굳이 항소를 하였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이야기를 하는 글이었습니다.
#1. 항소이유서
그런데 제 이전 글에 댓글을 달아주셨던 분들께서 하셨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피해자를 생각해서라도 검사가 항소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씀이셨지요. 저 역시 이전 글을 쓸 때엔 검사가 "항소했다"는 것만 알았을 뿐, 구체적인 항소이유서까지 읽어본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항소이유서에 뭔가 영양가 있는 항소이유가 있기를 바란다는 취지로 글을 썼었습니다. 저야 돈을 버는 일이니 좋은 일이겠지만, 의뢰인 입장에서는 변호사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자칫 교도소에 갈 수 있다는 불안감을 계속 안고 생활하여야 한다는 부담감이 얼마나 클지.... 이걸 생각해보면 검사의 항소가 무지성 항소가 아니길 바란 것이었습니다.
검사의 항소이유서는 첨부한 그림파일대로 입니다.
항소이유서를 읽어보니... 한 편으로는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동시에... 굳이 이렇게 하면서까지 한 사람의 인생을 조져야겠다는 악의에 충만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과수에서 [이거 피고인 잘못이라고 단정하긴 어렵겠는데?] 하는 감정결과를 내놓았고, 그로 인하여 1심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는데... 검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소를 한 것이었습니다. 좋습니다. 피해자를 생각해서라도 검사가 항소하는 것이 당연할 수는 있겠지요. 그런데, 그 사건에서의 항소이유서가 저 그림파일입니다. 국과수 감정결과에 관하여 그 어떤 비판도 없고, 구체적인 반박도 없습니다.
그저, 제 의뢰인이 [즉시]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으니 처벌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항소이유서입니다.
읽어보았을 때... 정말 속으로는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 들끓었었고... 결국 시원하게 한 번 쏘아내게 되더군요.
#2. 무지성한 항소
피고인 입장에서 무지성한 항소를 하는 것은 - 적어도 변호사 입장에서 보았을 때엔 - 굉장히 흔한 일입니다. 항소심에서 형량이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좋은 것이고,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치소에서 복역기간 일부를 채우는 것이 유리하다는 인식이 있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저도 그렇게 돈을 벌었던 사건이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러한 무지성한 항소는 [국가권력]이라는 대항할 수 없는 힘에 대한 얍삽이 정도로 보아야 할 일 아닌가 합니다. 하기에 역으로, [국가권력 그 자체]인 검찰권력은 일개 개개인들마냥 무지성하게 항소권을 사용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정말 집어 처 넣어야 마땅한 범죄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망을 빠져나간 이들에 대한 무죄 판결에 관해서는 항소하여야 마땅하겠지요.
그런데 그렇다면... 항소이유서에서 그 1심판결에서 무죄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던 증거에 관하여... 누가 보더라도 "항소할 만 했다"의 외관을 갖추려는 시늉 정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제한속도가 50km/h였는데 47km/h의 속도로 운전하였고, 변호사도 없이 혼자 교통사고 조사를 받았던 제 의뢰인의 발언 하나를 편의적으로 따 내가서 [그래도 어쨌든 과실이 있었다]는 취지로 항소를 하는 게... 대체 누굴 위한 겁니까. 국과수 보고서는 무슨 빙다리 핫바지라도 된다는 것인가요? 1심이 국과수 보고서에 따라 판결하였다면, 왜 국과수 보고서가 잘못되었고 어떠한 오류가 있는지, 혹은 있어보이는 지를 이야기해야 할 것 아닙니까.
#3. 대법원 상고
오늘,. 항소심에서 제 의뢰인에게는 다시 무죄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쓰고 나서 읽다보니 정작 이 이야기가 빠졌더군요..;;; 수정 추가합니다.)
또 모르지요. 검찰은 그래도 대법원 상고까지 해 가면서... 또 제 의뢰인을 괴롭힐 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 또 그렇게 된다면 다시금.. 저야 돈은 벌겠습니다만... 제 의뢰인께서는 [그래도 혹시 몰라]하는 불안감 속에서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숨을 졸이시겠지요.
그런데 대체 이게....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피해자를 위해서라면 영양가 있는 항소이유를 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검찰은 국과수 보고서의 흠결을 지적하기는 커녕, [아무튼 그래도 잘못한 거잖아]식의 항소이유를 냈지요. 진지하게, 애시당초 항소를 하지 말든가... 항소할 것이었다면 국과수 보고서의 허점을 지적하면서 새로운 영상감정을 신청했어야 마땅한 것 아니었나 합니다. 그런데 그런 기재는 없었습니다.
가급적이면... 검찰이 대법원 상고까지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만에 하나 상고를 하더라도... 저 따위 항소이유서 같은 이유를 들면서 상고하지는 않길 바랍니다.
정말 저 따위 항소이유서를 복붙하여 상고할 것 같으면....
대체 무엇을 위한 상고인지를... 저는 진지하게 검찰에 묻게 될 것이고...
과연 대한민국 검찰이 대한민국 공공의 이익을 위한 기관인지,
아니면 승진과 진급에 목마른 그저그런 공무원 집단에 불과한 것인지...
진지하게 그 존재의의를 다시금 생각해 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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