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위선자란 사실에서 시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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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한 이타주의자」의 저자인 윌리엄 맥어스킬은 공리주의 철학자들의 모임에서 있었던 일을 소개합니다. 모임에서 학자들은 공리주의를 최우선 원칙으로 여기는 이라면 자신의 소비를 한계까지 낮추고 타인의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기부해야하지 않는가란 주제로 갑론을박을 벌입니다. 이를 강하게 옹호하는 철학자에게 반대자는 이렇게 조롱합니다.
"그렇다면 당장 당신의 책상 위 노트북부터 팔아치우고 기부해야하지 않소?"
그 말에 학자는 이리 답변합니다.
"당신의 말이 맞소. 이 노트북은 내가 위선자란 증거요. 적어도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소"
적자생존은 가장 윤리적인 인간에게 최우선적인 생존과 번식의 기회를 허용한 것이 아닌지라 호모 사피엔스인 우리에게 윤리는 존재의 작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당위와 존재의 싸움에서 당위는 자주 존재에게 자리를 양보합니다. 젊은 시절 위풍당당하게 정의를 외치던 젊은이가 늙으막에 추해지는 건 양보하지 말아야 할 위치까지 양보해서일 수 있습니다.
데일 카네기의 놀라운 통찰처럼 모든 사람은, 심지어 아주 잔혹한 범죄자조차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합니다. 우리는 윤리 원칙을 스스로 지키지 못할 때 스스로의 원칙을 고수하기 보다 원칙을 슬그러미 뒤로 물리고 정의로운 나를 유지하길 원합니다. 내가 나쁘다는 사실보단 그 원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이 더 받아들이기 편합니다.
화재가 났을 때 강아지와 아기 중 강아지를 구하겠다는 이들을 이해합니다. 저는 저의 부상을 무릅쓰고 아이를 구하지는 않겠습니다. 제 자산의 대다수인 현금을 화재로 잃을 위험이 있을 때 타인의 아이를 먼저 구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를 정당화할 수 없지만 그렇습니다. 저는 위선자고 충분히 도덕적인 인간이 아니니까요. 누군가에겐 자신의 부상만큼, 자신의 전 자산만틈 자신의 강아지를 잃은 것이 고통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을 이해합니다.
또한 이해합니다. 강아지나 현금은 자신이 믿는 종교의 상징물이 될 수도 있고, 오랬동안 아껴온 명품 가방이나 시계일 수 있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잃었을 때의 고통을 평가절하하여 이해 못할 행동이라 손가락질 하긴 어렵습니다. 또한 이해합니다. 누군가는 자신이 내는 세금을 어떤 소아암 환자의 생명보다 아깝게 여길 수도 있다는 것을. 공리주의에 대한 중요한 반론 중 하나는 쾌락의 절대적인 크기가 큰 공리괴물(utility monster)의 존재이니까요.
저는 이것을 이해하지만 동시에 윤리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어떤 식으로 가능할지, 그것이 정당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다수인 사회가 아닌 곳보다 더 나은 곳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단지 저는 제가, 우리가 기대만큼 도덕적인 존재가 아니고 그저 위선자일 뿐이라는 걸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당장 당신의 책상 위 노트북부터 팔아치우고 기부해야하지 않소?"
그 말에 학자는 이리 답변합니다.
"당신의 말이 맞소. 이 노트북은 내가 위선자란 증거요. 적어도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소"
적자생존은 가장 윤리적인 인간에게 최우선적인 생존과 번식의 기회를 허용한 것이 아닌지라 호모 사피엔스인 우리에게 윤리는 존재의 작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당위와 존재의 싸움에서 당위는 자주 존재에게 자리를 양보합니다. 젊은 시절 위풍당당하게 정의를 외치던 젊은이가 늙으막에 추해지는 건 양보하지 말아야 할 위치까지 양보해서일 수 있습니다.
데일 카네기의 놀라운 통찰처럼 모든 사람은, 심지어 아주 잔혹한 범죄자조차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합니다. 우리는 윤리 원칙을 스스로 지키지 못할 때 스스로의 원칙을 고수하기 보다 원칙을 슬그러미 뒤로 물리고 정의로운 나를 유지하길 원합니다. 내가 나쁘다는 사실보단 그 원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이 더 받아들이기 편합니다.
화재가 났을 때 강아지와 아기 중 강아지를 구하겠다는 이들을 이해합니다. 저는 저의 부상을 무릅쓰고 아이를 구하지는 않겠습니다. 제 자산의 대다수인 현금을 화재로 잃을 위험이 있을 때 타인의 아이를 먼저 구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를 정당화할 수 없지만 그렇습니다. 저는 위선자고 충분히 도덕적인 인간이 아니니까요. 누군가에겐 자신의 부상만큼, 자신의 전 자산만틈 자신의 강아지를 잃은 것이 고통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을 이해합니다.
또한 이해합니다. 강아지나 현금은 자신이 믿는 종교의 상징물이 될 수도 있고, 오랬동안 아껴온 명품 가방이나 시계일 수 있습니다. 그들이 그것을 잃었을 때의 고통을 평가절하하여 이해 못할 행동이라 손가락질 하긴 어렵습니다. 또한 이해합니다. 누군가는 자신이 내는 세금을 어떤 소아암 환자의 생명보다 아깝게 여길 수도 있다는 것을. 공리주의에 대한 중요한 반론 중 하나는 쾌락의 절대적인 크기가 큰 공리괴물(utility monster)의 존재이니까요.
저는 이것을 이해하지만 동시에 윤리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어떤 식으로 가능할지, 그것이 정당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다수인 사회가 아닌 곳보다 더 나은 곳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단지 저는 제가, 우리가 기대만큼 도덕적인 존재가 아니고 그저 위선자일 뿐이라는 걸 이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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