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역대급 처세술의 달인
한국사 역대급 처세술의 달인
하륜
정몽주 보다 열살이 어리고
정도전 보다도 다섯살이 어리며
신진사대부로서 정도전, 정몽주와 함께 그들의 스승인 이색에게 사사했다.
하륜은 고려말 최고의 권력을 지닌 권문세족이었던 이인임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는데
이인임의 동생인 이인미의 딸과 결혼한 사이
이렇게 능력과 배경이 합쳐져 승승장구 했어야 할 인생이지만,
세상 일이라는게 쉽지 않은 법
공민왕을 모시던 때에는 신돈의 미움을 사서 파직되었었고
이후 이인임 세력이 몰락함과 동시에,
최영의 요동정벌을 반대하다 추방되기도 했었으며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한 뒤에는 신진사대부의 온건개혁파로 몰려 추방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특히 당시 권력의 중심에 있던 정도전은 하륜을 "술수나 일삼는 자."라고 평하며 싫어했다고 함
하륜은 평소 민제와 친분이 있었는데,
이 어은 민제가 훗날 이방원의 장인이자 스승이 되는 인물
하륜은 민제를 통해 이성계의 5남 이방원과 친분을 쌓게 되었다.
이방원을 견제하던 정도전은 하륜이 이방원에게 붙자, 이를 심히 염려하여 하륜을 충청도로 내려보내려 했으나,
하륜은 이방원에게 "다른 계책은 없으며, 마땅히 선수를 쳐서 이 무리를 없애는 것 뿐입니다." 라고 진언했다.
또한 당시 지안산군사로 부임해있던 이숙번을 천거했으며,
이는 사병제도가 혁파 되려했던 당시에 왕자의 난을 성공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왕자의 난 이후 정종이 즉위했을 때
하륜은 정사공신 1등으로 진산군에 봉해졌고,
마침내 태종 이방원이 즉위하자 좌명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태종 이방원은 하륜을 특별히 아끼고 신뢰했으며,
하륜이 말실수를 하고, 벼슬을 파는 등 비리를 저질렀음에도 죄를 묻지 않았으며
훗날 하륜이 죽었을 때에 몹시 슬퍼하며 3일간 조회를 하지 않고, 7일간 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함.
하륜은 영의정에 네번이나 역임하게 되며 여러 정책을 펼치는데,
그 정책을 펼침에 있어 주위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빠르게 진행하였다고 한다.
일처리 방식에 빡친 친구 민제가 "저러다 정도전 꼴나지."라며 걱정했을 정도
하지만 민씨 집안은 태종에게 멸문지화를 당하고,
하륜은 70세까지 천수를 누리게 됨
제물을 탐하는 등 탐욕이 있었다고 하나,
죽기 전까지 왕의 후계자인 세자와 얽히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