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지구를 지배하게 된 이야기
# 현생인류 이전의 엑소더스
지난 시간에는 세련된 아슐리안 돌도끼를 활용하던 호모속이 북위 50도 선 아래의 유라시아 전역으로 뻗어나간 이야기를 다루었다. 최초의 모험가이자 최초의 유라시아인이었던 그들은 야생마의 혀와 뇌를 파먹으며 북경원인과 자바원인이 되었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자그마한 섬에서 체구가 겨우 1m로 줄어들기도 했다. 그러나 번영하던 호모속의 유라시아 생태영역은 약 110만년 전에 완전히 끝장났다. 북대서양이 차가워졌고, 식물자원은 바싹 말라 죽어버렸다.
110만년 전부터 시작된 20만년간의 위기는 호모 에렉투스의 숫자를 겨우 일천 개체 남짓으로 줄였다. 이때의 호모 에렉투스는 분명 지구 상에서 가장 멸종할 확률이 높은 종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강력한 진화적 압력에 짓눌린 이들은 친척들과 교배하여 위기를 돌파했다. 이 가혹한 심판의 과정은 무려 12만년에 달했고, 호모속 유전적 다양성 3분의 2가 사라졌다.
하지만 이 시기동안, 극단적인 구조조정을 거쳐 간신히 살아남은 아프리카 종 공장에서 벌어진 일련의 혁신은 뇌의 용량을 폭발적으로 증량시켰을 것이다. 지역에 따라 병목의 정도는 달랐겠지만, 우리가 인간성의 시초라고 믿는 특성들은 거저 주어진 게 아니었다.
아마 인류는 이때쯤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한 불을 나름대로 활용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불을 옮기고 유지하는 역할은 신성시됐고, 모닥불에 둘러앉은 우리의 80만년 전 조상들은 어쩌면 이때부터 원시적 영성(靈性)을 기르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 종이 가진 종교적 심성의 기원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들, 더 영리한 홍적세 중기의 호모속 종들에게는 발굴 지역에 따라 하이델베르크인, 로디지아인, 호모 안테세소르 등등 여러 이름들이 붙곤한다. 70만년 전, 그들 중 일부는 네안데르소바인이 되어 아프리카를 벗어나기 시작하며, 유럽 쪽으로 갈라져나간 분파의 후손이 네안데르탈인, 그리고 동쪽으로 갈라져나간 그들의 형제격 호미닌들이 바로 데니소바인이었다.
# 호모 사피엔스의 시대
다시 수십만년이 흘러 약 20~30만년 전, 아프리카 동부의 종 공장에서는 새로운 호모속이 등장했다. 그들은 가냘픈 골격을 지녔으며, 네안데르탈인에 비해 머리가 훨씬 동그랬고, 안와상융기가 적었다. 치아와 턱은 축소되어 있었고, 이마를 기준으로 얼굴의 돌출이 적은 모양새였다. 무턱인 네안데르탈인과 달리 턱뼈가 발달해있기도 했다.
이들은 호모 사피엔스였다. 우리와 같은 종이 바로 이때 출현한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 종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진화를 거듭하여 여러가지 새로운 유전적 특성들을 장착했다.
바다유목민 바자우족
바자우족은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을 잠수할 수 있으며, 잠수를 더 용이하게 하기 위해 유년기에 고막을 터뜨리기도 한다. 다른 현생인류 집단에 비해 훨씬(50%이상) 큰 그들의 비장은 더 많은 혈액을 저장해 잠수 시에 활용한다.
이들 중 일부는 비장의 크기가 커져 매우 깊은 물 속에서 오랜 시간 숨을 참거나,
고도가 높고 산소농도가 낮은 산악지형을 버텨냈으며,
열대의 전염병에 면역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이러한 특성들은 갖추지 못했던 이들은 "해부학적 현생인류(AMH)"라는 다소 생소한 표현으로도 불린다.
현생인류면 현생인류지 왜 "해부학적" 현생인류로 부를까? 그것은 이들에게 오늘날 우리가 인간적이라고 여기는 특성들, 즉 "인간성"이 대폭 결여돼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분명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었지만,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들은 머리뼈에서 살을 발라내 윤을 내는 등, 네안데르탈인처럼 종교적 심성을 여실히 드러내보였지만 조잡한 석기기술을 활용했으며, 여러모로 문화적 심성이 결여돼있는 잔혹한 야만인들에 가까웠다.
오늘날의 정신의학적 기준으로는 아마 구성원의 대부분이 간헐적 폭발장애 진단을 받았겠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네안데르탈인들에 비하면 더 사회적이고 평화로운 호미닌들이었을 것이다.
날카로운 석기 찌르개를 활용하고 석기에 자루를 붙이기 시작한 이 무시무시한 초기 호모 사피엔스 집단이 아프리카를 최초로 떠난 시점은 무려 27만년 전이 최초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21만년 전의 어떤 호모 사피엔스 집단은 오늘날의 그리스 일대에, 11만년 전의 어떤 집단은 아라비아 반도 일대에, 그리고 8만년 전의 집단은 중국까지 도달했다는 증거가 발굴되었다.
이러한 분산은 아직 발굴되지 않았을 뿐, 매우 수차례 반복되었을 것이다. 즉, 아프리카 엑소더스는 속편이 여러개 있었다.
# 하플로그룹 CT 대이주의 시대
우리가 아프리카 대탈출이라 부를만한 진정한 엑소더스는 대략 7만년 전부터 있었던 몇 차례에 걸친 해안 분산이었다. 동부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이 이주의 행렬은 아시아의 해안가를 따라 이전의 이주에 비하면 놀랄만한 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첫 이주는 중동을 거쳐 (이 과정에서 네안데르탈인과의 혼혈이 발생했다) 해안선을 따라 쭉 동쪽으로 이어졌고, 인도아대륙과 동남아시아의 순대대륙붕을 정복한 뒤, 마침내 4만 5천년 전, 사훌 대륙에 도착했다.
오히려 아프리카의 바로 북쪽에있는 유럽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은 이보다 약간 늦은 기원전 4만년 쯤이었다. 어쩌면 그곳에 먼저 터를 잡고 살고있던 토착 네안데르탈인들의 저항이 적잖은 걸림돌이었을 수도 있다.
## 남부 분산
아라비아 반도에서 페르시아와 인도를 거쳐 동남아와 오세아니아로 퍼져나간 초창기의 인류 이주를 남부 해안 대분산(Southern Dispersal)이라 이른다. 이들은 지나는 곳마다 거대한 어패류의 고분군을 쌓아두거나, 흑요석이나 석영 등으로 만든 날카로운 석기의 흔적을 남겼다.
처음 홍해를 건넌 이들은 천 명을 넘지 않았을 것이며, 어쩌면 겨우 백수십명, 그러니까 하나의 단일한 무리였을 수도 있다. 이 때의 홍해는 오늘날보다 훨씬 좁아 간단한 뗏목으로도 건너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무리는 해안가를 따라 서서히 거대해지며 조수간만의 차를 활용해 갯벌의 먹거리들을 그러모았다.
빙하기의 절정기에 많은 물이 얼음에 갇혀있었기 때문에 해수면은 크게 낮았다. 영국과 유럽, 그리고 한반도와 일본이 붙어있었다. 동남아에는 순다(Sunda)라고 부르는 큰 대륙이 있었고,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 태즈메니아도 하나로 이어진 사훌(Sahul) 대륙이 있었다.
이 두개의 대륙 사이에 있는 바다는 수심이 얕은 맹그로브 습지가 있었고, 섬들이 많이 있었다. 순다까지 걸어온 인류는 물고기와 조개를 잡아먹으며 뗏목을 만들어냈고, 그걸 타고 수십 키로 미터의 연안을 가로질러, 섬들을 하나씩 건너기 시작했다.
약 5만 5,000년 전, 일군의 어부들이 술라웨시에 도착했고, 이후 1만년 안에 마침내 사훌 대륙과 뉴기니에까지 도착했다. 이들이 바로 오늘날 호주 원주민들의 먼 조상, 애보리진(Aborigine)이다.
애보리진이 사훌에 들어오자마자 극적인 변화가 벌어졌다. 이후 수천 년만에 대형동물 24종 중에서 1종을 제외한 모두가 멸종했다. 이들의 동굴 속 암각화에는 2미터가 넘는 캥거루처럼 생긴 거대 유대목 동물이 새겨져있으나, 이들도 모두 멸종했다.
## 신대륙으로
해안가를 따라 동남아와 호주로 간 이들도 있었지만, 내륙 지역으로 파고든 자들 또한 있었다. 4만 5,000년 전, 이들은 중앙아시아의 대초원에 진출했고, 이윽고 시베리아에까지 가닿았다. 그들은 털매머드와 털코뿔소를 학살하며 냉혹한 추위에 적응했을 것이다.
대형동물들은 식량뿐 아니라 따뜻한 의복, 사냥 도구나 주거지를 위해 필요한 원자재 또한 제공했다. 상아와 가죽이 그것이다. 이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가장 추운 곳에서도 서로 협력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고, 마침내 베링 해협의 육교를 건너갈 수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렇게, 남극을 제외한 지구 전역을 석권했다.
# 인류는 어떻게 지구를 정복했나
다른 영장류, 그리고 호미닌 사회와 마찬가지로 호모 사피엔스 집단에도 유력한 소수의 지도자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주의 시대를 거치며 호모 사피엔스 지도자들은 여러 갈래로 분화했다. 폭력에만 의존하던 기존의 지도자들 대신, 부드러운 카리스마나 영적 권위, 혹은 지적 능력에 의존하는 특별한 유형의 지도자들이 이들을 서서히 압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환각작용을 하는 식물의 종류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든가, 혹은 현대정신의학적 기준에 따른다면 조현병 치료를 받았을 수도 있는 이 샤먼들은 음악과 무용을 활용해 산 자와 죽은 자들을 서로 이었다. 그들은 동물의 모습을 빌려 그들의 특성또한 빌렸으며, 동물 모습을 했던 무리의 조상과 접촉할 수 있었다.
그들은 죽은 자들을 통해 산 자들의 나라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되기 한참 이전부터 서서히 권력의 세습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전문적인 지적 교육을 받은 특권 엘리트계층은 하늘의 점점이 수놓인 별들의 규칙, 그리고 절대적 시간의 단위를 이해할 수 있었고, 압도적인 권위를 행사할 수 있게되었다.
그렇게 미친 자들의 미친 역사가 시작되었다. 다른 호미닌들과 달리 어째서 호모 사피엔스만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지구 전역을 뒤덮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그 원인은 분명 "미친 짓"에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말 그대로 산을 넘고 물을 건넜다. 이전의 호미닌들이라면, 그런 모험을 굳이 감수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 이전의 다른 어떤 호미닌도 광활히 펼쳐져있는 대양에 의도적으로 몸을 맡기는 미친 짓을 하진 않았다. 그러나 어떤 호모 사피엔스 무리는 광기를 키워 그들의 창조신이 짜디짠 바다 속에서 왔다고 믿었다. 협만과 유입구는 거대한 뱀상어가 꼬리지느러미를 휩쓸어 생겨났다고 믿었다. 저들의 부족은 바다 속에서 뭍 위로 올라왔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부족의 용감한 자들은 상어가 우글거리는 바다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뒤, 그곳에 몸을 맡겼다.
인류는 그렇게 아프리카 너머 신대륙 끄트머리에까지, 태평양 가장자리의 자그마한 섬들 구석구석에까지 진출해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빙하의 시대는 저물고 있었다. 약 2만년 전부터 태양이 따뜻하게 지구를 내리쬐기 시작했고, 번성하는 식물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길이 각광받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호모 사피엔스 사이에서 농경문화가 싹을 틔우기 시작한 것이다.
(계속)
지난 시간에는 세련된 아슐리안 돌도끼를 활용하던 호모속이 북위 50도 선 아래의 유라시아 전역으로 뻗어나간 이야기를 다루었다. 최초의 모험가이자 최초의 유라시아인이었던 그들은 야생마의 혀와 뇌를 파먹으며 북경원인과 자바원인이 되었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자그마한 섬에서 체구가 겨우 1m로 줄어들기도 했다. 그러나 번영하던 호모속의 유라시아 생태영역은 약 110만년 전에 완전히 끝장났다. 북대서양이 차가워졌고, 식물자원은 바싹 말라 죽어버렸다.
110만년 전부터 시작된 20만년간의 위기는 호모 에렉투스의 숫자를 겨우 일천 개체 남짓으로 줄였다. 이때의 호모 에렉투스는 분명 지구 상에서 가장 멸종할 확률이 높은 종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강력한 진화적 압력에 짓눌린 이들은 친척들과 교배하여 위기를 돌파했다. 이 가혹한 심판의 과정은 무려 12만년에 달했고, 호모속 유전적 다양성 3분의 2가 사라졌다.
하지만 이 시기동안, 극단적인 구조조정을 거쳐 간신히 살아남은 아프리카 종 공장에서 벌어진 일련의 혁신은 뇌의 용량을 폭발적으로 증량시켰을 것이다. 지역에 따라 병목의 정도는 달랐겠지만, 우리가 인간성의 시초라고 믿는 특성들은 거저 주어진 게 아니었다.
아마 인류는 이때쯤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한 불을 나름대로 활용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불을 옮기고 유지하는 역할은 신성시됐고, 모닥불에 둘러앉은 우리의 80만년 전 조상들은 어쩌면 이때부터 원시적 영성(靈性)을 기르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 종이 가진 종교적 심성의 기원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들, 더 영리한 홍적세 중기의 호모속 종들에게는 발굴 지역에 따라 하이델베르크인, 로디지아인, 호모 안테세소르 등등 여러 이름들이 붙곤한다. 70만년 전, 그들 중 일부는 네안데르소바인이 되어 아프리카를 벗어나기 시작하며, 유럽 쪽으로 갈라져나간 분파의 후손이 네안데르탈인, 그리고 동쪽으로 갈라져나간 그들의 형제격 호미닌들이 바로 데니소바인이었다.
# 호모 사피엔스의 시대
다시 수십만년이 흘러 약 20~30만년 전, 아프리카 동부의 종 공장에서는 새로운 호모속이 등장했다. 그들은 가냘픈 골격을 지녔으며, 네안데르탈인에 비해 머리가 훨씬 동그랬고, 안와상융기가 적었다. 치아와 턱은 축소되어 있었고, 이마를 기준으로 얼굴의 돌출이 적은 모양새였다. 무턱인 네안데르탈인과 달리 턱뼈가 발달해있기도 했다.
이들은 호모 사피엔스였다. 우리와 같은 종이 바로 이때 출현한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 종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진화를 거듭하여 여러가지 새로운 유전적 특성들을 장착했다.
바다유목민 바자우족
바자우족은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을 잠수할 수 있으며, 잠수를 더 용이하게 하기 위해 유년기에 고막을 터뜨리기도 한다. 다른 현생인류 집단에 비해 훨씬(50%이상) 큰 그들의 비장은 더 많은 혈액을 저장해 잠수 시에 활용한다.
이들 중 일부는 비장의 크기가 커져 매우 깊은 물 속에서 오랜 시간 숨을 참거나,
고도가 높고 산소농도가 낮은 산악지형을 버텨냈으며,
열대의 전염병에 면역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이러한 특성들은 갖추지 못했던 이들은 "해부학적 현생인류(AMH)"라는 다소 생소한 표현으로도 불린다.
현생인류면 현생인류지 왜 "해부학적" 현생인류로 부를까? 그것은 이들에게 오늘날 우리가 인간적이라고 여기는 특성들, 즉 "인간성"이 대폭 결여돼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분명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었지만, "사람"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들은 머리뼈에서 살을 발라내 윤을 내는 등, 네안데르탈인처럼 종교적 심성을 여실히 드러내보였지만 조잡한 석기기술을 활용했으며, 여러모로 문화적 심성이 결여돼있는 잔혹한 야만인들에 가까웠다.
오늘날의 정신의학적 기준으로는 아마 구성원의 대부분이 간헐적 폭발장애 진단을 받았겠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네안데르탈인들에 비하면 더 사회적이고 평화로운 호미닌들이었을 것이다.
날카로운 석기 찌르개를 활용하고 석기에 자루를 붙이기 시작한 이 무시무시한 초기 호모 사피엔스 집단이 아프리카를 최초로 떠난 시점은 무려 27만년 전이 최초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21만년 전의 어떤 호모 사피엔스 집단은 오늘날의 그리스 일대에, 11만년 전의 어떤 집단은 아라비아 반도 일대에, 그리고 8만년 전의 집단은 중국까지 도달했다는 증거가 발굴되었다.
이러한 분산은 아직 발굴되지 않았을 뿐, 매우 수차례 반복되었을 것이다. 즉, 아프리카 엑소더스는 속편이 여러개 있었다.
# 하플로그룹 CT 대이주의 시대
우리가 아프리카 대탈출이라 부를만한 진정한 엑소더스는 대략 7만년 전부터 있었던 몇 차례에 걸친 해안 분산이었다. 동부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이 이주의 행렬은 아시아의 해안가를 따라 이전의 이주에 비하면 놀랄만한 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첫 이주는 중동을 거쳐 (이 과정에서 네안데르탈인과의 혼혈이 발생했다) 해안선을 따라 쭉 동쪽으로 이어졌고, 인도아대륙과 동남아시아의 순대대륙붕을 정복한 뒤, 마침내 4만 5천년 전, 사훌 대륙에 도착했다.
오히려 아프리카의 바로 북쪽에있는 유럽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은 이보다 약간 늦은 기원전 4만년 쯤이었다. 어쩌면 그곳에 먼저 터를 잡고 살고있던 토착 네안데르탈인들의 저항이 적잖은 걸림돌이었을 수도 있다.
## 남부 분산
아라비아 반도에서 페르시아와 인도를 거쳐 동남아와 오세아니아로 퍼져나간 초창기의 인류 이주를 남부 해안 대분산(Southern Dispersal)이라 이른다. 이들은 지나는 곳마다 거대한 어패류의 고분군을 쌓아두거나, 흑요석이나 석영 등으로 만든 날카로운 석기의 흔적을 남겼다.
처음 홍해를 건넌 이들은 천 명을 넘지 않았을 것이며, 어쩌면 겨우 백수십명, 그러니까 하나의 단일한 무리였을 수도 있다. 이 때의 홍해는 오늘날보다 훨씬 좁아 간단한 뗏목으로도 건너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무리는 해안가를 따라 서서히 거대해지며 조수간만의 차를 활용해 갯벌의 먹거리들을 그러모았다.
빙하기의 절정기에 많은 물이 얼음에 갇혀있었기 때문에 해수면은 크게 낮았다. 영국과 유럽, 그리고 한반도와 일본이 붙어있었다. 동남아에는 순다(Sunda)라고 부르는 큰 대륙이 있었고,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 태즈메니아도 하나로 이어진 사훌(Sahul) 대륙이 있었다.
이 두개의 대륙 사이에 있는 바다는 수심이 얕은 맹그로브 습지가 있었고, 섬들이 많이 있었다. 순다까지 걸어온 인류는 물고기와 조개를 잡아먹으며 뗏목을 만들어냈고, 그걸 타고 수십 키로 미터의 연안을 가로질러, 섬들을 하나씩 건너기 시작했다.
약 5만 5,000년 전, 일군의 어부들이 술라웨시에 도착했고, 이후 1만년 안에 마침내 사훌 대륙과 뉴기니에까지 도착했다. 이들이 바로 오늘날 호주 원주민들의 먼 조상, 애보리진(Aborigine)이다.
애보리진이 사훌에 들어오자마자 극적인 변화가 벌어졌다. 이후 수천 년만에 대형동물 24종 중에서 1종을 제외한 모두가 멸종했다. 이들의 동굴 속 암각화에는 2미터가 넘는 캥거루처럼 생긴 거대 유대목 동물이 새겨져있으나, 이들도 모두 멸종했다.
## 신대륙으로
해안가를 따라 동남아와 호주로 간 이들도 있었지만, 내륙 지역으로 파고든 자들 또한 있었다. 4만 5,000년 전, 이들은 중앙아시아의 대초원에 진출했고, 이윽고 시베리아에까지 가닿았다. 그들은 털매머드와 털코뿔소를 학살하며 냉혹한 추위에 적응했을 것이다.
대형동물들은 식량뿐 아니라 따뜻한 의복, 사냥 도구나 주거지를 위해 필요한 원자재 또한 제공했다. 상아와 가죽이 그것이다. 이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가장 추운 곳에서도 서로 협력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고, 마침내 베링 해협의 육교를 건너갈 수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렇게, 남극을 제외한 지구 전역을 석권했다.
# 인류는 어떻게 지구를 정복했나
다른 영장류, 그리고 호미닌 사회와 마찬가지로 호모 사피엔스 집단에도 유력한 소수의 지도자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주의 시대를 거치며 호모 사피엔스 지도자들은 여러 갈래로 분화했다. 폭력에만 의존하던 기존의 지도자들 대신, 부드러운 카리스마나 영적 권위, 혹은 지적 능력에 의존하는 특별한 유형의 지도자들이 이들을 서서히 압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환각작용을 하는 식물의 종류를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든가, 혹은 현대정신의학적 기준에 따른다면 조현병 치료를 받았을 수도 있는 이 샤먼들은 음악과 무용을 활용해 산 자와 죽은 자들을 서로 이었다. 그들은 동물의 모습을 빌려 그들의 특성또한 빌렸으며, 동물 모습을 했던 무리의 조상과 접촉할 수 있었다.
그들은 죽은 자들을 통해 산 자들의 나라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농경이 시작되기 한참 이전부터 서서히 권력의 세습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전문적인 지적 교육을 받은 특권 엘리트계층은 하늘의 점점이 수놓인 별들의 규칙, 그리고 절대적 시간의 단위를 이해할 수 있었고, 압도적인 권위를 행사할 수 있게되었다.
그렇게 미친 자들의 미친 역사가 시작되었다. 다른 호미닌들과 달리 어째서 호모 사피엔스만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지구 전역을 뒤덮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그 원인은 분명 "미친 짓"에 있다. 호모 사피엔스는 말 그대로 산을 넘고 물을 건넜다. 이전의 호미닌들이라면, 그런 모험을 굳이 감수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 이전의 다른 어떤 호미닌도 광활히 펼쳐져있는 대양에 의도적으로 몸을 맡기는 미친 짓을 하진 않았다. 그러나 어떤 호모 사피엔스 무리는 광기를 키워 그들의 창조신이 짜디짠 바다 속에서 왔다고 믿었다. 협만과 유입구는 거대한 뱀상어가 꼬리지느러미를 휩쓸어 생겨났다고 믿었다. 저들의 부족은 바다 속에서 뭍 위로 올라왔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부족의 용감한 자들은 상어가 우글거리는 바다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뒤, 그곳에 몸을 맡겼다.
인류는 그렇게 아프리카 너머 신대륙 끄트머리에까지, 태평양 가장자리의 자그마한 섬들 구석구석에까지 진출해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빙하의 시대는 저물고 있었다. 약 2만년 전부터 태양이 따뜻하게 지구를 내리쬐기 시작했고, 번성하는 식물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길이 각광받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호모 사피엔스 사이에서 농경문화가 싹을 틔우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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