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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아이를 키우는 일상

1. 딱지
좁은 대한민국에 살면서 앞으로 주차 때문에 걱정할 일이 확 줄어들었다. 며칠 전 늦둥이 막내가 우리집 자동차에 표 딱지 하나를 붙여주었기 때문이다. 이 딱지만 있으면 톨게이트 비도 줄어든다고 하니, 여러 지역 병원을 오가야 하는 부모 입장에서는 벌써부터 쏠쏠하다. 게다가 휠체어나 특수 장비들을 구매할 때도 가격 면에서 유리해진단다. 두 돌도 안 된 놈에서 벌써 효자의 싹이 보인다.

우리 가족은 아직 막내의 병명을 알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 의료계가 모르는 것도 같고, 알면서도 알려주지 않는 것도 같다. 그 이름 하나 알아내려고 한 1년 용하다는 의사 선생님들을 찾아 수천 킬로미터를 운전했는데 결국 실패했다. 감기나 코로나, 배탈처럼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알면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 아이의 그것처럼 이름 모를 희귀병이라면 사실 병명을 알아내는 건 부차적인 일에 불과하다. 그걸 알아내려 애쓰는 시간 동안 차라리 아이의 치료와 재활에 전념하는 게 더 낫다...를 깨닫는 데 걸린 시간이 그 1년이고, 그 사실을 인정하기까지의 거리가 수천 킬로미터였다.

귀한 막내가 집에 도착한 때부터 우리 집은 그 막내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첫째와 둘째는 연년생인데, 둘째와 셋째는 열살 터울이다. 첫 두 녀석들에게는 ‘우리 집에 엄청 귀여운 뭔가가 있다’는 게 생애 처음 있는 일이다.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눈만 뜨면 안방으로 뛰어와 아가부터 구경했다. 매일 그 루틴을 반복하면서도 지겨워하지 않았다. 아가가 울면 자기들이 안고 달래고, 자기들이 부엌에 가서 분유를 타왔다. 똥 기저귀 가는 일이나 목욕을 시키는 일은 아직 엄마와 아빠가 하지만 밥을 먹이고 놀아주는 건 두 녀석도 어지간히 담당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재활 선생님 노릇도 조금씩 하려 한다.

그렇게 태어나면서부터 온갖 사랑을 받아 와서인지 아이는 얌전했다. 지나치게 얌전했다. 순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잠을 자고 일어나서도 엄마를 찾지 않았다. 얌전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보통은 아이가 울면 낮잠 다 잤나보다, 라고 식구들이 생각하는데, 우리는 반대였다. 왜 이렇게 오래 자나, 하고 들어가보면 아이는 진작 깨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한 놈이라 생각했다. 너무 움직이지 않아 아이 뒤통수 한 쪽이 눌려 삐뚤어질 때까지도 그랬다.

아내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하지 않냐고 여러 번 나에게 물었지만 나는 그냥 좀 늦된 것 뿐일 거라고, 유달리 순한 놈일 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아내는 여러 가지로 좀 알아본 모양이다. 첫째와 둘째를 길러 본 엄마의 기억은 아빠의 그것보다 예리했다. 어느 날 아내는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자폐’를 얘기하기 시작했다. 지금 아이가 보이는 여러 가지 증상이 자폐와 맞아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충격적인 단어였고, 아내가 잘도 조근조근 설명을 해주어서 ‘그냥 조금 느린 거 아닌가"라는 평소의 반문을 내뱉을 수 없었다.

생후 7~8개월이 되는데도 누워만 있는 거, 아무리 불러도 반응하지 않는 거, 천장의 불빛만 계속해서 응시하는 거, 엄마를 찾지 않는 거, 장난감에 아무런 호기심을 보이지 않는 거, 낯을 가리지 않는 거... 아내가 보여준 자료들에는 우리 사랑스런 막내의 순함 속에 감춰져 있던 모든 증상들이 있었다. 너무 딱 떨어져서 흔히들 한다는 부정과 분노조차 내 마음 속에 일지 않았다. 어떤 상태이든 어떤 모양이든 이 아이가 내 아이임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듯, 자폐라는 그 멀었던 단어가 내 것처럼 자연스럽게 이해됐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내 안에도 진작부터 일말의 불안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2. 그 작은 조언 하나
큰일이 일이나면, 그제야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의 경우 그냥 흔한 동네 소아과 선생님으로만 알고 있던 분이, 아이가 아프고 나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자폐라는 걸 염두에 두고 아이를 살피기 시작하면서 처음부터 서울 대형 병원들의 문을 두드리기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예약 대기가 이미 포화 상태라 어디를 전화하더라도 1년 뒤에나 오라는 답을 듣기 일쑤였다. 그런 예약이라도 감지덕지 다 이름을 걸어두었다. 그러나 그 1년 간의 공백을 마냥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는 게 부모 마음이다. 그럼에도 뭘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게 우리 같은 일반인의 사정이다.

다행히 한국은 의료 시스템이 잘 정비된 나라다. 때가 되면 영유아 검진을 해야 한다는 알림이 왔고, 우리는 정기적으로 동네 소아과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루는 소아과 상담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자연스럽게 아이의 상황에 대해 알릴 수 있었다. 그 선생님은 그렇잖아도 우리 막내를 눈여겨보고 있었다고 답했다.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들이 관찰됐는데, 그런 얘기를 드러내놓고 하기에는 아이가 아직 어리고 요즘 부모들이 예민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거였다. 하긴 우리 역시도 타인이 이 사랑스런 아이들 두고 자폐 어쩌고 하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이미 가난한 상태였다. 우리 말고도 누군가 이 상황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듬직한 아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그것도 소아과 전문의라니, 감사한 마음이 샘솟았다. 아내는 그 선생님과 통화를 자주 했고,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 얻을 수 없던 정보들을 취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서울 병원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사는 지역 근처의 좋은 병원들을 종목별료 추천해주신 게 큰 도움이 됐다. 그래서 우리는 비교적 짧은 예약으로 그런 병원들을 방문해 진단을 받을 수 있었다.

아이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말투가 다급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의 문제에 이성적이라거나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이거 어때요, 저거 어때요, 이건 왜 그런가요, 혹시 이런 가능성은요... 우리의 질문은 늘 정수리에 쏟아지는 아이스버킷 챌린지 같았고, 한참 나중의 일이지만 한 서울 큰 병원의 선생님은 이런 우리를 잠깐 보시고 “성질들이 너무 급하시네요”라며 문전박대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작은 소아과 선생님은 항상 차분한 투를 유지했다. 그렇다고 우리의 문제에 깊이 공감하거나 위로하려는 건 아니었다.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 뿐이었는데도 그 말투나 단어의 쓰임새 등에서 ‘놀라지 마세요, 그럴 때가 아닙니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그 분은 늘 노래를 강조했다.
“아이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노래를 많이 불러주세요. 그런 눈맞춤과 노랫소리가 아이들의 뇌를 많이 자극해줘요. 시간 날 때마다 그냥 안고 있지 마시고 아이를 쳐다보시고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불러주세요.”
이 조언이 뇌리에 박혀서일까. 우리 부부는 응답 없는 아이를 두고 늘 혼잣말하고 노래하는 게 일상이 됐다. 많은 장애아 부모들이 아이들과 침묵의 관계를 유지한다는 걸 나중에 알고서는 이 조언이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알게 됐다. 어쩌면 그 분이 우리에게 준 가장 유용한 조언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집에서 약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지방 대학 병원 한 군데 예약을 잡는 데 성공했다. 1년 뒤가 아니라 당장 다음 주에 오라고 한다. 거기서부터 나의 장거리 운전 일상은 시작됐다.


*안녕하세요 자게 첫 글입니다.
음... 왜 이런 우울한 얘기를 여기에 적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냥 뭔가를 쓰고 남겨야 해소되는 뭔가가 제 안에 생겨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진행 중인 이야기라, 뒤에 어떤 얘기가 들어갈지 저도 모르겠어서... 두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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