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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받는 시대를 겪은 기독교의 아물지 못한 흉터,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기독교의 종말론이 잘 나와 있는 요한계시록 20장에는 사탄이 바닥 없는 구덩이, 곧 무저갱에 갇히고 순교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왕노릇하는 천년왕국이 나옵니다. 이 천년왕국이 언제 실현되느냐는 세 가지 다른 신학적 견해가 있습니다.

1. 그리스도께서 전에 재림하시고 천년왕국이 이루어진다: 전천년설
2. 천년왕국이 이루어진 후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 후천년설
3: 그리스도가 초림하심으로 이미 천년왕국이 이루어졌다: 무천년설 또는 실현된 천년왕국설

그리고 전쳔년설은 다시 두 가지로 나뉩니다.
1-1. 천년왕국은 지상에 임한다: 역사적 전천년설
1-2. 천년왕국은 천상에 기독교인에게 임하고, 지상에는 재건된 이스라엘 나라가 임한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그런데 이 천년왕국의 해석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세계를 보는 관점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전천년설은 천년왕국을 그리스도께서 이루시기 때문에 세상이 자체적으로 천년왕국을 이룰 수 없다는 점에서 세상이 갈수록 악해져 간다고 봅니다. 반면에 후천년설은 세상에 천년왕국이 이루어진다고 보기 때문에 세상이 갈수록 선해져 간다고 믿습니다. 무천년설은 현 세상 자체가 천년왕국이라고 믿기 때문에 중립적이고요. 특히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예언의 성취를 중시하기 때문에 역사적 전천년설보다도 세상의 변화에 더 비관적입니다. 정확히는 세상의 변화를 비관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예언의 성취로 여기는 것이지요.

따라서 전천년설에서는 점차 악해지는 세상과 비타협적인 태도를 취하고 세상과 고립되고 세상의 영역을 축소시키려는 경향이 있고, 후천년설에서는 세상과 타협적인 태도를 취하고 세상과 기독교를 조화해 세상을 기독교화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20세기 초가 학문적으로 전성기고, 마침 한국에 미국 선교사들이 개신교를 전파할 때와 겹쳐서 한국 교회의 출발은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영향을 짙게 받았습니다. 나중에는 신학적으로 격렬한 비판을 받고 비주류가 되었지만, 세대주의에서 주장하는 교회와 별개의 이스라엘 나라가 실제로 세워지면서 일반 목회자들과 기독교도들 중에서는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초기에 일제강점기와 공산주의의 심한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전천년설의 비타협적이고 비관적인 세계관이 실제로 교회를 박해에서 지켜내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자기 아들을 죽인 공산주의자를 양자로 받아들인 것으로 유명한 손양원 목사도 열렬한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신봉자였습니다.

이런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의 비관적 세계관은 한국이 점차 발전하면서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때문에 신앙을 지키고 폭발적인 교세 성장까지 이뤄낸 한국 교회는 비관적 세계관과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쉽게 포기하지 못합니다. 위기 때문에 생존하고 성장한 교회이지만 막상 위기가 사라지고 나니 그 다음이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교회는 계속 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위기가 있어야지 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비관적 세계관을 유지하고, 비관적 세계에서 성장한 교회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전쟁 때만이 활약할 수 있는 뛰어난 장군이 전쟁이 없어지니 자신을 아무도 찾아 주지 않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급변하는 현대 세계는 이런 세대주의적 전천년설과 비관적 세계관이 유지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합니다. 항상 변화가 있기 때문에, 그 변화를 나쁜 것으로 인식하면 비관적 세계관을 계속 지킬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한국 개신교가 공산주의의 위협을 계속 주장하고, 공산주의 이후에는 미국의 문화 전쟁을 들여와서 성소수자는 문화적 마르크스주의다와 같은 새로운 공산주의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항상 위기가 있다고 느껴 왔기에, 막상 위기가 없어져도 위기를 스스로 만들어낼 정도로 현실 인식 기능이 고장나고 말았습니다.

박해받는 세대에 빛과 소금이 되었지만, 박해받는 세대에게밖에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는 한국 개신교의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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