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러시아에는 영국인들의 식민지가 있었다?
오늘날 뉴잉글랜드 지역이라하면, 미국 북동부 지역의 6개 주를 한번에 일컫는 전통적 지역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뉴잉글랜드 지역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근본있는 지역명으로서, 자그마치 미국이 독립하기 150년인 17세기 초, 플리머스에 영국인들이 처음 정착했을 때부터 불린 이름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뉴잉글랜드는 17세기의 신대륙이 아니라, 자그마치 1천년 전의 흑해 북동부 지역에 먼저 생겨났습니다. 오늘은 중세시대에 있던 또다른 뉴잉글랜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066년, 정복왕 윌리엄이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승리한 이래, 앵글로색슨인들의 왕국은 노르만족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11세기 말 내내, 전통적인 앵글로색슨 귀족세력은 영지 몰수에 반발하여 반란을 시도하거나 국외로 탈출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앵글로색슨계 웨식스 왕조의 마지막 임금이었던 해럴드 고드윈슨의 직계가족들은 바로 옆에 있는 아일랜드로 떠나 후일을 도모했지만, 어떤 이들은 아예 새로운 세상에 자신들의 운명을 맡겼습니다. 그렇게 1070년대에는 수백 척의 앵글로색슨계 함대가 동방의 로마 제국, 비잔틴 제국으로 향했습니다.
사실과 허구가 이리저리 뒤섞여있을 아이슬란드의 옛 사가에 따르면 이 함대를 이끈 것은 3명의 백작(Earl)과 8명의 남작(baron)들이었는데, 총책임자는 글로스터의 백작 시워드(Siward earl of Gloucester)라는 이였습니다. 그들은 오늘날 프랑스 서부의 브르타뉴 지역, 포르투갈의 갈리시아 지역을 지나 지브롤터 해협을 거쳐 세우타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은 세우타의 현지 무어인 수비대를 학살하고 그곳의 금은을 철저히 약탈한 뒤 떠났습니다. 오늘날 발레아레스 제도에 속하는 메노르카와 마요르카 섬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더 동쪽의 시칠리아에 도달하자, 이들은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이교도들에 의해 포위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앵글로색슨인들은 곧장 콘스탄티노플로 항해해 이교도들을 정리하고는 제국의 통치자 키르얄락스(Kirjalax), 즉 알렉시오스 1세에 의해 특별채용되었습니다.
당시 비잔틴 제국은 만성적인 용병 수급 부족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고, 황제는 북유럽인들로 구성된 정예 바랑기아 근위대를 운용하고 있었습니다. 앵글로색슨인들은 이 바랑기아 근위대의 일원이 된 것입니다. 새롭게 근위대가 된 이들은 여타 북유럽계 용병들과 구별되어 앵글로바랑기안(Englinbarrangoi)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이들은 두둑한 급여에 대체로 만족했지만, 더 많은 것을 원했습니다. 그것은 자식들에게 물려줄 재생산의 근거, 영토였습니다. 황제는 영토를 요구하는 그들에게 바다 건너 이교도들의 땅을 가리켰습니다. 앵글로바랑기안인들이 흑해 너머 베일에 싸인 그 땅을 대대로 통치할 권한이 명시된 칙령이 선포되었고, 이들은 곧장 배를 타고 떠났습니다.
콘스탄티노플에서 6일 거리의 그곳에서 다시금 처절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마침내 손아귀에 넣게 된 그 땅을 시워드 백작과 그 패거리들은 이 새로운 땅을 자신들의 고향을 따, "잉글랜드", 혹은 "뉴잉글랜드(Nova Anglia)"라고 불렀습니다. 곧 런던, 요크 등의 이름을 가진 정착지들이 우후죽순 세워졌습니다.
# 역사적 재구
오늘날의 일부 역사학자는 이 전설이 대체로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사가 속의 시워드 백작은 실제 앵글로색슨계 반란군으로 활동했던 시워드 반(Siward Barn)과 동일인물일 수 있는데, 글로스터셔의 대영주였던 그는 투옥에서 풀려난 이후 콘스탄티노플로 향했을 수 있습니다.
크림 반도와 흑해 북동쪽 해안선을 포함한 16세기의 한 이탈리아 항구지도를 보면, 수사코(Susaco), 론디나(Londina) 바그로폴리스(Vagropolis)라는 지명이 눈에 띄는데, 수사코는 "남쪽의 색슨족"을 이르는 종족명이자 전통지명이기도한 서식스(Sussex)에서, 론디나는 런던에서, 바그로폴리스는 (앵글로)바랑기아인을 뜻하는 접두어 Varang-과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교황에 의해 동방으로 파견된 13세기 프란치스코 수도사들은 이 지역에 기독교를 믿는 색슨족의 땅(terram Saxorum)이 있다는 여러 공통적인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앵글로바랑기안들이 바로 기독교를 믿는 동시에 색슨족의 일파이므로, 전설 속 뉴잉글랜드의 신빙성은 더 높아집니다.
흑해 북동쪽 지역에 영구적인 앵글로색슨계 정척지가 있었다는 사실은, 세월이 흐름에도 계속해서 바랑기안 친위대가 비잔틴 문화에 흡수되지 않고 고유의 명맥을 유지한 채 잔존할 수 있었던 한가지 이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들 앵글로바랑기아인들은 제국의 궁정에서 3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영어를 사용했는데, 아마 상무적인 문화를 가진 북동부 식민지의 젊은 앵글로색슨족 청년들은 대를 이어 꾸준히 황제의 친위대로 수출되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