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스마와 관료제 그리고 그 미래
※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일반인으로서 관료체계에 대해 제 나름의 생각을 떠오르는대로 적어보았습니다.
※ 경영과 정치는 제 주된 관심사가 아닙니다만, 일반 시민으로서 가끔씩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 여러모로 부실한 점이 있더라도 양해해주시고, 중대한 부분이 잘못되었다면 지나치지 마시고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상은 복잡하고 불확실하다. 따라서 다양한 관점이 필요하다. 그중 하나는 "정보"다. 정보의 관점에서 세상을 관찰하고 사고해볼 수 있다.
삼성전자가 위기에 빠진 듯하다. 카리스마 이건희 회장이 병으로 물러난 후, 리더쉽의 문제가 있는 듯하다. 이건 마치 제갈공명 사후 촉나라를 보는 듯하다.
이병철 회장이 있지만, 이건희 회장은 창업자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창업자의 경우 경험을 통해 조직의 곳곳을 꿰뚫고 있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의 많은 경험과 생각은 직관이 되어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직관이 상속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서는 상속될지 몰라도, 직관은 상속되지 못하기 때문에, 창업자의 후세에 이르르면,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약 10여년간은 그동안 이건희 회장이 해놓은 것들이 성과를 발휘한 거라 이해할 수 있다. 이건 마치 박정희 대통령 때 해놓은 걸, 전두환 대통령 때 수확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건희 회장과 유사한 포지션에 있던 사람으로 조선의 이방원이 있다. 한편으로는 이방원이 사람 죽여가며 왕권을 강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도전이 시스템을 만들어낸다. 그 두가지의 힘을 받아, 세종대왕에 이르게 된다. 어떤 사람은 조선의 왕이 "공무원"이었다고 한다. 쉬거나 놀지도 못하고, 고단한 공무에 시달리는 왕이어서, 일찍 죽었다고 한다.
그건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때문에 왕이 순전히 자기 멋대로 하는, 그러한 중앙집권적 체제는 아니었다는 걸 잠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연산군을 떠올려볼 때 예외는 있다고 해야겠지만, 유학을 배운 관료들에 의해 인도되는 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빡빡한 일과에 밤늦게까지 상소문을 읽어야 했다고 한다. 어쩌면 연산군과 사도세자는 그 규율에 대한 반동인 것일 수 있다.
중앙집권적 체제를 정보의 관점에서 보자. 결정권은 중앙에 있고, 결국 정보는 중앙을 향하는데, 그 많은 정보를 처리하기가 곤란하다. 왕 또는 CEO에게 정보 과부하가 걸리는 것이다. 이것이 매우 중대한 문제인 듯하다. 말단에서 문제를 발견해도 CEO에 이르지 못한다.
만약에 근본적으로 ・ 역사적으로 조직을 속속히 알고 있는 CEO라면, 정보처리 능력이 탁월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 무엇을 위임해야 할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CEO가 잘 알면, 그 밑의 임원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진다. 그런데 CEO가 잘 모르면, 어쩔 수 없이 임원들에 의존해야 한다. 이때 임원들간 권력 다툼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정보인데, 임원을 통과하여 CEO에 이르지 못할 수 있다. 임원의 관심과 이해관계에 막혀서 정보가 올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대통령도 마찬가지인데, 대통령이 잘 알지 못한다면, 결국 측근에게 의존하거나, 관료에게 의존해야 한다. 측근정치나 관료정치가 강화된다. 그 옛날에는 사회가 단순했다. 오늘날에 사회는 복잡하다. 그러므로 지적으로 더 어려운 거라 할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 때에는 지금보다 단순했다고 봐야 한다. 세계화도 정보화도 되어 있지 않았으며 획일적인 사회였고 가난해서 뭐 있는게 별로 없던 때이다. 그 시절은 환경적 ・ 시대적 조건상 지적으로 단순했다고 봐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장기집권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하고 경험을 쌓을 시간이 있었다. 오늘날 대통령은 측근이나 관료에 의존해야 한다. 무지와 무능이 문제가 된다. 대통령은 그 많은 것들을 알아야 하는데, 수십년간 일해온 전문가가 아니다. 신입사원이나 대리 수준에서 많은 공무를 처리해야 한다. 대통령 전문가는 없다. 그건 독재 국가에나 있다.
다시 기업으로 가보자. 임원은 자기가 언제 짤릴지 모를 일이라 할 수 있다. 언제 나갈지가 정해져 있으면, 그때에 성과를 최대한 뽑아내고 나가려 할 것이다. 장기적인 투자는 중단하고, 단기적 성과에 조직의 역량을 몰아넣을 것이다. 임원이 이러고 있는데, CEO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를 수 있다. 카리스마 창업가에게는 이런 게 잘 통하지 않을 것이다.
잠시 정리하자.
중앙집권적 체제는 중앙에 정보 과부하가 걸리기 쉽다. 그 과정에서 정보가 올라오지 못하거나, 올라와도 제대로 처리되지 못할 수 있다. 정보가 흐르지 못하는게 오직 양 때문만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중간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막혀버릴 수 있다.
결국 방법은 두 가지인 듯하다. 하나는 카리스마이고, 다른 하나는 정보를 쪼개는 것이다. 시스템으로 정보 과부하에 시달리지 않게 만들거나, 혹은 새롭게 카리스마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카리스마의 조건 중 하나는 스스로 룰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기존 것을 박살내고, 새롭게 룰을 만들 수 있다. 자신이 소화할 수 있을만한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강한 권력이 있어야 한다.
내 생각에, 아무리 재벌이라지만, 이재용 회장이 강한 권력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권력이란 돈에서 나오기도 하고, 충성심에서 나오기도 한다. 재벌이라 하지만, 단독으로 지분이 엄청 많은 건 아닐 것이다. 결국 다른 대주주들의 눈치를 봐야 할 것이다. 대주주와 임원들이 CEO에 얼마나 높은 신뢰와 충성심을 갖고 있는지가 관건이 된다. 그게 적다면, 그만큼 권력은 약한 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권력이 너무 강해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권력이 너무 약해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런데 카리스마 리더가 있을 때에는 카리스마가 있어야만 잘 돌아가는 구조였던 것일 수 있다. 카리스마 리더의 후계자는 권력이 약해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저 북한의 김정은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김일성이나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은 높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위험하니 더욱 폭압적으로 나오거나, 혹은 온갖 비효율을 감수하고 무언가를 해야 할 것이다.
조선초의 경우에는 한편으로는 카리스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스템을 잘 만들어둔 거라 이해할 수 있다. 정도전이 있었던 것이다. 카리스마가 없더라도 잘 돌아가게끔, 왕을 공무원처럼 만들어서, 유학을 배운 신하들에 의해 돌아갈 수 있게끔 만든 것이라 이해해볼 수 있다.
삼성이 글로벌 대기업인데, 체계가 잘 만들어져 있을테지, 문제될게 뭐 있냐는 의문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건 카리스마 지도자를 전제로 최적화된 체계인 것일 수 있다.
창업자가 아니라는게 무얼 의미하는지, 감을 잡기 위해 비유 하나를 들어보겠다.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이 있다고 해보자. 창업자는 처음부터 자기가 플레이한 것이다. 창업자의 후계자는 남이 플레이한거 이어받은 것이다.
내 생각에 후계자가 할 수 있는 전략 중 하나는 — 단순화인 듯하다. 조직을 단순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온갖 것들을 없애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없애지 말아야 할 것을 없애는 수가 있다. 그건 비용이라 간주한다. 새롭게 만드는데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것을 없애는데도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고, 이는 비용이라 생각해버리면 된다.
단순화를 했다면, 이제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정보 과부하가 줄어들 것이고, 정보처리를 해볼만 해졌을 것이다. 이때에는 다시 적절성이나 고도성을 위해서, 복잡하게 만들어갈 수 있다. 그러면 창업자와 유사한 성격을 갖게 된다.
이거 왜 해야 돼? — 답을 아는 사람이 없다. — 그러면 일단 없애고 본다. 없애도 잘 돌아간다. 그런데 없앴더니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러면 대안을 찾는다. 더 나은 대안이 없으면, 원래대로 복원한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일론 머스크의 전기를 읽어보면, 그가 위와 같은 방법을 썼다는 걸 볼 수 있다. First Principle. 근본이 되는 것을 파악하고, 그것으로 이해되지 않는 나머지는 의심하고 없애버린다. 잘못 없앴다면, 대안을 찾는다. 과거와 달리, 현재는 더 좋은 대안이 있는 것일 수 있다.
되짚어볼 하나는,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했을 때, 대량 해고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약 2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 보면, 트위터는 그럭저럭 잘 돌아간다. 그렇다면 그 많은 사람들이 그 복잡한 일들을 한게, 실은 낭비였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관료적 버블이 있었던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스페이스X나 테슬라와 달리, 트위터에 있어서 일론 머스크는 창업자가 아니었다. 그가 트위터를 인수하고 한 일은 "단순화"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대량해고라 생각하지 말고, "단순화"라 생각해야 한다. 크기를 줄이는건, 단순화의 여러 방법 중 하나이다. 본질은 해고가 아니고, 단순화라 이해할 수 있다. "정보"의 관점에서 볼 때 그러하다.
새롭게 복잡화된 부분도 있겠지만, 그건 CEO가 알고 있을 것이다. CEO의 직관에 포섭되어 있는 것이다. 자기가 만들었거나, 자기가 승인했으니, 그 내막과 한계를 알기 쉬운 것이다.
연이어 생각해볼 흥미로운 것은 — 트럼프다. 이와 관련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마 트위터에서 본 것 같다. 일론 머스크가 트럼프와 손을 잡고, 트럼프가 집권할 때, 미국 정부에 대한 단순화를 시작한다.
그게 단지 선거기간 동안 표를 끌려는 주의환기인 것인지, 아니면 진짜로 이 방향으로 갈 생각인지는 모른다. 조직을 제거하고, 프로젝트를 제거하고, 법을 제거한다. 트럼프가 집권하면, 이럴 가능성이 있다.
단순화가 양적인 과정으로 일어나는 경우, 이를 디플레이션이라 볼 수도 있는 거라 본다. 디플레이션을 경제 용어로만 쓸게 아니라, 경영에도 쓸 수 있는 거라 본다. 인플레이션과 그에따른 복잡화가 일어나는 기간이 있고, 디플레이션과 그에따른 단순화가 일어나는 기간이 있다고 이해해볼 수 있다. 단순화를 했으면, 이제 다시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 다시 불어넣은 에너지를 가지고, 새로운 목적에 따라, 새로운 환경에 따라, 새로운 복잡화를 해나간다.
막스 베버는 <카리스마적 지배>와 <관료제>를 썼다. 카리스마로 시작해서 관료화된다. 처음에는 카리스마 리더에 의하던 것이, 전문적인 역량을 쌓은 관료에 의해 돌아가게 된다. 하이에크는 <노예의 길>에서 관료사회의 정보 문제를 지적한다. 시장에 맡길 경우에는, 정보습득과 정보처리를 각 시장주체들이 알아서 하게 된다. 그러나 중앙관료가 하는 경우에는, 정보가 너무 많고, 정보 처리 부담이 커진다.
사실 공무원들이 "숫자화"해서 의사결정하는 것도, 정보를 일일이 처리하기 힘드니, 정량화해서 다루는 것일 뿐이며, 이 과정에서 부조리가 생기기 쉽다. 잘못된 관념화를 하거나, 혹은 중요한게 누락되거나, 혹은 이건 적용되지 말아야 하는 건데 적용해버리거나, 혹은 기록에 의존하다보니 과거 관성만 강화되고 개척과 혁신의 역량은 낮아지거나, 혹은 잘못된 피드백을 받아서 중요한게 점점 매말라가는 등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내 생각에 저 중앙집권적 관료체계라는 것은 인공지능을 통해 혁신이 이뤄질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인공지능은 그 많은 숫자들을 잘 처리해낼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공지능만으로는 곤란하다. 결국 인공지능은 관료가 할 일을 해준 것 뿐이고, 카리스마가 할 일을 한게 아니다. 카리스마는 인간의 몫이다.
그리고 다시 관료적 역할을 돌아보면, 내 생각에 인공지능의 엄청난 정보처리능력을 활용해서, 관료적 시스템의 "다양성"을 만들어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원래 그걸 하려면, 막대한 인력이 필요한 거라 할 수 있다. 엄청난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엄청난 사무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관료에 다양성이 가미될 가능성이 있다.
관료라는 것은 어떤 정해진 체계가 있어서, 그건 마치 공리에 의해 돌아가는 수학과 유사한 거라 할 수 있는데, 이때 서로 다른 공리를 가진 관료집단을 AI로 운영하는 걸 생각해볼 수 있다. 인간은 그것들을 경쟁시키고 취합하여 의사결정하면 된다.
관료제는 반드시 획일화라고 단정하기 곤란하다. 오래전 보았던 <미생>을 되짚어면, 이는 관료사회라 할 수 있을 텐데, 영업부가 3곳인가 있었던 것 같다. 단일 영업부를 놓고 보면 관료사회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관료사회가 3곳이 있는 것이다. 그들이 각각 다른 일을 맡는 수도 있지만, 어떤 과제에 3팀 모두 참가하게 하고, 경쟁을 시키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의 문제는 이는 회사입장에서 비용이 3배로 들어가는 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관료비용이 저렴해진다면? — 그러한 내부적인 경쟁시스템을 가동하기가 수월해질 것이다. 이로써 결과의 질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면, AI를 활용해서 다양성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이런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현재는 관료 A팀에 의해 실제로 돌아가게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관료 B팀을 운영한다. 관료 B팀은 사실상 시뮬레이션만 하고 있을 뿐이다. 관료 A팀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관료 B팀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왜 이런 추상적인 얘기를 하는가 하면, 내가 볼 때, 인간 정신이 내부적으로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신활동이란 것은 지금 당면한 관찰과 행동을 연계하는 어떤 정신작용 A가 일어남과 동시에, 이와 병렬적으로 정신작용 B도 느슨하게나마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는 식인 거라 본다. 그리고 그것의 각론은 A와 B가 대립인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그건 각론일 뿐이다. 다름이 총론이며, 대립은 각론이다.
리더 입장에서 이러는 수도 있을 것이다. 관료 A팀은 인간이고, 관료 B팀은 AI다. 둘다 내부적으로는 관료적으로 조직되어 있는 거라 생각할 수 있다. 이 두 팀을 경쟁시킨다. 이건 마치 암검진을 하는데, AI와 인간을 경쟁시키는 것과 유사하다. 그 둘을 종합하면,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AI에 의해 노동력이 급증하는 시대에 오면, 시장에서는 결국 조금이라도 더 나은 질을 만들려는 경쟁이 일어나고, 이에 도움이 되는 걸 찾게 될 것이다. 그런데 질을 높이는 방법 중 하나가, 내부적으로 다양성을 만들고 경쟁시키는 것이다. AI에도 비용이 들어가고, AI만으로 안 되고 인간이 함께 해야 해서, 임금 비용이 늘어나는 수가 있고, 그러나 어쩌겠는가. 시장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질을 찾아 수요가 활발히 이동하는데. 도태되지 않으려면, 비용을 들여서라도 질을 높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일자리가 늘어나는 원인이 있게 되는 거라 본다. 사람들이 질을 갈망하는 이상, 일자리는 생겨난다.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한 이상, 질에 무관심하기 쉽지 않다.
※ 경영과 정치는 제 주된 관심사가 아닙니다만, 일반 시민으로서 가끔씩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 여러모로 부실한 점이 있더라도 양해해주시고, 중대한 부분이 잘못되었다면 지나치지 마시고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상은 복잡하고 불확실하다. 따라서 다양한 관점이 필요하다. 그중 하나는 "정보"다. 정보의 관점에서 세상을 관찰하고 사고해볼 수 있다.
삼성전자가 위기에 빠진 듯하다. 카리스마 이건희 회장이 병으로 물러난 후, 리더쉽의 문제가 있는 듯하다. 이건 마치 제갈공명 사후 촉나라를 보는 듯하다.
이병철 회장이 있지만, 이건희 회장은 창업자나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창업자의 경우 경험을 통해 조직의 곳곳을 꿰뚫고 있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의 많은 경험과 생각은 직관이 되어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직관이 상속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서는 상속될지 몰라도, 직관은 상속되지 못하기 때문에, 창업자의 후세에 이르르면,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약 10여년간은 그동안 이건희 회장이 해놓은 것들이 성과를 발휘한 거라 이해할 수 있다. 이건 마치 박정희 대통령 때 해놓은 걸, 전두환 대통령 때 수확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건희 회장과 유사한 포지션에 있던 사람으로 조선의 이방원이 있다. 한편으로는 이방원이 사람 죽여가며 왕권을 강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도전이 시스템을 만들어낸다. 그 두가지의 힘을 받아, 세종대왕에 이르게 된다. 어떤 사람은 조선의 왕이 "공무원"이었다고 한다. 쉬거나 놀지도 못하고, 고단한 공무에 시달리는 왕이어서, 일찍 죽었다고 한다.
그건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때문에 왕이 순전히 자기 멋대로 하는, 그러한 중앙집권적 체제는 아니었다는 걸 잠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연산군을 떠올려볼 때 예외는 있다고 해야겠지만, 유학을 배운 관료들에 의해 인도되는 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빡빡한 일과에 밤늦게까지 상소문을 읽어야 했다고 한다. 어쩌면 연산군과 사도세자는 그 규율에 대한 반동인 것일 수 있다.
중앙집권적 체제를 정보의 관점에서 보자. 결정권은 중앙에 있고, 결국 정보는 중앙을 향하는데, 그 많은 정보를 처리하기가 곤란하다. 왕 또는 CEO에게 정보 과부하가 걸리는 것이다. 이것이 매우 중대한 문제인 듯하다. 말단에서 문제를 발견해도 CEO에 이르지 못한다.
만약에 근본적으로 ・ 역사적으로 조직을 속속히 알고 있는 CEO라면, 정보처리 능력이 탁월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 무엇을 위임해야 할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CEO가 잘 알면, 그 밑의 임원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진다. 그런데 CEO가 잘 모르면, 어쩔 수 없이 임원들에 의존해야 한다. 이때 임원들간 권력 다툼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중요한 정보인데, 임원을 통과하여 CEO에 이르지 못할 수 있다. 임원의 관심과 이해관계에 막혀서 정보가 올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대통령도 마찬가지인데, 대통령이 잘 알지 못한다면, 결국 측근에게 의존하거나, 관료에게 의존해야 한다. 측근정치나 관료정치가 강화된다. 그 옛날에는 사회가 단순했다. 오늘날에 사회는 복잡하다. 그러므로 지적으로 더 어려운 거라 할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 때에는 지금보다 단순했다고 봐야 한다. 세계화도 정보화도 되어 있지 않았으며 획일적인 사회였고 가난해서 뭐 있는게 별로 없던 때이다. 그 시절은 환경적 ・ 시대적 조건상 지적으로 단순했다고 봐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장기집권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하고 경험을 쌓을 시간이 있었다. 오늘날 대통령은 측근이나 관료에 의존해야 한다. 무지와 무능이 문제가 된다. 대통령은 그 많은 것들을 알아야 하는데, 수십년간 일해온 전문가가 아니다. 신입사원이나 대리 수준에서 많은 공무를 처리해야 한다. 대통령 전문가는 없다. 그건 독재 국가에나 있다.
다시 기업으로 가보자. 임원은 자기가 언제 짤릴지 모를 일이라 할 수 있다. 언제 나갈지가 정해져 있으면, 그때에 성과를 최대한 뽑아내고 나가려 할 것이다. 장기적인 투자는 중단하고, 단기적 성과에 조직의 역량을 몰아넣을 것이다. 임원이 이러고 있는데, CEO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를 수 있다. 카리스마 창업가에게는 이런 게 잘 통하지 않을 것이다.
잠시 정리하자.
중앙집권적 체제는 중앙에 정보 과부하가 걸리기 쉽다. 그 과정에서 정보가 올라오지 못하거나, 올라와도 제대로 처리되지 못할 수 있다. 정보가 흐르지 못하는게 오직 양 때문만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중간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막혀버릴 수 있다.
결국 방법은 두 가지인 듯하다. 하나는 카리스마이고, 다른 하나는 정보를 쪼개는 것이다. 시스템으로 정보 과부하에 시달리지 않게 만들거나, 혹은 새롭게 카리스마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카리스마의 조건 중 하나는 스스로 룰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기존 것을 박살내고, 새롭게 룰을 만들 수 있다. 자신이 소화할 수 있을만한 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강한 권력이 있어야 한다.
내 생각에, 아무리 재벌이라지만, 이재용 회장이 강한 권력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권력이란 돈에서 나오기도 하고, 충성심에서 나오기도 한다. 재벌이라 하지만, 단독으로 지분이 엄청 많은 건 아닐 것이다. 결국 다른 대주주들의 눈치를 봐야 할 것이다. 대주주와 임원들이 CEO에 얼마나 높은 신뢰와 충성심을 갖고 있는지가 관건이 된다. 그게 적다면, 그만큼 권력은 약한 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권력이 너무 강해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권력이 너무 약해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런데 카리스마 리더가 있을 때에는 카리스마가 있어야만 잘 돌아가는 구조였던 것일 수 있다. 카리스마 리더의 후계자는 권력이 약해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저 북한의 김정은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김일성이나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에 대한 충성심은 높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위험하니 더욱 폭압적으로 나오거나, 혹은 온갖 비효율을 감수하고 무언가를 해야 할 것이다.
조선초의 경우에는 한편으로는 카리스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스템을 잘 만들어둔 거라 이해할 수 있다. 정도전이 있었던 것이다. 카리스마가 없더라도 잘 돌아가게끔, 왕을 공무원처럼 만들어서, 유학을 배운 신하들에 의해 돌아갈 수 있게끔 만든 것이라 이해해볼 수 있다.
삼성이 글로벌 대기업인데, 체계가 잘 만들어져 있을테지, 문제될게 뭐 있냐는 의문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건 카리스마 지도자를 전제로 최적화된 체계인 것일 수 있다.
창업자가 아니라는게 무얼 의미하는지, 감을 잡기 위해 비유 하나를 들어보겠다.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이 있다고 해보자. 창업자는 처음부터 자기가 플레이한 것이다. 창업자의 후계자는 남이 플레이한거 이어받은 것이다.
내 생각에 후계자가 할 수 있는 전략 중 하나는 — 단순화인 듯하다. 조직을 단순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온갖 것들을 없애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없애지 말아야 할 것을 없애는 수가 있다. 그건 비용이라 간주한다. 새롭게 만드는데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존의 것을 없애는데도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고, 이는 비용이라 생각해버리면 된다.
단순화를 했다면, 이제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정보 과부하가 줄어들 것이고, 정보처리를 해볼만 해졌을 것이다. 이때에는 다시 적절성이나 고도성을 위해서, 복잡하게 만들어갈 수 있다. 그러면 창업자와 유사한 성격을 갖게 된다.
이거 왜 해야 돼? — 답을 아는 사람이 없다. — 그러면 일단 없애고 본다. 없애도 잘 돌아간다. 그런데 없앴더니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러면 대안을 찾는다. 더 나은 대안이 없으면, 원래대로 복원한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일론 머스크의 전기를 읽어보면, 그가 위와 같은 방법을 썼다는 걸 볼 수 있다. First Principle. 근본이 되는 것을 파악하고, 그것으로 이해되지 않는 나머지는 의심하고 없애버린다. 잘못 없앴다면, 대안을 찾는다. 과거와 달리, 현재는 더 좋은 대안이 있는 것일 수 있다.
되짚어볼 하나는,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했을 때, 대량 해고를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약 2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 보면, 트위터는 그럭저럭 잘 돌아간다. 그렇다면 그 많은 사람들이 그 복잡한 일들을 한게, 실은 낭비였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관료적 버블이 있었던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스페이스X나 테슬라와 달리, 트위터에 있어서 일론 머스크는 창업자가 아니었다. 그가 트위터를 인수하고 한 일은 "단순화"였다고 해석할 수 있다. 대량해고라 생각하지 말고, "단순화"라 생각해야 한다. 크기를 줄이는건, 단순화의 여러 방법 중 하나이다. 본질은 해고가 아니고, 단순화라 이해할 수 있다. "정보"의 관점에서 볼 때 그러하다.
새롭게 복잡화된 부분도 있겠지만, 그건 CEO가 알고 있을 것이다. CEO의 직관에 포섭되어 있는 것이다. 자기가 만들었거나, 자기가 승인했으니, 그 내막과 한계를 알기 쉬운 것이다.
연이어 생각해볼 흥미로운 것은 — 트럼프다. 이와 관련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마 트위터에서 본 것 같다. 일론 머스크가 트럼프와 손을 잡고, 트럼프가 집권할 때, 미국 정부에 대한 단순화를 시작한다.
그게 단지 선거기간 동안 표를 끌려는 주의환기인 것인지, 아니면 진짜로 이 방향으로 갈 생각인지는 모른다. 조직을 제거하고, 프로젝트를 제거하고, 법을 제거한다. 트럼프가 집권하면, 이럴 가능성이 있다.
단순화가 양적인 과정으로 일어나는 경우, 이를 디플레이션이라 볼 수도 있는 거라 본다. 디플레이션을 경제 용어로만 쓸게 아니라, 경영에도 쓸 수 있는 거라 본다. 인플레이션과 그에따른 복잡화가 일어나는 기간이 있고, 디플레이션과 그에따른 단순화가 일어나는 기간이 있다고 이해해볼 수 있다. 단순화를 했으면, 이제 다시 인플레이션을 일으킨다. 다시 불어넣은 에너지를 가지고, 새로운 목적에 따라, 새로운 환경에 따라, 새로운 복잡화를 해나간다.
막스 베버는 <카리스마적 지배>와 <관료제>를 썼다. 카리스마로 시작해서 관료화된다. 처음에는 카리스마 리더에 의하던 것이, 전문적인 역량을 쌓은 관료에 의해 돌아가게 된다. 하이에크는 <노예의 길>에서 관료사회의 정보 문제를 지적한다. 시장에 맡길 경우에는, 정보습득과 정보처리를 각 시장주체들이 알아서 하게 된다. 그러나 중앙관료가 하는 경우에는, 정보가 너무 많고, 정보 처리 부담이 커진다.
사실 공무원들이 "숫자화"해서 의사결정하는 것도, 정보를 일일이 처리하기 힘드니, 정량화해서 다루는 것일 뿐이며, 이 과정에서 부조리가 생기기 쉽다. 잘못된 관념화를 하거나, 혹은 중요한게 누락되거나, 혹은 이건 적용되지 말아야 하는 건데 적용해버리거나, 혹은 기록에 의존하다보니 과거 관성만 강화되고 개척과 혁신의 역량은 낮아지거나, 혹은 잘못된 피드백을 받아서 중요한게 점점 매말라가는 등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내 생각에 저 중앙집권적 관료체계라는 것은 인공지능을 통해 혁신이 이뤄질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인공지능은 그 많은 숫자들을 잘 처리해낼 잠재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공지능만으로는 곤란하다. 결국 인공지능은 관료가 할 일을 해준 것 뿐이고, 카리스마가 할 일을 한게 아니다. 카리스마는 인간의 몫이다.
그리고 다시 관료적 역할을 돌아보면, 내 생각에 인공지능의 엄청난 정보처리능력을 활용해서, 관료적 시스템의 "다양성"을 만들어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원래 그걸 하려면, 막대한 인력이 필요한 거라 할 수 있다. 엄청난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엄청난 사무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관료에 다양성이 가미될 가능성이 있다.
관료라는 것은 어떤 정해진 체계가 있어서, 그건 마치 공리에 의해 돌아가는 수학과 유사한 거라 할 수 있는데, 이때 서로 다른 공리를 가진 관료집단을 AI로 운영하는 걸 생각해볼 수 있다. 인간은 그것들을 경쟁시키고 취합하여 의사결정하면 된다.
관료제는 반드시 획일화라고 단정하기 곤란하다. 오래전 보았던 <미생>을 되짚어면, 이는 관료사회라 할 수 있을 텐데, 영업부가 3곳인가 있었던 것 같다. 단일 영업부를 놓고 보면 관료사회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관료사회가 3곳이 있는 것이다. 그들이 각각 다른 일을 맡는 수도 있지만, 어떤 과제에 3팀 모두 참가하게 하고, 경쟁을 시키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의 문제는 이는 회사입장에서 비용이 3배로 들어가는 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관료비용이 저렴해진다면? — 그러한 내부적인 경쟁시스템을 가동하기가 수월해질 것이다. 이로써 결과의 질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면, AI를 활용해서 다양성을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이런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현재는 관료 A팀에 의해 실제로 돌아가게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관료 B팀을 운영한다. 관료 B팀은 사실상 시뮬레이션만 하고 있을 뿐이다. 관료 A팀이 한계에 부딪혔을 때, 관료 B팀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왜 이런 추상적인 얘기를 하는가 하면, 내가 볼 때, 인간 정신이 내부적으로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신활동이란 것은 지금 당면한 관찰과 행동을 연계하는 어떤 정신작용 A가 일어남과 동시에, 이와 병렬적으로 정신작용 B도 느슨하게나마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는 식인 거라 본다. 그리고 그것의 각론은 A와 B가 대립인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그건 각론일 뿐이다. 다름이 총론이며, 대립은 각론이다.
리더 입장에서 이러는 수도 있을 것이다. 관료 A팀은 인간이고, 관료 B팀은 AI다. 둘다 내부적으로는 관료적으로 조직되어 있는 거라 생각할 수 있다. 이 두 팀을 경쟁시킨다. 이건 마치 암검진을 하는데, AI와 인간을 경쟁시키는 것과 유사하다. 그 둘을 종합하면, 더 나은 판단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AI에 의해 노동력이 급증하는 시대에 오면, 시장에서는 결국 조금이라도 더 나은 질을 만들려는 경쟁이 일어나고, 이에 도움이 되는 걸 찾게 될 것이다. 그런데 질을 높이는 방법 중 하나가, 내부적으로 다양성을 만들고 경쟁시키는 것이다. AI에도 비용이 들어가고, AI만으로 안 되고 인간이 함께 해야 해서, 임금 비용이 늘어나는 수가 있고, 그러나 어쩌겠는가. 시장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질을 찾아 수요가 활발히 이동하는데. 도태되지 않으려면, 비용을 들여서라도 질을 높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일자리가 늘어나는 원인이 있게 되는 거라 본다. 사람들이 질을 갈망하는 이상, 일자리는 생겨난다. 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한 이상, 질에 무관심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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