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먹은 역사를 알아보자: 조상들의 식인
호모 안테케소르와 네안데르탈인, 그리고 해부학적 현대인(AMH)들은 모두 식인 풍습을 행했다. 식인 풍습은 우리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출현한 뒤에도 계속되었다. 오늘날 식인은 금기시되지만, 인류사의 곳곳에서 우리는 우발적인 식인 행위를, 심지어는 제도적인 식인 풍습을 발견할 수 있다.
식인 풍습은 수없이 많은 수렵채집사회에서 공통적으로 존재했고,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동안 우리는 수렵채집의 삶을 살았다. 즉, 식인은 우리의 오랜 전통이었다. 농경이 시작되고, 사회규모가 거대해짐에 따라 인간은 동족 잡아먹는 것을 터부시하기 시작했지만, 이때 동족의 기준이란 것은 여전히 자의적이었다.
의료적 목적으로 인해, 혹은 부모를 봉양하는 등 사회문화적 요소들로 인해 인간 신체의 일부를 섭취하는 것은 때때로 용인되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기근이나 사고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 처한 경우 식인이 벌어지곤 한다. 오늘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식인에 대해 알아볼 것이다.
# 호모 안테케소르의 식인
1994년, 스페인 부르고스에 위치한 시에라 데 아타푸에르카(Sierra de Atapuerca) 그란 돌리나(Gran Dolina) 유적에서 수십 구의 호모 안테케소르 표본이 발굴되었다. 78만년 전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호모 에렉투스가 수십만년 간의 기후위기 속에서 유전적 다양성의 3분의 2를 상실한 끝에 꽃피워낸 후손들이었다. 좀 더 뒷세대에 등장하는 하이델베르크인과 홍적세 중기 호모로 함께 묶이기도 하는 이들의 뇌용량은 1,000cc로 조상들에 비해 그야말로 비약적으로 증가해있었고, 어쩌면 우리는 이들을 우리의 첫번째 "인간다운 인간" 조상 후보로 선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유적에서 발굴된 그들의 유해는 그들이 동족에 의해 잡아먹혔다는 다소 불쾌한 진실을 암시했다.
뼈조각들의 대부분은 심하게 부서져 있었는데, 이는 살을 효율적으로 발라먹고 골수까지 빼먹으려는 시도처럼 보였다. 두개골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정수리에 가해진 충격은 아래에 있는 이에 흔적을 남겼고, 곳곳에 근육을 자르는 과정에서 생긴 손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분명 누군가에 의해 뇌가 적출됐을 것이다. 갈비뼈에는 살을 발라내기 위한 근육 절단흔과 내장을 빼내기 위한 기다란 절단흔이 있었고, 투박하게 뜯긴 목덜미 근육은 참수를 암시했다. 대퇴골은 골수를 빼내기 위해 산산조각나 있었고, 손발은 떨어져나간 뒤 긁히고 두들겨졌다.
고고학자들은 이런 유적에서 발굴된 어떤 유해가 같은 인간에 의해 잡아먹혔는지를 판단하는 두가지 판단기준을 갖고 있다.
첫번째는 "동물의 뼈에서 발견된 것과 흡사한 골절 패턴과 도구에 의한 절단흔 등 도살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는가" 이며,
두번째는 "그 유해가 도살당한 동물의 사체들과 같은 공간에서 발견되는가" 이다.
안테케소르의 이 유해들은 두가지 기준을 모두 만족했다. 연구진들은 여타 사냥감들과 마찬가지로 먼 곳에서 살해당한 뒤 유적지까지 질질 끌려온 사체가 이내 도축되었고, 뼈가 부러졌으며, 골수가 빼먹혔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당연하게도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호모 안테케소르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호모 안테케소르가 동족을 먹는 데에 있어서 그다지 절박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유적에는 같은 호모 안테케소르의 유해 말고도 수많은 사냥감 동물들의 뼈가 널려있었는데, 이 사실은 식인이 반드시 필수적이진 않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하지만, 이들에겐 굳이 사람을 먹지 않아야할 이유도 없었다. 이들은 어쩌면 훌륭한 인간 사냥꾼이었을 것이다.
식인의 대상이 되었던 유해가 대부분 젊은이, 심지어는 4분의 3 가량이 사춘기 이전의 어린아이였다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이들은 자연적으로 사망한 내집단의 구성원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살해당한 외부인이었을 확률이 높다고 여겨져왔다. 유해의 안면부에는 여타 사냥감 동물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절단흔이 보였는데, 이는 사냥의 대상이었던 외부인에 대한 증오를 나타내는 것일 수 있으며, 유해가 동물의 사체와 같은 공간에 아무렇게나 흩어져있었던 점도 가설에 힘을 싣는다.
그러나 수렵채집사회의 어린 개체들은 열 다섯살을 넘기는 경우가 절반도 못되었다는 최근의 연구결과들을 반영해, 호모 안테케소르 사냥꾼들은 그들 자신도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의도적인 인간 사냥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동료의 시체를 재활용했을 확률이 높았으리라는 추측도 있다. 또한 이 경우, 안면부의 과다한 상처는 단순히 인간이 갖는 다른 사냥감 동물들과의 해부학적 차이로 인해 도축인이 애를 먹은 결과라고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설대로라면, 동료들의 유해를 아무렇게나 갖다 버리고 재활용한 호모 안테케소르는 인간사냥꾼은 아닐지라도 감수성이 다소 메마른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어느쪽이든, 우리의 조상격에 해당하는 자들이 도살자와 냉혈한 그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는 것은 유쾌하진 않은 사실이다.
# 네안데르탈인의 식인
호모 안테케소르의 감수성이 어떠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들의 방계후손격인 수십만 년 뒤의 네안데르탈인들은 확실히 호모 안테케소르보다는 더 따뜻한 사람들이었을 수 있다. 네안데르탈인은 붉은색 황토로 가죽을 칠했는데, 종교의식을 위해서였거나 그냥 패션의 일종이었을 수 있다. 어떤 쪽으로 해석하든, 그들은 조상들보다 감성적이었다. 이들이 동료의 유해를 정성스레 장례지냈다는 사실 또한, 널리 알려져 있다. 호모 안테케소르처럼 감정이 메마른 몇몇 고고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 유해 위에 놓인 꽃이 동료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주변에 살던 찍찍이들이 우연히 모아놓은 것일 가능성을 논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다소 풍부해진 감수성과 별개로, 네안데르탈인도 동족을 먹었다는 점에선 호모 안테케소르와 같았다. 네안데르탈인이 식인을 했다는 증거는 무수히도 많은데, 그들도 조상들처럼 사슴과 동족을 함께 다뤘던 것으로 보인다. 1991년, 프랑스 남동부 지역의 물라-게르시 동굴에서는 10만년 전에 살았던 여섯 구의 네안데르탈인 유해가 말사슴(Cervus elaphus)의 뼈와 함께 발굴되었다. 네안데르탈인 유해와 말사슴의 뼈는 모두 같은 패턴의 박탈과 도구로 찍은 흔적이 발견됐고, 운반이 용이하도록 하는 특유의 절단흔을 공유했다. 실제로, 크로아티아의 크라피나(Krapina)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해의 일부는 종래까지 같은 네안데르탈인에게 잡아먹혔다는 것이 정설이었는데, 어떤 유해들은 골수가 풍부한 몇몇 뼈 조각만 쪼개져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례 절차 도중 탈육을 하는 과정에서 말사슴을 도축했던 도구를 같은 방식으로 활용했던 것일 수도 있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크라피나(Krapina)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해에서는 단순히 동물을 도축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일부 절단흔도 발견되었다. 이는 몇몇 유해들이 고인에 대한 의례적 풍습의 일환으로 탈육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어쩌면 식인과 장례, 둘 다 벌어졌을 수도 있다. 여담으로, 이 크라피나 유적지에서 발굴된 11구의 유해에는 생전에 입은 부상이 치유된 흔적이 있었다. 이는 네안데르탈인이 서로를 보살폈음을 암시한다.
네안데르탈인의 식인행위를 암시하는 정황증거는 차고 넘치지만, 아직까지 명명백백한 물증은 없다. 따라서 그들의 식인 여부에 대한 논쟁은 인류학자 폴 반 (Paul van der Grijp)의 말마따나, "어떤 네안데르탈인의 분석(糞石:고고학자들의 언어로 똥을 뜻함)이나 내장화석에서 소화되다만 유해가 발견"되지 않는 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실, 소화되다만 네안데르탈인의 이빨이 어떤 분석에서 발견되었다. 다만 그 똥의 주인은 네안데르탈인이 아니라 하이에나였다. 이는, 어떤 도축된 네안데르탈인의 유해는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하이에나의 한끼 식사가 되었단 사실을 암시한다. 아마 네안데르탈인은 서로를 보살피고, 장사지내고, 잡아먹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풍습은, 우리와 닮은 사람들도 공유하게된다. 이제, 네안데르탈인의 경쟁자인 동시에 혼맥으로 얽히게 된 우리와 비슷한 생김새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우리,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도 사람을 먹으며 살아왔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는 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시대에 벌어진 구체적인 식인 사례들에 대해 이야기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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