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세계여행 - 카자흐스탄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2022년 16개월간의 첫 세계여행 이후 지금까지 형편에 따라 장기여행과 단기여행을 반복하며 약 60여개국을 여행하였습니다. 문득 제 인생에 전환점이 되어준 이런 경험들을 먼 미래에 나이가 들어서도 잊지 않도록 글로 남겨보는 것이 어떨까 해서 볼품없지만 여행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첨부된 유튜브 영상은 여행 당시 개인소장용으로 편집했던 개인 소장용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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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유
2022년 4월 30일 퇴사
2022년 5월 2일 세계일주 시작
서른 중반, 5년간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 인사부에 보고한 퇴사 사유는 "세계여행". 당시 나를 빤히 쳐다보며 황당해하던 인사담당자의 모습이 기억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내 결정의 목적이 "퇴사"였는지 "여행"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나름 운좋게 좋은 회사에 취업하여 젊은 나이에 차장직급을 달았던 나는 부모님의 자랑이었고 대학생인 동생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허나 나는 너무도 지쳐있었다. 매일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그 사회가 내게는 버거웠고,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반복적인 하루들과 실적압박속에 나는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나에게는 쉼이 간절했다.
물론 퇴사전에도 휴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회사를 다닐 때에도 주말이 되면 일본, 대만 등 가까운 나라로 잠시 떠나 한숨을 돌렸고, 1년에 한두번 있는 휴가철에는 몽골, 우즈베키스탄 등을 여행하며 사회에서 멍든 마음을 얕게나마 치유했다.
허나 짧은 일탈로는 이 근본적인 질식감에서 해방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아무리 좋은 여행을 하여도, 돌아오면 또다시 모니터 속 쌓여있는 엑셀시트들에 파묻혀 잠시 멈춰있던 쳇바퀴를 다시 끙끙대며 돌려야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몇 년 내내 이 고민을 했다. 나는 그 돌파구로 더 긴 여행을 선택헸다. 이 모든 현실을 잊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긴 여행. 나는 그렇게 퇴사를 결심했다.
소식을 들은 주변인들은 용기있다 부럽다 말했지만, 비겁한 현실도피에 용기 따위의 거창한 감정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여행의 동기는 참기 힘든 현실의 무료함과 싫증으로 이미 충분했다. 이 따분한 일상과 지독한 사회에 질려 도망가는 나에게는, 오히려 그 어떤 불평이나 외도없이 꿋꿋이 견디고 살아가는 그들이 더 부러웠다.
나에게는 여행을 해서는 안될 이유가 수백가지도 넘는다. 나는 게으르며 충동적이고 활동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집돌이에 가깝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그리 즐기지도 않는다. 심지어 잠자리는 극도로 예민하여, 낯선 곳에서는 밤새 잠을 설치기 일수이다.
나는 그저 내가 익숙했던 모든 일상의 것들을 버리고 싶었고, 그게 내 여행의 이유의 전부였다.
마음의 결심이 선 순간, 회사와는 인수인계 3개월 기간으로 협의를 하고 여행준비를 시작했다. 장티푸스, 황열병, 코로나, 간염 등 온갖 예방접종들을 맞으러 다니고, 오랫동안 못 볼 가족들에게 인사도 하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여행경로와 예산을 계획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내가 여행에 지출할 수 있는 금액은 3500만원이었고, 이를 넘기는 순간 귀국하기로 마음먹는다. 사무실에서 조차 몰래 세계지도를 펼쳐놓은채 가고 싶은 곳들을 마킹하고 해당 국가들의 평균 숙박비, 식비, 교통비등을 검색해가며 최선의 루트를 찾아보았다. 그 과정자체가 이미 여행이 시작된 듯 너무 즐거웠다. 마치 아이로 돌아간 것 같았다.
허나 곧 이런 계획은 무의미함을 알게 된다. 가고 싶은 곳들은 너무도 많았고, 어느 곳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 많은 곳들을 모두 가보기엔 내 예산은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난 "칠레 이스터섬"이라는 최종목적지만 정해놓고, 모든 과정은 그때그때 내 기분에 맡기기로 한다.
그렇게 나는 퇴사 후 이틀만에 카자흐스탄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2. 소란
나는 왜 카자흐스탄을 첫 여행지로 선택했을까.
매체에서 비춰지는 카자흐스탄의 모습들은 대체로 웅장한 실크로드 유산과 유목문화쯤이 다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카자흐스탄을 선택한 이유는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우연히 보았던 유튜브에서 카자흐스탄사람들의 소박한 삶 속 미소와 여유에 매료되었고, 그 곳은 내게 항상 꼭 가보고 싶은 국가 중 하나였다.
특히 빠르고 소란스러운 삶을 떠나 쉼을 찾아가는 나에게, 끝없이 펼쳐진 초원 위 느릿한 시간 속에서 고요히 살아가는 그 곳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난 어디에 위치한 국가인지도 모른 채, 그 흔한 여행가이드북조차 찾기 힘든 미지가 주는 신비로움에 이끌려 카자흐스탄 알마티 공항에 도착했다.
예상은 했지만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숙소로 가는 교통을 알아보는 것부터 현지 통화를 인출하는 것 까지 모든 것이 난관이었다. 영어도 통하지 않는 그 곳에서 도움을 청할 이는 없었다. 그렇게 끙끙대며 공항 근처 ATM기와 씨름을 하고 있을 때 낯익은 언어로 누가 나를 부른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도와드릴까요?"
뒤를 돌아보니 인자한 인상의 아저씨가 서있었다.
아저씨는 현금인출을 도와주며 숙소까지 가는 택시를 잡아주겠다고 했다. 소통조차 안되는 타지에 홀로 처음 도착하여 내심 불안감을 갖고 있던 나에게 그 아저씨는 너무도 고마운 존재였고 나는 아저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저씨가 이끈 곳으로 가니 택시기사가 마치 나를 기다렸던 것 처럼 차 문을 열고 서있었다. 나를 도와준 한국어 아저씨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망설임없이 택시에 탑승했다.
여행이 이토록 쉬울리 없다. 당연하게도 사기였다.
이 사람들은 택시기사들과 각 언어 능력자들끼리 결탁하여 관광객들 상대로 사기를 치는 집단이었고 택시에서 내릴 때 나는 실랑이 끝에 택시기사 강압에 못이겨 기존 금액에 10배에 달하는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
사회의 소란을 피해서 도망치듯 온 낯선 땅에서의 첫 걸음은, 아이러니하게도 시작부터 소란스러웠다. 낭만과 평온으로 가득할 것만 같았던 세계여행은 이제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수많은 여행경험이 쌓인 지금이야 나도 당연히 안다. 누군가 지나치게 쉬운 길을 제안한다면 그것은 대체로 틀린 길이다. 장기여행은 기존의 질서와 규칙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적응력이 요구된다. 매일 변화되는 환경과 주변의 낯선 이들이, 나를 불확실한 선택의 기로에 던져놓고 하루에도 수없이 시험한다.
그리하여 여행은 실패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이후에도 나는 여행길에서 크고 작은 수많은 실패들을 경험했고 어찌보면 앞으로 내가 써나갈 글들은 그 실패담들의 모음집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 많은 선택들속에서 실패를 원천적으로 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저 덜 실패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혹시라도 실패하게 된다면 곧 찾아올 아름다운 풍경으로 보상받으면 된다.
3. 단 잠
우여곡절끝에 도착한 내 첫 번째 숙소는 알마티의 작은 캡슐호텔이었다. 개미굴을 연상시키는 작은 상자들이 층층이 쌓여 있고, 그 중 한 상자가 일주일 동안 나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긴 비행과 일련의 사건들로 피곤이 몰려오는 몸을 그 좁은 공간에 잠시 뉘이니, 발끝이 벽에 닿을 정도로 비좁았다. 허나 "내 인생에서 이보다 더 마음이 풍족한 잠자리가 있었던가?"하는 생각에, 그 곳은 마치 나에게 안락하고 포근한 5성급 호텔처럼 느껴졌다. 그 비좁고 낡은 상자 하나가, 내 인생 가장 사치스러운 여정의 출발점이 되었다.
알마티는 첫 날부터 나에게 참으로 행복한 도시였다. 아기자기한 젠코브 성당부터, 도시와 설산이 멋지게 어우러진 콕토베 언덕까지,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유명한 모든 명소를 눈에 담으려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다.
첫째날 밤, 여행의 시작을 자축할 겸 작은 보드카 한 병 들고 숙소 테라스로 나오니 이 계절쯤 내린다는 무수한 알마티의 꽃눈들이 나를 맞이했다. 너무도 아름다웠다. 이미 낮에 겪었던 택시 사기사건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달빛을 머금고 밤하늘에서 떨어지던 그 꽃눈들은 마치 여행의 시작을 축하라도 해주듯 나를 환영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별 대단할 것 없을 그 순간이 내게는 후에 알마티를 기억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릴 행복한 순간이 되었다.
그동안 그토록 되뇌었던 여행의 이유가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무엇을 보러 온 것도 아니고, 배우러 온 것도 아니다. 내 생에 처음 조우할 풍경들 속에서 내가 느낄 감정들을 경험하러 온 것이다.
그렇게 첫 날을 마무리하고 다시 캡슐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온 사방이 막혀있는 그 작은 상자 안에서 나는 인생 가장 큰 해방감을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놀라운 밤이었다. 몇 년 간 불면증으로 약과 처방전을 달고 살았던 나였는데, 이 날 이후로 완전히 치유되었다. 매일 밤 내게 고통을 주던 그 불면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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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유
2022년 4월 30일 퇴사
2022년 5월 2일 세계일주 시작
서른 중반, 5년간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 인사부에 보고한 퇴사 사유는 "세계여행". 당시 나를 빤히 쳐다보며 황당해하던 인사담당자의 모습이 기억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내 결정의 목적이 "퇴사"였는지 "여행"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나름 운좋게 좋은 회사에 취업하여 젊은 나이에 차장직급을 달았던 나는 부모님의 자랑이었고 대학생인 동생에게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허나 나는 너무도 지쳐있었다. 매일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그 사회가 내게는 버거웠고,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반복적인 하루들과 실적압박속에 나는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나에게는 쉼이 간절했다.
물론 퇴사전에도 휴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회사를 다닐 때에도 주말이 되면 일본, 대만 등 가까운 나라로 잠시 떠나 한숨을 돌렸고, 1년에 한두번 있는 휴가철에는 몽골, 우즈베키스탄 등을 여행하며 사회에서 멍든 마음을 얕게나마 치유했다.
허나 짧은 일탈로는 이 근본적인 질식감에서 해방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아무리 좋은 여행을 하여도, 돌아오면 또다시 모니터 속 쌓여있는 엑셀시트들에 파묻혀 잠시 멈춰있던 쳇바퀴를 다시 끙끙대며 돌려야 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몇 년 내내 이 고민을 했다. 나는 그 돌파구로 더 긴 여행을 선택헸다. 이 모든 현실을 잊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긴 여행. 나는 그렇게 퇴사를 결심했다.
소식을 들은 주변인들은 용기있다 부럽다 말했지만, 비겁한 현실도피에 용기 따위의 거창한 감정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여행의 동기는 참기 힘든 현실의 무료함과 싫증으로 이미 충분했다. 이 따분한 일상과 지독한 사회에 질려 도망가는 나에게는, 오히려 그 어떤 불평이나 외도없이 꿋꿋이 견디고 살아가는 그들이 더 부러웠다.
나에게는 여행을 해서는 안될 이유가 수백가지도 넘는다. 나는 게으르며 충동적이고 활동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집돌이에 가깝다.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그리 즐기지도 않는다. 심지어 잠자리는 극도로 예민하여, 낯선 곳에서는 밤새 잠을 설치기 일수이다.
나는 그저 내가 익숙했던 모든 일상의 것들을 버리고 싶었고, 그게 내 여행의 이유의 전부였다.
마음의 결심이 선 순간, 회사와는 인수인계 3개월 기간으로 협의를 하고 여행준비를 시작했다. 장티푸스, 황열병, 코로나, 간염 등 온갖 예방접종들을 맞으러 다니고, 오랫동안 못 볼 가족들에게 인사도 하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여행경로와 예산을 계획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내가 여행에 지출할 수 있는 금액은 3500만원이었고, 이를 넘기는 순간 귀국하기로 마음먹는다. 사무실에서 조차 몰래 세계지도를 펼쳐놓은채 가고 싶은 곳들을 마킹하고 해당 국가들의 평균 숙박비, 식비, 교통비등을 검색해가며 최선의 루트를 찾아보았다. 그 과정자체가 이미 여행이 시작된 듯 너무 즐거웠다. 마치 아이로 돌아간 것 같았다.
허나 곧 이런 계획은 무의미함을 알게 된다. 가고 싶은 곳들은 너무도 많았고, 어느 곳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 많은 곳들을 모두 가보기엔 내 예산은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난 "칠레 이스터섬"이라는 최종목적지만 정해놓고, 모든 과정은 그때그때 내 기분에 맡기기로 한다.
그렇게 나는 퇴사 후 이틀만에 카자흐스탄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2. 소란
나는 왜 카자흐스탄을 첫 여행지로 선택했을까.
매체에서 비춰지는 카자흐스탄의 모습들은 대체로 웅장한 실크로드 유산과 유목문화쯤이 다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카자흐스탄을 선택한 이유는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우연히 보았던 유튜브에서 카자흐스탄사람들의 소박한 삶 속 미소와 여유에 매료되었고, 그 곳은 내게 항상 꼭 가보고 싶은 국가 중 하나였다.
특히 빠르고 소란스러운 삶을 떠나 쉼을 찾아가는 나에게, 끝없이 펼쳐진 초원 위 느릿한 시간 속에서 고요히 살아가는 그 곳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난 어디에 위치한 국가인지도 모른 채, 그 흔한 여행가이드북조차 찾기 힘든 미지가 주는 신비로움에 이끌려 카자흐스탄 알마티 공항에 도착했다.
예상은 했지만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숙소로 가는 교통을 알아보는 것부터 현지 통화를 인출하는 것 까지 모든 것이 난관이었다. 영어도 통하지 않는 그 곳에서 도움을 청할 이는 없었다. 그렇게 끙끙대며 공항 근처 ATM기와 씨름을 하고 있을 때 낯익은 언어로 누가 나를 부른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도와드릴까요?"
뒤를 돌아보니 인자한 인상의 아저씨가 서있었다.
아저씨는 현금인출을 도와주며 숙소까지 가는 택시를 잡아주겠다고 했다. 소통조차 안되는 타지에 홀로 처음 도착하여 내심 불안감을 갖고 있던 나에게 그 아저씨는 너무도 고마운 존재였고 나는 아저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저씨가 이끈 곳으로 가니 택시기사가 마치 나를 기다렸던 것 처럼 차 문을 열고 서있었다. 나를 도와준 한국어 아저씨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망설임없이 택시에 탑승했다.
여행이 이토록 쉬울리 없다. 당연하게도 사기였다.
이 사람들은 택시기사들과 각 언어 능력자들끼리 결탁하여 관광객들 상대로 사기를 치는 집단이었고 택시에서 내릴 때 나는 실랑이 끝에 택시기사 강압에 못이겨 기존 금액에 10배에 달하는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
사회의 소란을 피해서 도망치듯 온 낯선 땅에서의 첫 걸음은, 아이러니하게도 시작부터 소란스러웠다. 낭만과 평온으로 가득할 것만 같았던 세계여행은 이제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수많은 여행경험이 쌓인 지금이야 나도 당연히 안다. 누군가 지나치게 쉬운 길을 제안한다면 그것은 대체로 틀린 길이다. 장기여행은 기존의 질서와 규칙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적응력이 요구된다. 매일 변화되는 환경과 주변의 낯선 이들이, 나를 불확실한 선택의 기로에 던져놓고 하루에도 수없이 시험한다.
그리하여 여행은 실패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이후에도 나는 여행길에서 크고 작은 수많은 실패들을 경험했고 어찌보면 앞으로 내가 써나갈 글들은 그 실패담들의 모음집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 많은 선택들속에서 실패를 원천적으로 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저 덜 실패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혹시라도 실패하게 된다면 곧 찾아올 아름다운 풍경으로 보상받으면 된다.
3. 단 잠
우여곡절끝에 도착한 내 첫 번째 숙소는 알마티의 작은 캡슐호텔이었다. 개미굴을 연상시키는 작은 상자들이 층층이 쌓여 있고, 그 중 한 상자가 일주일 동안 나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긴 비행과 일련의 사건들로 피곤이 몰려오는 몸을 그 좁은 공간에 잠시 뉘이니, 발끝이 벽에 닿을 정도로 비좁았다. 허나 "내 인생에서 이보다 더 마음이 풍족한 잠자리가 있었던가?"하는 생각에, 그 곳은 마치 나에게 안락하고 포근한 5성급 호텔처럼 느껴졌다. 그 비좁고 낡은 상자 하나가, 내 인생 가장 사치스러운 여정의 출발점이 되었다.
알마티는 첫 날부터 나에게 참으로 행복한 도시였다. 아기자기한 젠코브 성당부터, 도시와 설산이 멋지게 어우러진 콕토베 언덕까지, 인터넷 검색으로 찾은 유명한 모든 명소를 눈에 담으려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다.
첫째날 밤, 여행의 시작을 자축할 겸 작은 보드카 한 병 들고 숙소 테라스로 나오니 이 계절쯤 내린다는 무수한 알마티의 꽃눈들이 나를 맞이했다. 너무도 아름다웠다. 이미 낮에 겪었던 택시 사기사건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달빛을 머금고 밤하늘에서 떨어지던 그 꽃눈들은 마치 여행의 시작을 축하라도 해주듯 나를 환영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별 대단할 것 없을 그 순간이 내게는 후에 알마티를 기억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릴 행복한 순간이 되었다.
그동안 그토록 되뇌었던 여행의 이유가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무엇을 보러 온 것도 아니고, 배우러 온 것도 아니다. 내 생에 처음 조우할 풍경들 속에서 내가 느낄 감정들을 경험하러 온 것이다.
그렇게 첫 날을 마무리하고 다시 캡슐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온 사방이 막혀있는 그 작은 상자 안에서 나는 인생 가장 큰 해방감을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놀라운 밤이었다. 몇 년 간 불면증으로 약과 처방전을 달고 살았던 나였는데, 이 날 이후로 완전히 치유되었다. 매일 밤 내게 고통을 주던 그 불면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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