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과 타자기》 - 한글 기계화의 역사는 기술과 역사의 상호작용이다
저자:김태호
출판:역사비평사
발매:2023.11.30.
2024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접한 2024년 한국에서 가장 지혜로운 책 10책 중 하나, 《한글과 타자기》입니다. 10책 중 유일하게 밀리의서재에서 현재 서비스 중인 책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책들도 기회가 닿는 대로 읽어보고자 합니다.
글쓴이 김태호는 서울대학교 화학과를 거쳐 대학원에서 과학사 및 과학철학 합동과정에서 한국 근현대 과학기술사를 전공했고, 박사학위 논문(2009)에서는 통일벼를 다루었으며 이후에도 근현대 과학기술사를 다룬 책들을 출판했습니다. 지금은 전북대학교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에서 한국 근현대 과학기술사를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부제에도 나오듯이 한글 기계화를 주제로 하고 있으며, 그 과정은 기술뿐만 아니라 미학과 역사가 함께한 상호작용의 결과임을 보여 줍니다. 제목에 타자기가 들어가는 것은 한글 기계화의 시작이 바로 타자기이기 때문이지만, 책을 읽고 나면 현재의 한글 기계화에서는 타자기가 철저하게 배제되었다는 아이러니한 역사의 결론도 알게 됩니다. 그게 차라리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한글을 컴퓨터에서 쉽게 쓸 수 있는 이유는 타자기의 흔적을 배제했기 때문이기도 하니까요.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는글 한글 타자기와 나
1장 타자기라는 도전이자 기회
미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발명, 타자기 / 현대 타자기의 원형이 확립되기까지 / 타자기가 바꾼 문서 생활 / 로마자 세상 밖으로 나간 타자기 / 한자를 껴안고 ‘탈아입구’한 일본 / 일본의 ‘가나문자 운동’ / 한자와 가나를 같이 써야 했던 일본의 타자기 / 한자는 “쓰는” 것인가, “찾는” 것인가? / 그렇다면 한글은?
2장 순탄치만은 않았던 한글 타자기의 탄생
한글 타자기의 개발을 가로막은 장애물들 / 기술적 과제: 모아쓰기 / 사회·문화적 과제: 가로쓰기와 한글 전용(專用) / 글쇠가 몇 벌?─한글 타자기에서 자판 문제는 왜 중요한가 / 최초의 한글 타자기들 / 새로운 나라, 새로운 시작: 1949년 한글 타자기 현상 공모
3장 타자기에 미친 안과의사 공병우
약관의 나이에 의사가 되다 / 한국의 노구치 히데요를 꿈꾸다 / 세균학에서 안과학으로 / 공병우의 성실함을 인정한 사타케 / 대학의 연구를 경험하다 / “도규계의 명랑보” / 공안과, 최초의 한국인 안과 전문 의원에서 안과의 대명사가 되다 / ‘명사’ 공병우의 사회 활동 / 의사 공병우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 한글과 만나고, 한글 타자기를 직접 만들다
4장 한글 타자기 시장이 열리다
군과 타자기 (1) 한국전쟁과 손원일 / 군과 타자기 (2) 5·16 군사정변과 한글 공문서의 확산 / 다양하게 꽃피운 한글 타자기 시장 / 김동훈의 다섯벌식 타자기 / 장봉선의 인쇄전신기 / 송계범의 네벌식 인쇄전신기 / 시장의 성장과 분화: 예고된 표준화 논쟁
5장 공병우의 시각장애인 자활 운동과 타자기
시각장애인 재활 사업에 대한 공병우의 인식 전환과 공안과의 의료봉사 / 광복 전후 한국 시각장애인의 직업 활동 / 맹인부흥원의 설립과 맹인재활교육 / 공병우 타자기의 배제와 맹인부흥원의 고난 / 공병우의 이상은 무엇을 남겼는가?
6장 한글 기계화의 분수령이 된 1969년 자판 표준화
불발로 끝난 1950년대의 표준화 시도 / 박정희 정부의 표준 자판 제정 / 공병우 타자기에 대한 비판과 공병우의 대응 / 표준 자판을 둘러싼 논란, 그리고 비정치적인 것의 정치화 / 공병우의 반발과 권위주의 정권의 탄압 / 아마추어 발명가에서 한글 운동가를 거쳐 민주화운동가로 / 표준화의 빛과 그림자
7장 공병우 타자기의 유산과 ‘탈네모틀 글꼴’의 탄생
공병우 타자기의 “빨랫줄에 널어놓은” 글꼴 / 한글 타이포그래피의 역사적 과제 / 글쓰기 환경의 변화와 새로운 타이포그래피 / 1980년대 후반의 새로운 문화와 ‘아마추어’의 역할 / 새로운 의미를 얻은 탈네모틀 글꼴 / 시대의 아이콘이 된 탈네모틀 글꼴 / 타자 예문에 남은 연대의 흔적 / ‘한결체’의 도전 / 글꼴은 살아 있다
맺는글 내일은 한글을 어떤 기계로, 어떻게?
세벌식 자판의 마지막 불꽃 / 타자기의 시대가 가도 한글 기계화의 도전은 계속된다
여는글은 한때 세벌식 자판에 빠져 있었던 글쓴이의 경험에서 시작합니다. 이 책은 중립적인 글이고,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간 수많은 자판들을 소개하여 지금의 한글문화가 꽃 필 수 있는 토양을 알게 해 주고자 하는 글입니다. 그러나 한때 세벌식의 전도사였던 글쓴이의 경험이 없었다면 이 책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1장은 서양에서 처음 발명된 타자기의 역사를 소개합니다. 기본 로마자 외의 장식 문자를 거의 쓰지 않는 영미권에서 타자기가 발명되었고 타자기 덕분에 20세기 초중반의 문서 생활이 매우 편해졌기 때문에, 세계 각국은 타자기를 앞다투어 도입했고 그 과정에서 다른 문자들은 영미권의 로마자와 비교해서 "차이"가 아니라 "단점"이 있는 문자들로 인식되었습니다. 이 점이 가장 두드러진 것이 한자를 쓰는 동아시아였고, 일본과 중국은 한자를 포기하려 했으나 결국은 포기하지 못해 영미권에서는 비주류였던 색인형 타자기와 유사한 기술로 한자를 활판에서 찾아 찍는 방식의 타자기를 만들었습니다. 반면 한국은 한자를 포기하고 한글 기반으로 영미권의 타자기와 동일한 방식의 타자기를 만드는 길을 택했습니다.
2장은 한글 타자기 발명의 장애와 이를 해결하고자 한 노력들을 살펴봅니다. 영어에서와는 달리 한글은 낱자들을 모아 한 음절 단위로 묶어 모아쓰기를 하기 때문에, 낱자를 칠 때마다 글자를 찍는 기준점이 이동하지 않고, 낱자의 모양이 조금씩 바뀝니다. 한자, 한글, 가나는 세로쓰기를 했기 때문에 타자기의 가로쓰기 움직임과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미 중일에서 영미식 타자기를 포기하게 한 한자 역시 문제입니다.
모아쓰기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1914년 이원익의 칠행식 타자기(아직 영미권에서 사행 이상의 타자기가 유통되던 시절), 1934년 송기주의 네벌식 타자기 등 불완전하게나마 기술적인 해결안이 나왔지만, 가로쓰기나 한자 혼용 등의 문제는 사회의 개입 없이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모아쓰기 역시 주시경·최현배 등이 지지한 풀어쓰기라는 사회적 대책이 있었지요.
3장은 시선을 돌려 세벌식 타자기의 개발자인 공병우의 일생을 살펴봅니다. 이는 흔히 공병우를 세벌식 타자기 발명자로만 기억하고 있는데, 그전에 한국에서 최초로 안과병원을 개업한 안과의사기도 하고, 오히려 이쪽이 공병우의 본업이기 때문입니다. 공병우를 올바로 이해해야지 이후에 공병우의 영향을 짙게 받은 세벌식 타자기와 세벌식 자판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장에서는 공병우 자서전의 오류를 수정하기도 하는 등 공병우의 일생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노력이 돋보입니다.
공병우는 성공한 안과의사로서 대한민국의 명사가 되었고, 그 영향력으로 한국을 미국처럼 실용성과 효율성 제일의 나라로 개혁하고자 하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한복과 장독, 온돌을 포기하는 기행도 보여줍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쓴 책을 한글로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다가 1948년 2월 드디어 최초의 한글 타자기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원래는 두벌식 모아쓰기 타자기를 만들려 했으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세벌식 모아쓰기 타자기를 만들었지요. 공병우의 타자기는 완전한 가로쓰기 타자기고, 기계적으로 완전한 모아쓰기를 구현한 타자기고, 정사각형 글자를 포기한 타자기라는 그전에는 없던 혁신적인 타자기였습니다.
4장은 한글 타자기 시장이 팽창한 사회적 요인과, 다양한 타자기들의 경쟁 상황을 보여줍니다. 당시 한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과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서구화의 영향으로 가로쓰기도 보급되었습니다. 서구 문물을 많이 접한 사람들은 미국식 타자기와 유사한 공병우의 순 한글 타자기를 한자를 쓰지 못한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별 저항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군대였고,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군대의 영향으로 정부에도 공병우 타자기가 보급됩니다. 그러나 군대보다 더 보수적인 경향이 짙은 정부 부처에서는 전통과 단절된 공병우 타자기의 글꼴을 용인할 수 없었고, 김동훈이 발명한 네모반듯한 글꼴의 다섯벌식 타자기가 그 틈을 파고들어 공병우 타자기와 시장을 양분했습니다. 1958년에는 송계범이 두벌식 모아쓰기 텔레타이프를 발명했으나, 지나치게 고장이 잦고 타자기에서 쓸 수 없어 주류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5장은 공병우와 시각장애인 자활 사업을 다룹니다. 한글의 기계화와는 동떨어진 이야기이지만, 안과의사와 한글 타자기 개발자라는 공병우의 두 가지 특징이 결합해서 나타난 또 다른 공병우의 사회사업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 한국이나 일제시기 일본에서는 시각장애인의 복지를 위해 특정 업종을 시각장애인만이 종사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거나 지정했습니다. 이러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삶이 거의 겹치지가 않죠. 그런데 공병우는 미국에서 시각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섞여 사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시각장애인에게 타자를 가르쳐 타자수가 되어 비장애인과 섞여 사는 길을 열어주고자 했습니다.
6장은 1969년의 자판 표준화를 "한글 기계화의 분수령"이라고 서술합니다. 난립하는 타자기 시장을 표준화하기 위해 1959년과 1967년에 두 차례 시도했으나 무산되었고, 1969년 한글 표준화 자판은 타자기용 네벌식 자판과 텔레타이프용 두벌식 자판으로 나뉘어 발표됩니다. 1959년 이미 시장 주도자들 간의 합의에 실패한 정부는 이후에는 사업가들과 국어학자를 배제한 채 기계학자들과 관료 주도로 표준안을 만들어 강제했는데, 이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강제력 있는 표준은 그 존재만으로도 교육과 생산에서 많은 이점이 있었기 때문에 기존 타자기들을 대부분 도태시킵니다.
타자기 표준인 네벌식은 불완전했고 이를 주도한 군사정부는 민주적 권위가 부족했기 때문에 공병우 타자기의 반발을 찍어누를 수 없었지만, 컴퓨터 시대를 내다본 두벌식 자판의 징검다리 구실은 충분히 해낼 수 있었습니다. 결국 자모음 두 벌만으로 한글을 입력할 수 있고 이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승리한 것이지요.
7장은 공병우 타자기와 향후 밀접한 관계를 맺는 탈네모틀 글꼴을 설명합니다. 한글 글꼴 디자이너들에게 모아쓰기는 족쇄였습니다. 같은 자모음이라도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모양이 매번 바뀌니 글꼴 하나를 만들려고 하면 조합된 11,172자를 다 따로따로 만들어야 하는 중노동이 필요했지요. 그러나 타자기가 막 도입될 때에는 인쇄술이 일본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일본 기술과 호환이 좋은 네모반듯한 모아쓰기 글꼴이 대세였습니다. 자음 모음 28자만 만들어도 되는 탈네모틀 글꼴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은 1980년대 컴퓨터 보급 이후이고, 타자기에서 이미 탈네모틀 글꼴을 찍어내 온 세벌식은 다양성과 민주화라는 가치에서도 부합해 서로 힘을 합쳐 두벌식과 네모꼴 글꼴에 저항했습니다.
맺는글은 세벌식이 끝내 주류가 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하고, 그럼에도 스마트폰의 등장 등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계속되는 한 한글 기계화 문제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마무리합니다.
저 역시 책에도 나오듯이 옛날 한글타자연습을 하면서 예문으로 등장한 보고서에서 세벌식 자판이 있는 것을 알았고, 그 영향으로 세벌식 자판을 익혀서 지금까지 쓰고 있습니다. 저도 세벌식 자판의 장점으로 열거된 사항들에 푹 빠져 있었고,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습니다. 프로그래밍을 수박 겉 핥기로 배우다 보니 두벌식 모아쓰기 자판에 꼭 필요한 입력 방식 편집기(Input method editor, IME)를 직접 구현해서 쓰던 시절의 고생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요.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지금도 유로파 유니버설리스 4 같이 외국어 프로그램을 비공식으로 한글화할 때에 기술적인 문제로 세벌식 한글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IME의 부담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예라 하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1958년에 이미 송계범이 텔레타이프의 전기 회로로 IME를 구현해 두벌식 모아쓰기 자판을 발명했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IME를 구동하는 전기 회로의 신뢰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리고 텔레타이프가 개인이 쓰기에는 너무 비쌌기 때문에,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간 발명이었지만요.
한글 기계화의 완성은 자음·모음 두 벌로만 구성된 두벌식이라고 생각하는 의견이 이미 두벌식 모아쓰기를 기계화하기 어려운 정부 표준화 당시에도 있었다는 것도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두벌식 자판은 군사정부가 강요한 근본 없는 자판이 아니라 이미 풀어쓰기의 형태로 많은 사람들이 꿈꾼 자판인 것이지요. 송계범이 이미 구현하긴 했지만, 나중에는 두벌식 자판 구현에 필요한 IME가 대세 기술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두벌식 자판 표준화를 한 사람이 있다면 엄청난 혜안을 지닌 것입니다.
예전에 《애린 왕자》·《에린 왕자》의 사투리 쓰기를 평하면서 글은 처음에는 쓰는 사람이 편한 대로 쓰다가 나중에는 읽는 사람이 편한 대로 바뀐다고 했습니다. 이를 글자판의 역사에 비추어 보면, 처음에는 구현하기 쉬운 기술이 대세가 되다가 나중에는 사용하는 사람이 편한 기술이 대세로 바뀐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전히 세벌식이 사용자에게 몇 가지 장점이 있긴 하지만, 지금은 빠른 타자에 큰 가치가 없는 시대이고 배우기 쉬운 자판이 가장 좋은 자판이 되었지요. 마치 프로그래밍 언어가 옛날에는 어려워도 속도가 빠른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언어가 대우받다가 지금은 쉽고 프로그래머가 빠르게 개발할 수 있는 언어가 주류를 차지한 것처럼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두벌식의 지배는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만약 공병우와 비슷한 시기에 탈네모틀 글꼴의 미학을 주장한 사람이 있었다면 역사는 또 다르게 흘러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벌식 바자기가 빠른 입력 속도를 자랑함에도 대세 기술이 되지 못한 것은 그만큼 네모반듯한 글꼴을 아름답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에는 일본식 인쇄 기술의 영향을 제외할 수 없고요. 만약 영미식 인쇄 기술이 일찍 도입되어서 글꼴도 영미식으로 28개의 낱자만을 만드는 것이 경제적이고 나아가서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기조가 일찍 나타났다면 세벌식 타자기의 탈네모틀 글꼴도 못생긴 글꼴이 아니라 아름다운 글꼴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세벌식 타자기가 시장을 지배하고 업계 표준이 되는 세상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기술이 과연 가치 중립적일 수 있을까? 기술은 결국 어떤 가치를 옹호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풀어쓰기와 모아쓰기, 네모틀 글꼴과 탈네모틀 글꼴, 두벌식과 세벌식, 네벌식, 다섯벌식 등 한글 기계화에서 나온 여러 가지 기술적 주제들은 결국 제각기 장점과 단점이 있는데, 이 중 어느 장점에 주목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가치이고, 사회입니다. 만약 한국에서 모든 것을 서구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극단으로 치달았으면 풀어쓰기 두벌식이 이겼을 것입니다. 국한문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면 일본이나 중국처럼 한자를 찍을 수 있는 색인식 타자기가 실용화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는 인쇄술, 서적 사업 등 사회적인 분위기는 물론이고 정부의 형태까지도 영향을 미칩니다.
《한글과 타자기》는 지금처럼 한글을 컴퓨터에서 편하게 쓰기 위해서 근현대 한국인들이 분투한 과정과, 그 중 한 명인 공병우의 일생과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접한 평에서는 한글 기계화와 무관한 공병우 이야기가 지나치게 많은 점을 지적했는데, 동의하면서도 한글 기계화란 당시 사회를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구성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공병우 외의 다른 발명가들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남겨놓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운데, 이건 책의 한계가 아니라 역사의 한계이지요. 그러나 한글을 기계화하기 위한 다양한 타자기들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최대한 보완한 것 같습니다.
타자기라는 무기를 앞세워 영미식 로마자가 가장 우수하고 그와 다른 글자들은 모두 열등한 것으로 취급된 시대에, 온전한 한글 기계화를 성공한 것만으로도 이미 한국 기술의 쾌거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미처 누리지 못한 컴퓨터의 발달로 두벌식 자판과 네모틀 글꼴을 편하게 누리고 있는 지금은 그분들의 이상이 현실이 된 사회일지도 모릅니다. 선조들의 유산이 직접 계승되지 못했다고 해서 그분들의 노력이 아무 의미 없는 것은 아닙니다. 불완전한 기술로도 꾸준히 한글을 기계로 써 왔기에 지금 우리가 한글 기계화의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속으로 그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