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은 왜 智異山으로 쓰고 지리산으로 읽을까? - 상고한어의 흔적
한민족의 영산 지리산. 신라, 고려, 조선 역대 왕조에서 모두 제사를 지낸 산이자, 대한민국에서도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한 산입니다.
그런데 이 산의 이름은 한자로는 "지이산"(智異山)으로 쓰고 "지리산"으로 읽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선, 지리산은 한자로 地理山이라고도 쓰는데, 이건 "지리산"으로 읽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표기가 있는데, "리" 부분을 異 외에도 而, 利, 理로도 씁니다. 음이 "이"인 한자도 있고 "리"인 한자도 있습니다. 한국지명학회에 따르면 "지루하다"의 옛말인 "지리하다"에서 산의 이름이 나왔다고 하니 원래 이름은 "지리산"이 맞을 겁니다.
대개는 이 지리산의 한자 표기는 "활음조 현상"으로 설명합니다. 어투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리을이 첨가되어 지이산에서 지리산으로 바뀌었다는 것이지요. 물론 원래 산 이름 자체는 지리산인 것을 감안하면, 한자로 표기할 때 음이 "리"인 한자 외에 "이"인 한자도 "리"를 표기하기 위해 쓰일 수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지리산이란 이름이 매우 오래된 것을 감안하면, 어쩌면 한국 한자음의 기준이 되는 중고 한자음 이전의 상고 한자음의 영향일 수도 있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중국어의 음운 체계는 서양 음운학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연구가 되어 있었는데, 한국어로 따져보면 초성 자음에 해당하는 성모와 나머지 부분에 해당하는 운모로 소리를 나누어 분석합니다. 한국어의 초성 자음은 24개지만 중국어의 성모는 현재는 21개인데, 처음으로 성모와 운모를 구분해 중국어 음운학이 발생한 시대인 중고한어의 성모 수는 대략 37 ~ 51개로 학설에 따라 다릅니다. 그 성모 중의 하나가 써 이(以)자를 쓰는 이모(以母)입니다.
以母는 지금은 영성모, 즉 소리 없는 성모로 봅니다. 그래서 以의 한자음이 모음만 있는 "이"죠. 우리말에서 이 영성모를 표기하는 한글이 바로 초성 이응입니다.
그러나 중세 한국어 자료에서는 以母 한자의 초성을 리을이나 니은으로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화할 융(融)을 "륭", 제사 융(肜)을 "륭", 물깊고넓을 융(瀜)을 "륭", 팔 육(鬻)을 "륙", 초나라서울 영(郢)을 "녕"이나 "령"으로 쓰는 것이지요. 마침 학자들은 以母의 상고음에는 유음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한국어에서 유음은 리을로 표기합니다. 그래서 以母 한자들의 초성에 리을이나 니은이 들어가는 것을 상고음의 잔재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리산의 異 역시 以母입니다.
즉, 智異山은 원래는 "지이산"으로 읽어야 하는 게 아니라, 쓸 때부터 원래 상고음의 영향으로 "지리산"으로 읽던 표기였을 것입니다. 나중에 以母가 영성모로 바뀌고 한국어에 중고한어가 들어오면서 한자 음이 체계적으로 중고한어를 따르도록 바뀌었지만, 전부터 쓰던 상고음이 남아 있었고 특히 지명은 보수적이므로 "지리산"에서는 옛 음이 그대로 보전되어 지금까지 내려왔을 것입니다.
그 외에도 한국의 고대 국명인 가야(加耶, 伽倻) 역시 가라(加羅), 가락(駕駱)이라는 다른 표기에서 둘째 음절의 초성이 리을로 나타납니다. 지금의 한자 표기 伽倻는 불교 성지 부다가야의 영향으로 고정된 것입니다. 그런데 耶 역시 以母이고, 따라서 원래 상고음으로는 "가라"에 가까운 소리였을 겁니다. 지리산과는 달리 가라가 가야로 바뀐 것은 중고한어를 바탕으로 번역된 불경의 영향으로 耶나 倻 역시 상고한어에서 중고한어로 음이 완전히 바뀐 탓일 겁니다. 가야가 불교의 성지이기도 하니 더더욱 그 영향이 강했겠지요.
국립국어원에서 편찬한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으로 표시한 한자 변이음 중에서는 이처럼 한국 한자음의 기준이 되는 중고한어가 아닌 상고한어나 근고한어의 흔적이 남아 있는 한자들을 몇몇 더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지(只)는 이두에서는 "기"로 읽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면 이성계가 상대한 한 왜장을 고려인들이 부른 이름 아기바투(阿只拔都)에서도 이런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只가 속한 章母를 상고한어에서는 *krj-, *khrj-, *grg-로 추정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근고한어에서는 한국어로 따지면 몇몇 예삿소리가 거센소리로 바뀌는 현상이 있었는데(이를 전탁청화라 합니다), 한국에서는 어떤 경우에는 옛 중국어 방식으로 예삿소리를 유지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중국어의 변화를 받아들여 거센소리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예삿소리를 유지한 예로는 창자 장(腸), 돈 전(錢), 엿 당(糖)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센소리도 어느 정도 유입됐는데, 창자(腸子), 사천(私錢), 사탕(砂糖) 등에서는 이 한자를 거센소리로 읽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센소리로 바뀐 예로는 가죽 피(皮), 주사위 투(骰), 통 통(筒)이 있는데, 예삿소리가 유지된 경우로 녹비(鹿皮), 두자(骰子), 동개(筒介) 등이 있습니다.
이 글은 신우선, 〈한국한자어에 반영된 이른 시기 중국어 운모 층위 고찰〉, 《중국언어연구》 101집, 35~56쪽의 논문을 바탕으로 합니다. 링크를 걸어 놓습니다만 애석하게도 유료 논문이네요. 학술논문은 아니고 신우선의 논문보다 논지 전개가 좀 어설픈 감은 있지만, 그보다 좀 더 이른 자료는 아카이브뉴스의 다음 기사가 있습니다. https://archivesnews.com/client/article/viw.asp?cate=C03&nNewsNumb=20150216643
초성이 많이 나오는 글이라 만우절 때 쓰는 게 더 좋았지만, 최근에 읽은 논문이고 다음 만우절은 꽤나 먼지라 그냥 올립니다.
그런데 이 산의 이름은 한자로는 "지이산"(智異山)으로 쓰고 "지리산"으로 읽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선, 지리산은 한자로 地理山이라고도 쓰는데, 이건 "지리산"으로 읽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표기가 있는데, "리" 부분을 異 외에도 而, 利, 理로도 씁니다. 음이 "이"인 한자도 있고 "리"인 한자도 있습니다. 한국지명학회에 따르면 "지루하다"의 옛말인 "지리하다"에서 산의 이름이 나왔다고 하니 원래 이름은 "지리산"이 맞을 겁니다.
대개는 이 지리산의 한자 표기는 "활음조 현상"으로 설명합니다. 어투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리을이 첨가되어 지이산에서 지리산으로 바뀌었다는 것이지요. 물론 원래 산 이름 자체는 지리산인 것을 감안하면, 한자로 표기할 때 음이 "리"인 한자 외에 "이"인 한자도 "리"를 표기하기 위해 쓰일 수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지리산이란 이름이 매우 오래된 것을 감안하면, 어쩌면 한국 한자음의 기준이 되는 중고 한자음 이전의 상고 한자음의 영향일 수도 있다는 해석이 나왔습니다.
중국어의 음운 체계는 서양 음운학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연구가 되어 있었는데, 한국어로 따져보면 초성 자음에 해당하는 성모와 나머지 부분에 해당하는 운모로 소리를 나누어 분석합니다. 한국어의 초성 자음은 24개지만 중국어의 성모는 현재는 21개인데, 처음으로 성모와 운모를 구분해 중국어 음운학이 발생한 시대인 중고한어의 성모 수는 대략 37 ~ 51개로 학설에 따라 다릅니다. 그 성모 중의 하나가 써 이(以)자를 쓰는 이모(以母)입니다.
以母는 지금은 영성모, 즉 소리 없는 성모로 봅니다. 그래서 以의 한자음이 모음만 있는 "이"죠. 우리말에서 이 영성모를 표기하는 한글이 바로 초성 이응입니다.
그러나 중세 한국어 자료에서는 以母 한자의 초성을 리을이나 니은으로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화할 융(融)을 "륭", 제사 융(肜)을 "륭", 물깊고넓을 융(瀜)을 "륭", 팔 육(鬻)을 "륙", 초나라서울 영(郢)을 "녕"이나 "령"으로 쓰는 것이지요. 마침 학자들은 以母의 상고음에는 유음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한국어에서 유음은 리을로 표기합니다. 그래서 以母 한자들의 초성에 리을이나 니은이 들어가는 것을 상고음의 잔재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리산의 異 역시 以母입니다.
즉, 智異山은 원래는 "지이산"으로 읽어야 하는 게 아니라, 쓸 때부터 원래 상고음의 영향으로 "지리산"으로 읽던 표기였을 것입니다. 나중에 以母가 영성모로 바뀌고 한국어에 중고한어가 들어오면서 한자 음이 체계적으로 중고한어를 따르도록 바뀌었지만, 전부터 쓰던 상고음이 남아 있었고 특히 지명은 보수적이므로 "지리산"에서는 옛 음이 그대로 보전되어 지금까지 내려왔을 것입니다.
그 외에도 한국의 고대 국명인 가야(加耶, 伽倻) 역시 가라(加羅), 가락(駕駱)이라는 다른 표기에서 둘째 음절의 초성이 리을로 나타납니다. 지금의 한자 표기 伽倻는 불교 성지 부다가야의 영향으로 고정된 것입니다. 그런데 耶 역시 以母이고, 따라서 원래 상고음으로는 "가라"에 가까운 소리였을 겁니다. 지리산과는 달리 가라가 가야로 바뀐 것은 중고한어를 바탕으로 번역된 불경의 영향으로 耶나 倻 역시 상고한어에서 중고한어로 음이 완전히 바뀐 탓일 겁니다. 가야가 불교의 성지이기도 하니 더더욱 그 영향이 강했겠지요.
국립국어원에서 편찬한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으로 표시한 한자 변이음 중에서는 이처럼 한국 한자음의 기준이 되는 중고한어가 아닌 상고한어나 근고한어의 흔적이 남아 있는 한자들을 몇몇 더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지(只)는 이두에서는 "기"로 읽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면 이성계가 상대한 한 왜장을 고려인들이 부른 이름 아기바투(阿只拔都)에서도 이런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只가 속한 章母를 상고한어에서는 *krj-, *khrj-, *grg-로 추정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근고한어에서는 한국어로 따지면 몇몇 예삿소리가 거센소리로 바뀌는 현상이 있었는데(이를 전탁청화라 합니다), 한국에서는 어떤 경우에는 옛 중국어 방식으로 예삿소리를 유지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중국어의 변화를 받아들여 거센소리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예삿소리를 유지한 예로는 창자 장(腸), 돈 전(錢), 엿 당(糖)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센소리도 어느 정도 유입됐는데, 창자(腸子), 사천(私錢), 사탕(砂糖) 등에서는 이 한자를 거센소리로 읽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거센소리로 바뀐 예로는 가죽 피(皮), 주사위 투(骰), 통 통(筒)이 있는데, 예삿소리가 유지된 경우로 녹비(鹿皮), 두자(骰子), 동개(筒介) 등이 있습니다.
이 글은 신우선, 〈한국한자어에 반영된 이른 시기 중국어 운모 층위 고찰〉, 《중국언어연구》 101집, 35~56쪽의 논문을 바탕으로 합니다. 링크를 걸어 놓습니다만 애석하게도 유료 논문이네요. 학술논문은 아니고 신우선의 논문보다 논지 전개가 좀 어설픈 감은 있지만, 그보다 좀 더 이른 자료는 아카이브뉴스의 다음 기사가 있습니다. https://archivesnews.com/client/article/viw.asp?cate=C03&nNewsNumb=20150216643
초성이 많이 나오는 글이라 만우절 때 쓰는 게 더 좋았지만, 최근에 읽은 논문이고 다음 만우절은 꽤나 먼지라 그냥 올립니다.
추천110 비추천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