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하라》 - 무의미한 노동과 소비의 굴레에서 탈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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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하라!
글쓴이는 직장에 얽매인 근로자들에게 탈출을 권하는 잡지 《뉴 이스커팔러지스트》의 편집장으로, 이 책은 바로 사람들에게 탈출자, 원어로는 이스커팔러지스트가 되도록 촉구하는 책입니다. 원래 이스커팔러지스트란 본디 탈출 마술 묘기를 전문적으로 보여주는, 그 분야의 마술사를 말합니다. 이 책에서 수시로 언급하는 마술사 후디니가 바로 이스커팔러지스트입니다. 이 마술사는 190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고, 지금도 탈출 마술은 마술 쇼의 인기 레퍼토리로 꼽히죠. 왜 그럴까요?
글쓴이는 1900년대부터 제1세계 시민들의 삶을 옥죄는 관료제와 대량 소비경제가 정착되었고 사람들은 이 감옥 같은 삶에서 탈출하기를 꿈꾸었기 때문에 탈출 마술이 인기를 끌었다고 설명합니다. 이 글에서 수시로 나오는 탈출자란 관료제와 소비경제의 족쇄를 깨고 나오는 탈출 마술의 전문가가 된 사람입니다.
글쓴이가 소개하는 탈출자가 끊어야 할 족쇄는 네 가지입니다. 노동, 소비, 관료제, 원시 뇌.
만약 당신이 소설이나 영화 대본을 쓰면서 등장인물이 형편없는 인생을 살고 있음을 단박에 독자에게 이해시키고 싶다면 그 인물을 사무용 의자에 앉혀놓기만 하면 된다.
<탈출하라>, 로버트 링엄 지음, 이주만 옮김
우리의 직장 생활은 사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비참한 삶은 아닐까요? 의미 없는, 보람을 느낄 수 없는 노동은 노예 생활이나 다름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노동을 하겠다고 고용주와 자발적으로 계약한 적이 사실상 없습니다. 이런 노동을 하겠다고 1시간 넘게 통근하는 것은 더한 코미디입니다.
이런 노동을 하게 하는 것은 소비입니다. 소비경제는 우리가 무한히 소비하도록 강요하고, 소비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라고 유혹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아이폰이나 젖꼭지 모양 주전자를 가지고자 우리가 살아가야 할 지구를 파괴하고, 인류가 진보할 수 있는 능력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이런 무의미한 노동과 소비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정부의 관료제와 우리의 원시 뇌입니다. 원시 뇌는 풍족한 서구 사회 속에서 살면서도 항상 풍족함을 누릴 수 없는 원시 사회 속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소비경제의 주관자들이 말해주는 속임수에 넘어가 무의미한 소비와 노동을 하게 합니다. 또 다른 족쇄는 위험을 과장하는 불안, 지위를 손에 넣어야 한다는 불안,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고민하는 실존적 불안입니다. 소비경제는 이 모든 불안을 회피해 사람에게 안정감을 줍니다. 그 대가는 비싸고요. 심지어 글쓴이조차 이 실존적 불안을 야기하는 허영심을 억누르기 위해 본명이 아닌 필명으로 작가 활동을 합니다.
이 모든 것을 벗어난 탈출자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글쓴이가 제시하는 좋은 삶을 이끄는 아홉 가지 원칙입니다. 건강, 자유 시간, 친구, 평범한 일상, 감각적 즐거움, 지적 자극, 창작 활동, 단정하면서도 품위 있는 주거 공간, 자랑스러운 습관. 여기에 근면한 노동과 소비의 극대화는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그것 없이 사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글쓴이는 노동, 소비, 관료제, 원시 뇌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제시합니다.
먼저, 큰돈을 벌기 위해, 고용안전성을 얻기 위해 압도적인 노동시간에 파묻히지 말고, 시간제로 일하거나 투자를 하거나 자동화 사업체를 운영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이 중 자동화 사업체는 다른 사람을 소비경제의 굴레 속에 빠뜨리는 것이라 맘에 들지는 않는다고 하지만요.
소비와 관료제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단순한 삶, 미니멀리즘을 추구합니다. 먹지 못할 것은 사지도 얻지도 말고, 이용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은 물건은 버리는 것, 이 두 가지가 미니멀리즘의 원칙입니다. 빚은 미래를 위한 것이라도 절대로 져서는 안 됩니다. 학자금 대출 같은 건 의미 있는 거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글쓴이가 보기엔 이렇게 더 높은 지위를 얻고자 하는 것 자체가 소비경제의 덫에 빠지는 지름길입니다.
이렇게 소비를 줄이는 것이 무의미한 물건을 양산해 지구를 파괴하는 현대사회의 병폐를 깰 수 있는 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유가 적으면 기동성을 갖추게 되며, 이 두 가지는 관료제의 횡포를 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집도 없고 절도 없는 사람에게 공권력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한국에선 그 정도로 정부의 감시를 피할 수 있을 것 같지 않군요.
원시 뇌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좀 더 대단한 과업이 필요합니다. 자유 의지를 갈고닦아 자유로운 이동을 해야 합니다. 뉴스와 SNS를 끊어야 합니다. 계층 상승 욕구를 버리고 보헤미안이 되어야 합니다. 어차피 인간은 이 우주에 비하면 무의미하니 즐겁게 살다 가면 충분하다는 인생관을 가져야 합니다. 의무가 될 수 있는 일, 예를 들면 가정을 이루기 등을 그만두면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원시 뇌를 가지고 벌벌 떨며 사는 주변 사람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이 풍요로운 세상에서 있지도 않은 위협에 벌벌 떠는 원시 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글쓴이가 말하는 탈출자로 살아가는 법은 여러 나라를 떠돌 각오를 필연적으로 해야 하며, 한 나라의 국민으로 실천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보입니다. 한국은 오래전부터 제1세계의 일원이었지만 결국은 서구 사회와는 어쩔 수 없는 먼 거리를 느끼게 하네요. 예를 들어, 런던에 사는 영국인은 싼 물가와 일자리를 찾아 몬트리올이나 베를린, 지중해 등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고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한국인에게는 어림도 없는 이야깁니다.
글쓴이는 주로 시간제 도서관 사서로 일하면서 탈출자의 자유를 누립니다. 그러나 한국인이라면 물가 비싼 대도시를 떠나 살면서 시간제 사서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생활비를 최소한으로 줄인다 하더라도 저는 잘 모르겠네요. 가능하다면 한국이 생각만큼 팍팍한 사회는 아니네 하면서 안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도 이제 많이 비정규직이 생겨나고는 있지만, 여전히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살아도 괜찮을 만큼 원하는 때에 원하는 직장을 얻을 수 있을지 의심이 듭니다.
글쓴이 부부는 몬트리올에서 1년간 19200 캐나다달러, 2024년 8월 1일 기준으로는 한국 돈으로 약 1905만원으로 살아갑니다. 이 중 1년간 내는 월세가 10800 캐나다달러, 생활비가 8400 캐나다달러입니다. 정말 낮은 비용으로 살아가고 있지요. 채식주의로 식료품비가 1주에 80 캐나다달러, 그러니까 8만원밖에 나가지 않는다고 하고요. 한국에서 이렇게 사는 게 가능할까요?
그리고 글쓴이가 말하는 자유의 대가는 꽤나 비쌉니다.
안락함과 안전함은 가치가 있지만 자유와 사랑, 건강을 희생해도 될 만큼은 아니다.
<탈출하라>, 로버트 링엄 지음, 이주만 옮김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안락함과 안전함이 없이 사랑과 건강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안락함과 안전함을 얻기 위해서 자유를 포기하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요?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두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유를 권하는 글들에서 공통적으로 받는 아쉬움입니다.
글쓴이는 사회 변혁을 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회를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사회 환경을 최대한 활용해서 소비 사회의 굴레를 최대한 벗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긴 합니다. 글쓴이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회는 기본소득제를 실시하는 사회입니다. 어쩌면 글쓴이도 지금은 안정을 포기하고 자유를 누릴 수밖에 없지만, 실은 안정도 그만큼 중요한 가치임을 은연중에 인식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계층 사다리를 올라가고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면 얻을 수 있는 게 많긴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노력을 하며 사는 것은 오히려 이 소비 사회의 조종자의 농간에 놀아날 뿐이라는 메시지는 어떤가요? 어떤 사람에게는 시원한 통찰일 수도 있지만, 낮은 지위 때문에 설움과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더 꽉 막힌 고구마 같은 메시지일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을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은 서구의 중산층 정도에 불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비록 글쓴이 부부에게 필요한 수입은 한국 기준으로는 최저생계비 수준에 불과하지만, 한국의 최저생계비 정도만 버는 가구가 저런 삶을 살 수 있을까 아직도 의구심이 듭니다. 비숙련 노동자, 경기에 민감한 산업 종사자 등 원하는 때에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보장이 없는 사람들도 노동의 굴레를 벗어버릴 수 있을까요? 글쓴이는 가내공업 즉 소규모 자영업을 이상적인 모델로 제시했지만 한국의 자영업 실태를 보면 글쓴이는 탈출자가 되고 싶어도 되지 못하는 자영업자의 삶을 알기나 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책에 나오는 몇몇 서구 탈출자들의 실례만으로는, 글쎄요, 저는 함부로 따라 할 수 있는 삶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래도 탈출자가 되기를 꿈꿀 필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대개 사람들이 중병에 걸려 생명이 얼마 안 남게 되면 가족, 친구, 여가, 예술, 사랑, 건강, 친절이 중요하다고 고백한답니다. 1900년대 이래 소비사회는 어떤 면에서는 이것을 가능하게 했지만 다른 면에서는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탈출자가 되는 것 그 자체를 꿈꾸기보다는 물질주의에 갇혀서 놓치기 쉬운 가치를 추구할 수 있게 하는 길을 열어주는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가정을 이루지 말라고 하는 조언을 보면 뭔가 앞뒤가 바뀐 것 같지만요.
하기 싫은 일을 생계 때문에 억지로 하며,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과 버스에 오늘도 자기 몸을 맡기는 수많은 직장인들에게 탈출자의 삶은 언제나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그 매력을 누리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은 매우 많습니다. 그래도 그런 삶이 불가능하지 않고, 그리고 생각보다 더 매력적이고 창조적이며 지구 환경과 인류 사회에 더 기여하는 법이라는 메시지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탈출자가 되도록 용기를 주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탈출자가 되고 싶으신가요?